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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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이 글은 2013년 7월에 「한국 대표 명시선 100」의 하나로 발간된 김종철 시인(1947-2014)의 자선 시선집 『못 박는 사람』(2013, 시인생각)에 실린 ‘못’에 관련된 시를,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의 시각으로 읽은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평생 ‘못’에 관한 많은 시를 썼지만, 시인 자신이 그중에서 골라 시선집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나름의 체계를 정리한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작품이 실렸던 시집도 참고하였다. 간혹 시선집에서는, 처음 발표할 때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을 때,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어서 시선집에 실린 것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김종철의 작품에 관한 평론가들의 시각도 살펴보았다. 김종철 시인이 창간한 『문학수첩』에서 발행해 오고 있는 ‘김종철 시인의 작품 세계’ 시리즈 01(『못의 사제, 김종철』, 김재홍, 2020), 02(『김종철 시인의 ‘언어 학교’를 찾아서』, 장경렬, 2021), 03(『못을 통한 존재 탐구의 긴 여정』, 이숭원, 2022), 04(『삶과 못과 시의 변주곡』, 김종회, 2023), 05(『김종철 시의 매혹』, 유성호, 2024)을 참조하였다.
필자가 김종철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초 『못에 관한 명상』이 정리될 때쯤, 『시와 시학』 사무실에서 김재홍 교수(1947-2023)와 함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종철 시인이 ‘못’에 집중하기로 한 계기는 김재홍 교수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 필자는 김종철 시인과 잦은 교류는 없었지만, 그의 좋은 작품을 항상 가까이할 수 있었다. 이제야 김종철 시인의 작품을 분석심리학이라는 안경을 쓰고, 읽고 정리하게 되어 오랜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분석심리학은, 칼 융에 관한 전문가 이부영의 ‘분석심리학 3부작’ I(『그림자』, 한길사, 2021), II(『아니마와 아니무스』, 한길사, 2021), III(『자기와 자기 실현』, 한길사, 2025)이 중요한 안내가 되었다. 또한 프로이트를 연구한 이창재의 『정신분석과 예술작품』(학지사, 2012)도 참고 자료로 삼았다.
분석심리학은 필자가 2002년에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 개설된 상담 전문가 과정을 시작으로 3년여 간 공부한 적이 있다. 대학에서 교수 선교회 회장을 맡는 등 기독교 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 학생들을 상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연세대에 정석환 교수 등 미국에서 상담 심리를 전공한 교수들이 부임하면서 시작된 기독 상담 중심의 강의였다. 필자도 관련 학회에 가입하고,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기독 상담 심리치료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한 적도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통해 어떻게 예술작품들이 치유(治癒) 혹은 구원(救援)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외 저명한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김철교, 『예술 융복합 시대의 시문학』 2018, 시와 시학, 참조). 김종철 시인이 201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취임사에서 “한 줄의 시가 세상을 살립니다”라고 말했다는 것도 이러한 예술작품의 치유 및 구원의 기능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196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 평론으로 등단한 김재홍 교수는, 1968년 한국일보와 1970년 서울신문에 시로 등단한 친구인 김종철 시인의 삶을 성공한 시인, 출판인, 신앙인으로 요약하고 있다. 동년배인 두 사람은 문학 잡지사를 경영하면서 더욱 가깝게 지냈다. 『시와 시학』을 책임졌던 김재홍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김종철을 내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김종철 시인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번역 출판으로 우리나라에서 해리포터 열풍을 일으킨 성공한 출판인으로 『문학수첩』과 『시인수첩』을 창간했다. 또한 김종철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신앙심이 그의 작품의 중심을 흐르고 있고, 가톨릭 문인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김종철 시인의 핵심 주제인 ‘못’은 개인의 트라우마, 민족의 한(恨)과도 연결되면서 또한 십자가에 박힌 못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이를 간파한 김재홍의 권유를 김종철 시인이 받아들여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김재홍에 의하면, 김종철의 시에서 “과거의 삶의 과정에 잘못된 못처럼 박힌 자국은 상처처럼 남아 자신에게 자책감과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죄의식으로 하여 인간은 성숙해지고 정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상처로 남은 ‘못’은 형벌이자 구원이자 저주이자 축복이다. 이러한 못의 상징성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김종철 시인은 자신의 실존 세계를 보는 독특한 시선을 획득했다.”
