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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영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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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_ 법우(50대 중반. 충청도 말씨. 파계승. 한쪽 팔이 없는 그다지 밝지 않은 과묵한 성격)|지법(40대 후반. 서울 말씨. 스님. 법우의 이복동생. 계율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정돈되고 꼼꼼한 성격)
때_ 현대
곳_ 초암
무대_ 이 연극의 무대는 초암 내부이다. 다시 말해서 허름하게 지어진 작은 암자라고 할 수 있다. 무대 뒷쪽은 벽면으로서 회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나가 흙이나 짚새기가 드러나 보인다. 객석에서 보아, 무대 좌측으로는 벽면에서 조금 거리를 둔 군용 야전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헝클어진 채 펼쳐 있는 얇은 여름용 이불이 있다. 객석 가까이로 오래 내버려둔 낡아빠진 의자와 탁자가 있으며 그 위에는 잡다한 식기류와 밑반찬이 담긴 밀폐용기, 그리고 작은 주전자가 놓여 있고 탁자 아래에는 다수의 일회용 라이터와 야외용 가스레인지, 몇 개의 찌그러진 냄비, 수북하게 쌓아 놓은 타다 만 양초 등이 있다. 객석에서 보아, 무대 오른편으로는 목탁이나 목불상을 만들 수 있는 나무 재료들이 제법 묵직하게 수북히 쌓여 있다. 그 아래로 겉모습으로는 완성되어 보여지는 목탁들이 수없이 널려 있다. 그리고 목탁을 만드는 끌, 망치, 중·소 조각칼 등의 수작업 작업 도구가 너절하게 있다.

 

무대 중간쯤에 법우와 지법 마주 앉아 목탁(木鐸)을 만드는 수작업에 열중하고 목탁을 만드는 과정 중, 속 안을 깎아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 팔을 잃은 법우는 양쪽 다리로 목탁을 고정한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잠시 후 지법이 막 속을 파놓은 목탁을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집어 들어 보는 법우, 그 무게를 느껴 보려는 듯이 흔들어 보다가 이내 양 발목 사이에 목탁을 고정시킨 후 힘차게 두드려 본다.

 

법우   (화를 낸다) 이왕지사 불력(佛力)을 쌓는 일인디 정성을 다해야 안 허겄어. 마무린 내가 할껴. (여기저기를 두드려 보다가) 소리가 다르게 나는 벱이여. 봐, 여기보다 이윽에서 나는 소리가 탁하잖여. 소리는 거짓이 없구먼. 덜 깎여 나가믄 그만큼 탁하게 울어대는 벱이여.
지법   (작업을 멈추고) 그랬나…. 난 한다고 했는데 늘 말썽이네. 꼭 한번은 법우스님 손이 닿아야 제대로 울어대니 이거야, 원….

법우, 일어난다. 엉덩이 쪽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서너 개의 목탁을 먼지 쓸 듯 발길질로 쓸 듯 목불상 쪽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미완성의 목탁을 한 손으로는 두 개를 들고 나머지 서너 개는 같은 방식으로 쓸 듯이 가져간다. 법우,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리며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법우, 작업을 시작하고 천천히 지법도 뒤따라 한다.

 

