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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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남편은 고급 열차의 기관사로, 나는 승무원으로 같은 열차를 탔다. 그때 나는 남편의 훤칠한 키와 단정한 정복 차림에만 반했는지도 모른다. 직장 풋내기 시절에 처음 만난 지금의 남편을 보고 바로 이 남자다 싶었다. 우리는 쉬는 날마다 열차가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쏘다니며 구름 위를 걷는 듯 황홀하게 연애했다. 결혼 후에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밤이 새는 줄도 모르더니 달콤한 시간은 입에 넣은 사탕처럼 너무 빠르게 녹아들었다.
뱃속에서 커가는 아기의 무게를 못 이기고 열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게 되자 남편은 휴직을 권했으나 나는 아기와 남편 뒷바라지에만 전념하겠다는 생각으로 아예 사표를 내버렸다. 어느 밤인지 불현듯 선잠이 들었다가 깨었는데 남편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제 어엿한 기관사로 자리 잡았는데 걱정할 게 뭐 있다고. 남편이 깬 줄 알고 슬며시 불렀으나 아직 자는 중이다. 또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는 남편을 흔들어 깨워 미뤄두었던 말을 꺼냈다.
“직장에서 나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거죠?”
깨어난 남편은 숨 막힌다며 빨리 불을 켜라고 했다. 불을 켜자 벌떡 일어나 앉아 방을 둘러보고 나서야 안도하는 듯했다.
“무슨 꿈이에요?”
남편은 기관차가 굴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숨을 참는 못된 버릇이 있다고 실토했다. 굴을 얼른 빠져나가려고 번번이 전속력으로 달리게 된다고 힘들어했다. 숨 한 번 크게 들이쉬면 느긋하게 해결될 일인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기관사로 십여 년 넘게 버텼을까. 그토록 오랫동안 사귀면서도 전혀 몰랐던 일이다. 여태껏 남편의 빈 껍데기만 보고 좋아서 들떠 지냈는지 모른다. 속을 드러낸 남편은 출근하면서 굴이 없는 노선으로 가고 싶다고 어린애처럼 칭얼거렸다.
언젠가는 뜬금없이 아파트에도 탈출구가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병에 든 음료도 주전자에 담아 다른 출구로 따라 마시기를 고집했다. 문이 하나뿐인 좌석버스는 절대로 타지 않았다. 열차의 객실 문도 최소한 넷, 전철도 문이 열인데 40여 명이나 타는 버스의 문이 하나뿐이라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남편은 내 차가 장난감 같아서 운전을 못 하겠다고 했다. 차는 십오 년을 버텨 와서 아침마다 허덕대며 늙어 가는 티를 냈고, 출근하는 남편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결혼하자마자 덜컥 애까지 들어앉은 내 몸도 점점 무거워지면서 차는 우리의 무게를 더욱 힘겨워했다.
남편의 열차는 아파트 8층에서 내려다보이는 개울 건너편에 짧은 굴을 지나야 했다. 열차가 그곳을 지나는 시각은 매일 오전 10시. 뱃속의 아기를 위해 우유를 먹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날도 창문을 살짝 열고 지나가는 남편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손에 든 우유를 놓쳐 떨어뜨리고 종일 온갖 방정맞은 생각이 다 들었다. 열차가 나오는 쪽 출구를 지켰으나 10여 분이 넘어도 남편의 기관차는 보이지 않았다. 반 시간쯤 지난 후에 또 다른 열차가 굴 속으로 태연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저러면 안 되는데. 남편의 열차가 아직 안 나왔는데. 순간 아찔한 생각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분명히 출구 쪽만 지켜보고 있었는데, 굴 속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전화도 받지 않았다. 종일 기다리다가 지쳐 있을 때 남편은 유령처럼 현관으로 들어왔다. 오히려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화를 내며 데리러 나오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깜짝 놀라 전화기를 찾아보니 방전이 된 채 침대 시트 안에서 종일 파묻혀 있었다.
남편의 노선으로 다섯 시간을 달려가면 바다가 보이는 종착지다. 불현듯 승무원이 아닌 승객으로 남편의 열차를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객기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결혼 후에 종착역 근처 바닷가에서 바람을 함께 쐬어 보자던 남편과의 약속을 이제라도 지키기 위해서다.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개찰구로 나오는 나를 보고 왜 이렇게 늦었냐며 투정했다.
