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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과제와 토종꿀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행재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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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임명되어 근무하다 보면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교감, 교장 자리로 승진도 하게 된다. 그냥 승진에 관심 없이 지내다 보면 교단 교사로 정년을 맞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런 경우는 정년에 앞서 도중에 명예퇴직을 하는 예가 많았다.
전에는 여자 선생님들이 그런 쪽에 많았으나, 지금 초등 여자 교사는 교감, 교장 승진에 관심이 많아 그 수가 훨씬 많아져 옛말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선 교육대학 입학생부터 여성이 비교 한참 위로, 성별 조정 문제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교사가 교감, 교장 되기까지는 얼추 20여 년의 경력과 승진에 필요한 제반 자격 요건을 갖춰 수요 범위 안에 들어야 연수 후 자격증을 취득하고 빈자리에 발령된다.
대부분 교사 생활에서는 자연스럽게 당해 학교 교감이나 교장의 학교 경영 방식을 지켜보며 경력을 쌓는다.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사례는 기억해 두지만, 별로라면 흘려보낸다.
필자도 농·산·도시 지역 십여 개 학교를 거친 교사 경력이다. 물론 나름대로 교육학에서 배운 교육 방법, 교육철학 등 교육 이론을 염두에 두면서 교육한다고 해왔다. 그러나 결정적인 교육자의 자세와 자질은 교육사관학교라는 특수학교에서 6년 근무하면서 체질화되었다.
매사가 교육적이어야 하며, 민주적이고 아동 중심적으로 생활이 이루어지는 표준형 모범학교, 시범학교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좋은 일, 보람된 일을 찾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과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필자는 여기에서 근무하면서 나름의 학생 지도 교육관과 평생 생활관을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다.
필자도 25년 교사 경력을 쌓고 교감 자리에 앉았다. 학교장의 경영 방침에 협조하고 보호하며 도와주는 교감 역할을 성실하게 하고 6년이 지나면서 교장 자리에 올랐다.
교장 경영관이 성과(成果) 중심이냐, 인화(人和) 중심이냐에 따라 학교 분위기는 좀 다르다. 모시는 교장마다 다르기에 맞추어 보좌하며 지켜보았다. 필자는 후자인 인화 중심의 학교 경영 쪽에 관심이 기울어져 있었다.
나름대로는 기본적인 교장 자세는 갖고 있었으나, 지역 규모 환경에 맞춰 경영 방침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경기도는 행정 구역이 넓은데 인구가 많아 지역 간 차이가 크다. 수원, 안양, 부천, 성남, 고양 수도권 지역은 서울에 버금가는 환경이고, 경기도 도서 벽지 지역하고는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초임 교장 발령을 도서나 벽지 오지 지역을 피했으면 바란다. 그러나 신입고출(新入故出) 상식적인 인사로 신규에겐 선임자 우선하고, 남은 자리에 배정한다. 필자는 도서는 면하고 대신 법정 벽지 지역이었다.
벽지 6학급 초임 교장으로 승진했을 때의 이야기다. 전교생 팔십 명 남짓, 4~6학년 모두가 사십 명도 채 못 되었다. 1970년대 학령 아동수가 기하급수로 팽창했을 때 76명 졸업반 담임한 기억이 떠오른다. 학급 조회에 이름을 부르고 과제 검사하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는 시절이다. 이를 생각하면 학생 수로는 한 학급 교장에 불과했다.
대규모 학교 교장은 할 일과 살필 일이 많지만, 이렇게 벽지 소규모 학교 교장은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교장으로 벽지 어린이를 위하여, 담임과 관계없이 간접적으로 도와줄 일을 찾았다. 일기 검사를 생각했다가 시대적으로 좀 그렇고… . 다른 일을 찾다 보니, 어느 교육 선배 수기가 떠올라 4, 5, 6학년 글쓰기 과제를 생각했다. 산촌 벽지 어린이들 글쓰기로 타고난 자기 숨은 재능 계발을 시켜 보려는 순수한 뜻으로 정규시간이 아니라 자투리 시간 주말 과제를 주고, 월요일 제출, 학교장이 틈내어 직접 개별 지도하는 방법은 담임 누구에게도 아무런 누가 되지 않는 학교장의 순수한 교육애다.
월요일 아침에 교장 책상 위에 놓인 40권 남짓 글쓰기 노트를 하나하나 읽어보고, 빨간 사인펜으로 틀린 글자를 고쳐주고, 빠진 글자를 채워 주며, 좋은 표현은 별표를 해주었다. 한두 줄로 작품의 좋은 점을 지적하여 칭찬으로 의욕도 북돋웠다.
이들 우수 작품은 학교 신문에 소개함은 물론, 때론 지방 일간지, 주간 교육신문 등에 송고했다. 작품이 인쇄되어 손에 들린 신문에 어린이는 무척 반기며 흥분하니 지켜보기에 흐뭇했었다. 가끔 이들 중 여러 단체 주최 백일장 대회에서 입상이라도 한다면, 개인뿐만 아니라 학교와 가정의 축제요, 벽촌의 화제가 되었다.
본교를 떠나고 6~7년 지나 본교 근처를 지나다 학구 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주인은 필자를 기억하고 반긴다. 그 시절 주말 글짓기상 받았던 얘길 꺼내면서, 지방신문에 발표했던 딸이 동기를 얻어 진학해서도 문학 쪽에 관심 두더니 기어코 인서울 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했다며, “교장선생님 덕택”이라고 반겼다. 미리 준비나 한 것처럼, 고장 특산물 토종 꿀단지를 챙겨 내놓는데는 잔잔한 흥분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 기분 남달랐다. 학교장이 나름대로 자투리 여유 시간을 글짓기에 할애하여 소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준 것은 학교장으로서의 아량과 도량이었다.
‘참스승은 촛불 같아. 자신을 태워서 불을 밝힌다.’
케말 파샤 학자의 금언을 되새겨본다.
노(老) 교육자가 되어 지난날 사소하게 성취한 보람에 자족하여 되돌아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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