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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金南祚), 현대시와 시적 생명, 그의 시세계

한국문인협회 로고 하병우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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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사랑이 그 어떠하더냐
둥그더냐 모가 난 것이더냐
길더나 짜르더냐
밟아 재교도 남아
자로 재겠더냐
하그린 긴 줄은 모르되
끝간 곳을 모르겠노라(「序時調」

 

성경은 고난이 와도 신앙으로 이겨내려는 용기, 헌신, 고통, 수용, 인내의 사랑을 증거한다. 성경 말씀은 유려한 시적 문체로 참사랑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다. 성경은 사랑의 탁월함과 필요성을 말하고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사랑은 사랑의 영원성과 우위성을 강조하며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라고까지 말한다.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고 했다. 물론 여기서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기에 그 자체가 법이며 신앙이기 때문이다. 신이 내려준 가장 큰 선물인 ‘사랑’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항상 존재하고 임무를 다하고 있다. 인간이 신을 향해 가장 가까이 존립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비결인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진정한 사랑은 삶 그 자체이다.
‘사랑’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환상의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나친 환상은 우리들의 삶을 멀리하고 이성을 마비시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살아지는 연기와 같다. 즉 삶이 고되고 힘이 들더라도 그 자체로서 ‘사랑’을 이끌고 지배하여 삶을 영위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사랑은 우리와 함께 모든 생명과 사이를, 그리고 우주에 있는 모든 것과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우주와 대자연의 ‘사랑’은 물론 빛뿐만 아니라 내리는 빗방울도 정감이 있고, 온갖 만물의 현상에서 지울 수 없는 바람, 색깔, 우리들의 주변에 있는 동물 등등의 ‘사랑’이 우리들의 세상에 수없이 흘러버리고 있다. 우리는 우주 현상 속 섭리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그렇게 느낀 것이 바로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영원한 자태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마당에 저의 부인이 정성껏 갖꾼 꽃을 보면서 어떤 이는 “어머나, 정말 예쁘다!”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무표정한 사람도 있다. 그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무표정은 감각이 둔하고 ‘사랑’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외다. 인간은 ‘사랑’에 미소를 흠뿍 적실 수 있다면 그 사랑은 건강하고 기쁨, 행복, 점점 우리들의 삶에서 기회가 늘어난다.
‘사랑’이란 것은 남성보다 여성에 있어 훨씬 더 절박하고 귀중하다. 여성은 신경이 예민하기 때문에, 여성은 ‘사랑’이 다가올 때 마치 밤새도록 태양을 기다리던 사람이 새벽에 동트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마음의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오늘날은 요리하는 듯이 연애하고 사랑을 가진 상대를 바라고, 예술가의 사랑을 느끼고 서로 기쁨을 느끼도록 노력하는 남자와 여자만이 근대 사랑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영국의 시인 키츠는 “미(美)는 영원한 기쁨이다”고 했다. 여성의 화장이 여성들에게 미를 창조하게 하였다면, 여성의 미는 사랑을 창조하게 하는 것이외다. 사랑은 그 자체가 언제나 성실한 법이다. ‘사랑’은 이유를 묻지 않고 아낌없이 주고도 혹시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묻기에 “모든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 의 노력이나 걱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즉 하나님은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가"를 행위는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감각은 약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은 의지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원히 사랑한다는 약속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은 감각만이 아니다. 사랑의 본질은 사랑한다는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쉽게 입에 오르내리는 ‘사랑’의 말을 되새겨 보고자 논적(論的)인 의미로 필을 들었다.

