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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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전국에서도 물 좋기로 소문난 온천 부근이야. 동네에서 몇 발짝만 걸어 나가면 온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해.
우리 동네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셔. 어려서부터 동네를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토박이 할아버지야.
할아버지는 오래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혼자 사셨어. 요즘에는 직장에 다니는 아들과 며느리가 집에 들어와 함께 모시고 살아.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농사를 지으며 혼자 시간을 보내지. 할아버지는 평생 농사 말고는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대.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농사 짓는 것도 힘들어 하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들과 며느리는 그런 모습이 싫은가 봐.
“아버지, 제발 일 좀 그만하세요. 이제는 나이를 생각하셔야지요.”
“아들아, 나한테는 집 앞 텃밭이 놀이터여. 평생 하던 일을 그만두면 몸이 쑤시고 아프단 말여.”
할아버지는 아들이 야단을 치면 풀이 죽어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지. 며느리는 할아버지와 아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어.
“아버님, 집에 계시는 것보다 노치원에 다니시면 어떨까요?”
며느리는 좋은 생각이 났다면서 노치원 얘기를 꺼냈어.
“노치원? 그게 뭐 하는 곳이야?”
할아버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어. 며느리가 자세히 설명을 시작했어.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 아시지요?”
“유치원이야 알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어.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유치원이고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다니는 학교는 노치원이라고 해요.”
“그런 곳도 있었어?”
할아버지는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어느 날 아침 일찍 할아버지 집 앞으로 작은 버스가 한 대 왔어. 노치원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모셔 가는 버스였어. 노란색이 알록달록한 버스는 유치원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차와 비슷했어.
할아버지가 외출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버스에 타셨어. 노치원 버스에 오르는 할아버지 얼굴이 어쩐지 불안하고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어.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아버님,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아들과 며느리는 노치원 버스 타는 앞까지 나와 인사했어.
할아버지는 생전 처음 노치원 공부를 시작했어. 유치원 아이들처럼 종이에 색칠놀이를 하고 숫자 맞추기도 했어. 이런 놀이는 노인들의 치매 예방을 위해 좋은 거래. 건강에 좋다는 체조와 간단한 운동도 했어.
시간마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 들어와서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선생님이 들어올 때마다 긴장되고 불안했지.
‘이번에는 또 무슨 시간일까? 틀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이 먼저 마음을 짓눌렀어. 시간마다 서툴기는 했어도 힐끔힐끔 옆사람을 쳐다보며 눈치껏 따라 했어. 그런데 제일 힘든 것이 뭐였는지 알아? 삼삼칠 박자로 손뼉 치는 공부였어.
“할아버지, 처음이라서 어색하시지요?”
노치원 선생님은 할아버지가 힘들어하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어.
“할아버지, 삼삼칠 박자는 이렇게 치는 거예요.”
선생님은 할아버지 앞에서 시범을 보였어.
“박수 3번, 다시 박수 3번, 마지막에 박수 7번이에요.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선생님은 할아버지 손을 직접 잡아 주며 도와줬어. 하지만 아무리 따라 해도 리듬에 맞춰서 손뼉을 치는 것은 힘들기만 했어.
할아버지는 손뼉 치는 리듬과 타이밍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어. 자꾸만 틀려서 창피하기도 하고 식은땀만 났어. 할아버지가 틀릴 때마다 옆사람들은 깔깔깔 배를 잡고 웃으며 난리가 났지 뭐야.
할아버지는 노치원의 첫날이 너무 힘들기만 했어.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들과 며느리가 물었어.
“아버님, 노치원이 재미있으셨어요?”
“…….”
“아버지, 집에 혼자 계신 것보다 심심하지 않아서 좋지요?”
“…….”
할아버지는 아무 반응도 없었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거든.
이튿날 아침 다시 노치원에 갈 시간이 되었어.
“아버지, 빨리 나오세요. 벌써 노치원 차가 집 앞에 와 있어요.”
아들이 할아버지 방 앞에서 재촉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꾸물꾸물 시간을 끌고 있었지. 마지못해 밖으로 나오며 할아버지가 말했어.
“아들아, 나 노치원 안 다니면 안 될까?”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들이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어.
“나는 집에서 농사 짓는 게 제일 좋아. 어제 하루 종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어?”
할아버지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했어.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지가 노치원에 가시니까 마음이 놓이고 너무 좋은데요. 점심도 때맞춰서 잡수시고요. 어서 빨리 차에 타세요.”
할아버지는 아들의 재촉에 마지못해 노치원 버스를 탔어. 몸을 뒤틀며 엉덩이를 뒤로 빼고 머뭇거리다가 억지로 떠밀려서 버스를 탔어.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할아버지는 노치원에 가기 싫다고 아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어. 나중에는 노치원에 가기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꾸며대었어. 하루만 집에서 쉬겠다는 둥, 머리가 아프다는 둥, 차멀미가 심하다는 둥. 하지만 아들은 들은 체만 체하며 할아버지 등을 버스 안으로 떠밀었어.
할아버지가 노치원에 다니며 일주일쯤 지난 뒤였어. 아침에 노치원 차가 왔는데도 할아버지가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거였어. 아들이 밖에서 기다리다가 할아버지 방문을 열었어.
“아버지! 왜 그러고 계세요?”
할아버지는 방 안에서 두 팔과 두 다리를 큰대자로 쫘악 벌리고 누워 있었어.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는 모습이었어.
“아버지, 빨리 나오세요!”
“싫어! 노치원 안 가! 안 간단 말야!”
할아버지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떼쓰는 아이 모습이었어.
“노치원 차가 기다린단 말예요!”
“나는 안 간다니까!”
할아버지와 아들은 한참 동안 끌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계속했어. 그 사이에 노치원 차는 그냥 떠나고 말았어.
“내 차암….”
아들은 할아버지 설득을 포기하고 부랴부랴 출근을 서둘렀어. 며느리도 출근 시간이 늦었다며 서둘러 집에서 나갔지.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어.
그런데 말이지, 방에서 꼼짝도 안 하던 할아버지가 어느새 밖으로 나와 있지 뭐야. 집 앞 텃밭으로 쏜살같이 나가더니 풀을 매기 시작하는 거야.
텃밭 가운데 앉아 있는 할아버지 모습이 어땠는지 알아? 그 동작이 어찌나 날렵하고 신나 보이는지 몰라. 때마침 동네 아주머니가 지나가며 물었어.
“할아버지, 오늘 일하시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세요. 기분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요?”
“…….”
할아버지는 씨익 웃으며 하던 일만 계속했어.
“할아버지가 참으로 이상하네.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동네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했어. 때마침 동쪽 하늘 높이 떠오르던 해님도 할아버지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오늘 모처럼 밭에 나오신 할아버지 표정이 아주 즐거워 보이는군.”
해님이 뿌려주는 햇살 한 줌이 할아버지 머리 위로 춤추듯 내려앉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