지법   어째 법우스님답지 않아.
법우   답지 않다니… 뭔 얘기여?
지법   세월에 묻혀서 그런가 속이 달라졌어.
법우   그려? 동생하고 나하고 너무 떨어진 세월이 깊어서 그런겨. 껍데기가 남잔데 여자 옷 입었다고 보살님이 될 순 없잖은겨. (문득) 근디, 시방 어쩐 일인감?
지법   (피식 웃고는) 일찍도 물어보네.
법우   (씨익 미소) 내가 워낙 이러잖여. 상국사에 왔는감? 점안식(點眼式) 말여.
지법   (고개 끄덕)
법우   칠 년 만이제?
지법   칠 년. (짧은 사이) 또, 꿈을 꿨어, 늘 꾸는 꿈을….
법우   꿈은 누구나 꾸는 벱이여.
지법   꺼내지 않아도 법우스님이 늘 알 수 있는….
법우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서둘러) 그러게 말이여. 하지만….
지법   (서둘러) 그런 꿈이 아닌 거 잘 알잖아. (강조한다) 이건 악몽이야, 악몽.
법우   악몽이라니? 어머닌 귀신 아녀, 잡귀가 아니란 말여. 정진하는 그 어느 곳에서든 어머닌 뒤따라 다닐 꺼구먼. 고것을 악몽이라고 하믄 동생이 잘못된 거여. 아무튼 어머닌 동생 때문이라도….
지법   (서둘러) 세상을 뜨셨으면 나타나지 말아야지. (작업을 멈추며) 아무 때나 불쑥 불쑥… 난 미칠 지경이라구! (목소리를 높인다)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는 참선할 때도 보이는 건 어머니의 망령뿐이라구. 이건 모습이 아냐. 망령일 뿐…! 토굴에서 참선을 해도 경 공부를 할 때도 늘 나타나시지. 놀라 까무라쳐도 그때뿐이야. 이젠 나란 놈이 싫어져, 싫어진다구.
법우   이봐, 동생은 스님이란 말여. 나 같은 무지랭이가 아녀. 어머니가 나타나는 건 스님을 위한 일인 것이제 해를 끼치고자 나타나는 게 아니란 말이여. 고걸 알아야제. 이제 그만 그 투정에서 나오란 말이여. (마치 타이르듯) 이봐 지법스님,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시방 자넨 뭣인가 혼돈 속에 있는 것이여. (작업 중이던 목탁을 탁탁 치며) 깎아내야 혀. 목탁도 제대로 깎아내야 제 소릴 토해내는 것이구먼. 그라니께 자네도 스스로 깎아내란 말이여. 꽉 찬 모습에서 버릴 건 버리고 넣을 건 되잡아 넣어서 말이여.
지법   (작업을 다시 시작하며) 쉬운 일이 아니야, 쉬운 일이….
법우   시상에 쉬운 일이 어데 있간….
지법   법우스님도 이젠 벗어나야 해.
법우   지난 얘기를 꺼낼 시간이 없구먼.
지법   어머니가 살아 있었어도 이건 원치 않은 일이었어.
법우   지나간 십 년 일이여.
지법   앞을 보라는 말이지. 저 먼 훗날의….
법우   그렇다고 담을 쌓을 일은 없을 것이구먼.
지법   당장 담을 쌓는다는 게 아니야.
법우   난 이대로가 좋구먼. 지고지순한 사람도 아닌디, 꼭 남들 눈에 찬 일만 할 순 없잖은감.
지법   방법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말이야. 그리고 말 좀 돌리지 말어. 지금 법우스님 행동은 참선하며 경 공부에 열중하는 대중 스님들을 욕보이게 하는 거라구.
법우   욕을 보이다니…?
지법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다면….
법우   (단호하다) 방법은 여러 모양이여. 나도 절대적인 걸 원하는 건 아니구먼. 하지만 이제 와서 목탁을 저버릴 순 없구먼.
지법   법우스님에게 목탁 만드는 일이 전부가 될 순 없어. 정말로 진실을 찾고 싶다면 무릎 꿇고 소리를 만드는 것보다 법우스님 스스로를 되돌아볼 일이야.
법우   진실은 애써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여. 스스로 진실과 만날 때가 있을 뿐이구먼.
지법   떳떳치 못하게 파계를 당한 게 결코 자랑스런 일이 아니지. 그걸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뭔가 있겠지, 있었겠지…. 저 스님이 내쫓겨난 이유가 있겠지…. 너무나 잘난 사람이라 주위에서 모함이 있었겠지. 그런 걸 바라지 말란 말이야. 그야말로 이젠 십 년이 지났다구. 법우스님 자신이 되돌아볼 시간이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난 셈이라구.
법우   (되받아치고 싶지 않은 듯) 그러지 말어, 지법스님…. 동생도 찾고자 하는 진실이 모든 진실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때가 있을 껴. 뭐, 시방은 내가 다 아는 척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여. 자, 자. (쓰윽 일어난다) 모처럼 만에 와서 속이나 깎아대고 있으니…. (탁자 쪽으로 간다. 주전자째로 물을 들이킨다) 아, 좋다. 물 좀 안 마실껴?
지법   (대꾸 없다)
법우   (의자에 않는다. 가르치듯이) 내 사 예가 좋은 겨. 비바람도 막아 주고 시끄러운 세상살이 비껴 가게 해주고…. 부처님께 복도 빌고 말이여. 남덜은 무덤이라고 부르지만 말여, 내겐 부처의 땅이여. 내 맴속에 바람이 안 불 때가 제일 좋은 것이더구먼. 열심히 목탁을 만들고 소리를 내고 동네 사람들과 논도 갈고 밭도 치고…. 고렇게 울력을 하는 게 내 자신을 찾는 일인 것이여. 남덜은 몰러 주고 욕을 혀도 내 자신이 떳떳하믄 고것이 날 찾아 가는 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겐 참선을 하는 것이구먼. 내겐 논, 밭이 선방(禪房)이고 목탁이 법문(法門)이여. 게다가 여기 도구들이야말로 요것이 부처를 향한 내 맴인 것이여!
지법   법우 스님이야 늘 그래 왔으니까. (자신이 작업하던 목탁 안을 이리저리 훑어 보며) 이리 꽤 단단히 여물었듯이….