 

2. 김남조 시인의 시선

 

겨울 바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만 나더라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결이
무엇을 말했는지
나는 해안에 섰네
사랑은 그저 물결이었을 뿐
그렇게 사랑은 사랑이었을 뿐 
물결이여, 물결이여
고독이여, 고독이여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푸른 물이 무서워
나는 무릎을 꿇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오히려 나는 힘을 다하여
겨울 바다에 이르렀네
그대의 죽음 앞에
나는 무릎을 꿇고
슬픔을 잊었네
사랑은 그저 물결이었을 뿐
그렇게 사랑은 사랑이었을 뿐 
물결이여, 물결이여
고독이여, 고독이여(「겨울 바다」)

 


너를 위하여
나목(裸木)으로 서서
너를 위하여
겨울을 견디고
꽃 피워 올리겠다
사랑은
나의 죽음이다
네가 기쁜 날
나는 살아 있다
네가 울 때
나는 죽는다
사랑은
나의 죽음이다
나목으로 서서
너를 위하여
사랑은
나의 죽음이다(「너를 위하여」)

 

3. 현대시의 변천 과정
고인이 된 김남조 시인에 대해 조선일보 기자는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영원한 현역”이라고 과감히 평가를 했다. 즉 한마디로 그의 시 작품에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랑을 시에 표현했다. 현대시의 변천 과정을 보면 모윤숙, 노천명 시인 등의 뒤를 이어 한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문을 연 사랑의 시인으로 평가를 받아 왔다. 오늘날에 민족문학과 다양한 작업으로 1972년도 시단의 새 기류가 생겨 걷잡을 수 없이 변모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 사회적 배경이었다.
당시 전개된 국내외의 역사적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청난 사건이 생겨 우리에게 문학면의 변모가 일어난 현실이 큰 충격을 주었다. 즉 정치적 변화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중국의 유엔 방문 등등, 냉전 해소를 위하고 있었다. 또 그때 우리는 남북적십자회담이 여러 차례 열리는 등 통일에 대한 민족적 염원이 대두되었다. 그에 따라 우리의 문학의 시적 변모와 시단의 새로운 기류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민족문학론이 대두되었고, 둘째,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으며, 셋째, 비평가의 취향에 따라 주관적으로 문학을 만들었고, 넷째, 신문학사상에서 크게 지목받는 작가들에 의해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그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상성에 있어 언어는 효율적인 구실 외에 가치를 못 가지게 된다. 그리고 구실이라는 도구성은 그것이 일상성의 추세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위증의 가변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전후 세대의 전기, 후기를 통해 가장 전쟁과 밀착되면서 문학의 새로운 국면을 부각시킨 작가들의 영향인 것이다.

 

