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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 그리고 정원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金鎭植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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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비롯하여 2백여 그루가 자리를 잡고 있다. 어렵게 들인 것도 있지만 버려진 것을 거둔 것이 대부분이다. 내 땅 네 땅을 가르지 않았다. 뜰에도 길가에도 산자락에도 빈자리가 있으면 심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거지고 있다. 때맞춰 꽃이 피고 열매를 단다. 새들이 깃들고 짐승들도 찾아온다. 소유의 아귀다툼도 없다. 외진 산속이 아니면 어려운 축복이다.

주변의 숲도 산도 나의 정원이고 무슨 소유권과는 번지수가 다르다. 내가 살고 즐기면 된다. 정원을 거닐고 있다. 새들이 깃들고 바람이 지나간다. 세속과는 다른 평온이 있고 자유가 있다.

옛 기록에 나오는 은자를 떠올리며 무욕의 삶을 생각하고 있다. 산이 침묵하고 하늘이 파랗다. 나옹선사가 지었다는 선시(禪詩)가 떠오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길 양옆으로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계획에 의해 심은 것이 아니다. 묘전(描田)을 그만둔 지인의 덤터기를 들여와서 심은 것이다. 자랄수록 ‘木公’의 기품을 보여주며 벗이 되고 있다. 쉰 그루가 넘는 소나무는 잡목의 숲속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킨다. 계절이 바뀌어도 변치않은 청청한 삶이 반갑다. 그래서 소나무길을 거닐 때마다 안으로 새긴다. 맑고 깊은 교감이다. 산가(山家)의 축복이다.

뜰에 들면 사과나무와 만난다. 앞뜰에 여섯 그루, 뒤란에 네 그루가 열매를 달고 있다. 이 또한 무슨 연분일까. 헤아릴 수 없지만 우연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몇 년 전 어느 봄날, 이웃의 산전(山田)에 조성된 사과 밭이 폐전(廢田) 되었다. 그때 십 년 전후의 나무를 중장비로 밀었는데 꺾이고 해어져 참혹함이 이를 데 없었다. 성한 나무들은 일찍이 마을 사람들이 챙기고 상처가 심한 나무들은 폐목으로 쌓아두었다. 이런 현장에서 그래도 봄을 믿고 십여 그루를 골라 뜰에 심었다. 그것이 살아나서 은혜를 보답하고 있다.

물론 가지도 쳐주고 거름도 주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열매를 달고 있다. 이를 거두기 위해서는 솎아주고 때맞춰 약도 쳐야 되지만 그르치기 일쑤다. 그런데도 뉘가 물으면 자연의 복원을 위한 과정이라며 넘어가지만 공연한 말이다. 지난해에도 열매를 달았으나 버려두었고 산새와 떼까치의 먹이가 되었다. 거둠을 가로챈 것이다. 그야말로 자연현상이다.

이제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꽃으로 마음을 샀고 지금 많은 아기열매를 달고 있다. 농부도 원정도 아닌 다음에야 이로서도 넉넉한 선물이다. 거둠보다 생태의 자연현상을 즐긴다고 할까.

해거름이다. 바람이 지나가고 햇살이 빗긴다. 숲에는 새들이 깃들고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다. 숲속의 그루터기 의자가 쉬어 가라고 한다. 여기서 세상의 풍문을 지울 수 있을까. 고개를 저으면서 은자를 떠올린다. 지금도 은자가 있을 것인가. 산가 밖의 세상이 너무 가파르고 메마르다.

논어(論語) 미자(微子)편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늘날의 모습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큰뜻이 있어도 쓰여지지 않은 공자의 주유(周遊)가 그렇다. 이를 꿰뚫어 보고 있는 장저(長沮)와걸익(桀溺)의 야유가 오히려 신선하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전원에 있는 장저에게 나루터의 위치를 묻자 세상의 일터를 위해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나루터 정도는 알 것'이라며 대답하지 않았고, 저만큼 밭갈이하는 걸익에게 물었을 때는 행자의 부질없음을 이르며, ‘당신도 사람을 피해 다니는 사람을 따르기보다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은자의 공통점은 권력이나 재화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그 어긋남과 굴레를 벗어나고 있다. 이런 권외자가 관심의 적(的)이 되는 것은 그만큼 물들지 않고 걸림이 없는 삶 때문이다.

어지간히 시간이 지났다. 그루터기 의자에서 일어나 푸른 산과 하늘을 쳐다본다. 사람보다 세상을 피한 은자의 화두가 떠나지 않는다. 나무를 심고 나무를 벗하는 것이 반갑다. 소나무도 사과나무도 돈으로 들인 것이 아니다. 그것이 떳떳하고 자랑스럽다. 나무가 자라고 청산이 다가온다. 하늘이 푸르게 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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