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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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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예지 편집장으로 있는 후배로부터 단편소설 신인상 심사를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며칠 전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승낙했고 바로 다음 날 여러 편의 소설들이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그쪽에서 먼저 원고를 거른 터라 정작 내게 넘어온 편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단숨에 응모작들을 읽어 내려갔다. 이삼일 내로 끝낼 생각이었다. 나는 끼니도 거른 채 책상 앞에 앉아 프린트 용지에 인쇄된 깨알 같은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이렇듯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집 안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그런 뜻밖의 환경 때문인지도 몰랐다. 바쁘게 원고를 읽어 내려가다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주위를 둘러보면 마치 무덤 같은 적막감이 나를 에워싸곤 했다.

열다섯 해를 나와 함께 산 말티즈 애완견이 지난겨울에 죽어나가더니 봄에는 딸아이가 서울에 취직을 했다며 방을 얻어 나갔다. 그리고 여름이 되자 대학에 다니던 아들 녀석이 프랑스에 있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집을 떠났다. 그저께는 아내마저 서울에 있는 친정으로 장모 병구완을 위해 집을 비웠다. 지난겨울까지만 해도 다섯 식구가 복작대며 살았는데 어느 날 일어나보니 나는 문득 외톨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태 전에 직장을 정년퇴직한 나는 그저 집 안에서 뒹굴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술을 마시거나하던 참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외톨이 신세로 전락할 줄은 몰랐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참으로 난감했다. 이것이 인생인가, 이것이 운명인가 하면서 나는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낯선 어둠과 정적만이 나를 에워싸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름도 알 수 없는 응모자들의 소설에 눈길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띄는 작품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나는 자신도 모르게 책상 쪽으로 바짝 의자를 끌어당기고는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제목은‘섬’이었다.

…오늘 우리가 홍보활동을 나간 곳은‘풍란도’라는 섬이었다. 나는 무전기를 둘러메고 해군 홍보단을 따라 단정에 몸을 실었다. 섬에는 오십여명의 주민들이 문어를 잡아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해군 홍보단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섬 주민들은 조그마한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열 명의 학생들은 모두 귀가한 뒤였고 학교에 단 한 명뿐인 여자선생이 섬 주민들을 운동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나는 무전기를 등에 메고 홍보단 뒤를 따라 운동장 기슭을 어슬렁거렸다. 홍보단은 해군 홍보 영화를 상영한 뒤 주민들에게 비상약과 콘돔을 나눠주고 이발도 해주었다. 그리고 마을을 돌며 소독을 하고 고장 난 라디오나 텔레비전도 수리해 주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이따금씩 상륙함 통신당직자와 무선교신을 하곤 했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오후가 되자 주민들은 우리가 타고 온 단정 두 대에 나눠 타고 섬 앞바다에 투묘하고 있는 상륙함으로 구경을 나갔다. 하지만 나는 섬에 남아 이따금씩 상륙함 통신당직자와 무선통신을 하며 다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낙도의 후미진 자갈길을 어슬렁거리며 애꿎은 돌멩이를 툭툭 건드리던 나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조금 전의 그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학교라고 해봐야 슬레이트 지붕이 얹힌 집채만 한 교사에 손바닥만 한 운동장이 전부였다. 내가 단화를 질질 끌며 먼지를 내자 텅 빈 교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젊은 여선생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 열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여선생은 보기 좋게 웃었다. 낡은 교사 앞 조그마한 화단에 여름에 핀 맨드라미가 아직 지지 않고 시커멓게 색이 바랜 채 닭 벼슬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그때 내가 막 들어온 교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여선생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이 마을에서 가장 젊고 예쁜 아가씨예요.”

그때 등에 메고 있던 무전기에서 삐이 삐이, 소리가 났고 나는 상륙함 통신당직자와 무어라고 교신을 하며 교문 쪽을 바라보았는데 소녀는 교문을 채 들어서지 못하고 신고 있던 슬리퍼로 원을 그리며 운동장 모래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반팔 셔츠와 반바지가 계절을 혼동하게 했다. 10월 초순이었는데 소녀는 아직 여름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섬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마치면 여수나 목포로 취업을 나간답니다. 하지만 저 아이는….”

