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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류재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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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가을, 비가 구질구질 내리고 있었다. 작고 허술한 트럭 한 대가 빗속에서 덜커덩 소리를 마치고 찍-하며 멈추어 섰다. 기사인 듯 싶은 한 남정이 운전석에서 쿵 하고 내려서더니 차 위에 덮였던 비닐을 잡아당겨 벗겼다. 조촐한 이삿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둘 짐을 내려 놓는다. 내려지는 짐과 함께 그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얼굴은 번듯하게 생겼으나 늘씬한 여자에 비해 키꼴이 머리 하나쯤은 작아 보이는 앙바틈하게 생긴 남자였다. 같이 내린 여자는 피곤해서인지 비구름 같은 어두운 그늘이 얼굴에 쌓여있다. 그러나 얼굴을 드는 순간 유난히 검은 눈동자가 안성맞춤으로 자리 잡은 하얀 얼굴에 숨겨지지 않은 해말쑥함과 깔끔한 윤곽이 돋보인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지방 근처의 크지 않은 동네- 그 동네에서도 또 좀 동떨어진 외딴집이다. 그 집은 벌써 오래 전부터 비어 있던 집이었다. 아마 이번에 아주 싼 값에나마 팔려 나간 모양이었다. 빈 절간같이 먼지와 고요에 묻혀 있는 텅 빈 집 안은 심드렁하니 낯선 주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집 안의 분주한 청소가 시작된다. 우기로 습기가 가득한 집 안 공기 속에서 묵은 물건을 들어 올릴 때마다 풀썩풀썩 일어나는 먼지들이 창밖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집 안에 그대로 내려앉는다. 밖으로 내팽개치는 물건들의 댕그랑 소리는 울 안을 채우고 있는 산적하고 조용한 빗소리 속에서 놀란 강아지 깨갱 소리처럼 뜬금없이 집 마당에 짜증난 마찰소리를 던져주곤 한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집 안이 멀끔해지고 가져온 가구들을 들여 놓고 한숨 돌리던 참이었다. 집 안을 둘러보던 여자는 벽에 걸려 있는, 옛 주인이 남겨 놓은 낡은 달력에 눈길이 머물렀다. 시간이 멈춘 듯 먼지를 뒤집어쓰고 벽에 조용히 걸려 있는 낡은 달력이었다. 그녀는 벽으로 다가가 달력을 내리며 먼지를 털었다. 이때 그의 눈앞에 어느 한 날짜의 아라비아 숫자가 뚜렷이 눈으로 안겨 왔다. 어느 여름날의 숫자에 눈길이 멎어버렸다. 순간 동공이 굳어진 그녀는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종잇장을 와락 잡아당겨 뜯어 버린다.

짐짝들을 나르며 물건들을 정리하던 남편이 여인의 쇠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달려와 아내의 눈길이 꽂혔던 찢어진 달력의 어느 한 숫자를 보았다. ×년 ×월 ×일…. 아, 하필이면 이날의 숫자가 눈에 띄다니. 모든 것을 알아차린 남자는 말없이 아내를 끌어안았다.

이 외딴집의 굴뚝에선 비릿한 흙냄새를 풀풀 날리며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빗속에서 갈래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가는 회색 실타래 같은 연기는 슬픈 사연을 풀어내며 서리서리 날아오르더니 아낙네의 푸념같이 처량하게 공중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서야 동네 사람들은 그 외딴집에 새 주인이 이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두 내외는 슬하에 이상하게 자식도 없이 단출한 두 식솔뿐이며 이 고장에 이사 온 것은 근방에 어느 자그마한 공장에 출근하기 위한 것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이사 온 이듬해 여름은 장마철 기간이 무지도 길었다. 매일 동네를 가로질러 출퇴근에 오르는 그들은 언제나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다녔다. 이상한 것은 키 때문이었는지 여자가 항상 우산을 들고 남자와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우산을 든 오른팔을 잔뜩 옆으로 뻗쳐 들고 자기는 한쪽 어깨를 다 적시면서도 남자의 몸을 가려주며 걷고 있었다.

