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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상일꾼

한국문인협회 로고 李揆貞(이정)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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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그해도 천수답에도 모내기하던 늦장마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모내기하던 몸뚱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욱신거리는 통증이 날아들었다. 얼마나 아픈지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소리가 튀어 나오는 몸뚱이가 욱신거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서야 나도 모르게 욱신거리던 통증이 멈추고 있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일어나 사랑방을 나섰다. 반기듯이 바라보는 외양간에 주저앉은 암소는 되새김질하는 주둥이를 벌름거렸다.

“옜다. 먹어라.”

소먹이 풀을 던져주며 바라보는 암소가 반기듯이 일어서고 있었다. 소먹이 풀을 잘라먹는 암소를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마음이 멈추지 않았다. 새끼를 갖고부터 보기만 해도 기특해지는 암소는 그동안 키우면서도 깊은 정이 들었다. 이른 봄부터 논밭갈이도 함께하던 암소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암소를 바라보며 잡아드는 지게가 휘청거렸다. 휘청거리는 지게를 짊어지면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시커멓게 내려앉았던 먹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이제야 늦장마가 멈추는 모양이구나.’

안마당을 나서면서 바라보는 개울에는 시커먼 흙탕물이 흘러내렸다,

빨래터조차 휩쓸려가던 개울가에는 개구리가 개골거리는 소리가 날아 들었다. 이제야 조금씩 줄어드는 개울물을 바라보며 다릿목으로 내려 서고 있었다. 다릿목에서 올라서던 반장이 반기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너 논매기 두렛일도 할래.”

“네. 시켜주면 할게요.”

“그럼 낼 새벽에 병풍바위로 와. 올해도 병풍바위에 달라붙은 논바닥에서부터 두렛일을 할 거니까.”

“네.”

나도 모르게 반기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일꾼들이나 끼워주는 두렛일이 반가위지기 때문이었다. 고맙다는 듯이 바라보는 반장은 싱긋이 웃으며 마을로 올라서고 있었다. 이제는 나도 상일꾼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는 마음이 흐뭇했다. 나도 모르게 싱글거리며 올라서는 개울둑에는 소먹이 풀이 많아지고 있었다. 지게를 벗어던지며 휘둘러보는 논바닥에서는 그동안 푸릇해지는 모들이 반기듯이 쳐다보았다.

‘그동안에 뿌리를 내린 모양이구나.’

늦장마에도 푸릇하게 자라는 모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낫자루를 잡아들며 내려다보는 소먹이 풀이 반가웠다. 소먹이 풀을 반기듯이 베어드는 낫자루를 휘둘렀다. 한아름씩 베어드는 소먹이 풀이 많아지고 있었다. 소먹이 풀을 지게꼬리로 옭아매는 개울둑으로 석기가 올라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바라보는 석기가 반기듯이 말했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구나.”

“무슨 일인데 여기까지 왔어.”

“대장간에 다니라고 왔어. 거기서 낫과 호미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나는 싫으니까 다른 애들이나 가라고 그래.”

“왜? 무엇 때문에 싫으냐.”

“낼부터 논매기 두렛일을 해야 돼.”

“어이구 등신아. 그런 일은 너의 아버지보고 하라고 그러고 무슨 기술을 배워야지. 언제까지 그까짓 농사짓는 일이나 할 거냐.”

“아무리 배우고 싶어도 못 다녀. 자전거도 없는데 어떻게 다니겠어.”

“그까짓 자전거는 월급으로 사면 돼. 너처럼 무슨 일이든 잘 하는 애들은 월급도 준다고 그랬으니까.”

“정말로 월급도 준다고 그랬어? ”

나도 모르게 반기듯이 벌어지는 눈망울을 껌뻑거렸다. 설마 하면서 바라보는 석기가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

“그럼 논매기하고 가볼게.”

“어이구 등신, 네 맘대로 해. 그때 가면 늦을지도 모르니까.”

석기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설렁해지는 개울둑에서는 어머니를 따라가던 대장간이 스쳐갔다. 그때 보았던 대장간에서 시뻘건 쇳덩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때는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던 대장간에서 월급을 준다는 소리가 믿기지 않았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동안 무슨 기술을 배우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친구가 없었다. 석기가 잘못 듣고서 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말로 월급을 줄지도 모르는 대장간에 곧바로 쫓아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논매기 두렛일 때문에 가보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짊어지는 지게가 휘청거렸다. 휘청거리는 지게를 짊어지고 돌아오는 집에서는 암소가 반기듯이 쳐다보았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암소를 바라보며 소먹이 풀을 던져주었다.

“얼른와서저녁먹어라.”