“이번엔 굴을 지날 때 어땠어요?”
“강중락은 굴 속에 내려놓고 내가 지금 여기에 와 있잖아. 강중락은 이제 나한테 들러붙지 못할 거야.”
맞다. 결혼 후 잊고 지내던 남편의 이름은 강중락이다. 남편이 혼자서 즐기는 놀이인 강중락과 자기를 떼어놓기가 또 시작이다. 그 일로 옥신각신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 전에 남겨 놓았던 바닷가의 발자국을 꼭 확인해 보아야만 했다. 그게 여태 남아 있을 리 없겠지만. 오늘이 남편의 생일로 쳐두는 날이다. 남편은 세상에 태어난 날을 모르고 있으니 나와 처음 만난 날을 생일로 삼았다. 결혼 후 첫 번째 생일이라 돌상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하고 바닷가에서 나를 통째로 달라고 했다. 나를 번쩍 안아 올린 남편의 팔뚝 살을 꼬집어 비트는데도 돌배기처럼 기대 만만해서 즐거워했다.
남편은 슬그머니 내 손을 잡고 발을 맞춰 걸었다. 그렇게라도 시들어 가는 연애 시절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철이 지나서 쓸쓸한 바닷가 모래사장에다 우리 둘만의 분명한 발자국을 다시 남겼다. 당장 밀려오는 파도에 지워질지라도 이렇게 딛어놓지 않으면 연애 시절이 모두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에서.
“저 발자국이 영영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전에도 여기서 그 얘길 했었잖아. 지워지면 다시 와서 밟으면 된다고. 그러면 우리의 옛날이 여기서 되살아날 테고.”
걸으면서 내 손을 잡는 남편의 손아귀 힘은 마음만큼 억셌다. 바다는 결혼 전과 달리 새롭게 보였다. 그때 그토록 사납던 하얀 파도는 지친 듯 늘어졌고, 잔잔한 물결은 모래 위로 얌전히 몰려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남편은 잡았던 손을 놓고 물이 닿는 끝에 주저앉더니 모래 속으로 손을 넣고 토닥거렸다.
“두껍아 두껍아 중락이 줄게 나를 다오.”
내가 그 옆에서 훼방을 놓는다.
“두껍아 두껍아 헌 차 줄게 새 차 다오.”
남편이 손으로 파고 들어간 굴은 금세 무너졌다. 결혼 전부터 몰고 다니던 녹색 승용차는 색이 바래 벗겨지고 시트가 삭고 하부에 녹까지 슬어서 창피할 정도로 낡았다. 그런데 무리하게 들어가는 아파트 할부금의 어마어마한 무게는 생각지도 않고 지금 두꺼비 주술로 차의 아픈 곳을 찌르다니. 철없는 아내, 바로 내 짓이다.
남편은 굴이 없는 바닷가를 달리고 싶다고 했다. 바닷가 철로는 숨을 참지 않아도 된다. 모래 위에 종이 빨대로 기찻길을 만들어 놓은 남편은 주머니에서 장난감 기차를 꺼내 놓았다.
“우리 아기는 이런 데서 달리게 해야지.”
남편의 출발 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바닷가를 걷다가 근사한 생일 저녁상을 놓치고 말았다. 근처에서 대구탕에 뼈를 발려 건져내고 밥을 말아 후룩후룩 마시자마자 남편은 급히 역으로 들어갔다.
도착역에서 내려 기다리기를 30여 분. 한 시간을 더 기다려도 남편은 출구로 나오지 않았다. 기관차 사무실에 확인해 봤더니 벌써 한 시간 전에 퇴근했단다. 남편은 귀신처럼 집에 먼저 와서 홀로 잠든 강아지 명다리를 요리조리 살피고 있었다. 늦게 들어왔다고 핀잔하면서 그놈에게만 집중이다. 집에 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명다리에 대한 질투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명다리에게 빠져 굴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가 싶던 남편은 다소 안정을 되찾는 듯 보였다.
차가 점점 더 늙어가면서 몸이 무거워지고 남편을 태워 오기를 거르는 적이 늘어났다. 출퇴근 시간이면 버스가 줄줄이 서는데도 남편은 거침없이 택시를 탔다.