“웬일이여, 불편하지도 않나? 기가 차서….”

사람들은 높낮이가 그렇게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한사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붙어 다니는 것이 너무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놀란 눈빛으로 상식에서 벗어난 그들의 행보를 한참씩 서서 바라보곤 하였다. 이런 부조화의 풍경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우산을 쓰는 날 마다 지속하였다.

옆을 지나는 동네 분들이 고개를 한껏 돌리면서까지 이상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아도 부부는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늘 그 모양새로 걸어갔다. 그런데 참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우산 하나를 꼭 같이 쓸 만큼 사이좋게 늘 붙어 다니는 부부건만 그들의 얼굴엔 도무지 웃음기란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항상 가라앉은 낮은 톤의 조용한 대화, 얼굴 표면 전체에 덮여 있는, 그 무엇을 누르는 것 같은 얇고도 무거운 한 층의 납판 같은 막, 저 가슴을 누르는 무표정한 막 아래엔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건가? 혹시 어디서 사고라도 치고 여기로 도망 온 사람들은 아닐까?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 짐작을 해 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 수수께끼 같은 부부가 칡나무가 자라는 헌 집에 이사 왔다고 하여 후에‘칡나무 댁’이라 불렀다. 여하간‘칡나무집댁’이라 해야 맞는 말인데 사람들은 꼭 그렇게‘칡나무댁’이라 나름대로 간략하게 호칭했다.

공장에서는 그들의 말소리 듣기가 참 힘들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들에게 사람들은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것들을 막무가내로 물어볼 수 도 없었다.

말수가 적은 그들 내외는 공장에서도 옆 동료들과 아기자기 소통하며 사귀려는 기미가 없었다. 얼굴엔 항상 비밀 문을 잠가 놓은 커다란 자물쇠 같은 것이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빨간 장미들이 공장 울바자에 탐스럽게 자라나고 있었다. 숨겨졌던 교기(驕氣)와 자색을 오월의 햇볕에 한껏 발산시키며 여린 날개 같은 봉오리를 빵긋빵긋 터뜨린다. 산잡하고 소음 가득 찬 이 공장의 창문으로 바람의 선물인 양 장미향이 물씬 풍겨온다. 공장의 한 작업장 옆에는 간이식당이 있다. 남녀 일꾼들은 모두 이 한곳에 모여 점심을 먹으며 피로도 풀고 수다도 떤다.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들에게 효도선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 자식에게 하다못해 꽃 한 송이라도 받은 작은 감동의 얘기들이 다반수다.

-글쎄, 우리 철민이가 이젠 제법이랑께. 편질 곧잘 쓰지 뭐야. 나 감동 먹었어!

-뭐라 썼던가요?

-질 낳아줘서 고맙다고, 최고로 사랑한다고!

어느 애들 편지에나 다 있을 법한 내용이건만 여자는 감동과 흥분에 들떠 있다. 아들 자랑에 한창 신나던 그가 갑자기 머리를 휙 돌려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그 칡나무댁을 흘깃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저기요, 그 집엔 도통 애 있단 소리를 못 들었어? ”

일순 모두가 조용해졌다. 뒤에 앉아 있는 여자는 머리를 숙이고 밥숟가락을 입에 댄 채 아무 기척이 없다. 분명 자기보다 나이도 더 위인 걸 알면서도 앞의 여자 입에서는 갑자기 거친 말투가 튕겨져 나온다. 드센 성격에 공격성적인 말투, 공장 사람들은 이 사십대 아줌마에게‘말벌’ 이라는 별호를 뒷등에 붙여 주었다. 아들애가 아직 젖을 떼기도 전에 어느‘예쁜 년’에게 남편을 뺏기고 아들 하나 바라보며 지금껏 혼자 아글타글 억세게 살아가는 여자였다. 남편을 뺏길 때 속에 남은 악 때문이었는지 그의 가슴엔 얼굴 해반주그레한 여자들에 대한 고약한 배타와 질투가 가득 차 있었다. 칡나무댁이 처음 공장에 왔을 때 얼굴에 흐르는 알 수 없는 애잔한 우수를 담고 있는 이 미인 앞에서 그녀의 닫힌 입을 열어보려고 적지 않은 공장 남정들이 무지 애를 썼다. 서로 그녀 옆에 찾아가 은근히 무언가를 도우려는 남정들을 바라보는 말벌은 무단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못 들었나? 어디서 저런 땡감 같은 게, 혹 애초 애를 못 낳은 거 아닌걍.”