어머니가 불러서야 마루에 올라섰다. 아버지와 마주앉는 마루에는 어머니가 저녁상을 내려놓고 있었다. 반기듯이 잡아든 숟가락으로 구수한 햇감자와 꽁보리밥을 먹은 동안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랫배가 불룩해지는 저녁을 먹고서야 그동안 아무런 관심도 없던 밭농사가 궁금해졌다.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보리가 늦장마에도 괜찮던가요.”

“올해는 늦장마에도 알차게 여물은 보리를 하루라도 빨리 베어야겠어. 조금만 머뭇거려도 언제 어떻게 썩을지도 모르니까.”

“고추와 옥수수도 괜찮은가요.”

“고추밭과 옥수수밭에서 자라는 풀도 많은데 논매기부터 해야겠어.

그동안에 푸릇하게 올라오는 풀들이 많아지고 있더라.”

“논매기는 걱정 마세요. 낼부터 두렛일을 시작하기로 했으니까요.”

“너도 두렛일을 시켜준다고 그러던? ”

“네. 반장이 시켜준다고 그래서 한다고 그랬어요.”

“그럼 나는 쓰러진 보리부터 베야겠구나.”

아버지가 중얼거리며 담뱃대를 잡아들었다. 담뱃불을 붙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사랑방으로 들어섰다. 슬그머니 주저앉는데 대장간에서 월급도 준다는 소리가 귓불에서 맴돌았다. 설마 하면서도 혹시 대장간에서 정말로 월급도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월급을 준다면 월급도 받는 대장간에서 낫과 호미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잠드는 방바닥에서 또 하룻저녁이 흘러가고 있었다. 첫 닭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방바닥에서 일어섰다. 사랑방을 나서면서 바라보는 암소가 음매거리고 있었다. 소먹이 풀을 던져주며 바라보는 암소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호미를 잡아들고 나서는 안마당에는 희뿌연 물안개가 내려앉고 있었다. 개울가로 올라서는 논두렁에서는 먼저 온 두레꾼이 반겨주었다. 두레꾼들을 휘둘러보던 반장이 다그치듯이 말했다.

“이제 그만 시작들 하게나.”

두레꾼들과 내려서는 논바닥에 푸릇해지는 모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동안에 뿌리를 내리는 모포기와 자라는 풀들이 많아졌다. 풀뿌리가 달라붙은 논바닥으로 구부러지는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허청거리는 호미로 풀뿌리를 뒤집는 논바닥에서 첨벙거리는 소리가 날아들었다.

첨벙거리는 논바닥에서 갑자기 비틀거리던 몸뚱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이쿠.”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머리부터 고꾸라진 몸뚱이에는 시커먼 흙탕물이 달라붙었다. 벌떡 일어나면서 시커먼 흙탕물을 씻어내는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얼굴에도 시커먼 흙탕물이 흘러내리는 몸뚱이를 바라보는 반장이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첨부터 서두르지 마. 호미보다 머리가 앞서가니까 쓰러지잖아.”

아무런 말도 못하는 얼굴이 붉어졌다. 또다시 논바닥에서 풀뿌리를 뒤집었다. 풀뿌리를 뒤집으며 앞서가는 두레꾼들이 멀어지고 있었다.

조금해지는 마음으로 호미보다 앞서가려는 몸뚱이가 또다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서너 번이나 고꾸라지고서야 익숙해지는 논매기가 빨라졌다. 풀뿌리를 뒤집으며 뒤쫓아 가는 논바닥에서는 첨벙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만 나와서 아침 드세요.”

아침을 먹으라는 소리에서야 욱신거리던 허리가 펴지고 있었다. 호미를 내던지며 논바닥을 나섰다. 반기듯이 올라선 개울둑에는 아줌마들이 펼쳐 놓는 아침이 있었다. 두렛일을 할 때마다 그 무엇보다 반가워지는 하얀 쌀밥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날아들었다. 반기듯이 주저앉는 얼굴을 쳐다보는 아주머니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너도 이제는 상일꾼이 되었구나.”

나도 모르게 쑥스러워지는 얼굴을 붉히면서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숟가락으로 휘적거리는 국그릇에서는 돼지고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고깃국에 하얀 쌀밥을 말아먹었다. 학교 가는 아이들이 떠들썩해지는 개울 건너를 바라보는 영학이가 마른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쟤들은 무시험으로 중학교를 간다는구나.”

“그럼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도 갈 수가 있나요? ”

“당연하지. 의무교육으로 누구나 가는 중학교가 송학역 앞에도 생기고 다른 면에서도 생기는 중학교가 많아진다고 그러더라.”