“조그마한 택시도 문이 넷인데, 그놈의 버스는 왜 문이 하날까?”
그게 남편이 좌석버스 타기를 거부하고 굳이 택시를 타는 이유다.
어떤 때는 기관사 정복 그대로 들어오는 남편을 맞아 짧게 포옹할 때면 남편의 몸에서 기차 냄새가 짙게 풍겼다. 그렇게 반기는데도 집에 들어온 남편은 명다리의 먹이부터 찾았다. 다음날 운행 시각에 맞춰 나가야 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명다리 밥 주는 일 외에 취미생활 같은 잡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대책도 없이 열차 운전이 싫어졌다고 했다. 직장을 아예 그만둘까 어쩔까 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기관사 월급으로 살림은 넉넉하다고 했으나, 아파트 할부금 빼고 나면 한 달만 일을 멈춰도 살림이 부도날 지경인데.
남편을 안심시켜 보려고 기관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아파트 창밖으로 손 흔들기를 잊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남편의 흰 장갑과 내 손이 멀리서 엇갈릴 때면 명다리 먹이 줄 시간이다.
그렇게 손을 흔들고 아파트 건너편 철로를 지나갔던 남편은 그날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더니, 자정이 되어서야 파출소에서 소식을 전해 왔다. 달려간 파출소 구석에서 남편은 아내의 출산을 기다리는 남자처럼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가족분 되시지요? 이분 성함이 강중락 씨가 맞나요?”
자정이 넘어 모두 졸음을 참고 하품하는 경찰관의 반쯤 감긴 눈앞에서 나는 불안을 못 감추고 고개만 끄덕였다.
“가출 신고를 하겠다는데, 누가 가출했다는 얘긴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혹시 가족 중에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분이라도 있는지요”
경찰이 보여주는 서류에 신고인은 남편의 이름이 강중락, 가출한 사람은 ‘나’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나를 가출했다고 신고한다?
“세상 살 만큼 사시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분이 이런 장난질을 하시면 못써요.”
파출소의 반장은 남편이 쓴 서류를 내밀며, 어이없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야릇한 비웃음을 감추고 우릴 쳐다봤다.
“강중락은 여기 있는데 내가 없다고요.”
남편은 서류에 자기 이름을 가리키며 못 알아듣는 경찰관을 오히려 답답해했다.
“이분이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죠?”
‘여보, 당신이 강중락이고, 강중락이 당신이야. 당신과 강중락은 같은 사람이야. 당신은 두 몸이 아니고 하나야.’ 이렇게 호소하기는 이미 지났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의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에~헤헤헤. 당신과 내가 한 몸이지, 강중락과 내가 어떻게 한 몸이야.’ 이럴 테다.
그럴 때는 신혼이 즐겁도록 재미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땐 당신과 내가 한 몸이라는 말에 은밀한 상상을 들킬지도 몰라서 얼굴이 빨개지던 새댁 시절이었다.
“글쎄요. 강중락은 여기 있는데,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 가출 신고를 한 번 해봐요.”
언젠가 무심코 던진 말이 이렇게 씨가 되고 말았다. 생각 없이 던진 말에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기 가출 신고를 하겠다고 파출소를 찾아가서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이 짓을 하려고 밤새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은 궁리와 상상을 했을까.
그 후부터 남편은 알 수 없이 변해 갔다. 지난번 춘투에 참가하지 않고 출근하여 일을 했다가 노조에서 쫓겨나면서부터다. 남편은 파업 찬반 투표에 강중락 이름으로 찬성 쪽을 찍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파업에 강중락만 참여하면 됐지, 자기는 참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거다. 노조 지휘부의 결정을 어기고 파업 농성장으로 가는 대열에서 자기만 빠져서 파업의 머리띠를 벗어 던지고 기관차를 탔단다.
‘파업 반대!’
그의 말대로라면 강중락이 아닌 그 자신도 지켜야 할 양심이 있고, 누려야 할 자유가 있어야 했다. 듣고 보니 반대 이유는 분명했다. 받는 월급이 흡족하여 파업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다가 노조에서 쫓겨난 따돌림의 피해자다.
