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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끼빠빠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정종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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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여름날이었다. 태풍이 지나며 뿌린 비가 무더위와 습기를 가득 퍼뜨렸다. 하필 그날 청평사를 갔다. 춘천을 지나 배후령 터널을 통과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고 내리다 보니 갑자기 연보라의 바다가 펼쳐졌다.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과 보라색 물결, 은은한 향기가 바람에 앞서 온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옛날 어머니 코티분 향기가 난다”며 향수에 젖었다. 칡넝쿨 세상이었다. 도로 양편 낙석 방지철 그 물을 가득 메웠다. 마치 자기를 알아봐 달라고 손을 흔들듯 철그물 밖으로 보라의 꽃송이를 밀어 올렸다. 한여름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뼘이나 되는 꽃대는 하늘 향해 꼿꼿이 서 있었다.
예전에는 칡이 중요한 약재였고 구황식물이었다. 가난의 시절 배고픈 아이들의 간식도 되었다. 칡을 캐려면 마을을 떠나 산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삽과 괭이를 들고 미끄러지고 구르며 산을 헤맸다. 게릴라전을 벌이듯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우물쭈물하다가 산 주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엄청난 치도곤을 당했다. 수확물뿐만 아니라 기구까지 압수당하기 일쑤였다. 큰 암칡을 캐는 날이면 운수 좋은 날이었다. 뿌리가 통통하고 물이 많아 날치알 같은 알갱이가 톡톡 씹히는 암칡과, 살이 없고 뻣뻣한 수칡이 있다. 넉넉지 않던 시절, 입이 새까맣게 물들도록 씹고 다녔다. 그 달콤하고 시원한 맛은 지금의 어떤 음료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크나큰 칡뿌리를 어깨에 걸친 우리는 마을에 들어서면 개선장군이었다. 같이하지 못한 친구들은 한 점이라도 얻으려고 갖은 아양을 떨어야 했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산은 보물창고였고, 칡뿌리는 달콤한 전리품의 하나였다.
칡은 버릴 것 하나 없는 식물이다. 꽃은 술과 차로 우려 마셨고, 질긴 줄기는 바구니와 로프를 엮는 재료가 되었다. 뿌리는 즙을 내거나 녹말 가루로 만들어 국수를 뽑아 먹었다. 한방에서도 갈근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고, 지금도 갈근탕은 감기 몸살에 효과가 있어 인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칡이 초록 장막으로 세상을 덮고 있다. 산 밑, 변두리, 도로가 어디든 이들이 점령했다. 과거의 소중한 약재는 이제 생태계를 위협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마치 초록의 괴물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번식한다. 둘러싸인 나무들은 숨통이 막혀 질식하고, 햇빛을 차단당해 굶어 죽는다. 한때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던 칡이 이제는 다른 생명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서울 주변 도로도 예외는 없다. 매일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동부간선도로 수락산 주변, 장암 지하차도 입구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배기가스와 소음도 개의치 않는다. 고소공포증도 없나 보다. 마치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개구쟁이처럼 줄기를 축 늘어뜨리고 지나가는 차량을 내려다본다. 도시의 회색 콘크리트마저 초록으로 덮으며 자신만의 영토를 넓혀 간다. 아무리 이로운 것도 도가 지나치면 해롭다. 한번 감아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이 제거해주기 전에는 방법이 없다. 무엇이든 초기에는 관리할 수 있지만, 일단 세력을 키우면 제어 불능 상태가 된다.
인삼은 우리에게 영약이지만 무밭에서는 잡초다. 인삼밭에서는 무가 잡초가 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제자리가 아니면 잡초가 되고 폐기될 뿐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자 삶의 진리다. 칡도 마찬가지다. 산중에서 은밀히 자라 양식과 약이 되어 주던 그때는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이로움은 사라지고 불편만 초래한다.
우리 인간도 다르지 않다. 누구든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필요한 때, 필요한 자리에 있어야 존중받는다. 이것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삶의 본질적 지혜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도 수술 도구를 들고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뛰어난 농부도 병원 수술실에서는 무력하다. 재능 있는 연주자도 도서관에서 연주하면 민폐일 뿐이다. 능력 자체보다 그 능력을 발휘할 적절한 시공간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는 말이다. 얼마나 지혜로운 말인가. 필요한 순간에는 당당히 나서되, 불필요한 순간에는 겸손히 물러서라는 뜻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이자 성숙한 삶의 자세다. 이 간단한 삶의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이는 늘 앞에 나서려 하고, 어떤 이는 늘 뒤로 물러서려 한다. 둘 다 옳지 않다. 때를 알고 자리를 아는 것, 그것이 사람다운 삶의 출발점이다. 언제 적극적으로 나서고 언제 한 발 물러설지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설령 그 자리가 화려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더라도 말이다.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칡이 깊은 산중에서 자라 우리에게 양식과 약이 되어 주었던 그 시절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한다. 오늘도 도로변에서 보라의 꽃송이를 흔들며 번성하는 칡꽃을 본다. 그 향기로운 꽃송이가 이제는 경계의 신호로 느껴진다. 지겨운 여름이 가고 수확의 계절 가을이 온다. 그 꽃송이도 지고 깊은 땅속의 뿌리에 가을을 저장할 것이다.
주변 어느 곳에서든 구애받지 않고 무성하게 자라는 칡을 보며 생각한다. 같은 존재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산중에서 조용히 자랄 때는 생명을 살리는 약재였지만, 제자리를 벗어나 무분별하게 번성하면 생태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선한 의도를 가졌다 해도 때와 장소를 모르면 해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지혜는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아는 것, 그리고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다. 튼실하고 알이 톡톡 씹히는 암칡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실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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