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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잇는 줄

한국문인협회 로고 장희자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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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바라보며 데크길을 따라 상상마당 앞까지 걸었다. 상상마당 앞은 호수와 테크노파크 건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쌀쌀한 바람이 상큼하다. 멀리 줄 하나에 연이 줄줄이 매달려서 호수 위로 꿈틀거리며 날고 있다. 하늘 높게 띄워 놓고, 자유자재로 희롱하는 실력이 대단하다.
전쟁 중에 연을 띄워 소통하거나 심리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연줄에 사람을 매달아 성 안을 정찰하거나 침투를 시도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통신 수단으로 썼다. 김유신은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하여 불덩이를 매단 연을 성 안으로 띄워,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으니 불길한 징조라 생각한 백제군은 사기가 떨어져서 신라가 승리하였다.
연날리기는 새해에 액운을 날려 보내던 풍속이 민속놀이로 자리 잡았다. 연을 잘 날리려면,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줄을 당겼다 놨다, 감았다 풀었다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갑자기 세게 당기면 줄이 끊어져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너무 느슨하게 풀면 연은 곤두박질친다.
정월보름을 앞두고 박물관에서 초등학생들과 연 만들기를 하였다. 선생님은 다양한 연을 전시해 놓고 연의 역사와 종류 등을 설명하였다. 학생들에게 원하는 연의 재료를 한 사람씩 나누어 주었다. 연날리기는 주로 남자들이 하는 놀이로 연 만들기 도움을 나선 나도 연을 만들기는 처음이다.
방패연의 가운데 구멍은 공기 저항을 줄여 안정적으로 뜨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가로와 세로로 접어서 생긴 중심에 컴퍼스로 원을 그려서 바람이 통하는 구멍을 내고, 그림을 그렸다. 대나무 살을 칼로 다듬고 사포로 밀어 매끄럽게 한 후, 한지에 붙인다. 대의 중심을 살며시 휘면서 촛불로 열을 가하면 조금 휘어진다. 조금 휘어진 대나무 살을 연의 가로 윗부분에 붙이고 가늘게 쪼갠 댓살로 고정한다. 무게가 같은 댓살을 중심에 붙여야 연이 기울지 않는다. 꼬리를 중심에 붙이거나 양쪽에 하나씩 더 붙이기도 한다. 네 귀에 실을 꿰어 중심에서 묶는데 실의 길이가 같아야 연이 잘 난다.
가오리연은 가오리를 닮아서 위는 넓고 아래가 뾰족한 마름모꼴이다. 긴 댓살은 아래위로, 짧은 댓살은 옆으로 붙이고 중심을 고정한 후 실로 묶어 준다. 꼬리를 짧게 붙인 학생이 있는가 하면 고리가 턱없이 긴 학생도 있다. 중심 잡기가 힘들어서 선생님의 손길이 닿아야 완성된다.
예전에는 겨울에 나무를 깎고 다듬어 팽이와 장난감을 만들고 연을 만들었는데, 연필 한 번 깎아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니 칼을 쥔 손이 부자연스럽다. 마음이 급한 학생들은 설명을 듣기 전에 칼로 댓살을 얇게 밀다가 손을 베기도 하였다.
바람이 없으면 연이 뜨지 않고 너무 세게 불면 연줄이 끊어질 수 있는데 오늘은 연날리기에 적당하게 바람이 분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은 바람을 등지고 얼레를 풀어주며 달리고 다른 사람은 연을 높이 띄워주는 역할을 하였다. 주차장에 모인 학생들은 저마다 넓은 장소를 향해서 뛰어갔다. 바람이 알맞은데 연을 올리지 못하고 몇 바퀴 돌다 곤두박질치거나 아예 올라갈 생각을 안 한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지만 높이 떠오르는 연은 없었다. 선생님이 실을 조정하였더니 연은 중심을 잡고 높이 오른다.
연의 크기에 비해서 연줄이 가늘면 바람의 힘 때문에 끊어질 수 있고, 무거우면 연이 잘 뜨지 않는다. 연이 작으면 연줄도 짧아야 하고 연이 크거나 여러 개의 연이 연결된 줄은 굵고 길어야 한다.
산골 아이들은 연을 띄울 만한 공간이 좁아서 냇가나 논둑에 나가 연날리기를 하였다. 더 높이 올리기 시합과 연줄에 유리나 사금파리를 빻아 붙이고 두 연을 얽어서 잡아당기며 싸웠다. 애써 만들었는데 줄이 끊어져서 허공으로 높이 사라지면 얼마나 허무했을까. 나무 위에는 끊어진 연이 매달려 있기도 하였다. 연을 만드는 것도 띄우는 것도 정성과 기술이 필요하다.
연날리기는 여러 나라에서 하고 있다. 다양한 연을 띄우고 겨울 추위를 즐긴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다. 다양한 모양의 연에 그림을 그려 넣으며 상상력을 키울 수 있고, 손재주를 익힐 수 있다. 연을 날리는 동안 바람의 세기를 읽고 하늘을 보며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고, 친구들과 친할 수 있다. 전통을 이어야 할 이유가 줄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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