“야! 강중락, 그래도 나는 나다. 강중락이 노조원이었지, 나는 아니다.”
남편은 가끔 거울을 보면서 분이 섞인 주술을 거울 속 자기에게 걸었다. 옆에서 보기에도 거울 속의 남편은 결혼 전의 강중락이 아니다. 남편이 속에서 강중락이 화학적으로 녹아들지 않은 한, 저러한 증세는 더욱 심해질지도 모른다.
파업을 반대한 남편이 열차를 운전하던 중에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역에서인지 열차가 서서히 출발하여 가속하려는데 플랫폼에서 아기를 안은 여자가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었다. 뒤를 확인하던 남편의 눈에 그 여자가 보였다. 달리려다 멈춰서더니, 정신 나간 열차처럼 그 여자를 향해 후진했다. 아기 안은 여자는 맨 뒤칸에 간신히 올라탔지만, 그날 남편은 호되게 야단맞고 경위서를 썼다고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여자가 바로 자기를 쫓아낸 위원장의 부인이었다니. 노조에서 따돌림을 받았는데도 그들과 한 패거리로 몰린 남편은 직장에서 미운털만 하나 더 늘어났다.
그러던 중 남편은 밥상만 물리면 입버릇처럼 굴 얘기를 했다. 기관차를 몰고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게 그렇게도 싫다고 했다. 출구가 막히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터널을 통과하는 내내 숨이 막혀 견디기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실은, 그러나 남편이 굴에 들어갈 때마다 숨을 참는 버릇 때문이라는 사실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멀리 보이는 한 점의 출구가 사라져 버리면 어쩌나, 하고. 그래서 그 출구가 사라지기 전에 최고의 속력으로 숨을 참고 달리면 옆에서 호통이 날아온다고 했다.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규정 속도 준수!’
차가 요동을 치면 콜센터로 전화가 빗발치고, 운행이 끝나면 어김없이 사무실에 불려가서 경위서를 써야 했다. 쌓여 가는 경위서의 무게에 눌려 남편은 결국 화물열차로 옮겨 탔다. 화물열차라고 터널을 지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심한 요동에도 화물들은 불평을 해대지 않았을 테니 그나마 견디는 듯 보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굴에 빨려들면 맞은편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숨 막히는 공포감에 시달린다던 남편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굽어 있는 굴을 통과할 때였다고 한다. 굴에 들어서면 까마득히 보이는 한 점의 빛을 믿고 내달리는데, 굽은 굴은 앞에 보여야 할 한 점의 빛마저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앞이 막혔다. 이젠 죽었구나. 이판사판이니 뚫어보자.
남편은 어둠을 뚫고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겨우 한 점의 빛이 보일 때쯤 되자 열차는 전속력으로 달렸고, 속도는 곡선을 못 견뎌 탈선하고 말았다. 신문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굽은 터널에서 기관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달릴 수 없었다고들 했다. 그날 사고에서 화물열차는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기관차와 기관사만 멀쩡했다. 객차가 아니라 다행이다. 언론에서는 그나마 굴이었기 망정이지, 밖에서 그렇게 탈선했으면 더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했다. 하지만 굴 밖이었다면 남편은 그토록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았으리라.
뱃속에서 아기가 크는 중에 사고를 저지른 남편은 수사기관의 혹독한 조사를 받고, 우여곡절 끝에 풀려났지만, 이런저런 이유가 쌓여 직장에서는 쫓겨나고 말았다.
남편은 당분간 쉬겠다며 두문불출하다가 나가더니, 두더지 한 쌍을 들여와서 키워보겠다고 했다. 흙을 옆으로 밀어내도록 생겨 먹은 손가락과 발가락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헤쳐 내겠다는 의지로 보였고, 눈은 거의 감겨 있어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이토록 어려운 와중에 그놈의 손이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갈라 놓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징그럽다기보다 질투가 일어났다.
