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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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에 생활하고 있는 나는 요즘 자괴감이 든다. 생활해 가면 갈수록 모르는 일,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두뇌 회전이 빠르지 않은 것에 놀랐다. 들어보지도 못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정부 보조금 받는 문서를 작성해야 할 일이 생겼다. 고객센터에서 시키는 대로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교육받은 대로 번호를 눌러 시키는 대로 하는데도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린다.
문서를 제출해야 할 날짜는 빠르게 다가오는데 마음만 동동거릴 뿐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멀리 있는 자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완전 맨붕 상태에 놓였다. 지인들에게 문의해도 잘 모르겠다는 말뿐이다. 자기 일이 아니어서인지 허공에 메아리 소리뿐이다. 아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처지인지 모른다.
세상에는 어떤 것이든 공짜는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공감한다. 지방 보조금 받아 내는 그것이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고 일이 많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함부로 아무 곳에 줄 수 없는 것이니 그러할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나랏돈 아무렇지 않게 받아 꿀꺽할 수 있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기쁜 것이 아니고 맥이 빠져나간 것 같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물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남구청에 전화를 냈다. 컴퓨터 중급 강의가 있는 곳을 물었다. 동사무소로 문의하라면서 친절하게 전화번호를 알려 준다. 동사무소는 대명 4동 동사무소로 문의하란다. 돌아오는 답변은 초급은 마감되었고 중급 강의는 아예 없다고 했다. 쓴웃음이 나왔다.
이웃 수성구에서는 여러 곳에서 컴퓨터 기초부터 중급까지 복지관 강의가 있다. 그런데 수성구 주민이 아니면 신청할 수 없다는 것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마냥 씁쓸하고 자괴감이 인다. 1990년에 컴퓨터를 시작했다. 그때는 그때대로 열심히 했기에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안주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가 다르고 빠르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니, 지금 자괴감에 부닥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자신의 게으름에 익숙해진 자신을 탓하는 것밖에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하셨던 말씀이 머리와 가슴을 새삼스럽게 친다.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고무줄놀이한 기억이 난다. ‘맑은 시냇가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 일할 때 일하고 배울 때 배우세.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그래, 맞다, 아는 것이 힘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르면 어디서든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기에 우리 부모들은 자신은 못 배웠어도 자식만은 억척스럽게 공부를 시켰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무지한 것은 자기 자신을 슬프게 만든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끝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자만이 성공한다고 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편안하고 사람답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기계 앞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어째서 기계에 약하고, 숫자에도 약하다. 이러니 인공지능 시대에 생활이 나를 조금씩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나는 내 무지에서 오는 자괴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막막함에 놓였다. 나의 나쁜 습관과 버릇을 먼저 고쳐야 한다. 그것은 나의 안이함에서 어떻게 벗어나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사람의 마음이란 너나 할 것 없이 편안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학문이든 일이든 모든 분야에서 깊이가 있고 폭이 넓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갈수록 얕아지고 좁아진다. 게으름과 나이 탓일까? 아니면 인공지능 시대의 거리감일까? 이러니 하는 일이 힘이 든다. 힘이 들면 어렵고 어려우니까 하기가 싫어지는 이 현상은 어쩌면 좋을까.
내일은 어떤 일이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할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라고 한 희년(禧年)*의 말씀에 마음 담아 모르면 묻고 물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희년(禧年): 성서에서 25년마다 맞이하는 은총의 해로 성년(聖年)의 해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