“등록금도 없는 아이도 갈 수가 있나요? ”

“못 가. 등록금 없는 아이가 어떻게 중학교를 가냐.”

영학이가 다그치듯이 눈망울을 껌뻑거렸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도 나도 모르게 중학교를 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는 중학교를 가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바라보는 논바닥에는 아침햇살이 내려앉았다. 아침햇살에 더욱 푸릇해지는 모이파리에서 달라붙어 반짝거리는 이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만들 쉬고 내려가세나.”

반장이 다그치는 소리에 논바닥으로 내려섰다. 논바닥으로 들어선 두레꾼들이 운동경기를 하듯이 풀뿌리를 뒤집고 있었다. 앞서가는 두레꾼들의 꽁무니를 뒤따라가며 논바닥의 풀뿌리를 뒤집었다. 푸릇하게 자라는 모에게 스치는 팔뚝이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호미자루가 휘청거리는 논바닥에서 첨벙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만하고 세참 드세요.”

세참이 와서야 허리가 펴지는 논바닥을 나섰다. 호미를 내던지며 개울둑으로 올라섰다. 개울둑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머니가 라면국수를 내밀었다. 반기듯이 받아 드는 라면국수를 삼키는 입술에서는 후르륵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아랫배가 불룩해지는 라면국수를 먹고서야 막걸리를 마시는 아저씨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꼬맹이 상일꾼도 한잔 하게나.”

“아뇨. 술은 못 마셔도 꼬맹이는 아닌데요.”

“꼬맹이가 아니면 어른이냐.”

다그치듯이 되묻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른도 아니고 친구들보다도 손가락하나 만큼이나 작았기 때문이었다. 꼬맹이 상일꾼이라는 소리가 마땅찮게 느껴지는 두레꾼들이 반기듯이 막걸리를 삼키고 있었다. 떠들썩해지는 두레꾼들을 바라보는 반장이 말했다.

“그만들 내려가세나.”

잠시도 쉬지 못하게 다그치는 반장은 두렛일 책임자였다. 아무리 다그쳐도 하찮은 불평조차 못하는 두레꾼들과 논바닥으로 내려섰다. 또 다시 풀뿌리를 뒤집는 논바닥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몸뚱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풀뿌리를 뒤집는 호미자루가 휘청거리는 손목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날아들었다.

욱신거리는 손목을 흔들면서 바라보는 두레꾼들은 풀뿌리를 뒤집는 논 바닥을 도망치듯이 내달리는 것 같았다. 뒤따라가겠다는 생각이 조급해지는 몸뚱이가 논바닥으로 구부러졌다.

“그만 나와서 점심 드세요.”

점심을 먹으라는 소리에서야 허리가 펴졌다. 호미자루를 내던지며 올라서는 개울둑에는 맛있는 반찬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얀 쌀밥이 반가워지는 개울둑에 주저앉았다. 반기듯이 숟가락으로 휘적거리는 국그릇에는 돼지고기가 떠다녔다. 구수한 냄새가 날아드는 고깃국에 하얀 쌀밥을 말아먹는 점심이 꿀맛처럼 넘어갔다. 아랫배가 불룩해지는 점심을 먹고서도 막걸리를 잡아드는 두레꾼들이 말했다.

“나는 아직도 못 캐는 감자가 썩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먼.”

“자네는 보리타작이라도 했지. 나는 아직 보리타작도 못했어.”

“날이 좋으니 썩지는 않을 것이나 걱정들 말게나.”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밭농사를 걱정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떠들썩해지는 두레꾼을 바라보는 반장이 다그치듯이 말했다.

“괜한 걱정은 그만하게 내려가세나.”

점심을 먹고서도 잠시 쉬지 못하고 개울둑에서 내려섰다. 논바닥으로 들어서는 몸뚱이가 구부러지고 있었다. 풀뿌리를 뒤집는 호미에서는 첨벙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호미로 풀뿌리를 뒤집는 논매기는 오후 새참을 먹고서도 잠시 쉬지 않았다. 어둑해지는 땅거미가 내려와서야 풀뿌리를 뒤집던 논바닥을 나서는 반장이 말했다.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하세나.”

반기듯이 일어서는 두레꾼들이 논바닥을 나섰다. 논두렁으로 올라서는 두레꾼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컴컴해지는 개울둑으로 내려서는 몸뚱이가 피곤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때늦은 저녁을 먹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서 들어서는 사랑방에서 나도 모르게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얼마나 피곤한지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는 몸뚱이가 죽은 시체처럼 널브러지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쫓아가고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논매기 두렛일은 하루 이틀 멈추는 일이 아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풀뿌리를 뒤집는 논바닥에 주인이 또한 따로 없었다. 두레꾼들이 약속한 논바닥을 모두 뒤집어서야 끝나는 일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는 두렛일은 며칠이 지나서야 우리 논바닥으로 넘어서고 있었다. 반기듯이 내려선 우리 논바닥에서도 풀뿌리를 뒤집는 논매기가 멈추지 않았다.

