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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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다. 3박 4일 간의 문학 행사에 참여하던 셋째 날이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룸메이트와 호텔 1층에 있는 뷔페를 찾았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지정석에 앉을 때까지만 해도 다른 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오늘도 부드러운 요구르트로 빈속을 달래고 맛난 음식을 요것조것 골라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름다우십니다.”
마주 앉은 룸메이트와 차려진 음식을 놓고 이야기하는데 얼핏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그 말을 흘려듣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다시 또 그 말이 들려왔다.
“운치 있는 이 아침에 식당이 환합니다.”
이번에는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궁금하여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옆 테이블에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식사하다 말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거듭 참으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 말에 흠칫 놀랐다.
의아해서 나에게 하는 말이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하려니 참으로 기분이 좋다고 한술 더 떴다.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참 묘한 기분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들어본 극찬이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쏙 들어가고 싶었다.
평정심을 찾으려 종지에 담아 온 요구르트를 말없이 떠먹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앞에 섰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오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차례 기분 좋은 한마디를 보탰다.
“아름다운 분은 음식을 드시는 모습도 참 아름다우십니다. 그 아름다움을 시 낭송하듯 읊어보겠습니다.”
얼굴이 따끔거렸다. 이런 나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그 남자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가랑비가 조곤조곤 내리는 운치 있는 이 아침에/ 경치 좋은 호텔 뷔페에 앉아 있으려니/ 아름다운 여인이 옆자리에 앉네./ 다소곳한 그 여인에게 눈길 가네./ 눈이 부시네./ 식당이 환하고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지네.”
다른 사람이 차려준 밥상을 받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거기에다 이때껏 들어보지 못했던 찬사까지 들으니 내 마음은 한없이 들떴다.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마치 하늘로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코와 입술은 그런대로 마음에 들지만 그리 탐탁지 않았다. 얼굴형은 길쭉한 데다가 눈은 가늘고 작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을 찍으면 거의 매번 눈을 감은 모습으로 나왔다. 그뿐인가. 한쪽 눈은 유난히 더 처져 보였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글펐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어본 일도 없다.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은 물론 가장 아름다웠을 이십대조차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왔다.
“경해야, 너는 예쁘지는 않은데 참 잘생겼다.”
친한 친구가 들려준 한마디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나를 예쁘다고 말한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보라고 하셨다. 아니, 나가 보라는 말보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우리 경해가 저길 나가야 하는데….”
매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될 때마다 잊지 않고 보시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버지의 그 말씀에 나의 반응은 늘 똑같았다. 이렇게 작은 눈으로 어떻게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느냐고 유난히 작고 길쭉한 눈을 들먹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쌍꺼풀진 눈은 기형이라며 외꺼풀인 내 눈이 진짜 괜찮은 눈이라고 추켜세웠다. 아버지의 그 말씀은 은연중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살아온 나에게 아름답다는 말은 어색하기만 하다. 뭔가 모르게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 것일까. 마주 앉아 있던 룸메이트가 한마디 거들었다.
“정 선생이 아름답다는 것은 원숙미가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그 뜬금없는 한마디에 새삼 원숙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원숙미란 무엇일까. 원숙미를 한글사전에서 찾아보면 ‘충분히 숙달되어 능숙한 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외양에서 느껴지는 능숙한 아름다움에는 자신이 없다. 어디에서건 당당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나의 어떤 점이 원숙미를 뿜어낸 것일까. 이즈음의 나에게 익숙한 것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니 내게 가장 익숙한 것은 글이다. 그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나는 글을 가까이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책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핀잔도 수없이 들었다. 글은 늘 새로웠고, 익숙했다. 그런 이유로 읽고 또 읽었다.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과 친하게 지내온 것이 은연중 겉모습에 비친 것일까.
그렇다면 아름다움도, 원숙미도 글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이번 행사가 문학과 관련된 것이어서 모여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문인들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원숙미도 어쩌면 글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으리라.
나는 머릿속에 든 것이 많지 않다. 수필이라고 써 놓은 글도 내놓고 자랑할 만큼 변변치 않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좋아하고 즐긴 것은 글이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글을 읽고 쓰며 평생 글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나의 강한 의지가 몸에 배어들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일까. 그것이 그 남자로 하여금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든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내가 그동안 꿈꾸어 온 것이자 이루고 싶은 하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