4. 시적 생명
시(詩)란 것은 진실한 사고(思考), 진실한 감정, 진실한 표현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 시의 작품들이 빈틈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시인의 사상이요,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은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쉽게 버리고 없애는 것은 참된 경우가 아니다. 우리들의 전통 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마음을 달래고, 연속적인 노력으로 인한 창조력을 가지게 된다. 시의 생명을 사명으로 준하는 의미를 갖고, 시를 사랑하는 인생 속에 내재하여 쉴새없이 노력하면 자연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다. 대자연은 근본적인 원형으로서 형성되고 있다.
그 존재만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창조적이고 지혜 있는 동물로 살아가고 있다. 시인은 자연을 소재로 하는 그 빛과 생명과 힘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실 ‘시의 진실성’은 시인의 개성 있는 사상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 바로 자연에서 솟아 나온다고 하겠다. 시인의 사상은 그 체험하는 방법, 탐구하는 방법,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장르를 다르게 택할 수 있다. 사실 어떤 길을 택하든지 시인 자신의 사상에 기인한 모든 체험은 하나의 시 정신을 발휘하게 된다. 자신이 체득한 경험의 바탕 위에서 모든 것이 융화시켜 창조한 것이 시가 되는 것이다. 시를 알고 좋아한다고 시를 생산할 줄 모르는 사람까지 시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으며, 우주의 생명이 나를 통하여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된 하나의 인격이므로, 이 인격을 이해하고 창조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노력하면 이룩케 된다. 조지훈은 “시인은 먼저 시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요, 인생 의미의 새로운 발견을 언어의 음률과 표현을 통하여 개성적으로 형성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시를 쓰면 벌써 시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서는 절대 전일(全一)의 세계를 표현할 수 없으므로, 시라고 써 놓은 것은 실상 표현 이전의 직관적 감흥의 만분의 일도 못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시에 표현이 없는 것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시 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언어의 형식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시 정신은 언어라는 형식을 받고 이전에는 예술성을 발휘할 따름이지만, 우리는 시 정신을 생명 없는 표현의 언어로써 좌우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 시의 언어 표현으로 그 존재가치가 있으며, 그 본질적 면모가 나타나는 것이요, 언어의 표현을 통해서만 시인의 혼돈 속에서 명백히 구체화되는 것이다.
조지훈은 “두 가지 형태의 시를 말했다. 하나는 나타나는 시와 또 하나는 나타나는 시로가 있다”고 했다. 전자는 시 정신으로 모든 예술에 공통된 ‘에스프리’, 곧 ‘포에지’란 것이요, 후자는 참뜻이 시로서 시만이 가지는 표현 형식임을 알았고, 참뜻의 시인, 나타나는 시인이라는 창조자를 통해 산출되는 것이다. 시인은 시 정신의 섭리를 받아 시를 산출하므로 시 정신, 시인과 시는 서로 통일하고 제약하여 떨어질 수 없는 것도 알았다. 물론 시는 진실성의 생명과 감정으로 표현해야 시인의 진실한 심성이 담긴 문장이 되고, 시를 생산하게 된다. 그러므로 독자로 하여금 읽고 감동되어 훌륭한 시를 형성하게 된다.
시는 생명 그것의 표현이요, 인간성 그것의 발현이다. 생명은 시인의 생을 긍정하는 것이 그 본성이요, 그 절대의 자기 긍정을 생명으로 하는 시가 현실적 사실 위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적 현실로 실현되는 것이다. 시인 자신 존재 이유를 삼는 영원히 전일한 세계가 감성적으로 구현되고 특수한 언어로써 형성되어 시는 비로소 생명 그것의 순수한 실제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생명은 표현에서 비롯된 힘이다. 시의 영원한 꿈이요, 시의 자태가 된다. 곧 대상이 자기화하고 거기에 생기는 시의 정신이 바로 시의 본성이 된다. 조지훈은 “시의 원리”를 인용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읽음에서 옳고 미진한 점이 다소 느껴지기도 했다. 조지훈 작가는 “나는 시를 자연의 연장이다”라고 했다.

 

5. 맺음말
김남조 시인은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를 나왔고, 1950년에 「목마와 숙녀」라는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주요 경력은 아래와 같다.
- 1950년 「목마와 숙녀」로 문단 데뷔
-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
- 1991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
- 2001년 은관문화훈장
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김남조 시인은 96세 나이로 노환으로 별세했다. 여성 시단의 최고 원로이자 1,000여 편의 시를 쓰며 펜을 놓지 않았던 영원한 현역, 그는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람아』를 펴냈다. “사랑하고 자주 고백하는 일”이라고 사랑의 가치를 역설한 작품으로 차갑게 식은 한국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어왔다. 1950년 대학 재학 중에 연합신문에 두 편의 시를 발표하여 등단했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시작으로 열아홉 권의 시집과 다수의 산문집, 평론집 등을 냈다. 초기 작품에선 인간성과 생명력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6·25 이후 폐허가 된 한국 사회의 상처를 보듬는 한편, 산업화 이후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실존적 고민을 작품에 소환했다. 그를 ‘사랑의 시인’으로 불렀다.
노년에는 심장이 좋지 않아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럼에도 “노년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숨 쉬는 일이 위대하고 가슴 벅차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의 시는 기도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종교적 경건함을 노래하며 수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제 시인은 또 다른 생의 신비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사랑의 시인은 우리에게 영영 볼 수 없는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도 사랑의 시인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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