“그만 나와서 점심들 먹게.”

아버지가 불러서야 일어서는 허리가 펴지고 있었다. 호미자루를 내던지며 논바닥을 나섰다. 두레꾼들과 올라선 개울둑에는 어머니와 미란 어머니가 차려 놓는 점심이 반기고 있었다. 주저앉는 두레꾼들 점심 먹는 소리가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배가 불룩해지는 점심을 먹고서야 나무그늘에 주저앉은 암소를 바라보며 일어섰다. 암소의 머리를 쓰다

듬던 미란 아버지가 반기듯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도 이제는 상일꾼이 되었구나.”

“아직은 서툴러요.”

“그런 소리 마라. 서툰 애가 어떻게 논매기 두렛일을 하겠어.”

미란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돌아섰다. 미란 아버지가 어우리로 경작하라는 논바닥의 주인이었다. 고맙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미란 아버지가 어우리로 키우라는 암소가 또한 새끼를 가졌다. 새끼를 갖고부터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암소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만들 내려갑시다.”

반장이 다그치는 소리에 암소를 바라보던 개울둑에서 돌아섰다. 싱긋이 웃으면서 미란 어머니가 토시를 내밀면서 말했다.

“이거라도 끼고 매거라.”

“네. 고마워요.”

받아든 토시는 미란 아버지가 끼던 토시였다. 그동안 모 이파리에 스치던 팔뚝이 갈라지고 있었다. 팔뚝에 끼는 토시가 고마워 미란 어머니를 바라보며 논바닥으로 내려섰다. 풀뿌리를 뒤집는 두렛일은 우리 논바닥이라고 쉴 수도 없었다. 우리 논바닥을 매고서야 쫓아가는 아랫집의 논바닥에서도 풀뿌리를 뒤집는 호미가 휘청거렸다. 어둑해지는 땅거미가 내려와서야 풀뿌리를 뒤집던 호미를 치켜드는 반장이 말했다.

“그만들 하고 내일 하세나.”

두레꾼들이 반기듯이 논바닥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개울둑에는 컴컴해지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호미자루를 흔들며 올라서는 다릿목으로 양수가 내려서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막아서서 양수를 반기듯이 보며 말했다.

“어디를 가려고 나왔냐.”

“우리 아버지 마중 가는데 너 대장간에 간다고 그랬냐? ”

“두렛일하고 가본다고 그랬는데 어떻게 알았어? ”

“엊그제 읍내서 만난 석기가 그러더라.”

“다시 읍내 가거든 삼거리대장간에도 가 봐. 거기서 정말로 월급도 준다는 아이를 구한다고 그랬는지 알아보고 말해줘.”

“알았으니 걱정 마.”

양수가 손바닥을 흔들면서 다릿목으로 내려갔다. 정말로 월급도 줄지도 모르는 대장간에서 낫과 호미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호미자루를 흔들며 돌아오는 집에서는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암소가 반가웠다. 소먹이 풀을 던져주던 어머니가 반기듯이 말했다.

“오늘도 늦었구나.”

“네.”

짧은 대답을 하면서 올라선 마루에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상이 차려진 마룻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어디를 가셨어요? ”

“미란아비와 마시는 막걸리에 취한 모양이니 어서 먹어.”

저녁상에는 낮에 먹던 고깃국이 있었고, 구수한 냄새가 날아드는 보리밥에는 하얀 쌀밥이 섞여 있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배가 불룩하도록 저녁을 먹고서야 냉수를 마시는데 어머니가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미란아비가 논매기한다고 한 말이나 되는 쌀과 서너 근이나 되는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가져왔더라.”

“그래서 아직도 고깃국이 남았군요.”

“막걸리도 한 통이나 사다주는 미란아비가 이제는 상일꾼이 되었다

는 너를 보기만 해도 기특하다고 그랬어. 그리고 점심을 해주겠다고 쫓아오는 미란어미도 너처럼 어린애가 논매기하는 두렛일은 처음 봤다고 그러더구나.”

“나보고 기특하다는 미란이네는 다른 사람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우리보고 개울가에 달라붙은 논바닥을 부쳐 먹으라고 그러나요.”