나는 여선생의 눈길을 좇아 다시 소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순간 소녀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 큰 키에 가늘고 긴 목과 어깨 위에서 찰랑거리는 단발머리가 여고생을 연상시켰다. 멀리서 봐도 자태가 곱고 아름다웠다. 갸름한 얼굴에 하얀 피부, 늘씬한 다리와 셔츠 속에서 얄랑거리는 허리. 소녀라고 하기에는 성숙해 보였고 아가씨라고 하기에는 앳된 나이로 보였다.

“명자라는 아이인데 벙어리예요. 열일곱 살인데…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대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고 엄마가 학교를 안 보냈다네요.”

소녀는 웃고 있었다. 선생님을 보고 웃었을까, 나를 보고 웃었을까. 그 때 다시 무전기에서 발신음이 들려왔고 나는 아무 이상 없다고 답신을 했다.

“아마 처음 보는 해군 아저씨가 멋져서 저렇게 웃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 여선생도 웃었다. 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치열이 문득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도 나처럼 외로웠을까?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군함의 병사처럼 외로웠을까?

“명자 저 아이는 한 번도 운동장 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어요. 자신의 한계를 일찌감치 터득한 걸까요? 교문이나 울타리 너머에서 늘 이쪽을 얼찐거리며 구경하곤 했지요. 참 딱한 아이예요. 한글도 익히지 못했을 걸요. 이름이나 쓸 줄 알려나. 그러니 육지로 나가지도 못하고 외톨이가 되어… 아마 평생 저러고 섬처녀로 늙어 갈지도 모르겠지요.”

그러면서 여선생은 한숨을 내쉬었는데 나는 소녀보다도 여선생이 더욱 외로워 보였다. 고향이 어디인데 이런 외진 낙도로 흘러들어와 낡은 교사를 지키고 있는 걸까? 나는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그녀의 조그마한 어깨와 알맞게 튀어나온 가슴만 힐끗 쳐다보곤 발길을 돌렸다.

나는 텅 빈 운동장을 걸어 나오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웃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사뭇 얼굴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며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나도 소녀를 따라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신고 있던 해군 단화가 멈춘 곳에 그녀의 그림자가 내려와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그림자를 밟고 앞으로 한 발 다가서며 물었다.

“몇 살이야? ”

그러자 소녀가 고개를 들고 웃으며 천천히 손가락을 펴보였다. 소녀는 정확하게 손가락 열일곱 개를 펴보였다. 내 입 모양을 보고 질문을 파악한 소녀는 그동안 익힌 손동작으로 열일곱이란 숫자를 표현해 보였다. 어쩌면 이것이 소녀가 태어나서 배운 교육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야? ”

그러자 소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듯 글자를 썼다. 이명자. 글씨를 쓰는 그녀의 어깨가 움직이며 차랑한 단발머리가 가을 햇살 아래에서 흔들렸다. 비릿하고 시큼한 살 냄새도 났다. 땀 냄새가 섞여 있는 듯했다. 교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여선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소녀와 나는 가을 햇살 아래 섬처럼 남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눈에 띄는 건 산과 들, 그리고 바다뿐이었다. 아니,

저 멀리 종이배처럼 조그맣게 떠 있는 상륙함도 보였다.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섬에 불과했다. 나는 순간 울컥해지며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소녀에게 물었다.

“아이스크림 사줄까? ”

소녀는 말이 없었다.

“과자 좋아해? ”

대답이 없었다. 그때 등에 메고 있던 무전기에서 소리가 났고 소녀는 또 말간 눈을 치뜨며 웃었다. 상륙함의 통신당직 하사가 농을 걸어왔다.

“뭐 좋은 거 없어? 이를테면 섬처녀… 때 묻지 않은… 아, 섬에 나갔으면 결과가 있어야 할 거 아냐! ”

나는 무작정 발길을 떼어 놓았다. 소녀가 말갛게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물론 가게는 없었다. 스무 남은 집 되는 마을에 구멍가게가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텅텅 비어 있는 마을을 발길 가는 대로 이리저리 걸었다. 상륙함을 나서기 전에 닦은 단화가 가을 햇살을 튕겨내며 섬의 자갈들을 흩었다. 섬 주민들은 홍보단을 따라 상륙함으로 견학을 갔고 마을 이장이 잡은 수퇘지 두 마리도 함께 건너갔다. 그들은 상륙함 승조원들과 함께 술과 고기를 즐기며 홍보단의 밴드 소리에 맞춰 오랜만에 흥을 돋울 것이다. 상륙함 갑판은 모처럼 분주해질 것이고 그들의 축제는 해가 져야 끝이 날 것이다.

