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13
0
1
양지 바른 벌 안은 하얀 이불솜으로 덮어 놓은 것 같았다. 며칠 전 산자락의 목화밭에서 목화대를 넉걷이하였다. 볕 좋은 산소 옆에 펼쳐 널어 놓았다. 목화대의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다래가 말랐다. 껍질이 벌어졌다. 목화송이가 활짝 핀 꽃처럼 흐드러졌다. 영락없이 해맑은 가을하늘에 피어오르고 있는 하얀 뭉게구름이었다. 햇빛을 받아 눈이 부셨다.
“끝물인데도 목화숭어리가 유난히도 탐스럽네?”
부춘양반은 바지게를 벗었다. 발채에서 작대기를 꺼냈다. 작대기의 알구지를 윗세장에 끼웠다. 지게발동이 흔들리지 않도록 받쳤다. 지게를 단단히 고정시켜 세워 놓았다.
“영락없는 뭉게구름이여!”
“활짝 핀 수국 같기도 하고!”
부부는 다래가 쩍 벌어진 목화의 숭어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무명밭에서 수확했던 품질 좋은 맏물의 목화는 공출로 빼앗겨 버렸었지?”
부춘양반은 찬물을 쫙 흩뿌려댔다. 그리고 입술을 빨았다. 못내 아쉬웠다.
“썩을놈의 공출이 무엇이라고!”
부춘댁은 남편을 바라보며 퉁바리를 하듯이 투정을 부렸다. 첫물의 질 좋은 목화는 공출로 빼앗겨버렸다. 두고두고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괴롭혔다.
“그놈의 공출이!”
부춘양반은 수리봉 위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목화 같은 뭉게구름을 바라보았다.
“이 끝물도 공출로 강탈해 가려나…?”
부춘댁은 마른침을 삼켰다. 활짝 핀 목화를 따기 시작했다.
“양심이 있지… 그렇게까지?”
부춘양반은 딴 목화를 마대자루에 담았다.
“양심! 순사의 떨거지들이… 무슨 얼어죽을 놈의 양심?”
부춘댁은 목화를 한 주먹 깠다. 입고 있는 무명치마의 자락을 접어 만들어 놓은 보자기에 넣었다.
“설마 끝물이야…?”
“여름에는 담배밭에 와서 담배의 잎까지 세어 가지 않았소?”
“그랬었지.”
“쪽발이 왜놈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개 같은 놈들이라…!”
“순사의 패거리들이 천사라던가요?”
“궤사를 부리는 사악한 악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제 놈들도 사람이기에…?”
“사람이 그런 짓을 해요? 짐승만도 못한 놈들!”
“이 원한은 천배만배로 되갚아주어야 하는데…?”
“때가 오겠지요. 반드시… 원한을 앙갚음으로 대갚음할 날이!”
부춘양반과 부춘댁은 장단을 맞추듯이 주고받았다. 만수받이하며 원한을 짓씹어댔다.
산새 한 마리가 산기슭의 다복솔 위에 앉아 있었다. 한참 동안 엿듣고 있다가 골짜기로 날아가 버렸다.
2
수리봉 너머 해넘이에서는 저녁노을의 불이 붙었다. 검붉은 불꽃이 쪽빛 하늘을 태우며 번져 갔다. 이렇게 하루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산골짜기를 이부자리처럼 덮고 있던 산그늘이 땅거미로 변했다. 어느새 어웅해졌다. 어둠은 하룻밤의 둥지인 보금자리에 깃들었다. 잠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누워버렸다.
뒷동산 산마루에서는 올빼미가 울고 있었다. 밤의 무서운 뜬것을 어둠 속으로 내몰았다.
해가 떨어지니 초겨울의 날카로워진 산바람이 앙가슴을 후벼 팠다. 한겨울의 된바람보다 더 매섭고 시리었다. 영락없는 삭풍 끝의 칼날이었다.
“어서 갑시다. 해가 떨어져서…. 누렁이의 쇠죽도 쑤어야 하고….”
부춘양반은 보채었다. 다리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밤바람 속에 바늘 같은 차가움이 숨어서 찔러대네…!”
부춘댁은 저고리의 옷깃을 여미었다. 턱이 방아를 찧어댔다.
“나머지는 내일 따고…?”
부춘양반은 다급하게 재우쳤다. 올빼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서워졌다. 밤의 뜬것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요. 오늘만 날이 간. 내일도 있으니….”
