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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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또 시작이네. 쏟아부었구나, 쏟아부었어.”
저마다 한마디씩 보탠다. 오늘도 비둘기가 일을 저질러, 허옇고 검붉은 배설물이 의자와 운동기구 손잡이, 발판까지 덮어버렸다.
주택가 아담한 공원에서 마주하는 풍경이다. 중앙에는 시소와 미끄럼틀이 있고, 산책로 옆으로 의자가 나란히 있다. 느티나무 아래 공중 달리기와 좌식 자전거가 인기를 끌면서 요즘 비둘기가 말썽을 부리자, 마뜩잖은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의자에는 열여섯 명 남짓의 할머니들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미끄럼틀에서 쪼르르 내려오는 아이를 바라보며, 앞다투어 손주 자랑이 넘칠 때였다. 의자 앞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훌쩍 날아들었다. 한 할머니가 손에 든 과자 조각을 던져주자 갑자기 벼락 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먹이를 주면 안 되죠. 저기 좀 보세요, 사방을 더럽히잖아요.”
“뭐라 카는 기요. 저 불쌍한 것들도 먹고 살아야 제. 웬 참견이고 참말로.”
성난 얼굴에 주름살이 파르르 일어섰다. 먹이를 주자는 쪽과 주지 말자는 쪽이 옥신각신이다. 옆에서 비둘기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먹이에만 열중한다.
서울역 지하철에서 내릴 때였다. 비둘기 한 마리가 파드득 날아들었다. “악!” 놀란 승객이 황급히 달아났다. 비둘기는 부리로 바닥을 콕콕 쪼았지만,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쳤다. 이 깊은 지하까지 어떻게 들어왔을까.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어수선한 발걸음 사이로 고향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뒷동산을 타고 넘던 구구국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흔하게 보이던 제비나 참새와 달리, 비둘기는 마술쇼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마술사의 손끝에서 하얀 비둘기가 솟아오르자, 탄성이 울려 퍼졌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덩굴 우거진 집을 짓자고 부르던 노랫말처럼 아름다운 꿈을 펼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비둘기는 에어컨 실외기를 둥지 삼아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배설물이 엉겨 붙어 고장이 나고, 길가에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아수라장을 만든다. 길이나 공원에 앉아 있는 비둘기를 보면 나는 후다닥 달려가 발을 탁 구르며 내쫓는다. 놀란 듯 날개를 퍼덕이다 내려앉는 모습은 미운 애물단지 같지만, 한편으로는 애처롭다.
귀소 본능이 강한 비둘기는 전시에 통신 수단으로 큰 임무를 수행했다. 프랑스 아르곤 숲 전투에서 전기수 ‘셔아미’가 총탄을 맞으며 필사적인 날갯짓으로 병사 수백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6·25전쟁 중 전신망이 끊긴 상황에서 전시 명령과 소식을 전하며 힘을 보탰다니 대단하다.
한때 수입 집비둘기의 전성기가 있었다. 큰 행사 때마다 평화의 상징으로 하늘에 풀어 올린 비둘기들은 백색의 미를 뽐내며 재롱을 부리듯 훨훨 날았다. 회색 비둘기는 우편용이나 애조용으로 길렀고, 빛깔이 고운 비둘기들은 관상용·공연용으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오래 가지 않았다.
박수와 함께 날려 보냈던 비둘기 정착지는 숲이 아닌 도심지였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곡식과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식성마저 사람을 닮아 갔다. 곳곳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며 번식에 번식을 거듭했다. 빛깔이 다양한 비둘기 군단은 공원이나 광장을 우르르 몰려 다닌다. 건물 지붕과 다리 밑을 오염시키고, 전깃줄에 주렁주렁 매달렸다가 바닥으로 내려와 뒤뚱거린다. 사람들은 이제 ‘닭둘기’라는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닭둘기 조상은 한때 위대한 명성을 누렸다. 평화의 상징으로 하늘을 날던 비둘기들은 전서구의 후손이다. 본래 고향은 숲과 바위 절벽이었을 터인데, 도심이 삶터가 되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사람에게 의존적인 새로 변해 갔다. 하늘을 주름 잡던 날렵함은 사라지고 혈통마저 흐려졌다.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린 인간의 이기심인가.
이민자들의 삶이 겹쳐 떠오른다. 고국을 떠나 낯선 땅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손에 쥔 희망조차 흔들렸을 터이다. 고단함과 소속 없는 외로움을 참아내면서 정착한 흔적들이 다가온다. 회색 거리를 서성이는 비둘기처럼, 사람 살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비둘기도 생존 경쟁 중이다. 정서적인 위안과 숲의 순환을 돕던 토종 산비둘기는, 산림 훼손과 도시 확장으로 서식지를 잃고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집비둘기는 골목길의 방랑자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현수막을 보면서 생각한다. 닭둘기라는 오명을 벗고 숲에서 산비둘기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살짝 그려본다. 저만큼에서 꾹꾹, 꾸르륵 허공을 가르는 울음소리는 귀향의 날갯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