나는 적막한 섬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다가 어느 낡은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빈 집 같았다. 집주인은 언제 섬을 떠났는지 이끼 낀 슬레이트 지붕은 군데군데 내려앉아 있었고 열린 방문도 문종이가 찢어진 채 거미줄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내가 그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 건 소녀 때문이었다. 소녀는 익숙한 모습으로 그 빈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웃으며 마당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풀이 자라있는 마당을 나풀나풀 걸어 들어갔다. 등에 지고 있던 무전기에서 상륙함 통신당직 하사의 발신음이 들렸지만 나는 순간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녀를 따라 빈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당을 가로지른 소녀는 흙이 푸석푸석해진 토방을 지나 반쯤 열려있는 부엌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소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는 숨이 가빠져서 느린 걸음으로 소녀 가까이 다가섰다. 소녀가 들여다보고 있는 부엌엔 주인은 없었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아궁이 두 개에 걸려 있는 가마솥과 양은솥. 그을음 앉은 바람벽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손때 묻은 찬장. 부엌 구석에 쟁여 놓은 땔감. 바닥 어딘가에 나뒹구는 부지깽이. 시커먼 부뚜막에 엎어져 있는 찌그러진 냄비와 사기그릇.

소녀는 어두운 그 빈 집 부엌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돌아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길쭉한 나무판때기로 만든 부엌문 사이로 재바르게 스며든 가을 햇살이 소녀의 웃는 얼굴을 확인시켜 주었다.

소녀가 웃으며 손짓을 했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소녀는 옷을 벗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한 몸놀림으로. 나는 숨이 차고 침이 말라 등에 지고 있던 무전기를 벗어 부엌 바닥에 내려놓았다.

연기에 새카맣게 찌든 문짝 사이로 유리처럼 맑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소녀의 유방을 비추었다. 스물세 살 젊은 사내는 어느새 부엌문을 걸어 잠그고 소녀 가까이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여기까지 읽은 나는 고개를 들고 한동안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차 수병… 이름이 뭐였더라? 차익수… 맞아, 차익수. 통신수병 차익수. 서울 모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다니다가 입대했다던 차 수병.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믹스커피를 타서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만약 이 소설의 응모자가 그가 맞다면… 그러니까 1984년 가을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일이 된다. 그때 차익수 수병은 제대를 불과 한 달 정도 남겨 놓은 상태였고 무전기를 메고 어느 섬으로 홍보단을 따라 상륙을 나갔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내게 털어놓았다. 섬처녀를, 벙어리 섬처녀를 건드렸다고. 제대하기 전한달동안괴로워하다가 그는 해군에서 전역했다. 그리고 40년 동안 연락이 끊어진 채 그와 나는 만날 수 없었다.

만약 이 소설의 응모자가 그가 맞다면 그는 아직 문학을 포기하지 않고 어디에선가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40년 전, 그와 나는 한 배를 탔고 똑같이 문학을 지향하던 문학도였다. 나는 소설가를 꿈꾸었고 그는 시인을 꿈꾸었다. 그가 무시로 즐겨 외우던 시는 정현종의 「섬」이란 시였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나는 편집장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지만 이 작품 응모자 이름을 알고 싶다고 했다. 물론 작품은 심사에서 제외한다는 전제하에.

묘한 인연이었다. 「섬」이란 단편소설 응모자는 차익수 수병이 맞았다. 후배는 내게 묻지도 않은 주소까지 알려주었다. 전라남도 여수시 ○○면 풍란도길 40.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작품을 거머쥐고 소설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소녀는 웃으면서 내 손을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유방으로 슬며시 끌어당겼다. 얄궂은 가을 햇살이 유두를 핥았다. 매끈한 봉오리는 앵두처럼 발갛게 익어 있었다. 내 손가락이 유두를 건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신음이 터져 나왔다.

소녀의 사타구니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음모가 무성했다. 내 손가락이 그곳을 찾자 소녀가 고개를 젖히며 신음을 흘렸다. 부엌 바닥에 놓여 있던 무전기에서 신호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무전기를 끄려다가 귀찮아 그대로 두었다.