칡나무댁이 삽시에 사색이 되어 입술가의 근육을 푸들거렸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밥상 위에 놓여 있던 머그컵을 들고 천천히 말벌에게 걸어갔다. 그리곤 컵 속의 물을 그의 눈에 확 뿌렸다. 얼떨결에 잠깐 멈칫하던 말벌이 와락 달려들어 칡나무댁과 엉겨 붙었다. 이때 조금 떨어져 밥을 먹고 있던 칡나무댁 남편이 급급히 달려오더니 말벌을 밀치고 아내를 이끌어 밖으로 나갔다.

“이거 쌍으로 달려들어? ”

아내를 에스코트하는 남자의 행위에 울며불며 주위를 제압하려는 말벌의 고함이 식당 밖으로 쏟아졌다. 남편과 함께 공장 울 안 탱자나무 아래에 서 있는 여자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숨이 넘어갈 듯 흐느끼고 있었다. 급기야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지탱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통곡이다. 말벌의 한마디 어폐에 공장에 생각 밖의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 공장에서는 누구도 더는 그 두 부부의 자식에 관해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은 공장에서 납부해야 할 제품을 완성하느라 늦도록 일하고 퇴근길에 올랐다. 초가을의 해도 어둑어둑 지는데 난데없는 저녁 안개까지 꽉 차올라 한 치 앞을 가려보기가 힘들었다. 이 편벽한 산지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공장의 일꾼들은 대부분이 근처에 집을 잡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출퇴근길에는 국도의 큰 차도를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특히 제대로 된 건널목을 건너려면 한참을 되돌아가야 하므로 사람들은 바쁠 때는 앞뒤 차가 없는지를 두리번거리며 확인하곤 무단 횡단을 할 때도 있었다.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다하고 제일 늦게야 퇴근길에 오른 칡나무댁 부부는 차가 많지 않으니 늦은 길이라 바른길로 가로질러 가기로 하였다. 그들은 해거름녘을 바라보며 터벅터벅 피곤한 발길을 옮겨 가고 있었다. 희미한 하이드라이 불빛을 뿜기며 트럭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여보잠깐, 차가와요!”

여자가 급격히 남자를 잡아당겼다. 주춤하고 남자가 발길을 멈추었다. 순간, 남자의 시야에 작은 검은 물체 하나가 저 건너편에서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앗, 저! ”

남자는 분명 여나문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애를 보았다. 급작스러운 발견에 속도를 멈출 수 없었던 트럭이 찍 하고 지나갔다.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런데 키 작은 남자가 없어졌다. 칡나무댁은 소리치며 길 복판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남자애는 뿌리쳐져 있고 그녀의 남편도 그 옆에 쓰러져 있었다. 세상에 이 키도 작은 남자가 어떻게 그렇게 쏜살같이 달려가서 애를 밀어낼 수 있었는지 여인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남편과 그 남자애를 끌어안고 앙앙 소리를 질렀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야 그 애의 엄마가 왔다.

“철민아! ”

두 여자는 모두 놀랐다. 늦어진 퇴근길에 올랐던 그 여자는 바로‘말벌’이었다. 총총히 길을 에둘러 건널목 길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아직 전면 보급이 안 되던 20세기 1990년대 초라 집에서 엄마를 늦도록 기다리던 그녀의 아들은 조급증에 엄마 찾아 엇갈린 길을 나섰다.

