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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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소매가 긴 옷을 입을 만큼 요 며칠 사이로 바람은 제법 차갑게 내게 다가왔다.
녹음은 점점 눈에서 멀어진다. 들녘 곡식들은 풍요의 시간을 기다리고, 수고한 농부들의 노동 땀은 시원한 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수줍은 소녀의 얼굴빛을 닮은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가을은 정말 아름다운 계절이다.
한 뼘씩 높아져만 가는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있는 가을 손님 고추잠자리. 가을 손님은 어둠이 깔린 저녁이면 이따금 울어대는 귀뚜라미와 좋은 짝이 되어 우리에게 높고 푸르른 가을의 마음을 전한다.
이런 나의 가을 예찬을 성급한 마음이라 탓하듯, 아직은 한낮에는 더운 햇살이 남아 있지만, 난 애써 피하지 않으련다. 이 좋은 날, 넉넉한 마음으로 가을날을 시처럼 사랑하고 음악처럼 즐기고 싶다. 잠시 눈을 돌려 떨어진 나뭇잎들을 본다.
여름날의 싱그러움을 뒤로한 채, 이젠 메마른 고독의 뒤를 따라간다. 햇살에 반짝이던 윤기 있던 모습도 이젠 접으며, 바닥에 뒹구는 낙엽, 그 낙엽을 바라본다.
시든 낙엽으로 변하며, 푸른 신록의 그날도 점점 작게 사라져 간다. 청록의 여름 추억을 가슴에 심고, 넘치는 기쁨과 환희에 스러지는 아픔을 감춘 채 이젠 떠나려 한다.
머물고 싶은 마음보단 앞으로 피어날 새로운 희망의 싹을 위해 정든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고마운 마음. 자리를 내어주며, 그것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한 줌 흙으로 썩어 간다.
난 배우련다. 이 작은 낙엽에서 희망과 숭고한 사랑의 의지를. 나도 언젠가는 내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주겠지. 작고 남루한 자리지만, 이 자리에도 새로운 주인이 앞으로 다가오겠지. 내 자리에 새로운 주인이 될 미지의 어린 벗에게 난 무엇으로 남을까? 먼저 지나간 사람이 아닌, 앞으로 걸어갈 길에 이정표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가을, 많은 것을 생각하고 가르쳐준 가을,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