부뚜막에 걸터앉아 소녀를 내 허벅지 위로 올리자 나의 그것이 소녀의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소녀가 교성을 지르며 눈물 한 방울을 귓전으로 흘려보냈다. 나는 손가락으로 소녀의 눈물을 훔쳐 주었다.

성교가 끝나자 소녀는 또 웃었다. 옷을 주워 입으며 부끄러움도 잊은 채 아까보다 더 만만한 표정으로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무전기에서 상륙함 통신당직 하사의 발신음이 흘러나왔다.

“호출도 안 받고… 차 수병, 무슨 좋은 일 있나 보네. 드디어 섬처녀 정복했는가? 하하하 그렇다면 축하하네. 용왕님이 내려준 제대 선물로 생각하게. 하하하.”

무전기를 둘러메는데 소녀가 손을 벌려 내게 들이밀었다. 돈을 달라는 몸짓 같았다. 나는 잠시 머리가 비는 듯했다. 이미 몇 번이고 놀란 나는 무전기를 메고 어둠 속에 엉거주춤 서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돈이 없다는 내 동작을 확인하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불쑥 내게로 다가와 내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오랫동안 키스를 했다. 그 순간만큼은 진정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소녀의 입 속에 있던 외로움을 모두 내 입 속으로 끌어당기고 내 입 속에 있던 외로움을 소녀의 입 속으로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소녀의 입 속에 남아 있던 짜디짠 바닷 물이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유난히 빨간 해가 수평선 너머로 떨어질 무렵 섬사람들을 가득 실은 단정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내리자 나도 상륙함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두로 나갔다. 술에 취한 주민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꼬부랑길로 접어들었다.

상륙함에서 나눠준 선물 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어두워지는 섬 어딘가로 그들은 하나씩 사라져갔다.

내가 단정에 올라탔을 때 섬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단정이 통통거리며 섬을 밀어내자 나는 유심이 눈을 뜨고 그곳을 살폈다. 어둠이 내려 더욱 쓸쓸해진 조그마한 부두에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가 웃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소녀는 한 손을 높이 들어 이쪽을 향해 흔들고 있었다. 여러 번 오랫동안 흔들어 보였다. 나는 소녀를 따라 손을 흔들까 하다

가 이미 캄캄해진 바닷속으로 묻혀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만두었다. 대신 무전기 폰을 빼들고 이런 교신만 남겼다.

“섬, 섬에서 완전 철수! 현재 잔류 인원 없음. 이상! ”

나는 소설을 반쯤 읽다가 생각나는 게 있어 책장을 뒤적였다. 군에 있을 때 썼던 일기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40년 전에 썼던 두툼한 노트가 책장 한쪽에 꽂혀 있었다.

1984년 10월 4일 날짜에 그날의 기록이 있었다.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낙도‘풍란도’를 방문했다는 일기. 틀림없었다. 그날 차 수병은 풍란도로 무전기를 메고 홍보단을 따라 상륙을 나갔고 돌아와서는 제대 할 때까지 한 달을 괴로워했었다.

상륙함으로 돌아온 나는 밥맛을 잃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통신실에서 당직을 서면서 머릿속에는 온통 소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열일곱 살에 불과한 소녀는 무슨 연유로 나를 빈 집 부엌으로 유인해서 옷을 벗었을까? 하던 짓으로 봐서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닌 것 같았다. 손을 벌리고 돈을 달라는 몸짓은 또 무엇인가? 그 조그만 섬에서 몸이라도 팔아 부모를 공양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소녀와 그 짓을 벌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당직이 끝나고 침실에 내려와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소녀를 생각하면 할수록 내 몸은 점점 더 깊은 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날 소녀가 내게 보인 행동은 단순히 몸만 파는 소녀의 몸짓은 아니었다.

소녀는 진정으로 나를 원하는 것 같았다. 소녀의 눈빛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녀는 외로웠고 어쩌면 그 짓으로 천형과도 같은 자신의 외로움을 떨쳐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죄의식도 없이, 본능이 시키는 대로 몸을 놀리다가 누군가 돈을 주자 그때부터 습관처럼 그렇게 돈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만약 소녀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왔을지라도 그날만큼은, 그 날 내게만큼은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내게만큼은 매춘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다음날 상륙함은 또 다른 섬을 찾아 떠났고 그렇게 해서 남해의 여러 섬들을 돌다가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야 육지로 돌아왔다. 물론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섬을 밟지 않았다. 다른 통신병이 무전기를 메고 섬으로 나갔고 나는 상륙함 통신실에 남아 당직을 섰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바다 한가운데서 전역 통보를 받았다. 상륙함의 귀항 날짜는 11월 초였는데 내제대날짜는 10월 30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마침 진해로 가던 군수지원함이 기름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 상륙함과 계류하는 기회를 타서 그 군수 지원함에 편승해 항구로 돌아왔다. 그날, 3년 동안 타던 군함을 뒤로하고 천천히 바다를 빠져나올 동안 나는 소녀를 생각했다. 바다에 무수히 떠 있는 여느 섬처럼 소녀 또한 내게는 하나의 섬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2