부춘댁은 치마에 담아 놓은 목화를 우대며 허리를 폈다. 펼쳐 놓았던 보자기 위에 털어버렸다. 그리고 감쌌다. 짓누르며 단단히 묶었다.
“많고 많은 날, 피땀 흘리며 뼈 빠지게 일만 해야 하니….”
부춘양반은 목화가 든 마대자루를 새끼 매끼로 묶었다. 그리고 작대기를 받쳐 세워 놓은 바지게의 발채 위에 얹었다. 아내가 싼 목화의 보자기도 올려놓았다.
면도칼로 애는 듯한 밤바람이 볼을 스치며 지나갔다.
3
공동묘지의 산등성이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서는 멧비둘기가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헤어진 짝을 부르고 있었다. 홀로 지새우는 밤이 외롭다며 흐느꼈다.
“이번 끝물은 베를 낳아야 할 텐데….”
부춘양반은 어둠의 적막이 무서웠다. 두려움을 쫓으려고 아내에게 건넨 말이었다.
“좋은 자리가 생기면 딸년 여의 살리는 안 시키고?”
부춘댁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되받았다.
“그러네, 딸년 시집도 보내야 하는데….”
“솜이불 한 채는 해 주어야….”
부춘댁은 앞서 가며 힐끗 돌아보았다.
“맞아, 피도 안 마른 어린 딸년을 처녀공출로 빼앗길 수는 없지!”
“그래서 서둘러야 하는데….”
“생떼 같은 딸년을 성노예인 군인들의 창녀로 만들다니….”
부춘양반은 마른침을 삼켰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마시오. 듣기도 싫네!”
부춘댁은 드잡이를 하듯이 버럭 화를 냈다.
“위안부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무슨 얼어죽을 놈의 군인들의 위안부! 성노예인 창녀지!”
부춘양반은 대거리하듯이 덧붙였다.
“젖도 덜 떨어진 어린 여자애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그것뿐이간! 공출을 생각하면?”
“식량을 강탈해 가는 나락 공출!”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언어 공출!”
“우리 이름 석 자를 쓰지 못하게 창씨개명인 이름 공출!”
“공출로 걷어 가듯이… 제사나 우리 명절을 지내지 못하게 하고.”
“그러면서, 우리더러 신사참배 하라고?”
“미쳐도 유분수지. 넋까지 공출처럼 빼앗아 가겠다고!”
“무기를 만들려고 거두어 간 쇠붙이 공출!”
“참기름 공출, 아주까리기름 공출, 동백기름 공출, 송진 공출….”
“그놈의 공출, 공출, 공출!”
“쪽발이 왜놈들은 사람 죽이는 전쟁에 눈이 멀어서….”
부춘양반과 부춘댁은 판소리를 할 때에 추임새를 메겨 가며 장단을 맞추듯이 만수받이 하였다.
부춘댁 내외는 무서운 땅거미에 쫓기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우쳤다. 밭틀길이 소삽했다. 항상 다니는 난든 집인 익숙한 들길인데 더듬거려졌다. 무거운 발걸음을 총총 옮겼다.
하늘을 불태우던 저녁노을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별들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자리를 잡았다. 눈동자를 깜박거리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하늘의 슬픈 사연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흩뿌려 대고 있었다.
4
지난밤에는 유난히도 쌀쌀했었다. 하늘은 청소를 해놓은 것처럼 깨끗한 쪽빛이었다. 초가집의 지붕 위에는 서리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눈이 내려 하얗게 덮고 있는 것 같았다.
먼동이 텄다. 해돋이에서 얼굴을 내민 해의 빛줄기가 지붕 위를 덮었다.
“부춘양반, 부춘양반!”
부춘댁은 부엌에서 얼굴을 내밀며 다급하게 불러댔다.
“무슨 숨넘어가는 소리?”
부춘양반은 외양간에서 소죽을 쓰느라 가마솥의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있다. 후다닥 마당으로 나갔다.
“베를 낳으려면 솜을 타 와야 되겠어요?”
“나더러 목화를 물레방간에 가져다주라고?”
“그럼 날더러 머리에 이고 가라는 거요? 마누라를 황소처럼 부려먹으려고만 해!”
부춘댁은 퉁명스럽게 쏘아댔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 말이 아니라…?”
부춘양반은 돌아섰다.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가마솥의 솥뚜껑을 열었다. 펄펄 끓고 소죽을 갈고리로 뒤적거렸다.