남편은 자그마한 수족관에 물을 비우고 흙을 채우더니, 가져온 지렁이와 이름 모를 번데기, 애벌레들을 먹이로 넣어줬다. 두더지를 들여놓은 후부터 남편은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유리관 앞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놈은 거침없이 땅을 파고 들어가다가 유리벽에서 방향을 돌렸다. 남편은 두더지가 유리판에 맞닥뜨려 빛을 보면 피해서 방향을 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놈은 남편과 달리 한 점의 빛을 피하여 어둠만 찾아다니고 있었다. 유리통을 가득 채운 흙이 여기저기서 들썩들썩할 때면, 남편은 스릴이 넘치는 괴물 영화 볼 시간인데도 넋을 잃은 채 빠져들었다.
“저러다가 쟤가 우리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오지 않을까요? 조놈의 두 손발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게 생겨 먹었네요, 뭘.”
“그렇게 주변에 한눈을 팔 놈이 아냐. 어두운데도 굴을 뚫고 무조건 앞으로 돌진하는 기질이 맘에 들어. 그게 제 살길이지.”
“쟤 밥은요?”
그게 제일 먼저 걱정이었다. 남편은 지렁이, 굼벵이, 땅강아지 같은 땅속 벌레를 구해다 수족관 흙 속에 묻어줬다. 땅속을 휘젓고 다니며 살아 있는 먹이를 잡아먹는다니, 생김과 다르게 어수룩해 보이지는 않았다. 거침없이 흙 속을 뚫고 다니는 그놈의 삶을 표상으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뜻인지, 두더지의 어느 점이 끌려서 그걸 들여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든 다니며 밥벌이를 찾아야 할 남편인데 그게 어떻게 돈이 될지.
만약 취미로 그놈을 키우겠다면,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 남편은 가정에서도 가장 자격 미달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철밥통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나갔다가 들어와 밥상만 물리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깊은 잠에서 홀로 깨어 일어나면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갈증 나는 꿈이라도 꾸었는지 머릿속을 털어내려고 몸부림을 쳐댔다. 물어보나 마나 또 악몽을 꾸었을 테다.
두더지를 들여놓고부터 남편은 그 악몽을 잊으려는지 불을 켜고 유리상자 속에 그놈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불이라도 꺼주면 좋겠건만, 남편은 잠들어 움직이지 않는 두더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남편의 상상은 누구에게도 제한받지 않고, 무한 자유의 세계에서 떠 돌아다녔다. 눈에 초점을 풀어놓는 멍때리기가 잦아지다가 때없이 졸고 있는 명다리를 닮아 갔다.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은지, 한 번 상상에 빠져들면 옆에서 불러도 듣지 못하고, 눈앞에 사람이 어른거려도 눈인사 한 번 못한 채 투명인간 보듯 했다. 그 짓궂은 명다리마저 멍한 그의 앞에서는 온갖 아양을 다 떨며 관심을 보이려 해도 무반응으로 냉대하니 놈은 결국 싫증을 내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물러나 유리상자 안의 두더지에게로 관심을 옮겼다.
남편은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다가, 불러오는 내 배를 보고서야 직장을 구하러 다니더니, 굴과는 무슨 악연인지 또 굴 파는 회사의 폐석 운반차 기관사로 취직했다. 배운 게 기관차 운전이라고, 또 그 기술을 써먹을 수밖에 없었을 테다. 관통하는 굴은 무조건 달리면 끝이 나오지만 뚫고 있는 굴은 반드시 되돌아 나와야만 산다. 남편은 되돌아나오는 길을 죽기보다 싫어했지만, 벌어먹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불 속에서 들은 얘긴데, 앞이 꽉 막힌 굴은 혹 되돌아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두렵다고 했다. 퇴근해 돌아와 옷에 묻은 돌가루를 한 줌씩 욕실에서 털어내면 물구멍은 시도 때도 없이 막혔다. 갈 곳 잃은 욕조의 물도 두꺼비처럼 바닥을 헤치며 빠져나가고 싶었을 테다. 온갖 꼬챙이를 동원하여 뚫어놓으면 거북한 물은 체한 속을 뚫듯 끄르륵 소리를 내며 빠져나갔다.
빈둥빈둥하다가 궤도차 운전원을 뽑는다고 해서 찾아간 회사다. ‘철밥통’이라 불리던 단단한 밥그릇을 날려버리고, 언제라도 짓밟으면 깨질지 모르는 바가지 같은 밥통을 얻었으니 그 일이 양에 찰 리가 없었다. 얼마 못 가서 남편은 싫어지는 일을 피곤으로 호소했다. 궤도차 기관실에 앉아서 여덟 시간 3교대씩 반복하여 운전하는 일일 텐데 일이 너무 고되어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했다. 저렇게 끈기가 약해서야.