편집장 후배에게서 받은 주소를 들고 나는 차 수병을 찾아 남쪽으로 떠났다. 풍란도는 여수에서 뱃길로 60리 거리였다. 우리는 이미 전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은 뒤였다. 40년 전, 멀리 상륙함 갑판에서 바라보던 풍란도. 나는 어렴풋한 기억의 한 조각이나마 건져 보려고 노력했지만,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로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어울려 있었고 그 마을 앞으로 작은 부두가 엎드려 있었다는 풍경만 떠오를 뿐 다른 특별한 기억은 없었다. 그리고 그 부두를 바라보며 차 수병이랑 무선통신을 하던 자신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하루에 한번 닿는 배가 부두와 가까워지자 초로의 중늙은이가 흰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쓸어 넘기며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차익수 수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두를 나서자 왼편 바닷가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초등학교가 분명했다. 이미 오래 전에 폐교가 되었다며 차 수병은 기침을 했다. 대문도 없는 교문을 지나 약간 오르막인 시멘트 포장길을 얼마 동안 걸어가자 마을 어귀가 나타났다. 군데군데 빈 집이 눈에 띄는 마을은 여남은 채가 되지 않는 듯했다. 나는 등이 굽은 그를 따라 걷다가 그의 소설에 나오던 섬의 자갈길을 떠올렸다. 그러자 무전기를 둘러메고 벙어리 소녀 뒤를 따라 걷던 그의 젊은 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빈집의 부엌을 떠올리는 순간 그가 문득 여기요, 하고 손가락질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우리 집이요. 허허.”

나는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군데군데 풀이 난 마당을 걸어 들어가던 그는 시멘트로 말갛게 치장한 토방에 서서 부엌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이쪽으로 몇 걸음 옮겨와 마루 끝에 단 미닫이문을 열고 신발을 벗었다.

“…이 집이 바로 그 문제의 집이요. 아내와 첫사랑을 나누던….”

벙어리 소녀와 첫 관계를 가졌던 그 빈집에서 그는 소녀와 가정을 이루어 지금껏 살아왔다고 했다. 아쉽게도 아내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생전에 자식은 두지 않았고 아내의 무덤은 그녀의 부모 무덤이 있는 마을 뒷산에 있다고 했다. 그는 벌써 십수년째 혼자 살아오고 있다고 했다.

저녁에 술이 과해지자 그는 살아온 세월을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취한 목소리로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그의 소설에서 읽은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제대하고 복학했지만 나는 그 섬에 대한 기억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몸은 서울에 있었지만 마음은 남해의 먼 외딴 섬에 가 있었다.

그러다가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어느 여름날,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그 섬을 찾아갔다.

부두에서 내린 나를 반겨준 것은 초등학교였다. 방학을 맞은 학교는 텅비어 있었고 조그마한 교사 앞 화단에 맨드라미꽃이 붉게 피어 있었다.

나는 마을로 올라가기 전에 학교 정문 앞에서 얼찐거렸다. 학교 여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는지, 혹 벙어리 소녀가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는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여름 한낮의 뙤약볕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그때 학교 현관에서 누군가 이쪽을 쳐다보았고 나는 그가 곧 이태 전의 그 여선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화단에 피어 있는 맨드라미꽃을 마을에서 내려온 닭들이 쪼아대고 있었다. 여선생은 닭의 단단한 부리에 뜯겨져나가는 붉은 꽃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소녀가 임신을 했었어요. 물론 부모가 여수로 데리고 가 낙태를 시키긴 했지만.”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창백했다. 꾸밈없는 얼굴이 퍽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문득 마음 한 구석이 무엇엔가 축축이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누구 아이인지 아무도 모르죠. 놀라는 사람들도 없었고요. 나만 괜히….”