법우   힘은 들어도 그래야 좋은 소리가 나는 벱이거든.
지법   허나, 보는 눈들이야 어찌 편하겠어. 오히려 그런 일들이 남들에게 번민을 선사하는지도 모르지.
법우   보는 눈들이야 한낱 꿈속의 눈들이제.
지법   (노려보듯 보며) 목탁 만들기를 수행(修行)이라 보는군, 그래.
법우   글씨, 내 도량(度量)이 고것밖에는 안 되니께. 아니믄 범부(凡夫) 이상도 범부 이하도 아닌 것이 나니께. 잡지 말고 놓아 주는 것이 더 큰 자비(慈悲)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벱이제.
지법   (단호하게) 업보(業報)겠지.
법우   (되새기듯) 업보….
지법   아니라고 부정은 할 수 없지. 단지 놓아 주는 것만이 더 큰 자비의 은혜를 받는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
법우   동생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무진법문(無盡法門)이요. 외피에 쌓인 자신 본연의 내면 세계 또한 무진법문(無盡法門)인디 어째….
지법   (건성으로) 채우지도 못했다우, 법우 스님.
법우   못했다고 비워지지 않을 건 없는 벱이제. 조금이라도 비워낼 건 존재(存在)하고 있는 벱이구먼.
지법   이젠 내가 왜 이런 화두 속에서…. (순간, 벌컥) 엉뚱해지고 추악해지는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어.
법우   작은 것에 만족하고 싶은 게 내 심정이여. 어쨌든 내 것을 만들려고 하다가는 내 자신에 있는 더 큰 그 무엇조차도 쓸데없이 잃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여. 내게 있는 문제를 말이시, 남에게 추하게만 보이지 않는다믄 있는 곳에서 내가 가진 것만으로 넘치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사람 된 도리겄제. (쓱 일어나, 목탁을 하나 주워 들어 자신의 머리에 툭툭 치며) 이건 말이여, 자꾸 속을 깎아 내야 제 소리가 나는 벱이제. 적당히 자리 잡은 속 모양이 제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이여. 시상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자꾸만 채워 넣고 있구먼.
지법   세상살이엔 비워내지 않고 있는 대로 채워 넣어야 추하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들도 있어.
법우   하지만 말이여, 모든 것을 적당한 반대급부로 이해할 순 없는 것이구먼.
지법   (벌떡 일어나, 버럭) 형님은 늘 이런 식이야. 세상은 이미 불국토(佛國土)요, 법우 스님은 완성된 불제자(佛弟子)로 살고 있지. 속세(俗世)와의 단절 속에서 깨우치는 게 아니라 속세와의 타협 속에서 수도하는 게 완성된 불제자로 알고 있는 거야.
법우   (무심하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법   하지만 그건 착각이야. 엄청난 별고(別故)라고 할 수 있지. (비꼬는 말투로) 어제 잠깐 들른 상국사에서 해주 스님이 법우 스님 작업하는 걸 물어보더군.
법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법   (똑부러지게) 왜 내겐 말을 안 해줬지? 해주 스님하고 약속한 기일에 목탁을 지입해 줘야 한다는 걸. 왜 난 법우 스님한테 직접 듣지 못하고 염려스러운 눈길로 해주 스님에게 들어야 하는지…. 법우 스님한테 신경 좀 쓰라더군. 내가 뭘 어떻게 신경을 써야 하지, 법우 스님? (순간, 무대 앞을 오락가락해 가며) 법우 스님은 늘 이렇게 살아왔어. 누구의 도움 없이, 한다면 끝끝내 해내는 성질, 그렇게 앞서 갔지. 뒤에 서 있는 내 자신은 항상 초라했어. 아니, 솔직히 타락하고 싶었어. 아무리 좋은 쪽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다지만 법우 스님의 그 모든 언행(言行)이 날 꼼짝 못하게 만들었었지. (점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법우 스님은 내게 금강장왕(金剛長王)이었어. 격노한 모습의 금강장왕이 되어 불길같이 치솟는 설법(說法)으로 수도(修道)에 정진하라 나를 몰아붙였지. 하지만 지금은 뭐지? 법우 스님은 부인한다 해도 그 한 팔이 주는 중생(衆生)들의 안타까운 눈길… 아무리 개의치 않는다고 해도 법우 스님은 목탁을 깎아 내며 그것을 핑계 삼아 구도자의 모습이라 드러내 보이고 싶은… (벌컥) 그 스스로의 타락을 알맞게 포장해 내는 범부일 뿐이라구!
법우   범부라…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만 있다믄 우리 모두는 부처일 꺼구먼. 우리 인생살이가 일장춘몽이 아니잖은겨. 마음먹기에 따라 그 누구도 부처가 되기도 허구, 불국토를 이루기도 허구…. (순간, 벌컥) 그래도 우리가 부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은 그보다 더한 구도(求道)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여.
지법   (이건 아니다 싶어서) 구도의 시간이라…?
법우   (버럭) 구도의 시간!
지법   (버럭) 법우 스님, 형님은 단순히 파계승의 신분이야, 파계승일 뿐이라구! 이건 마치 대중에게 설법(說法)하는….
법우   (서둘러) 그려, 내는 파계승이여. 그렇다고 해서 설법…? 아니구먼. 고통을 벗어나고자? 해탈을 구하고자? 내 행동이 그랬다면 천벌을 받겠지. 아녀. 아니구먼. (버럭) 그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하루하루 욕 안 먹고 그렇게 살아가리라 다짐했을 뿐이구먼.