현장에서 자기 아들을 구해 주려던 사람이 뜻밖에도 다름 아닌 칡나무댁 남편이란 걸 눈앞에서 실감하자 말벌은 아들을 끌어안고 두 부부를 향해 우두망석이 되어 버렸다.

병원에 도착해 검사해 보니 다행히 남자애는 외상을 내놓고는 크게 다친 데가 없었다. 남자가 숨 가쁜 순발력으로 그 애를 제때에 밀어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 사고로 칡나무댁 남편은 다리에 타박상을 입어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다리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저녁, 그 외딴집 방안엔 촉수 낮은 희미한 불빛이 두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이것 좀 먹어요.”

누워 있는 남편을 잡아 일으키며 여자는 푹 삶은 닭곰국을 차려 놓았다.

“당신 왜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을 했어요? 이번에 만약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여자는 말을 못 잇고 또 울어버린다.

“누구나 닥치면 그렇게 돼, 어느 집 자식이나 소중한 건 똑같잖아.”

자식, 그래 자식이란 한마디 말에 둘은 한 식경이 지나도록 말을 못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무릎을 꿇는 그 남자아이의 엄마 앞에서도, 공장 동료들이 가져온 꽃다발 앞에서도, 그리고 몇몇 기자들의 방문에도 그들은 시종 침묵을 지키며 당시 무엇을 생각했느냐는 물음에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이 좀 ‘이상’한 존재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사실 그들의 머릿속엔 아빠 엄마를 보고 늘 싱글싱글 웃던, 항상 자신들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얼굴이 환영같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은 또다시 닥쳐왔다. 방학을 맞이한 동네 애들은 동네에서 떨어진 이 외딴집 뒷들녘- 야트막한 언덕배기 같은 야산을 옆에 끼고 출렁출렁 흘러가는 작은 강물로 몰려와 물놀이에 한창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엔 뭉실뭉실 떠 있는 흰 구름이 파란 하늘 호수에 몸을 담고 물놀이하는 백조들의 날개처럼 강물 위에 한껏 예쁜 그림들을 그려 놓고 있다. 야산의 갖가지 이름 모를 잡목들로 무성한 숲속에서는 여름 벌레들이 앞다투어 찌르륵 찌르륵 요란을 떨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배산임수의 아름다운 화폭에 한가한 평화를 서사하고 있었다.

모처럼 같은 휴일을 맞이한 칡나무댁 내외는 창문들을 열어 놓고 집안 청소에 바빴다. 뒤 창문으로부터 애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말소리들이 흘러들어왔다. 간만에 여자는 창문으로 다가가 뒷들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가 갑자기 새파란 얼굴을 하고 비명 같은 놀란 소리를 질렀다.

“여보, 저 애들이! ”

그리곤 털썩 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이래? ”

강물에서 신나게 자맥질하는 애들의 풍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밖을 살피던 남편은 비로소 영문을 알아차렸다.

“난 또…, 가뭄이어서 저 강물은 무릎밖에 안 올라오는데 뭘 그리 놀라? ”

남편이 아내 옆에 주저앉아 아내를 일깨워줬다. 그렇지, 저 강물은 무릎까지 겨우 올라오는, 버들숲을 가로질러가는 냇물 같은 작은 강물이었다. 사실 여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물놀이를 하는 애들을 보고 기함을 한다. 거침없는 눈물이 상아색 속옷 차림인 그녀의 젖가슴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여자의 두 손을 부여잡고 무어라 설득을 하는 남편의 눈에서도 막을 수 없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그날의 악몽이여….

여자와 키 작은 남자는 정말 쉽지 않은 결혼을 하였다. 예쁘고 키가 큰 처녀 집에선 총각 키가 너무 작다고 반대하였고 키꼴이 작은 남자 집에선 늘씬한 처녀가 얼굴도 미인이어서 장래가 걱정된다고 탈 잡았다. 그런데다 여자에겐 아버지가 없었고 남자에겐 어머니가 없어 양가의 살림살이들이 모두 끼니를 겨우 이어가는 정도였다. 양친 친척들이 별별 소리를 다해 가며 반대했지만, 인연은 끝내 이어지고 말았다. 그 이듬해, 그들은 떡판 같은 아들을 낳았다. 정말 놀랍게도 아들애는 커갈수록 키꼴은 저 엄마를, 얼굴은 번듯한 아빠를 닮아 가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 애 친구들은 이 공부 잘 하고 운동 잘 하는 자기네 반 반장을 모두 좋아하였다.