“인민군들이 쳐들어올 때 미란아비가 바깥출입도 못하는 미란 할머니를 우리 집에 데려다 놓고 도망을 갔어. 그때부터 고맙다고 미란 아비가 나보고 누님이라 그러더라. 아무런 일가친척도 없어서 우리 집에다

맡겨 놓는 미란 할머니가 그때부터 나를 친딸처럼 생각하기도 했어.”

“그때가 고마워서 우리보고 부쳐 먹으라고 그랬나 보군요.”

“그런 것 같은데 아직도 지난해 다친 허리가 많이 아픈 모양이더라.”

어머니가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랑방으로 들어와 슬그머니 쓰러지는데 너 싫을 때까지 부쳐 먹으라는 미란 아버지가 고맙게 느껴졌다. 토시를 주면서 기특하다는 미란 어머니가 또한 고맙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방바닥에서 슬그머니 잠이 들고 있었다.

첫닭이 우는 소리에 버릇처럼 일어나 사랑방을 나섰다. 도망치듯이 쫓아간 논바닥에서는 풀뿌리를 뒤집는 논매기가 멈추지 않았다. 어둑해지는 땅거미가 내려와서야 풀뿌리를 뒤집던 논바닥을 나섰다.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는 논매기 두렛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열하루가 되어서야 마지막으로 풀뿌리를 뒤집던 논바닥을 나섰다. 개울둑으로 올라서는 두레꾼들이 그동안 논매기하던 호미를 내던지며 말했다.

“아이고, 이제야 반농사를 지었구나.”

“그러게. 이제야 호미 씻기를 하는구먼.”

반장은 두레꾼들이 내던지는 호미를 양동이에 집어넣고 있었다. 호미가 주저앉는 양동이에서는 막걸리가 출렁거렸다. 출렁거리는 막걸리를 휘적거리는 반장이 말했다.

“너도얼른내려놔.”

“네.”

막걸리에 내던지는 호미가 첨벙거리며 주저앉았다. 반장이 호미를 씻은 막걸리가 시커먼 흙빛으로 변했다. 뒷집 아저씨는 막걸리에 씻은 호미를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호미를 반기듯이 바

라보는 두레꾼들은 주전자에서 따라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막걸리를 마시고서야 젓가락을 집어드는 영학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하필 아까운 막걸리에다 호미를 씻나요.”

“풍습이니까. 예전부터 호미걸이를 해야 풍년이 든다는 풍습으로 논매기 하던 호미를 막걸리를 씻어두는 풍물놀이를 했어. 저지난해까지도 풍물놀이를 하더니 지난해부터 쉽지가 않아서 못하겠다고 그러더라.”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젓가락으로 파전을 집어 먹는 영학이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시장한데 파전이라도 먹어.”

“네.”

짧은 대답을 하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구수한 파전을 먹으면서 두레꾼들은 반기듯이 막걸리를 마셨다. 얼큰하게 취한 두레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떠들썩해졌다.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는 두레꾼들을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나뭇가지에 걸린 호미를 슬그머니 잡아들고 개울둑을 나섰다. 도망치듯이 올라서는 다릿목에서 양수가 다그치듯이 말했다.

“대장간은 가겠다는 생각도 하지 마.”

“왜? 나는 안 된다고 그러던? ”

“그게 아니고 다른 애들이 먼저 가서 배우고 있더라. 그리고 오늘도 서너 놈이나 왔다가 그냥 갔다고 그러더라.”

갑자기 허탈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울적해졌다. 아무런 말도 못하는 입술에서는 서글픈 한숨이 내려앉고 있었다. 뒤따라오면서 아무런 말없이 듣고 있던 영학이가 말했다.

“너 대장간에 가려고 그랬어? ”

“네. 월급도 준다는 대장간에서 낫과 호미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그까짓 월급을 얼마나 준다고 그러던? ”

“얼마를 준다는 소리는 못 들었어요.”

“그러니까 무슨 기술을 배우든 잘 생각해보고 배워야지. 월급을 준다고 무턱대고 쫓아간 대장간에서 무슨 사고라도 당하면 어쩔 뻔했어. 더군다나 시뻘건 쇳덩이를 커다란 쇠망치로 두들기는 대장간은 힘자랑하

는 장사도 쉽지가 않은 일이니 다시는 그딴 기술을 배우겠다는 생각도 하지 마. 양복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괜찮고 머리를 깎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괜찮은데 무엇 때문에 시뻘건 쇳덩이를 두들기는 기술을 배우려고 그랬어? ”

“그런 기술은 월급도 준다는 데가 없었어요.”