“내 말이 틀렸는가?”
부춘댁은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솥에 밥을 안쳐 놓았다. 갈퀴나 무를 아궁이에 지펴 놓았다. 모닥불이 아궁이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솥뚜껑에서는 눈물 같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닭장에서는 늦잠에서 깨어난 수탉이 하품하듯 울어대고 있었다.
5
부춘댁은 해동갑하여 솜을 타왔다.
해가 졌다. 어둑어둑해졌다. 이웃 아낙들이 부춘댁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손에는 가느다란 수숫대를 쥐고 있었다. 타온 솜을 고치 마리하기 위해서였다. 동네 아낙네들은 두레 길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품앗이를 했다.
방 가운데에는 남산만 한 솜덩이가 놓여 있었다. 아낙네들은 상을 앞에 놓고 둘러앉았다. 솜덩이에서 솜을 약간씩 떼어냈다. 상 위에 펼쳐 놓았다. 수숫대를 얹었다. 솜을 김밥을 말듯이 수숫대에 감싸 말았다. 손바닥으로 살짝 누르며 가볍게 비볐다. 솜이 수숫대에 가래떡같이 기다랗게 말렸다. 수숫대를 빼냈다. 고치가 되었다. 고치를 모재비나 고리짝에 담아 놓았다.
“부춘댁은 금년에 무명농사를 많이 지었어?”
한 아낙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딸년 여의 사리시키려고…?”
부춘댁은 기다렸다는 듯이 댓바람에 받았다.
“솜이불을 만들려면 솜이 적잖게 드는데…?”
회촌댁이 걱정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질 좋은 맏물을 공출로 빼앗겨버려서….”
부춘댁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썩을 놈들….”
“저번에 한 번 훑고 지나갔으니….”
“할당량을 채운다고 하면서 겨우내내 뒤져 될 텐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들쑤셔대니….”
아낙네들은 수심과 걱정에 휩싸였다. 한숨과 서러움을 토해냈다.
6
“목포 항구에는… 공출로 빼앗은… 물건들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면서?”
“그중 가장 많은 삼백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던데…?”
“삼백이라니? 세 가지 하얀 색깔?”
“쌀, 소금, 목화!”
누군가가 댓바람에 메지었다.
“그러네, 모두가 하얀 색깔!”
“대한민국 국민은 굶어 죽으라고!”
아낙들은 서러운 사연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동네 아낙들의 베 낳기는 난든 집이었다. 고치 말기의 손놀림은 번개였다. 든 손에 고치 말기를 마쳤다.
부춘댁은 밤참으로 삶은 고구마와 동치미를 내왔다.
7
“곧 날 새겠네. 고마웠어요.”
부춘댁은 발등걸이하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밤이 이슥해져 미안했다. 잡아 놓을 수가 없었다. 눈을 붙여 두어야 내일 일을 할 수 있었다.
“벌써 한밤중?”
아낙들은 툇마루로 나갔다. 잠시 지정거렸다. 어둠이 장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산의 멧부리 위에서는 유성이 대보름날 쥐불놀이를 하듯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내일 밤에는 우리 집에서 봅시다.”
정선댁은 토방에 내려서며 당부했다.
“정선댁도 무명 길쌈하려고?”
아낙들은 마당으로 내려섰다.
“베 낳아 애들에게 진솔옷을 입히려고….”
정선댁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얼른 받았다.
“명절이 되면 자식들이 빔을 입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저절로 배가 불러!”
덕산댁이 시샘했다.
“그것이 바로 행복이여!”
부춘댁은 회두리에서 맞장구를 쳤다. 배웅하려고 사립문까지 따라 나가고 있었다.
8
따다닥 따다닥…. 잠시 멈추었던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기나긴 밤을 다듬이질로 지새우려나 보네?”
“명절 대목도 아닌데….”
“밀린 빨래. 푸쟁을 하나 보지.”
“무명 베옷에 푸새하여 넓다듬이를 하는 걸까?”
“명주 베를 홍두깨에 올려 곱게 다듬는 홍두깨 다듬이질일 거야.”
“다듬잇살이 올라 반들반들해질 때까지 정성을 다하나 보네.”
“어깨 빠지겠네!”
아낙네들은 고샅으로 나가며 한 마디씩 했다. 뒷동산의 산마루에서 부엉이가 울고 있었다.