중학교 가족 체육 운동회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발목을 한 데 묶고 절주 있게 앞으로 달리는 경기가 한창이었는데 키가 큰 아들과 키가 작은 아버지가 펌프 절주가 잘 맞지 않아 몇 발자국 못 가서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의 폭소 속에서 간신히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던 아들은 이미 정해진 꼴등이 확인되자 천천히 두 발목에 묶은 끈을 풀더니 싱긋 웃으며 아버지를 등에 업고 뒤뚱뒤뚱 목적지까지 달려갔다. 온 운동장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느님께서 용케도 만들어 주셨네, 저런 복이 있을 줄이야.”

주위 사람들은 혀를 차며 감탄을 하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맞지 않는 키에도 눈에 띄게 정이 좋은 두 부부의 이야기를 하였고, 공부 잘 하고 멋지게 생긴 효심 있는 아들애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여자는 첫애를 낳고 심한 하혈로 오랫동안 몸져눕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후로 다시는 임신이 안 되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하나 자식 열 부럽지 않게 키워 가고 있었으니 집안엔 항상 찬란한 햇살이 넘쳤고 세 식구의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찰랑거렸다.

아들애가 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그해 여름이었다. 아들애는 외할머니댁으로 놀러 갔다. 나무그늘 밑에서 부채질을 해도 땀이 흐르는 찜통더위다. 그 또래 외할머니 동네 애들은 시가지에서 온 이 멋진 중학생을 모두 좋아했다. 그들은 합의가 되어 저수지에 가서 시원한 물놀이를 하기로 하였다. 친구 중에서 수영을 제일 잘 하는 이 도시 애는 반짝반짝 햇볕을 반사하는 수면을 바라보며 서서히 안쪽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저수지 가장자리에서만 물놀이를 하고 있던 친구들은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손뼉도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애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속에서 무더운 녹음에 파묻힌 저수지의 시원한 풍경은 그처럼 안온속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자맥질하며 나아가던 그 애의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솟구치기를 두 번 하더니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멀찌감치 서서 영문을 모른 체 이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동생뻘 어린 친구들은 더는 수면 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그제야 자지러지게 소리들을 지르기 시작했다.

“형아! 빨리 나와, 빨리! ”

“큰일 났어요,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

저수지를 만들 때 가끔은 깊은 웅덩이가 생긴다 한다. 저수지 중앙을 향해 활기차게 헤엄쳐 가던 그 애는 바로 그 깊은 웅덩이- 블랙홀 같은 마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서 두어 번 솟구치던 그 애는 꿀꺽 종적을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 내외가 소식을 전해듣고 허둥지둥 찾아왔을 때는 이미 퉁퉁 부은 아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을 때였다. 아, 세상이 뒤집히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목을 맨다고 산으로 들어간 외할머니를 동네 사람들이 겨우 찾아내었다. 사람들을 뿌리치고 곡기를 끊고 아들의 무덤 앞에서 사흘 밤을 지새운 엄마는 끝내 실신하여 누워 앓기 시작했다.

집 문 앞 큰길엔 학교로 등하교하는 또래 애들의 웃음소리 말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리고 늘 아들의 얼굴을 비춰주던 책상 위의 스탠드, 저 아들의 손때 묻은 책들과 벽, 어디에나 걸려 있는 번듯한 아들애의 웃는 얼굴을 담은 액자들, 모든 것은 그대로 눈앞에 생생한데 아들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없는 텅 빈 방. 이 큰 성시의 그 많은 인파 속 어디에도 가슴을 허비는 그 그리움의 그림자는 찾아낼 수 없었다. 진물이 나는 가슴을 끌어안고 여자는 일 년 넘게 누워 있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아들도 잃어버리고 오랜 병가에 직장도 잃어버렸다. 몸이 간신히 회복되었을 때 그들은 도저히 이 집, 이 성시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어디에나 아들의 흔적이 눈에 밟히는 아픔을 참아낼 수 없었다. 피가 흐르는 가슴을 다독이며 멀리멀리 어딘가에 가서 망각이란 깊은 늪에 빠져 살고 싶었다.