“무슨 기술이든 배워야 월급도 주는 거야. 아무런 기술도 없는데 월급을 주는 기술은 배우나마나 한 기술이니까, 무슨 기술을 배우더라도 잘 생각해보고 배워.”

“네.”

짧은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웃으면서 돌아서는 영학이가 양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너도 무슨 기술을 배우든 잘 생각해보고 배워.”

“네. 저는 우리 아버지가 소몰이를 하는 것도 배우고 집 짓는 것도 배워가지고 우리 집도 새로 지을 거예요.”

“잘 생각했어. 집 짓는 기술도 배우면 큰돈을 벌 수가 있으니까.”

영학이가 양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돌아섰다. 마을 앞으로 올라서는 모습을 바라보는 양수가 마른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영학이 성은 모르는 것이 없는가 보다.”

“당연하지.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니까.”

“고등학교를 다녔는데도 무엇 때문에 우리를 깔보기는커녕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지 모르겠어.”

“그거야 착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아무튼 편지 쓰는 것도 가르쳐주고 곱하기와 나누기도 가르쳐주는 영학이 성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양수가 중얼거리며 다릿목을 나섰다. 외딴 집으로 올라서는 양수는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고 구구단도 모르던 녀석이었다. 그동안 편지도 쓰는 것도 배우고 곱하기와 나누기도 배웠다는 소리가 믿기지 않았다. 설마 하면서 돌아서는 다릿목에서는 통신강의록이 스쳐가고 있었다. 통신강의록에 시뻘겋게 달라붙었던 코피가 마땅찮게 느껴지고 마음이 울적해졌다.

‘망할 놈의 코피만 쏟아지지 않았어도.’

영학이가 구해다주는 통신강의록을 배우기란 쉽지가 않았다. 첨으로 모심기하는 두렛일을 하는 것 또한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중학생들이 부러워지는 공부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밤늦도록공부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는 고개가 통신강의록 위에 엎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시뻘건 코피가 흘러내리고 말았던 통신강의록을 내버리고부터는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다시 구해서 배워야겠구나.’

양수가 곱하기와 나누기도 배웠다는 소리에 또다시 배우고 싶어지면서 통신강의록이 아쉬웠다. 집으로 들어서면서 바라본 헛간에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감자가 있었다.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캐다 놓은 감자가 제법 많기도 하였다. 탐스럽게 보이는 감자를 바라보며 호미를 내던지는 몸뚱이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논매기 두렛일도 끝났구나.’

헛간을 돌아서는 몸뚱이가 욱신거렸다. 반기듯이 들어서는 사랑방에서는 그동안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슬그머니 쓰러지는 방바닥에서도 나도 모르게 욱신거리는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팔다리가 곧바로 떨어질 것만 같은 통증이 얼마나 아픈지.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을 하다가 잠드는 몸뚱이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널브러졌다.

첫닭이 우는 소리에서 깨이는 몸뚱이가 욱신거렸다. 버릇처럼 일어 나는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도망치듯이 사랑방을 나섰다. 비틀거리는 몸뚱이를 쳐다보는 아버지가 다그치듯이 말했다.

“논매기 두렛일도 끝났다면서 뭐 하러 나와.”

아무런 말도 못하는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논매기를 가겠다고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몸뚱이가 비틀거렸기 때문이었다. 괜스레 나왔다

고 후회하며 암소를 바라보았다. 암소에게 소먹이 풀을 던져주는 아버지가 말했다.

“보리 베기도 다 했으니 얼른 들어가서 푹 쉬어.”

“네.”

짧은 대답을 하면서 사랑방으로 들어섰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아픈지 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다려주는 탕약을 삼키고서도 아무런 힘없이 쓰러지는 몸뚱이가 욱신거렸다. 나도 모르게 욱신거리는 통증은 하루가 지나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그동안의 피로가 풀리는 모양이구나.’

이틀이 지나서야 나도 모르게 욱신거리던 통증이 멈추고 있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일어나는 몸뚱이가 어느새 사랑방을 나서고 있었다. 헛간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더 누워 있지 왜 나와? ”

“이제는 괜찮아서 나왔어요.”

“너 대장간에 간다고 그랬어? ”

“누가 그래요? ”

나도 모르게 눈망울을 껌뻑거렸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어머니가 짧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엊그제 찾아온 양수가 그러던데 정말로 그랬어? ”

“네. 월급도 준다고 그래서 가려다가 그만두기로 했어요.”

“대장간으로 가겠다는 생각도 하지 마. 거기서 팔다리가 부러지고 시뻘건 쇳덩이가 날아들어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어디를 가든 엄마하고 의논하고 가. 괜스레 야반도주를 하는 선우처럼 엄마도 모르게 갔다가는 무슨 일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알았으니 걱정 마세요.”