9
“어두운 밤길 조심해 가요.”
부춘댁은 골목으로 나갔다.
“눈 감고도 다니던 고샅인데….”
“골목이 어웅해서 소삽하니까 조심해!”
“돌부리에 걸릴라.”
아낙네들은 소삽한 밤길을 기어가듯이 더듬거렸다. 다듬이질을 하는 방망이 소리는 얼음처럼 단단히 응고된 한밤중의 적막을 산산이 부수어댔다.
10
부춘양반은 오늘도 사랑방에서 가느다란 새끼를 곱게 꼬았다. 멍석을 짜기 위해서 준비 중이었다. 다듬어 놓은 짚이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왔다. 산의 그림자는 이불처럼 마당을 덮고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제사 와요?”
부춘댁은 저녁 준비를 하려고 부엌으로 가려다가 멈추어 섰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남편을 바라보며 짜증을 냈다.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았는데….”
부춘양반은 들고 있는 사린 새끼줄을 추켜들어 보여주었다.
“그러게 서 있지 말고, 물레나 차려주어요!”
부춘댁은 다그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저녁거리인 고구마를 삶아야 했다.
“누렁이 소죽을 쑤어야 하는데….”
부춘양반은 헛간으로 가며 두런거렸다.
“물레부터 차려 놓고!”
부춘댁은 괜히 다급해졌다. 세상살이가 답답하여 짜증이 났다. 그 화풀이를 남편에게 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부춘양반은 새끼 타래를 헛간의 시렁 위에 올려놓았다.
“물레를 차려주라고?”
부춘양반은 시렁 구석에 놓여 있는 물레틀을 내렸다.
“지체하지 말고 지금 당장!”
부춘댁은 닦달하며 다그쳐댔다.
“어련히 알아서 해줄까.”
부춘양반은 물레틀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빗자루로 물레틀에 쌓여 있는 먼지를 쓸며 털었다.
11
어둠이 깃들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워 눈이 내리려나?”
부춘댁은 설거지를 마치고 부엌에서 나왔다. 토방에 서서 눈이 내리고 있는 어웅한 하늘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내 정신 좀 봐라, 무명을 자사야 하는데….”
부춘댁은 툇마루로 올라섰다.
“멍석을 만든다고 하더니, 벌써 사랑방에 갔나?”
부춘댁은 방 안으로 들어가며 두런거렸다.
“불을 켜야 하는데….”
부춘댁은 캄캄하여 기둥처럼 서 있었다.
“귀하디 귀한 성냥이 있을 텐데….”
부춘댁의 등잔 밑을 더듬거렸다. 성냥을 찾았다. 호롱불을 켰다. 캄캄한 방 안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졌다.
12
부춘댁은 등잔대를 물레 곁에 놓았다. 물레 앞에 앉았다. 물레를 찬찬히 뜯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괴머리는…?”
부춘댁은 괴머리를 들여다보았다.
“괴머리 기둥이야 쪼개지지 않을 것이고….”
부춘댁은 두 개의 괴머리 기둥을 하나씩 쓰다듬었다.
“가락고동은 많이 닳았네.”
부춘댁은 괴머리 기둥에 붙어 있는 가락고동을 응시했다. 여러 해를 써서 그런지 가락지 같은 고동이 많이 닳아 움푹 파여 있었다.
“꼭지마리는…?”
부춘댁은 물레를 돌리는 손잡이를 덥석 잡았다.
“굴똥은 튼튼하니까?”
부춘댁은 꼬지마리를 천천히 돌렸다. 물레를 돌리는 굴대를 눈여겨보았다.
“금년에는 동줄 걸이가 부러지지 않겠지?”
“가끔은 동줄이 풀려서 말썽을 부리기도 하는데….”
부춘댁은 동줄을 만졌다. 동줄 걸이도 살펴보았다.
“물레기둥이 튼튼하니까….”
부춘댁은 굴대를 받혀 걸치고 있는 물레기둥을 붙잡았다. 흔들어보았다.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물레틀과 괴머리를 이어주는 새장은 볼 것이 없겠지?”
부춘댁은 노파심이 났다. 새장이 부러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물렛돌도 이 정도면….”
물레의 새장 위에 얹혀 있는 물렛돌을 흔들어보았다. 물렛돌이 물레틀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었다.
“한두 번 차려본 솜씨가 아니어….”