“당신에겐 아직 내가 있고 나에겐 당신이 있잖소. 우린 한시도 떨어 지지 말고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살아갑시다.”

그들은 아픈 마음을 서로 끌어안고 모든 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이 생소한 고장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낡고 허술한 공장은 인력난에 시달리던 터여서 마침 그들로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러나 두 내외 상처의 피는 여전히 흐르고 깊이 내린 악몽의 뿌리는 시시각각 끝없이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집 뒤 개천에서 애들은 끊임없이 웃고 떠들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집 안에서 칡나무댁은 멈추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남편은 일어서서 앞뒤 창문을 꽁꽁 닫아 버렸다. 그리곤 아내를 부둥켜안고 같이 흐느꼈다. 그는 오랫동안 참고 있던 아내의 슬픔과 눈물을 쉽게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외딴집의 달력도 벌써 몇 개를 바꾸었다. 시간은 피 흐르는 아픈 상처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망각을 위하여 혹시 둘 중 누구라도 손을 놓으면 무너질 것 같아 그림자처럼 동행하며 서로 버팀목의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한 우산도 꼭 같이 쓰는 습관이 되었을까?

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에서 그 부부의 그림자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다. 항상 딱 붙어서 불균형한 특유의 풍경을 이루며 동네를 가로질러 다니던 부부이었던지라 모두 머리를 기웃거리며 행방을 궁금해하였다. 혹 또 이사라도 갔나?

그렇게 얼마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숨 막힐 듯 답답하게 펼쳐진 하늘이다. 물기 가득한 먹구름이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해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떠 있더니 끝내 와당탕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를 지르며 쏴 하고 몸체의 모든 것을 쏟아버린다. 소낙비는 거침없이 닥치는 대로 퍼붓는다.

여자가 동네 거리에 나타났다. 늘씬하고 가냘픈 몸매는 더 휘청거렸고 풀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은 더 조막만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일색 검정 옷을 입고 있었다. 살펴보니 항상 그녀 옆에서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동행하던 키 작은 남편이 없어졌다. 웬일이야? 별로 익숙하지도 않고 종래로 웃음기도 없는 그녀에게 동네 사람들은 직접 물어보기도 그러했다. 그들이 다니는 공장에서 소문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남편이 어느 날 밤에 심부전으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것이었다.

“에그 불쌍하기도, 그때 그 교통사고 땜에 병이 더해진 거 아닌가? ”

사람들은 혀를 찼다. 그리고 그 소문도 놀랍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여자가 예전과 변함없이, 사람들의 눈에 익은 그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데 마치 키 작은, 절룩거리는 남편이 그의 옆에서 동행하듯이 예전과 똑같이 우산을 오른쪽으로 한껏 비껴들고 걷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자신의 한쪽 어깨와 등줄기는 비에 흠뻑 젖고 있었다. 분명 그녀는 옛 그대로 남편과 같이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굴엔 예전보다 더 굳어 보이는 납덩이같은 막 한 층을 씌워 놓고 있었다.

온종일 집에 누워 있던 여자는 저녁 무렵이 되자 간신히 몸을 춰 세우며 일어났다. 그는 마을에서 좀 떨어진 작은 시장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 왔다. 집에 있던 피망을 섞어서 뚝딱뚝딱 도마 위에서 만두소를 만들어내 몇 안 되는 만두를 만들었다.