그러면서 여자는 나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해군 홍보단이 다녀가고 몇 달 되지 않아 소녀가 입덧을 했다고 하더군요. 마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나는 여자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는데 검붉은 맨드라미꽃을 쪼아 먹던 닭들이 내 발등 근처를 지나갔다. 여름 햇살을 잔뜩 머금은 닭의 몸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깨끗이 긁어냈으니 누구 앤들 무슨 소용이 있으려고요. 다만… 애틋한 건… 저녁이면 부두로 나가 물끄러미 바다 저쪽을 바라보곤 하던 소녀의 모습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여선생을 억지로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방학인데 집으로 가시지 않고….”

여선생은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옮겼다.

“안 그래도 내일 섬을 떠나려고요. …집이래 봐야 또 섬이지만….”

붉은 맨드라미꽃을 파먹고 홰를 치며 사라진 닭들을 좇아 운동장을 나선 나는 가슴에 흐르는 피를 안고 마을로 들어섰다. 애꿎은 돌멩이를 툭툭 건드리며 오르막길을 걷던 나는 잠시 뒤 그 낡은 빈집 앞에 홀로 서 있던 소녀를 발견했다.

나를 확인한 소녀는 웃으면서 몇 걸음 다가왔다. 그러다가 주춤거리며 걸음을 멈추더니 이태 전 그날처럼 텅 빈 마당을 걸어 들어갔다. 마당엔 여전히 풀이 자라 있었고 소녀는 부엌 앞에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어둠 속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나는 무섭기도 하고 괴이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부엌문에 어깨를 기대고 한동안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울고 있었다. 어둠 속에 서서 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있었다.

나는 부엌문을 걸어 잠그고 소녀 앞에 섰다. 소녀가 무슨 짐승 같은 단 말마를 지르며 나를 끌어안았다. 손가락에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등이 후벼 파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다시 나와 재회한 소녀는 이태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웠던지 가쁜 소리를 내며 거머리처럼 내 몸에 달라붙었다. 조금 전에 여선생으로부터 들은 소녀의 임신과 낙태 소식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탓에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잠시 뒤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만약 잉태된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었다고 해도 나는 소녀를 사랑할 것이니까.

“그날로 나는 섬 주민이 되어 버렸소. 바로 뒷집이 소녀네 집이었는데 나는 그날 저녁 부모님을 뵙고 사실을 털어놓았소. 그리고 함께 살겠다고 두 손으로 싹싹 빌었지.”

늙은 차 수병은 세 병째 소주병 뚜껑을 걷어냈다. 직접 잡았다는 돌문어회가 일품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과음을 했다.

“우리가 일을 치른 이 집은 처삼촌 집이었는데 처삼촌 부부가 여수돌산으로 나가 사는 바람에 비어 있었던 거지. 우리는 이 빈집을 수리해서 신혼살림을 차렸수다. 살림살이라고 해봐야 이불 한 채가 고작이었지만. 그때 마누라 나이가 열아홉이었으니….”

나는 문학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시인으로 데뷔한 것은 전화 통화로 알 수 있었지만 나는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시집은 몇 권이나 냈으며 상은 무슨 상을 받았느냐는 등. 그러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것이 마음대로 되질 않더이다. 지금까지 시집은 딱 한 권 냈수다. 그것도 자비로… 쉰이 넘은 나이에.”

그리고 그는 내려놓았던 술잔을 집어들어 냉큼 비워내고는 초고추장 묻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

“…섬이 한때는 오아시스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지. 집사람이랑 살면서 정말 내가 내린 결정이 옳았구나, 섬에 들어오길 잘했구나, 생각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지. 말 못하는 아내가 답답하긴 했지만 같이 살을 섞고 살다보니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습디다. 오히려 다툼도 덜 하고…. 하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마음먹은 대로 돼야 말이지.”

나는 장인이 물려준 통통배를 타고 낚시나 그물로 고기를 건져 올려 목숨을 연명해 나갔다. 장인이 살던 대로 나 또한 목숨 건사하기에 알맞을 만큼만 고기를 잡았다. 그렇게 욕심 없이 살던 장인은 어느 날 배 위에서 뇌출혈을 일으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가 물려준 통통배를 타고 세 식구 입을 건사하기 위해 매일 바다로 나갔다.