부춘댁은 은근히 부춘양반이 자랑스러웠다. 괜한 일로 타박하며 투정을 부렸던 것이 미안했다. 뒷동산에서는 올빼미가 울고 있었다.
13
부춘댁은 물레틀의 동줄 위에 물렛줄을 걸쳐 묶었다. 물렛줄을 가락의 가운데에 한 번 감았다. 가락을 가락고동에 끼워 넣었다. 새장에 끼워 있는 괴머리를 밖으로 잡아 당겼다. 물렛줄이 팽팽해졌다. 종지에 따라 놓은 피마자기름을 면봉에 무쳤다. 가락고동에 발랐다. 가락이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였다.
위잉∼ 위윙∼. 부춘댁은 물레를 몇 번 돌려보았다. 물렛줄의 간격이 적당했다.
“물레야, 잘도 돌아라!”
부춘댁은 친구에게 말하듯이 당부했다.
“가락에 옷을 입히고….”
부춘댁은 준비해 놓은 가락옷인 지푸라기를 가락에 끼워 입혔다. 가락옷은 댓잎, 종이,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사용했다. 무명을 자를 때에는 가락에 가락옷을 입혀야 되었다. 그래야 가락토리를 뽑아내기가 수월했다. 전대로 꾸리감기를 할 때에도 유용했다. 토리의 실이 모두 풀릴 때까지 뒤엉키지 않게 해주었다.
14
부춘댁은 고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고치의 한쪽 끝을 손가락 비볐다. 실처럼 가늘게 늘어뜨렸다. 실이 된 고치 끝에 침을 발랐다. 옷을 입혀 놓은 가락의 끝에 붙었다. 꼭지마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돌렸다. 물레가 돌아가며 가락이 신음을 하듯이 울어댔다. 가락의 끝에서는 고치솜이 가느다란 실로 변했다.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고치의 솜을 조금씩 놓아주며 팔을 위로 올렸다. 가느다란 실이 길게 늘어졌다. 고치를 든 팔이 완전히 펴졌다. 꼭지마리를 약간 반대로 돌렸다. 그리고 고치를 들고 있는 손을 내렸다. 가락옷 위에 실이 감겨졌다. 이렇게 반복하며 무명을 자았다.
“물레가 잘 돌아가네!”
부춘댁은 고치가 다 되면 다른 고치를 덧대어 이어주었다.
“무명 잣기는 눈 감고도 하는데….”
부춘댁은 신명이 났다.
“무명길쌈이야 난든집이고….”
부춘댁은 무명길쌈을 할 때에는 손바람을 냈다. 마당에는 함박눈이 내리며 쌓여 갔다.
15
밤은 이슥하게 깊어졌다. 호롱불은 가물거리며 졸고 있었다. 뒷집에서 수탉이 홰를 치고 있었다.
“물레야 물레야, 윙윙윙 돌아라∼ 워리덩 서리덩 잘도 돈다∼.”
부춘댁은 흐느끼듯이 물레노래를 불렀다.
“마포 갈포 실뽑기는∼ 삼한시대 유업이요∼ 무명실로 베 짜기는∼ 문익점의 공덕이로다∼ 호롱불은 도도하고∼ 이 밤이 새도록∼.”
부춘댁은 흥얼거렸다. 서러워 흐느끼고 있었다. 뒷동산 대밭에서는 잠 못 이룬 멧새가 푸덕거려댔다.
16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섣달이 되었다. 부춘댁은 지난밤 무명을 자며 꼬박 지새웠다. 부춘댁은 물레를 돌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였다. 순사의 뭇따래기들이 부춘양반 집 사립문을 몰려 들어갔다. 뒤란, 헛간, 돼지우리, 외양간 등으로 흩어졌다. 손에 들고 있는 기다란 쇠꼬챙이로 집 안을 들쑤셔댔다. 눈에는 산불이 켜져 있었다. 부춘댁은 졸음 때문에 인기척을 듣지 못했다.
“부춘양반!”
구장은 마당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
“방 안에서 물레 소리가 나는데…?”
구장은 토방에 올라섰다.
“부춘댁!”
구장은 화풀이를 하듯이 소리쳤다.
“구장이…?”
부춘댁은 깜짝 놀랐다. 졸음이 달아났다. 물레질을 멈추었다. 벌떡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갔다.
“구장이 무슨 일로?”
부춘댁은 토방에 서 있는 구장을 바라보았다.
“보면 모르겠소?”