지법   그랬겠지. 언제나 당당한 법우 스님. 어느 한구석에도 걸릴 게 없지.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 한쪽 팔이 없어진 것에 대한 항변(抗辯)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었을까?
법우   항변…?
지법   항변일 테지… 법우 형님의 없어진 그 한쪽 팔!
법우   그만두자… 관두는 게 좋겠구먼.
지법   (거침없이) 아니, 법우 형님에게 목탁이란 그저 계산된 보상 덩어리가 아녔냐는 말이야…? 한쪽 팔을 잃고 나서부터 법우 스님은 목탁 만들기에 열중했어. 자신의 법력을 내보이고자 뚜렷한 참회의 시간보다 나약한 심신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았을 그런 파계승의 모습인데도…. (짧은 탄성) 어느 날, 그 어느 날 형님은 연비(燃臂)를 행했어. 그러나 그 진리의 응집된 시간을 이겨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속세의 범부들이 즐겨 찾는 술의 힘을 빌어 손가락이 아닌 아예 한쪽 팔을 없애 버리고 말았지. 마치 그것이 법우 스님의 도를 깨우치기 위한 전부인 양. 그럴싸한… 그럴싸한 포장된 모습을 만들었던 거야.
법우   (버럭) 그만! 그만혀…!
지법   (멈추지 않고) 법우 형님에게 있어 최선을 다한 원력(願力)일 수 있는… 스님이 택한 그 연비가 통틀어 계산된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영원히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길 원했겠지.
법우   (서둘러) 날 그 어떤 눈으로… 너의 모난 잣대로 재보는 것도… 그 모든 것을 난 원망치 않여. 하지만 난 몰두해 왔구먼…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난 몰두해 온 것이여. 그것이 어쩌면 다른 한쪽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 하지만 말이여, 난 내 나름대로의 공양이었제.
지법   공양…?
법우   (강조한다) 내겐 공양이었구먼!
지법   말이 쉽군 그래. 신분 공양(身分供養)을 말하고 싶겠지만 부처님께 선 법우 스님께 늘 법 공양(法供養)을 베풀지 않았겠어.
법우   어떤 소릴 들어도 좋구먼. 그래도 딴 뜻은 없었던 겨. 그 이후로 난 좋은 소리를 찾아내려고만 했제. 그것이 부처님 은덕에 감사를 표할 가치 있는 꺼리라 여겼구먼.
지법   (벌컥) 허울 좋은 변명!
법우   변명이라고 해도 좋아. (벌컥) 하지만 나에겐 방편인 것이여! 
지법   목탁은 그저 목탁일 뿐….
법우   목탁은 좋은 소리로 소리를 퍼뜨리는 벱이여.
지법   (답답한 듯) 허깨비 같은 대답만 하고 있군 그래. 세상만사가 꿈 같다는데 스님의 모든 것이 한낱 꿈으로 끝날 것 같아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것일 뿐….
법우   그야말로 착각인가, 미몽인가… 네 한마디 한마디가 착각인가, 미몽인가. (다시 작업에 임하기 시작한다) 세상만사를 부처님의 지혜로 볼 수만 있다면 모두가 진실된 본래의 모습인 것이여. 내게 두려움이란 내 양심에 부끄러움 없는 판단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자 수많은 회의(懷疑)를 했을 뿐이구먼.
지법   (빈정거린다) 내게 있어 두려움… 수많은 회의…? (버럭) 꼭 이런 식으로 부처님을 찾아야만 해? 대중 속에서 거리낌 없는 행동으로 구도의 심신을 닦아야 하냐구? 그럼, 난… 난 한낱 편협한 중에 불과하지 않는 건가? 다시… 다시, 경전 공부를 하고 교판 사상에 젖어 볼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거야, 왜?
법우   (무심코) 돈오점수(頓悟漸修), 돈오돈수(頓悟頓修)….
지법   돈… 오… 점수…?
법우   돈오돈수…. (천천히) 깨달음이란 순식간에 되는 것이 아니잖여. 어디서 심신을 수련하든, 또한 바로 깨닫든, 점차로 깨닫든…. 우린 넓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것이여. 돈오점수, 돈오돈수 (읊조리듯) 돈오점수, 돈오돈수….
지법   (흥분되어) 스님, 법우 스님!
법우   나무아무타불 관세음보살….
지법   돈오점수… 돈오돈수…. (짧은 사이를 두고) 허면… 그러면, 난… 나는…. (위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위에서 내 몸뚱아리의 안일에 안주해 버렸던 거였어. 별종인 양 굴었던 나 자신….
법우   나무아미타불….
지법   이제 보니 난 내가 아니었어. 깨달음을 찾으려 한 노력도… 중생을 위한 잡승도….
법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법   (욱한다) 아니었어! 이쪽도 저쪽도 아니었어. 계율에 쌓인 수좌도 못 되고 철저한 속물도 아니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늘 자랑해 왔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건 더 큰 걸 갖고 싶은 욕망이었는지도 몰라. 소유하고픈 그 욕망 때문에 속인(俗人)으로 괴로워했을 테고….
법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법   (단호하게) 부처님을 대하고 싶어!
법우   지금도 부처님을 대하고 있는겨.
지법   (벌컥) 더 가까이 말이야!
법우   지법 스님….
지법   (단호하다) 부처님을…!