한때 우리는 행복했다. 풍란이 많이 자랐다고 해서 풍란도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 섬에서 나는 한 번도 풍란을 보지 못했지만 섬의 아름다운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잡아온 고기를 팔아 옷이며 쌀을 샀고 장모와 아내는 내가 바다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집단장을 하거나 얼굴을 꾸미기도 했다.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전에 긁어냈다던 그 낙태 수술이 잘못 되었던지 우리에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대신 나는 젊은 아내를 아이처럼 애지중지하며 살았다. 아내는 내가 없인 하루도 못살겠다는 표정으로 하루해를 견뎠다. 그러나 그 작은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다지 늙지도 않은 장모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장모에게 찾아온 치매는 못된 치매였다. 세상의 모든 악귀들을 다 긁어 모아놓은 듯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욕을 하는가 하면 똥을 싸서 입에 넣기도 했다. 어느 날은 보던 텔레비전을 홍두깨로 두들겨 박살을 내기도 했고 찬장의 그릇을 끌어내 마당에 패대기치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바닷가 부두로 나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바위 벼랑에서 뛰어내린다

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죽어나는 건 나였다. 왜냐하면 말 못하는 아내는 성격이 급해 치매에 걸린 장모를 보살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불이나 물을 만난 염소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발버둥치듯 벙어리 아내는 안절부절못하며 금세 숨이 넘어갈 듯 바동거렸다. 그래서 나는 배를 타는 동안은 장모를 방 안에 가두어 놓곤 했다.

그런 어느 날 배를 거두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마당을 뛰어다니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나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장모를 가둬 놓은 방문을 열었다. 장모는 죽어 있었다.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장판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나중에 따져 물으니 아내는 비뚤비뚤 사연을 연필로 써서 내게 보여주

었다. 엄마가 미워 때렸다. 망치로 한 대 갈겼는데 엄마가 쓰러졌다. 내 남편을 힘들게 하는 엄마가 미워졌다. 그래서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경찰에 자수했다. 내가 죽였다고. 재판은 간단하게 끝났다. 나는 존속살인죄로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만기 복역했다. 그리고 출소해서 섬을 찾아가니 아내는 없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말 못하는 벙어리 여자가 섬을 떠나 어디로 갔단 말인가.

마을 사람들 얘기에 의하면 내가 섬을 떠나자 혼자된 아내는 매일 슬피 울며 부두에 나가 해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보다 못한 이웃이 데려다가 밭일이나 시키며 먹이고 재우고 그렇게 몇 년을 거두었는데 어느 보름달이 훤하게 바다를 비추던 날 밤, 몰래 부두로 나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날 부두에 내린 나는 예전의 그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한 중년 여선생을 만났는데 나는 그녀가 옛날 그 여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어느 낯선 곳을 오랫동안 떠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여선생은 많이 늙어 있었고 주름진 그녀의 얼굴에는 그러나 예전의 그 희미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여선생은 내 사연을 마을 사람들한테 들어서 알고 있다며 그 희디흰 치열을 가지런히 내주며 웃었다.

“…전 그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어떻게 그런 삶을 사시는지….”

나는 그러는 그쪽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런 대답을 해주긴 했다.

“저도 모르겠는걸요. 선생님께서는 어쩌다가 이런 섬으로 또 전근을 오시게 됐는지….”

나는 그녀가 결혼은 했는지, 아이들은 있는지, 어느 도시나 섬을 떠돌다

가 다시 돌아왔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내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출소한 지 며칠 뒤에 아내가 신었던 분홍색 구두 한 켤레가 파도에 휩쓸려 부두로 돌아왔다. 나는 아내가 혼신의 힘으로 밀어 보냈을 분홍색 구두를 물에서 건지자마자 물건의 주인을 알아봤다. 아주 오래 전에 내가 힘겹게 잡은 대왕문어를 팔아 사준 아내의 구두였다. 벙어리 아내는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이나마 힘껏 밀어내 내게 보내준 것이다. 자신의 몸은 썩어 없어졌지만 신고 있던 구두만이라도 남편 곁으로 기어이 돌려보내준 것이다.

“달밤에 부두에 나와 나를 기다리던 아내는 그만 설움에 겨워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거외다.”

늙은 어부 차 수병은 술에 취해 얼굴에 날아든 모기를 잡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손바닥을 두들기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발전기로 밝히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에 반백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렇게 말했다.

