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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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맺어진 모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줄어든다.
“이제는 경제권을 마눌임에게 이전하고, 회비를 타 와야 되니 구차해서….”
“올 여름에 회원 세 사람이 먼 곳으로 전출 갔어, 모임을 해체했지.”
이러저런 이유들로 모임이 줄어들고, 친구들도 하나둘 사라져 간다. 휴대전화로 오는 카톡의 ‘좋은 글’에는 늙을수록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글이 심심찮게 오는데, 이제 이 나이에 새 인연을 맺어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나이 팔십에 경로당이나 노인정에 가는 것도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손해 보는 느낌이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나마 필자는 만학(晩學)을 한 덕분에 젊은 동기들이 있어 친구 복이 넉넉한 편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실버들이 겪어야 하는 고독한 현실이 아닌가 싶다.
언제인가 가벼운 술자리에서, ‘고교 동기들이 더 가까운가, 중학 친구들이 더 좋은가’라는 화두로 왈가왈부한 일이 있었지만 당시 필자의 최종 학력이 중졸이니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었다. 2009년 『문학저널』의 고(故) 김창동 편집인의 권유로 등단하고, 이듬해 내 글을 읽어 줄 독자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들어 예순다섯 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내친김에 2018년 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며,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던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그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인연, 고교 동창들, 동문들, 대학 동기들 또 동문들, 팔십 노장이 제법 많은 친구들이 새로운 인연으로 맺어지고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모임이 늘어났다. 즐거운 비명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모군(母軍) 해병전우회 모임까지, 다른 이들은 모임을 줄여 간다는데, 필자는 모임이 늘어가고 있다. 사는 데 급급해서 잊고 살았던 옛 얼굴들이 그리워, 하늘이 부르기 전에 한 번 더 보자고, 지인들이 불러주는 것이 고마워서 부르는 곳이 있으면 가능하면 시간을 할애하여 참여하려고 한다.
“야, 홍깨! 우리 지금 아무개, 아무개 등과 함께 한잔 하다가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아무개 바꿔 줄게.”
C시에 거주하고 있는 중학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전화를 바꾼다. 그들은 모두 필자를 아직도 이름 대신 중학 시절 애칭으로 불러준다. 그들에게도 각기 별명이 있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서 필자는 그 동기들에게 ‘유 교장, 최 교장’하며 그들의 은퇴 전 직책을 존중해 서 호칭하는데, 이 친구들은 필자의 별명으로 호출한다. ‘홍깨’란 그 시절 얼굴에 주근깨가 많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중학 친구들 사이에 그 별명이 잊히지 않고 불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필자가 명물은 명물이었나 보다. 그렇게 해서 중학 동창회와는 별개로 중학 친구들의 모임이 새롭게 늘어났다. 매월 한 번 만나서 점심을 하고 헤어지는 모임이고, 멤버는 나를 포함 7인이다. 공식적으로 그들과 헤어진 것이 한 갑자를 훌쩍 넘어버렸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해 주고 불러주는 것이 고맙다. ‘술과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옛 친구들이 더 애틋하고 귀하다.
“그래 몸이 성할 때 한 번 더 만나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으랴.”
“역에 도착하면 차량으로 마중 나갈 테니 전화하게.”
“그럴 필요 없어, 이 사람 내가 C시에 어디라면 못 찾아갈까 봐?”
세월이 익어가면서 술이 무서워졌다나? 해서 일부러 술시(戌時=酒時)를 피해 점심으로 정했다는 얘기다. 그래도 한국인의 모임에 술이 없다면 ‘뭐 없는 뭐 같지 않을까?’ 하는 필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연전에 상처(喪妻)를 한 C교장이 한마디 한다.
“하하, 걱정 말게. 천하의 홍깨가 납셨는데 술 한잔 없을까.”
옆자리에 L원장이 거든다.
“저길 보게.”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일필휘지하여 ‘어르신들에 한하여 낮술 환영’이라고 쓰인 팻말이 백설(白雪)을 머리에 이고, 오랜만에 찾아온 나그네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은퇴하고 동양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Y교장이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며,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濁酌)」을 흉내 내어 시조창(時調唱)을 하듯 목을 길게 뺀다.
“하하, 하늘과 땅이 술을 사랑하거늘(天地既愛酒), 술을 마시는 것이 어찌 하늘에 부끄러울까(愛酒不愧天), 옛 벗이 함께 하니 낮술인들 무에 대수이겠는가.”
“하하 이 사람아, 낮술에 취하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지 않던가.”
“어이쿠,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게. 못 알아볼 부모님이 계시던가? 이젠 내가 부모인 것을.”
뒷말을 입 속으로 삼키는 것을 보며, 이미 우린 부모님들이 살아오셨던 그 세월을 훌쩍 넘기고 있음을 실감한다.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열여섯 주니어 악동들이 이제 백발이 성성한 팔십 실버 악동들이 되어 한가롭게 낮술 타령으로 술잔을 들어 건배를 외친다.
“자, 황혼의 우정을 위하여! 축배를 들어보세.”
“우리의 늙음을 위하여!”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는 안 하는 거냐?”
“아직 우리는 충분히 건강하잖아. 낮술 마실 만큼만 건강하면 되네.”
그렇게 낮술은 우리들의 건강을 체크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액이 되어준다.
그곳에 가면 ‘낮술 환영’이라는 팻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