구장은 퉁바리를 놓았다.
“순사의 떨거지들이 공출을 핑계로 강도질해 가려고…?”
부춘댁은 마당 가운데에 있는 칼 찬 순사를 노려보았다. 몸이 기둥처럼 굳어버렸다.
17
한 시내는 장맞이하고 있었다는 듯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구두를 신은 채로였다.
“날강도 놈들!”
부춘댁은 악을 썼다.
“날강도라니? 공출도 몰라?”
사내는 힐끗 돌아보며 비웃었다.
“강도질로 갈취해 가면서!”
부춘댁은 세상 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목화공출은 뒷전이고, 무명길쌈을 하고 자빠졌네.”
사내는 물레를 노려보았다.
“베를 낳아야 옷을 입고 살지!”
부춘댁은 부라퀴처럼 대거리해댔다.
“잘 놀아난다!”
사내는 귀넘어들었다.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짐승만도 못한 쪽발이 왜놈의 앞잡이 놈들아!”
부춘댁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일본의 앞잡이들이다! 어쩔 건데?”
사내는 시렁에서 고리짝을 내렸다.
“날벼락이나 맞이 즉사할 놈들!”
부춘댁은 드잡이를 하듯이 소리쳤다.
“고치를 많이도 말아 놓았네!”
사내는 고리짝 뚜껑을 열었다. 고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 베 낳으려고!”
부춘댁은 악이 받아 비명을 질렀다.
“모재비에도…?”
사내는 신바람이 났다. 보물을 찾아낸 것처럼 소리쳤다.
18
“짚뭇가래 속에 나락가마니가 들어 있었어요!”
사내는 뒤란에서 나락가마니를 가대기하고 나왔다. 순사에게 보고하고 사립문을 나갔다.
“나락이 나왔어?”
순사는 빙긋이 웃었다.
“담배도요!”
다른 사내는 담배가 든 마대를 어깨에 메고 뒤따라 나왔다.
“수지맞았네!”
순사의 날카로운 시선이 부춘댁을 찔러댔다.
“장독대의 독아지에 씨나락도 있는데!”
부춘댁은 순사를 향해 어깃장을 놓았다.
“가져가라고 하면 못 가져갈 것 같아!”
순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유기그릇을 찾았어요.”
한 사내가 헛간에서 나오며 소리쳤다.
“쟁기보습, 쟁기볏, 쇠스랑, 괭이, 삽, 삼지창도 가져가니까 그렇게 알아!”
다른 사내는 쇠붙이를 담은 가마니를 들고 가며 조롱했다.
“쟁기째 모두 가져가지! 농사는 어떻게 자라고?”
부춘댁은 눈을 흘기며 눈물바람을 했다.
“돼지우리에는 목화가 숨어 있어서….”
사내는 돼지우리에서 나왔다. 목화가 든 자루를 메고 있었다.
“오늘은 노다지를 캤으니 철수다!”
순사는 떨거지들을 앞세우고 사립문을 나갔다.
“저놈들이 어떻게 알고…?”
부춘댁은 할 말을 잃었다. 눈에서 서러운 눈물이 하염없이 펑펑 쏟아졌다.
19
집 안은 살풍경으로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순사의 뭇따래기들이 나가니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부춘댁은 툇마루에 앉아 서럽게 흘쩍거리고 있었다.
“순사가 왔다고?”
부춘양반은 헐떡거리며 사립문을 들어섰다.
“일찍도 오네!”
부춘댁은 퉁바리를 놓았다.
“멍석을 짜다 보니….”
부춘양반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내 보기가 민망했다. 허둥대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이 그랬다. 사랑방에서 멍석을 짜고 있었다. 순사가 떨거지들을 몰고 마을에 들이닥쳤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쏜살처럼 달려왔다.
“이제 어쩔 거요?”
부춘댁은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엉엉 울어버렸다. 더욱 서러워졌다.
“어쩌긴…?”
부춘양반은 고개를 돌렸다. 눈물을 닦았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다.
“싹 다 가져갔어요!”
부춘댁은 죄 없는 남편을 원망하고 있었다.
“무얼 가져갔는데?”
“뒤란 짚뭇가래 속이 감추어 놓은 것 모두….”
부춘댁은 서러움이 복받쳤다. 말문이 막혔다.
“나락하고 담배?”
부춘양반은 장단을 맞추었다.
“유기그릇, 목화, 쟁기보습, 쟁기 볏, 쇠스랑, 괭이, 삽 등….”