푸시시 일어나 겨우 세수만 하고 나간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전화가 온 시간은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회사 사람은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냈는데, 남편은 내 전화마저도 받지 않았다. 공사장 식당 밥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도시락까지 챙겨 줘서 잘 나가는 듯싶다가 불과 두 달도 못 돼 또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남편은 저녁 무렵 도시락 가방을 들고 덜렁거리며 들어왔다. 오늘도 수고하셨다는 말 외에 아무 말도 안 했다. 남편은 이튿날 다시 챙겨주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나가기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찾아야 할 텐데 하고 몇 번 중얼거렸을 뿐. “나는 어디 가고, 빈껍데기 강중락만 남았냐” 하면서.
도대체 남편의 속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하루를 보내다가 오는지, 왜 그나마 얻은 직장을 나가지 않았는지, 그래도 완전히 그만두지 않았다면 약간의 희망은 있었다. 귀한 운전 기술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매일 연락이 왔다. 제발 좀 나와서 도와달라고.
다음날 남편이 다녔다는 굴착공사장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들은 썩어가는 내 차를 비웃는 듯 보였다.
“아주머니가 저런 쇳덩이 차 운전할 수 있어요. 못하면 남편분 얼른 찾아오세요. 무단으로 장기 결근하고 있는 강중락, 그 사람 때문에 우리 회사 손해가 지금 얼만 줄 알아요? 파업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말…. 그래서 뽑을 때 전력을 잘 봐야 한다니까. 회사에서 탈선 사고를 냈던 그 사람이더군요. 알고 보니 문제가 많더군요.”
간절히 전화하던 느낌으로 보아 친절할 줄 알았던 공사장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해 불만이 대단했다. 다른 사람을 충분히 대체했을 법도 한데 워낙 구하기 어려운 자원이라 더욱 간절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부인이 찾아갔는데 공손하고 친절하게 모실 일이지. 슬슬 부아가 났다.
“나도 알아볼 것 다 알아봤다고요. 남편이 여기서 어떤 부당한 대우가 있었는지부터 알아봐야죠.”
얘기 좀 더 하자는 걸 매몰차게 뿌리치고 돌아왔다.
‘남편은 파업 반대하다가 그 사람들 계략에 걸려 억울하게 쫓겨났어요. 사람 함부로 몰아치지 말고, 뭘 똑바로 알고 얘기해요.’
이 말을 못 하고 온 게 후회가 되었다. 공사장 사람 말에 오기가 생겼지만 그런다고 돌아올 남편은 아닌 듯싶었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는 나라도 나서서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낮이든 밤이든.
명다리와 두더지가 주인 없는 방을 지키고 있었다. 점점 불러오는 배를 만지며 남편에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땅속을 물속처럼 헤엄치며 다니는 땅강아지도 남편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땅을 후벼파야 살아가는, 그곳에서 먹이를 구하는, 그리하여 평생 땅을 파야만 하는, 그러한 생명들은 수조로 썼던 유리관 안에서 먹고 먹히며 공존하고 있었다.
방이 이토록 출구 없이 막막했던 적이 있었던가. 남편이 갈 만한 곳의 단서가 나오리라는 기대로 소지품을 뒤져보았다. 옷, 책상 서랍, 가방, 암호가 잔뜩 걸려 있는 컴퓨터까지도. 연애 시절 남편이 입었던, 처음에 내가 보고 반했던 정복과 위엄을 갖춘 챙모자가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남편처럼, 그때의 멋진 모습 그대로 벽에 걸려 있었다. 기관사를 그만두었는데도 저걸 일찌감치 치우지 못했던 건 그 옷 안에 남편의 일부가 남아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게 강중락이든 남편의 알몸이든.
“여보. 아기가 발로 차네요. 당신의 애기가요.”
생각다 못해 응답하지 않는 전화에 대고 목소리를 남겼다. 얼마 안 있어 전화벨 소리가 잠들려던 방 안을 깨웠다. 명다리도 귀를 쫑긋하며 깨어났다.
