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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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둘러보고 온 남편이 툭 말을 던진다.
“두 번째 돌확에 올챙이가 한 마리 살아. 작년까지는 우리 집 올챙이들 몽땅 청개구리가 되더니 올해는 갈색 개구리가 되려나 봐.”
‘이 여름에 아직도 올챙이…?’
남편의 말이 믿기지 않아 당장 마당으로 나간다. 물론 갈색 개구리도 궁금하다.
돌확엔 잔뜩 물이끼가 끼어 있다. 게으름을 반성하며 물에 손을 넣어 이끼를 걷어낸다. 그런데 방금 뭔가가 손을 스치고 지나간 느낌? 조심스레 물풀을 헤쳐 가며 들여다본다. 오호,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검은 옆선이 헤엄치고 있다. 놀랍고 반가워 나도 모르게 소리가 높아진다.
“올챙이 아니야. 물고기야.”
순간, 검은 옆선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돌확 가장자리에 떨어진다. 놀란 마음 다독이며 녀석 쪽으로 얼굴을 디미는데 녀석, 다시 튀어 오른다. 이번에 메어 꽂듯 떨어져 내린 곳은 땅바닥이다.
조심스레 녀석을 집어 돌확에 던져 넣는다. 물에 들자마자 온몸을 드릴 삼아 흙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녀석. 그 모습이 귀엽기도 어이없기도 해 혼자 웃으며 세 번째 돌확으로 간다. 이끼를 마저 걷어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물고기가 또 있다! 길이가 손톱 정도나 되려나 싶은 빨강이가 손을 넣자마자 부레옥잠 사이로 숨어버린 것. 녀석들, 어떻게 돌확에 온 걸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뱀장어 자연발생설을 주장했다기에 이런 쯧, 했었는데 그 심정 알 것 같지 않은가. 혹시 싶어 첫 번째 돌확으로 되돌아가 들여다본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다. 하긴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랴. 몰라 그렇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깃들어 있으랴.
마당에 돌확이 세 개 있다. 동네 들고양이들의 옹달샘이기도 한 세 개 돌확은 한 사람이 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도 그 모양새와 물 빠짐이 다르다. 현무암이란 게 원체 구멍 크기와 밀도가 제각각이어서겠다. 첫 번째엔 수면에 바싹 한쪽 터진 둥근 잎 겹쳐 띄우며 흰 수련이, 두 번째엔 가는 줄기 끝에 동그란 잎 피워 올리며 분홍 수련이 산다. 세 번째는 아예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레옥잠이 빽빽하다. 올해처럼 특히 더 운 여름엔 물 빠짐이 심한 두 번째가 마침이지 싶다. 방금처럼 남편이 수시로 물을 채워 넣어 수온이 가장 낮기 때문이다. 그러니 검은 옆선, 뭣도 모른 채 땡잡은 셈. 빨강이는 물이 뜨거워 어떻게 견디려나 모르겠다. 부레옥잠이 햇빛을 가려줘 괜찮으려나? 그건 그렇고 검은 옆선, 얼마나 놀랐을까. 어쩌면 지금 물풀 속을 빠르게 오가며 구시렁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방금 나, 뭐한 거지?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몸이 완전히 박살 나는 줄 알았잖아. 그런데 거긴 어딜까? 아가미에 뭔가 이상한 게 닿는가 싶더니 숨이 콱 막혔었는데…. 곧 딱딱하고 거친 무엇에 몸이 내동댕이쳐졌고…. 제일 끔찍한 건 물렁따뜻한 막대기가 내 몸을 집어 올릴 때였어. 혹시 나, 세상 끝에 가신을 만났던 걸까?’
세상 끝 운운하며 우왕좌왕하는 검은 옆선이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린다. 중학 2학년이었을 즈음, 나도 잠깐 충격에 빠져 딴 세계랄까, 생각의 외곽을 헤맨 적이 있다. 내가 나밖에 모른다는 걸 불쑥 깨닫고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던 것. 여기서 ‘나밖에 모름’이란 이기(利己)가 아닌 무지(無知)로, 그 혼란의 시작은 궁금증이었다. 방금 헤어진 친구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무얼 하고 있을까, 하는….
알아질 리 없었다. 친구뿐 아니라 엄마도 언니도 동생도 아니 그 누구도 동시(同時), 나를 알 듯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순간 의문이 터지듯 솟아났다. ‘그렇다면 왜 나는 나지?’ ‘이 나로 나,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건가?’ ‘죽음도 이 나로 혼자 겪고?’ 갑자기 무서웠다. 외로웠다. 공포에 사로잡힌 머릿속에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둑한 평야를 홀로 걸으며 내가 여전히 묻고 있었다. ‘나 지금, 세상의 끝을 향해 걷고 있는 걸까?’ ‘끝, 그건 어떻게 생겼을까? 아니, 끝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아니 아니, 왜 나는 나일까?’ ‘그 누구도 아닌 하필 나일까?’
물론 어린 나도 감히 신(神)급 전지(全知)를 바란 건 아니었다. 지금 생각이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의 앎 정도를 바랐지 싶다.
물고기에겐 온 세계일 돌확에 손 짚으며 몸을 일으킨다. 닮은 듯 다른 이 각각의 돌확이 사람, 아니 사람의 내면세계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돌확 속의 빨강이와 검은 옆선, 서로 볼 수도 알 수도 없지 않은가. 환경의 다름은 추측조차 못하고 안들 바꿔 달라 조를 수도 없지 않은가. 생득(生得)하는 사람의 품성과 지능처럼.
고개를 젓는다. 검은 옆선이건 빨강이건, 자기가 어떡하다 돌확에 왔는지 어쩌면 자신이 물고기인 줄도 모를 텐데 이 무슨 오지랖이고, 개똥철학인지…. 나도 내가 어떡하다 왜 여기 온 건지 모르면서 말이다. 내가 이 우주의 무엇인지 짐작도 못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저기 저거 혹시?
시멘트 마감한 마당 한가운데 갈색 개구리가 오도카니 앉았다. 청개구리가 엄지손톱 크기였다면 녀석은 갓난아기 주먹 정도. 녀석 앞으론 제 몸보다 크고 긴 그림자가 뻗어 있다. 필립 왕을 매혹했다는 말〔馬〕이 생각난다. 어떤 마부도 그 흥분을 제어할 수 없던 말, 부케팔로스는 왕의 12살 아들 알렉산더가 태양 쪽으로 돌려 세우자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했다. 하기는 나라도 무섭겠다,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뛰어오를 때만 잠시 떨어졌다 다시 달라붙는 검정 올가미라면….
방을 향해 걷는데 너나 모두 안쓰럽다. 온통 의문투성일 검은 옆선이, 내 제 그림자에 붙들린 갈색 개구리의 맘이 남의 맘 같지 않은 거다. 한편 조금 기쁘기도 하다. 뱀장어든 물고기든 자연 발생하진 않았을 테니 나도 그랬지 싶어서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그림자 매단 채라도 빛〔神〕 향해 서자, 새삼 다짐하는데 내가 나인 게,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인 게, 천만다행이지 싶어진다?
머쓱해져 뒤를 돌아본다. 돌확이란 세계 셋, 여전히 고요하고 우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