“쇠로 생긴 것은 모두 다?”
“그래요, 모두 다!”
부춘댁은 먼 산 바라기를 하며 외쳤다.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을까?”
“고스락에는 영락없이 굶어 죽게 생겼네!”
“굶어 죽기야 하겠어?”
부춘양반은 보릿고개의 고스락을 상상했다. 쑥죽을 쑬 때 곡기하려고 감추어 놓은 벼였다. 명줄을 이어가는 아주 소중한 먹을거리였다.
20
“다른 것은 몰라도 벼만은 꼭 되찾아와야 하는데….”
부춘양반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굶어 죽을 수는 없었다. 명줄은 이어가야 했다.
“방금 전에 가지고 나갔으니….”
부춘댁은 남편을 떠밀었다. 빼앗긴 것을 찾아오라고!
“동네 앞 공터에…?”
부춘양반은 부린 살처럼 날아갔다.
21
마을 사람들은 동네 앞 공터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나락가마니 여러 개가 노적가리처럼 쌓여 있었다. 목화와 솜의 무더기도 있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유기그릇이 보였다. 5척 7척 9척의 반상기가 전시회를 하는 것처럼 진열해 놓았다. 놋그릇, 놋숟가락, 놋젓가락, 놋대야, 놋요강도 있었다. 괭이, 삽, 쟁기보습, 쟁기 볏, 쇠스랑, 삼지창, 호미 등의 쇠로 만든 농기구들이 아무렇게나 너절하게 쌓여 있었다. 담배가 든 자루도 여러 개였다. 새로 짠 가마니는 한쪽에 높이 쌓아 놓았다. 동백기름, 아주까리기름, 들기름, 참기름 등의 기름병도 보였다. 모두가 동네에서 날강도질해서 갈취한 물건들이었다.
22
사내들은 미리 소달구지 하나를 준비해 놓았었다. 공출로 강도질한 물건들을 달구지에 얹어 실었다.
“어서 실어! 꾸물거리지 말고!”
순사는 가시채로 채찍질하듯 다그쳤다. 사내들은 다급하게 나대었다.
“쇠붙이로 전쟁하는 총을 만든다면서?”
“실탄도 만들겠지?”
“사람이 밥을 담아 먹어야 하는 반상기를 빼앗아다가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든다고?”
사내들은 총을 쏘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입 닫아. 짐이나 서둘러 실어. 뻘소리 하지 말고!”
순사는 사내들의 입술에 쇠고랑을 채웠다.
23
마을 사람들은 멀리 서서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공출, 공출 좋아하네!”
“대낮에 강도질하면서!”
“나라를 빼앗기니…!”
“쪽발이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가 몇 해이던가?”
“1910년에 빼앗겼으니….”
“금년은 1943이지?”
“왜놈들에게 자닝스럽게 짓밟히며 노예 생활로 짓구기는 처절한 삶의 햇수가 어언 33년?”
“앞으로 얼마나 더…?”
동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흘쩍거리며 한탄했다.
“평화로운 세상은 찾아올까?”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마을 사람들은 허수아비처럼 서서 원한을 짓씹었다. 서럽게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24
골목에서는 마을 아낙네들이 내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죽으라는 것인가.”
“그래, 굶어 죽으라는 것이겠지.”
“해도, 해도 너무해!”
마을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25
순사의 뭇따래기들은 달구지에 짐을 싣고 동구 밖을 나서고 있었다.
“오늘 밤에 불을 질러버릴 것이다.”
정차돌이 소리쳤다.
“어디에?”
박바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쳤다.
“주재소와 신사에!”
“함께 가자고!”
“죽기 아니면 살기지!”
차돌과 바위는 머슴들이었다. 차돌과 바위는 다정히 바투 서 있었다. 손을 마주잡고 꼭 쥐었다.
“순사 저놈이 우리를 붙잡아 강제 징용으로 끌고 가려고 했지?”
그들은 밤중에 사랑방에서 붙잡혔었다. 끌려 나왔다. 어두운 고샅에서 순사를 패대기쳤다. 그리고 도망쳤다.
“반드시 몇만 배 앙갚음으로 되갚음을 해야 돼!”
마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고 웅성거렸다. 하늘에서는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탐스러운 눈송이가 펑펑 쏟아졌다. 삽시간에 두툼하게 쌓였다. 눈 덮인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