“시간제로 역사를 청소하는 일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주간이고요.”
남편의 부재가 두 달째 계속되던 날, 수십 칸의 열차를 이끌고 다니던 기관사의 아내는 그 일을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그마저 안 될지도 몰라서 과거 승무원 경력을 숨겼다. 이것저것 아는 체하고 따져 들면 골치 아프게 된다는 일쯤은 승무원 시절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남편이 돌아오지 않거나 찾지 못한다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철길 근처로 일거리를 찾은 건 혹시 남편이 그 주변에서 어른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가능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남성 화장실에는 각별 신경을 쓰셔야 해요. 아무 때나 불쑥불쑥 들어가시지 마시고요. 아주머니 같은 젊은 여자를 보면 일부러 그걸 꺼내 보여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만두시려면 한 달 전에 미리 알려주시는 건 아시죠?”
굳이 말을 안 했지만, 직원은 봉긋 솟은 내 배가 비만으로 인한 배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아챈 모양이다. 2교대 시간제 근무. 이제부터 쉬어야 할 상황에 일을 시작하다니. 어찌 보면 나는 그때 이미 남편이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단정을 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잠이 안 와서 무심코 남편의 잡다한 소지품을 정리하다가 병원 영수증과 약봉지를 발견했다. 신경정신과?
“말하자면 ‘동굴 공포증’이라는 거죠. 굴이 무섭다고 하데요.”
병원으로 가서 신분을 밝히고 집 나간 남편의 사정 얘기를 했더니 의사는 첫마디로 폐소공포증이라는 증세를 그렇게 얘기했다.
“사방이 꽉 막힌 곳에서 겪는 증상인데 동굴은 한 곳이 뚫렸으니, 앞으로 가기를 포기한다면 되돌아 나올 곳이라도 있죠. 깜깜한 굴속에서 무조건 앞으로 가라는 게 문제예요. 전에 기관사였다고 했죠? 저 앞에 출구가 막히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이럴 때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남편에게 폐소공포증이 있었다는 건 결혼 후 함께 지내면서 몇몇 사건으로 미리 알아챌 수도 있었다. 남편은 결혼하고 몇 달 지나서 집 안에 출입문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하철은 드나드는 문이 열, 열차도 출입문이 넷이나 되고 기관차도 최소한 둘은 되는데 집에는 출입문이 왜 하나냐고 하여 실없는 소리를 잘하는 남편의 지나가는 말로 들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현관문 외에는 빠져나갈 곳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더구나 80여 세대가 출입하는 고층 아파트에서 동마다 밖으로 출입하는 현관문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점은 심각하게 보면 공포였다. 남편은 문이 하나밖에 없는 좌석버스를 절대로 타려고 하지 않았다. 조그마한 내 승용차도 문이 넷인데 무려 40여 명이 타는 버스의 출입문이 하나뿐이라니. 함께 외출할 때 간혹 시내버스를 타더라도 문 옆 기둥을 꼭 잡고 놓을 줄 몰랐다.
남편은 어느 곳을 가나 홀이든 방이든 실내로 들어서면 그 안에서 사고가 나기라도 바라는 듯 출입문부터 살펴두었다.
역에 첫 출근을 하기 전에 경찰서에 가서 남편 강중락의 가출 신고부터 했다. 혹시 발견되더라도 자기는 강중락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강중락은 자기를 부르는 이름이지, 자기가 곧 강중락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는 이름과 몸의 해괴한 분리 해체법이 남편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남들은 아무도 모른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남편을 찾아내야 한다. 몸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이가 그 증세마저 아비를 닮는다면 출구가 하나뿐인 자궁 속에서 지금쯤 심각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흙을 무한정 헤치고 다니던 두더지가 먹이를 다 먹어 치우고 지친 모양이다. 오랫동안 잠을 자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보다 신통한 놈은 명다리다. 그 앞에서 두더지의 움직임을 관찰하다가 가끔 깨어나 흙을 파헤치기 시작하면 두더지를 향해 짖어댄다.
약봉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남편이 다녔다는 병원의 의사를 또 찾아가 보기로 했다.
“모르셨어요?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어느 집 양자로 들어갔는데 양부가 광산에서 일하다 매몰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후에 홀로 자라면서 지하 셋방살이로 고생도 무척 했다네요.”