괜스레 걱정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안마당을 나섰다. 마을 앞으로 내려서는 몸뚱이에는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개울물 소리가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빨래터에는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뒷집 아주머니가 반기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몸살이 났다더니 이제야 일어났구나.”

“네. 이제야 괜찮아졌어요.”

“상일꾼이 되더니 그동안에 시커멓게 되어버렸구먼.”

상일꾼이라는 소리가 쑥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슬그머니 빨래터를 도망치듯이 내려서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석기가 반기듯이 막아서며 말했다.

“상일꾼이 되더니 어디를 그렇게 빨리 가냐? ”

“우리논에가는중이야.”

“그게 니덜 논이냐 미란이네 논이지.”

“그딴 소리는 하지 마. 우리가 부칠 때는 우리 논이니까.”

“언제 내놓으라고 그럴지도 모르는 논바닥은 너의 아버지가 농사 짓게 내버려두고 무슨 기술이라도 배워. 원식이도 머리를 깎는 기술을, 윗마을 문호도 운전기술을 배운다는데 너는 언제까지 그까짓 농사짓는 일이나 할 거냐.”

“걱정 마. 천천히 생각하면서 배울 거니까.”

“어이구 등신아. 언제까지 생각만 할 건데? ”

“상관 마. 내가 알아서 배울 거니까.”

나도 모르게 다그치는 목소리고 높아지고 있었다. 등신이라는 소리가 마땅찮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말도 못하는 석기를 쏘아보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내 주먹을 쳐다보며 석기가 도망치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뒷모습을 쏘아보며 개울둑으로 올라섰다.

“또다시 등신이라고 해봐라 가만두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올라선 개울둑에서도 등신이라는 소리가 마땅찮게 느껴졌다. 등신이라는 친구들은 한문을 배울 때도 아무런 허물이 없었다. 날품팔이를 하던 지난해부터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친구들이 멀어지고 있었다. 가끔이나마 만나는 친구들 입에서 등신이라는 소리가 버릇처럼 달라붙고 있었다.

‘망할 놈들, 두고 보자.’

오늘도 등신이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울화통이 울컥 치밀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등신이라는 소리가 이제는 이름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답답해지는 앞가슴을 두드리는 개울둑에는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무 그늘에 주저앉으며 내려다보는 논바닥에는 미란 아버지가 스쳐갔다. 미란 아버지가 언제 내놓으라고 할지도 모르는 논바닥이 걱정스러워 울적해졌다.

한참이 지나서도 울적한 마음이 멈추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내놓으라고 할지도 모르는 논바닥이었기 때문이었다. 등신이라는 소리가 또한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어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울적한 마음으로 개울둑을 내려섰다. 개울물을 건너서는 다릿목에 미란 아버지가 내려서고 있었다. 미란 아버지가 반기듯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꼬맹이 상일꾼이 이제야 일어났구나.”

“네. 오늘에서야 괜찮아져서 일어났어요.”

“그래도 며칠 더 쉬면서 영학이네 집에 가봐라.”

“거기는 왜요? ”

“논매는 기계를 사서 보냈으니 갖다 놨다가 내년부터는 그 기계로 논매기해. 호미로 논매기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쉽다고 그러더라.”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허리가 구부러지는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내년부터는 그 기계로 논매기하라는 미란 아버지가 논바닥을 내놓으라는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돌아서는 미란 아버지가 고마워 마음이 울컥해졌다. 괜스레 쓸데없는 걱정을 하였다고 생각하며 논매는 기계가 궁금해졌다. 영학이네 집으로 올라서는 향나무 앞에서 양수를 만났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려서던 양수가 반기듯이 말했다.

“꼬맹이 상일꾼이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냐? ”

“영학이 성네 집에 가는 중이야.”

“무슨일로가는데?”

“궁금하면 따라와. 나도 가봐야 아니까.”

다그치듯이 말하면서 길목으로 들어섰다. 뒤따라오는 양수와 영학이네 집으로 들어섰다. 안마당에서 영학이가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미란 아버지가 보내서 왔구나.”

“네. 논매는 기계를 가져오라고 그래서 왔어요.”

헛간으로 돌아서는 영학이가 자전거에 매달린 기계를 집어들고 있었다. 길쭉하게 보이는 손잡이가 달린 기계를 내밀었다. 받아드는 기계에는 쇠스랑처럼 굽은 쇠갈고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쇠갈고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기계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이게 논매는 기계인가요? ”

“맞아. 호미로 매는 것보다 쉽고 빠른 기계야.”

