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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소나무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상주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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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동기들과의 첫 산행지는 남산이다. 서울의 상징인 남산에 올라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나라의 안녕과 한 해 동안 우리 자신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올라갈 때는 셔틀버스를 타고 팔각정까지 갔다. 한눈에 보이는 서울 시가지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나라가 평안하길, 올 한 해도 가족들 모두 편안하고, 벗님들과 함께 이 산행도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남산엔 수려한 소나무가 많다. 소나무는 햇빛을 좋아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의 한양 천도 후, 지리적으로나 풍수적으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남산은 우리나라 중심으로 여겨져 왔는데, 일제강점기와 6·25를 전후해 남산의 소나무 훼손 정도가 매우 심각해졌다고 한다.
서울시는 지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을 실시하여, 남산의 자연경관을 보존하며 특히 우리 민족의 얼이 서린 고유 향토 자생 수종의 소나무를 지금까지 잘 관리하고 있다.
소나무는 굳셈, 변하지 않는 사랑, 불로장생, 영원한 푸름 등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유독 소나무가 많은 남산, 소나무의 상징성도 있었기에 애국가 2절 가사에 주제로 쓰지 않았겠는가.
애국가 2절을 조용히 불러 본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에 담긴 소나무의 뜻은 남산에 자생하고 있는 소나무가 변함없는 강인함과 불굴의 의지로 사계절 푸른 잎을 유지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강인한 정신과 변치 않는 결의를 나타내고 있음이리라.
우리는 각자가 준비해 온 간식과 커피를 마시며 남산의 소나무처럼 변함없는 우정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노년의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자는 덕담을 나누었다.
하산할 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소나무들의 가지가 많이 꺾여 있었다. 여기도, 저기도 작은 가지는 물론, 큰 둥치의 소나무들도 찢어지듯 꺾여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지난 겨울 유난히 많이 내린 눈 때문이란다.
문득 20여 년 전, 학교에 재직할 때 어느 겨울날의 아침이 떠올랐다. 출근해 보니 교장실 앞 두 그루의 반송 위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금방 가지가 부러질 듯 휘어져 있어서 빗자루를 들고 살금살금 눈을 쓸어내렸다. 50년 된 학교를 재건축한 뒤, 황무지 같은 교정에 몇 달 동안 조경하며 공을 많이 들였다. 특히 소나무는 자리를 옮겨 심으면 생장하기가 어렵다 해서 링거 주사까지 꽂아 주며 노심초사하면서 정성을 기울이며 ‘작은 가지 하나라도 부러지면 안 되지’ 하며 조심스럽게 눈을 털어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교정의 소나무들, 지금도 잘 자라고 있겠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크고 작은 가지들이 부러져서 쓰러진 소나무들을 돌아보며 친구 루시아와 나는 탄식을 했다.
“어쩌면 좋으냐, 소나무 한 그루가 저만큼 성장하는 데는 몇 십 년, 몇 백 년의 시간과 사람들의 정성이 심겨 있었을 텐데….”
자연재해가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불현듯 「박새와 비둘기」란 우화가 떠올랐다. 아주 작은 박새가 비둘기에게 물었다.
“눈송이의 무게를 알고 있니?”
“눈송이에 무슨 무게가 있어. 허공처럼 전혀 무게가 없겠지.”
비둘기가 대답하자 박새가 말했다.
“언젠가 나는 눈 내리는 전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어. 할 일도 없고 해서 가지 위에 쌓이는 눈송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는데 정확히 374만 1952개였어. 그런데 말이야.”
박새의 잔잔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다음 한 송이가 내려앉으니까 그만 가지가 딱 부러지고 말았어. 무게가 전혀 없는 눈송이 하나가 앉았을 때.”
‘아, 그럴 수 있겠구나. 무게가 없을 것 같은 눈 한 송이, 한 송이지만 가지를 부러뜨리는 힘이 될 수도 있겠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남산을 지켜 온 소나무들도 쌓이고 쌓인 눈송이 위에 또 눈송이가 내려앉았을 때 더는 버티지 못하고 꺾이고 만 것이었나 보다. 이 나라의 평안도 세상의 평화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변화가 이루어졌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은 기도가 눈송이 하나처럼 나라와 세상의 평화를 지켜내고 가족과 이웃에게도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될 수 있기를 한 번 더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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