“김 하사는 그날 섬에서 돌아온 내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었수다. 나는 대답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천근만근 무거운 보석을 몸속에 지니고 있는 것처럼 기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그런 감정으로 한 달을 났지. 내가 선택하고 저지른 일이라… 그저 이런 섬처럼 묵묵히 견디며 평생 살 각오를 하니까 오아시스가 따로 없고 지옥이 따로 없습디다. 섬이란 게 때로는 꿈이 되었다가 지옥도 되었다가… 내가 짓는 시처럼 노래가 되기도 하고 눈물이 되기도 하고…. 아내가 떠난지 벌써 십수년이 되었수다. 찾지 못한 시신 대신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분홍구두 한 켤레로 무덤을 만들었지. 저 뒷산 부모 산소 옆에 묻고 여태 말 한 마디 안 하고 살아온 세월이 이렇게 되었수다.”

늙은 차 수병은 술상 옆으로 비시시 쓰러져 금세 잠이 들었다. 어찌나 곤한지 코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모로 쓰러져 숨죽이며 자는 그가 마치 40년 전 상륙함에서 바라보던 그‘풍란도’처럼 여겨졌다. 나도 어찌나 피곤했던지 셔츠도 벗지 못하고 그 옆으로 쓰러져 또 하나의 섬을 만들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서도 나는 그가 쓴 소설을 읽고 있었다.

아내가 죽고 몇 년이 흘렀을 때 나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그 여선생을 만났다.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여선생은 짐을 꾸려 섬을 떠나려는 날이었다. 한창 더웠던 여름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화단의 맨드라미꽃을 건드리며 툭툭, 붉은 색을 앗아가고 있었다. 여선생은 어느새 늙어 있었다. 나처럼 늙어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흰 치열과 희미한 웃음과 갸름한 얼굴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엉뚱한 얘기를 했다.

“이제 섬을 떠날 때도 되지 않았나요? ”

나는 운동장의 모래를 흩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아내의 오래 전 모습이 떠올랐다. 교문을 들어서지 못하고 슬리퍼로 원을 그리며 서성거리던 벙어리 소녀. 여자가 말했다.

“저랑 함께 떠나요! 또 다른 섬으로 가도 좋고 아니면 육지로라도….”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그런 얘기를 하다니. 이렇게 늙도록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나 같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구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지만 나는 찬찬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랑 함께 여기서 살아요. 저는 떠날 수가 없거든요.”

그녀는 떠났다. 가방을 배 위에 올려주며 나는 그녀의 눈 속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그녀는 먹은 나이만큼 잘 참았다.

배는 떠났다. 오래 전 나를 실은 배가 부두를 떠나듯 그녀를 실은 배는 하염없이 밀려오는 물결만 남긴 채 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섬이 섬을 바라보았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섬이 되어 서로 멀어져 갈 때 섬들은 저마다 숨을 죽이고 울게 마련인 모양이다. 나는 아내를 생각하며 흘린 눈물을 또 오랜만에 그녀를 보내며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날이 밝았다. 나는 섬을 떠났다. 늙은 차익상 수병은 무전기 대신 불룩한 자신의 늙은 등을 메고 부두에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여전히 외톨이였다. 친정에 간 아내는 장모 병이 깊어졌다며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서울에 있는 딸아이는 직장일이다 데이트다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프랑스에 있는 아들도 애인이랑 스위스 근처 마을까지 갔다며 집을 잊은 지 오래였다. 나는 홀로 밥을 해먹고 책을 읽고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그런 어느 날 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차익수 수병이었다.

“김 하사! 나 소설가 안 할 거다. 처음 써본 소설이지만 다시는 응모 안할 거다. 김 하사가 내 유일한 독자다.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귀한 소설인 거지. 이런 귀한 이야기 아무한테나 들려주면 안 된다. 시만 쓰며 살거다. 한 가지 일만 하며 살 거다. 평생 한 여자만 사랑했듯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며 살 거다. 심심하면 놀러 와라. 섬이 섬으로 놀러오는 거지.”

그러면서 그는 얼마 전에 썼다는 시 한 편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섬」

조약돌 하나에 아롱지는

낮과 밤의 단조로움 속에서

늙어가는 새의 뼈, 또는 평화.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그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섬처럼 여겨졌다.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검고 단단한 바위섬.

낯선 바다에 섬 하나가 버티고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또 애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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