“어떻게 매는 건데요? ”

“가르쳐 줄게, 따라와.”

영학이가 안마당을 나서고 있었다. 뒷모습을 바라보며 둘러매는 기계가 휘청거렸다. 휘청거리는 기계를 움켜잡고 뒤따르자 영학이가 개울가에 달라붙은 논바닥으로 내려섰다. 논두렁에 내려놓는 기계를 만지며 영학이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배워.”

“네.”

“모 포기가 다치면 안 되니까 이렇게 모 포기 사이에 내려놓는 기계의 손잡이를 요렇게 움켜잡고 앞으로 내밀면서 하나, 앞으로 잡아당기면서 둘. 다시 앞으로 내밀면서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영학이가 밀고 당기는 쇠갈고리가 물레방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쇠갈고리가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며 논바닥을 뒤집었다. 풀뿌리가 뒤집히는 논바닥이 물렁해지고 있었다. 논매는 기계에서는 시커먼 흙탕물이 튀어 올랐다. 논바닥 끝에서야 논매는 기계를 치켜드는 영학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제는 제가 해볼게요.”

“그럼 천천히 해봐.”

영학이가 내미는 기계를 반기듯이 움켜잡았다. 모 포기 사이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기계가 휘청거렸다. 손잡이를 내밀었다가 당기자 쇠갈고리가 물레방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신기하다는 듯이 내려다보는 사이 쇠갈고리가 논바닥을 뒤집었다. 논바닥을 뒤집는 기계를 내려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장단 맞추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모 포기가 조심스러워지는 발바닥에서는 첨벙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서너 번이나 오가며 논바닥을 뒤집고서야 논매는 기계를 치켜 들었다. 휘청거리는 기계를 움켜잡으며 개울둑으로 올라섰다. 시커먼 흙탕물이 흘러내리는 기계를 쳐다보며 영학이가 웃으며 말했다.

“어떠냐. 이제야 알겠어? ”

“네. 이런 기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

“읍내서 만나는 친구가 말해서 알았는데 그 친구는 지난해부터 이런 기계로 논매기를 했다고 그러더라. 그날 곧바로 사러 갔더니 하나도 없이 다 팔리고 없어서 못 샀는데 오늘은 대여섯 개나 남아 있었어. 거기서 만난 미란 아버지가 무슨 기계냐고 묻기에 논매는 기계라고 말했더니 기계를 사서 널 주라고 그러면서 내 자전거에 올려놓더라.”

“아무튼 신기한 기계네요.”

“신기할 것 없어. 앞으로 이것보다 더 좋은 기계도 나올 거니까. 그래서 말인데 내년부터 모내기할 때는 못줄도 일정하게 띄우고 심어. 그래야 논매는 기계로 논매기 할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못자리판에 비닐을 씌우는 것도 배우고 오이와 참외를 키우는 것도 배우는 게 괜찮을 거야. 그렇게 머리를 쓰면서 농사 짓는 사람은 아무렇게 농사 짓는 사람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수확으로 부자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아무런 말없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머리를 어떻게 쓰라는 것인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엄청나게 많은 수확으로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또한 믿기지 않았다. 앞으로 논매는 기계보다 더 좋은 기계도 생긴다는 영학이가 개울둑을 내려서고 있었다.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양수가 말했다.

“너는 농사 짓는 것은 아무리 배워도 아무런 소용도 없어.”

“왜? 무엇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냐? ”

“너는 콩 한 포기를 심어 먹을 땅도 없으니 상일꾼이나 열심히 배워라.”

“꼬맹이 상일꾼이라는 소리 좀 하지 마. 듣기도 싫으니까.”

“왜 싫어. 나는 듣기만 해도 부러워지는데.”

“아무튼 꼬맹이 상일꾼이라는 소리는 하지 마. 꼬맹이 상일꾼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고 등신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으니까.”

“누가 또 등신이라고 그랬던 모양이구나.”

“아까도 등신이라는 석기를 나도 모르게 후려치려다가 참았어.”

“잘했어. 그런 친구도 없는 것보다는 좋으니까. 그리고 무슨 기술을 배운다는 애들도 부러워하지도 마. 그런 애들이 부러워지는 마음 때문에 꼬맹이 상일꾼이라는 소리가 싫었는지도 모르니까. 누가 뭐라고 부르거나 말거나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다 보면….”

양수가 잔소리하듯이 늘어놓는 이야기가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말없이 들으면서 생각하니 양수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았다. 어차피 누구를 부러워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품팔이를 하는 것 또한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를 다니는 친구들과 무슨 기술을 배운다는 친구들이 나도 모르게 부러워지는 마음은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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