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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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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이는 초등학교 1학년, 요즘따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운 여름방학, 날씨는 덥고, 집 안은 시원하고, 휴대폰만 있으면 더 필요한 게 없을 정도로 재미있으니까.
그런 소연이를 보던 엄마 아빠가 말했다.
“소연아, 우리 갯벌 체험 조개 캐러 가자!”
갯벌이라니, 뜨거운 햇볕 아래 조개나 캐러 간다는 거잖아?
“이 더운 날 바다엔 왜 가냐고….”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막상 차에 오르니 경치도 좋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갯벌에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조개를 캐는 사람들, 진흙에 얼굴을 묻히며 웃는 아이들.
하지만 소연이의 눈을 사로잡는 건 조개도, 진흙 묻은 아이들도 아닌 넓은 갯벌 군데군데 뚫려 있는 작은 구멍들이었다.
그 구멍 속에서 게가 쏙, 조개가 퐁, 생명들이 숨 쉬는 모습은 작은 마법 같았다.
“엄마! 이 구멍 봐요! 뭔가 있어요!”
“조개를 캐야지, 구멍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니?”
엄마는 웃으며 말했지만, 소연이는 이미 구멍에 마음을 빼앗겼다.

 

갯벌은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세상 그 자체였다.
부산하게 움직이던 게들은 사람들이 오자 쏜살같이 구멍 속으로 숨어들고, 조개는 모래를 뿜어 공기 방울을 만들어냈다. 정말 신비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소연이의 눈에는 어딜 가든 구멍만 보였다. 세상 모든 구멍이 신기했다.
학교 화단에 개미굴, 담벼락의 작은 틈, 나무에 뚫린 구멍, 심지어 하늘의 구름 사이까지.
‘그 구멍 안에 누가 살까, 어디로 이어질까, 무엇이 튀어나올까….’ 
궁금해서 소연이는 견딜 수가 없었다.
“또 구멍이야? 그만 좀 봐라.”
“그러다 진짜 그 구멍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어.”
엄마, 아빠는 한숨을 쉬었지만 소연이의 궁금증은 멈출 수 없었다. 
구멍 속에는 늘 무언가가 숨어 있을 것 같았으니까.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
어른들의 예민한 반응에도 소연이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다. 소연이의 상상은 점점 더 깊어졌다.
‘혹시…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용궁이 나올지도 몰라.’
‘그러면 용왕님도 만날 수 있고, 인어들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이고, 내가 너무 오버했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소연이와 청수는 이상한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어? 이건 뭐지?”
구멍은 작고, 깊어 보였다.
청수는 쥐구멍이라고 우겼지만, 소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뭔가 이상해. 신비롭기도 하고.”
소연이는 작은 구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순간 뭔가 물컹하는 것이 손에 잡혔다. 소연이는 놀라 잽싸게 손을 뺐다.
“아니, 이게 뭐야?”
구멍에서 하얀 가래떡 같은 게 쑥 나오더니, 툭툭 가래떡 갈라지듯 잘라지며 작은 토끼로 변해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와! 놀래라.”
청수와 소연이는 말문이 막혔다.
곧이어 고양이, 여우, 두더지, 강아지… 작고 귀여운 동물들이 구멍에서 하나둘씩 튀어나와 어디론가 도망쳤다.
현실이라기엔 너무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터졌다.
마을 곳곳에서 사슴이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고슴도치가 마당을 헤집고, 집집마다 물건들을 도둑맞는 일까지 벌어졌다.
소연이는 갑자기 두렵기까지 했다.
“이건 분명 내가 그 구멍을 넓게 열어서…”
소연이는 죄책감마저 생겼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교장선생님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교장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소연아, 세상엔 다 제자리가 있단다. 그 친구들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겠지. 그리고 이 일이 소연이 잘못은 아니란다. 너무 걱정하지 마렴.”
교장선생님은 ‘동물 왕국으로 가는 길’이란 팻말을 만들어 길 곳곳에 붙여 놓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소연이와 청수는 동물들도 글씨를 알까 궁금했지만, 동물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직접 작은 팻말을 만들어 이곳저곳에 붙였다.
‘동물 왕국으로 가는 길’, 소연이와 청수는 누구도 그 팻말을 그냥 지나칠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팻말을 붙인 이후 이상한 일들은 조금씩 사라졌다.
사람들도 더 이상 동물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구멍도 조용해졌다. 
하지만 소연이의 마음속에 구멍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소연이는 구멍을 보면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그날 이후 소연이는 구멍만 보면 일부러 지나쳤다.
“이젠 공부에만 집중할래.”

 

그러던 어느 날, 소연이에게 또 넓은 갯벌이 보이더니 갯벌 구멍마다 이상한 동물들이 마구 튀어나와 소연이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아아악! 소연이 살려 줘!”
그 순간
“인석아, 대낮부터 웬 잠꼬대야. 또 꿈꾼 거야?”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연이는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숨을 몰아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 사이로, 또다시 많은 구멍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무섭지도 않았다. 소연이는 조용히 웃기까지 했다.
‘커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동굴 탐험가가 되겠다’는 꿈 하나가 소연이의 마음속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소연이는 왠지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더 간절했다.
‘나중에 커서 꼭 동굴 탐험가가 될 거야.’
‘아무도 보지 못한 구멍 속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 볼래.’
소연이의 마음속 작은 상상의 구멍은 살금살금 열려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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