 

법우, 흠칫 놀라워한다. 짧은 침묵이 흐른다. 사이.

 

지법   (객석을 향해) 어머니의 망령도 잊고… 법우 스님도 잊고… 내 업보인 양 나의 자격지심도 훨훨 벗어던지고….
법우   (서둘러) 깨달음은 쉽지만 실행은 어려운 벱이여.
지법   (힘주어) 연비(燃臂)!
법우   (놀라워한다) 연비라니?
지법   난… 날 찾고 싶어.
법우   신체(身體)로 신심(信心)을 북돋는 건 헛될 수도 있구먼.
지법   미약한 마음을 불태우고 싶을 뿐이야. 난 날 찾고 싶어….
법우   (지법에게 가까이 다가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여. 이건 부처님께서도 바라는 일이 아닐 꺼구먼.
지법   (법우를 보며) 형님!
법우   (안타깝다) 지법 스님….
지법   법우 스님….
법우   너무도 어려운 길이여….
지법   (절규하듯) 날 찾고 싶어, 날…. 나를 찾고 싶다구….
법우   (눈길을 준다) 정녕…?
지법   (쏘아보듯 눈길을 받으며) 정녕….
법우   (거칠 것 없이 군용 야전침대 쪽으로 다가간다) 이건, 성불(成佛)할 수 있는 첩경은 아녀.
지법   되돌릴 수 없어.
법우   받친다 해서 법의 이치를 깨닫는 것도 아니고 중생을 이익되게 진리를 펼칠 수 있는 것도….
지법   (서둘러, 벌컥) 하지만…!
법우   (얇은 여름용 이불을 쓰윽 집어 들며) 정녕…?
지법   (법우를 주시하며 단호하게) 정녕코! (하고는 그 자리에 가부좌 자세로 앉는다)

 

법우, 한쪽 손과 입을 사용하여 여름용 이불 한쪽을 가늘게 부욱 찢어 와 다가온다. 지법, 서서히 오른쪽 손을 펼쳐 든다. 법우, 한쪽 손과 입을 사용하여 지법의 오른손 엄지를 칭칭 감는다. 그리고는 서서히 탁자로 다가가 그 밑에 놓여 있던 일회용 라이터와 양초를 집어 들고는 지법에게 다가선다. 이때, 무대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의 조도에서 멈추면 법우, 양초를 입에 물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법우   나무아미타불…. (순간, 지법의 오른손 엄지에 촛불을 가져다 댄다) 관세음보살….

 

타들어 가는 지법의 오른손 엄지. 그럼에도 미동도 않는 지법. 이내, 법우 목탁을 가져와 양쪽 발목 사이에 목탁을 끼고는 염불과 함께 목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이들의 엄숙한 모습 위로 서서히 무대 암전된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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