상담 기록지를 읽어나가듯 하는 의사 앞에서 남편에게 배신감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남편의 과거를 의사가 더 많이 알고 있다니.
“혹시라도 우리 병원에 다시 오면 연락은 드리겠습니다.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의사는 영영 찾지 못하기를 바라는 듯 남의 아픔에다 포기의 송곳을 찔러댔다. 그러고 보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때 학비와 기숙사비까지 나라에서 지원한다는 곳이 남편에게는 유일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의사에게 힌트를 얻어 남편의 주민등록에 과거 주소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주소 변경 기록 중 가장 오래된 주소지로 가봤다.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니 마침 방이 비었다며 보여줬다. 안내해 주는 지하방 출입문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바로 옆이라서 문을 열자마자 내리디뎌야 한다. 지독한 곰팡내는 이미 예상했다.
방은 벽지가 드러나고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어서 오래전 남편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살아가려면 하나뿐인 출구를 빠져나와 무조건 달려야만 했으리라. 그러고 보니 남편이 살았던 거의 모든 방은 지하였다. 지하방은 아무리 넓어도 출입구가 하나이므로 그리로 들어가면 반드시 그리로 나와야 한다. 하나뿐인 출입구가 막히면 끝장이다. 남편은 그 공포에서 헤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을 테다. 그곳을 벗어나려다가 가진 돈의 한계로 번번이 지상에 오르지 못했을 테고. 오래된 남편의 주소지를 몇 군데 더 다녀봤지만, 모두 지하였다. 연애 시절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그곳을 나와서 통화했을 터이다. 사는 집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속내를 이제야 알만 했다. 만나면 바닷가에 가서 발자국 찍기를 무엇보다 좋아하던 남편이다. 아무리 디뎌도 흔적이 남지 않는 도시 바닥에서 벗어나 남편은 어디에든 자기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으리라.
의사의 말에 홀려 지하실만 찾아다닌 하루가 너무 길었다. 여태껏 남편에 대하여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사람 찾는 광고 전단을 만든다고 해도 찾는 사람을 강중락으로 해야 할지, 남편의 평소 주장대로 강중락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의 알몸이라고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의사의 상담 기록 조언을 얻어 남편이 자라났다는 ‘희망원’을 찾아갔다. 푹 늙은 원장은 내가 강중락의 아내라는 신분 확인을 하고 나서야 케케묵은 원생 카드를 펼쳤다.
“강 씨네 집으로. 입양했어요. 여기 입양 조건이 적힌 확약서가 있네요. 양부가 죽은 아들 강중락의 명을 이어 키우려고 같은 또래를 골라 데려갔어요.”
머리가 흰 원장은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모양이다. 갑자기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남편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밖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여기가 남편의 고향 같은 곳인가.
“뭐 더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원장은 내 아랫배를 힐끗 훔쳐보며 관심 없는 듯 물었다. 그 눈치를 챘는지 아기가 움직인다. 남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아뇨.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어나서 희망원의 사무실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진통이 왔다. 차에 올라 시동을 켰으나, 차의 체구보다 더 크게 부르릉거리는 고물차로 병원까지 운전하고 갈 자신이 없었다. 원장이 부른 배를 운전석으로 밀어 넣는 나를 보고 다가왔다.
“도와드릴까요?”
나이로 보면 내가 그를 도와야 할 판인데, 원장은 기사를 불러 내 차 운전을 시키고 자기 차로 뒤따랐다. 역 사무실에 전화부터 하여 오늘 저녁에는 못 나간다고 했다가, 다시 당분간은 못 나가겠다고 했다가, 오랫동안 못 나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겨우 하루 출근했는데 그나마 얻은 일자리를 놓치지 않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남편을 찾는 일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달리는 내내 진통으로 힘들어 하는 나보다 기사가 더 불안해했다.
원망스러운 남편이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빠는 어디에 있다고 말해야 할까. 뱃속에 갇힌 아기에게 또 다른 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제왕절개 해주세요. 우리 아기가 그러래요.”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말 한마디 하고 눈을 감으면서 몸을 맡겼다. 남편은 얄밉게도 천정에서 내려다보며 지그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