장맛비에 뒷산 언덕 아래의 개천은 잔뜩 덩치가 커져서 강물처럼 누런 물살을 이루며 출렁출렁 거세게 흘러내린다. 장맛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저녁노을이 들녘과 강물을 비춘다. 찍소리 없이 풀숲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또 곡을 터뜨린다. 창문을 열고 멍하니 그녀는 초점 없는 눈길을 흐르는 강물에 하염없이 꽂고 있다.

얼마가 지났을까? 시름을 버린 듯 장롱 앞에 주저앉더니 이 옷 저 옷을 꺼냈다. 흘러간 그 긴 아픔의 세월에도 풀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강한 정념 덩어리를 이제는 그만 다 쏟아버린 듯한 휑한 눈길로 옷 한 벌을 고른다. 모처럼 간단한 화장도 하였다. 만두를 담은 그릇을 바구니에 담고 천천히 문밖을 나섰다. 한참 서서 무슨 생각을 하던 그녀는 곧바로 집 뒤쪽 고샅을 따라 걸어 나갔다. 또다시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가엔 풀어헤친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영혼 없는 여인 같은 키 큰 수양버들이 있다. 실실이 풍성한 가지들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녀는 바구니를 들고 수양버들 아래로 가서 어둠에 천지간의 윤곽이 사라진 먼 곳- 밑굽 없는 함정 같은 묘연한 그곳을 바라보았다. 한참 있다가 바구니에서 만두를 꺼내었다.

-만두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랑하는 내 아들, 엄마는 매일 출퇴근에 바빠 그렇게 좋아하던 만두도 몇 번 못 해 주었구나…. 그리고 여보, 더는 버틸 수가 없네요. 당신도 만두 드실라우?

그녀는 만두를 하나하나 강물에 뿌렸다. 그리고 신을 벗었다.

며칠의 폭우에 잔뜩 사나워진 강물은 그가 몇 발자국 들여놓기 바쁘게 허리를 치며 힘없이 몸을 맡기는 그녀를 넘어뜨렸다. 그녀는 추후의 미련도 없었다. 오히려 온몸이 알 수 없는 무아지경의 격정에 붕 떠 있었다. 그는 물을 삼키며 아들을 보았고 남편을 보았다.

바로 이때였다. 조그마한 물체 하나가 물을 삼키고 있는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눈을 번쩍 뜬 그녀의 눈앞엔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물결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빛은 엄마를 찾는 어린 아기의 처절한 눈빛이었다. 강아지는 살겠다고 깽깽거렸다. 문득 무엇이 머리를 탁 치는 감을 느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강아지를 끌어당겼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강아지를 품에 안고 물을 토하며 강가로 간신히 걸어 나와 풀숲에 훌러덩 누워 버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간신히 눈을 뜨고 눈앞에 놓인 작은 물체를 바라보았다. 물에 푹 젖어 착 달라붙은 털 때문에 역시 가느다란 알몸뚱이가 된 강아지의 얇은 뱃가죽이 팔딱팔딱 할딱이고 있었다. 조금 있더니 강아지는 몸을 일으켜 그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연약한 생명체가 희미한 숨결을 고르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서 가느다란 눈물이 흘렀다. 너 엄마는? 넌 이 세상에 온 지 몇 달이나 되니? 그녀가 중얼거렸다. 어린 강아지는 그녀의 눈빛을 느끼자 혓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싹싹 핥아주고 있었다. 먼 옛날 어린 아들이 젖을 달라고 엄마 품을 파고 들던 기억이 아리송하게 떠올랐다. 방금 강가에 버렸던 만두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옆에 만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긴 팔을 내밀어 만두를 주웠다. 어둠 속에서 파란 불이 켜진 강아지 눈이 재빨리 만두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래 먹어라. 넌 길을 잃은 거니, 아니면 버림받아 이렇게 된 거니? 강아지는 그녀의 손바닥에 있는 만두를 냉큼 삼켰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비칠거리며 강아지를 바구니에 담고 일어섰다.

얼마가 지났을까, 동네 사람들은 칡나무댁이 얼룩 강아지 한 마리를 늘 품에 안고 다니는 걸 보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강아지도 그 여자의 우산 아래서 꼭 동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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