2. 문학작품의 분석심리학적 접근을 위한 핵심 개념
분석심리학은 20세기 초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융(C.G. Jung, 1875-1961)이 창시한 심리학 체계이다. 프로이트(S.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크게 발전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억압된 성적·공격적 욕망의 저장소로 이해한 것과 달리, 융은 무의식을 병리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 정신의 창조적 성장과 영적 성숙의 원천으로 보았다. 융은 인간의 내면을 총체적 존재로 이해하며, 심리학을 예술, 종교, 신화, 문화 전반의 상징적 해석으로 확장했다.
2.1. 인간 정신의 구조: 층위와 중심
융은 인간의 정신(Psyche)을 의식(Consciousness),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 그리고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설명했다. 의식은 자아(Ego)를 중심으로 현실에 적응하고 정체성, 사고,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개인 무의식은 개인의 삶 속에서 억압되거나 망각된 경험과 감정이 저장된 층위이다. 이는 콤플렉스의 형태로 의식에 표출될 수 있다. 콤플렉스는 정서적으로 강하게 뭉친 사고, 기억, 감정의 덩어리로, 의식적 통제를 벗어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한다. 집단 무의식은 개인을 넘어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심층적 심리 구조이다. 그 속에는 인류 보편의 경험 패턴인 원형(Archetype)이 내재되어 있다. 자기(Self)는 이 모든 층위(의식과 무의식)를 통합하는 인격 전체의 중심이자, 궁극적인 통일 원리이다.
2.2. 원형(Archetype)과 상징(Symbol)의 역할
원형은 특정 개인의 경험을 초월하여 인류가 공통으로 지닌 근본적인 정신적 패턴이자 이미지의 원형(Original form)이다. 원형은 그 자체로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잠재적인 구조이며, 개인의 삶 속에서 특정한 상황이나 감정과 결합할 때 구체적인 상징, 모티브, 신화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상징은 이러한 무의식적 내용을 의식이 경험 가능한 형태로 표현한 매개체이다. 융에게 상징은 단순한 기호(Sign)가 아니며, ‘무의식과 의식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미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문학의 시적 이미지나 신화적 모티브 등은 무의식이 창조적으로 발현된 결과로 볼 수 있다.
2.3. 주요 원형적 심리 구조
페르소나(Persona)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외적 자아, 즉 사회적 적응을 위한 ‘가면’이다. 그림자(Shadow)는 개인이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억압한 부정적 자질과 본능적 충동을 의미한다.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는 각각 남성 내면에 있는 여성적 심리 성향, 여성 내면에 있는 남성적 심리 성향을 가리킨다. 이들은 감정-직관, 논리-의지 등 상보적인 에너지를 대표하며, 상호 통합을 통해 인격의 균형을 이룬다. 자기(Self)는 전체 정신의 통합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원형이자 목표이다.
2.4.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
개성화는 융 심리학의 핵심 개념이다. 이는 개인이 무의식의 다양한 측면(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등)을 인식하고 이를 의식적으로 통합하여 자기(Self)를 실현하는 평생에 걸친 심리적 여정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내적 전체성의 회복과 심리적 균형을 목표로 한다. 융은 개성화를 ‘인간이 참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2.5. 종교, 신화, 예술의 상징적 의미
융은 종교적 체험과 신화를 무의식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영웅 신화는 자아(Ego)가 무의식과 대결하며 자기(Self)에 이르는 심리적 여정을 상징하며, 종교적 체험은 자기(Self)와의 합일을 상징하는 초월적 경험으로 이해된다. 예술 또한 무의식의 창조적 표현으로 간주된다. 예술가는 집단 무의식 속 원형적 이미지를 감수성 높은 형태로 표출하는 매개자이며, 문학작품은 개인적·집단적 무의식이 상징적 언어로 전환된 결과이다.
3. 작품 분석
분석 작품은 『못에 관한 명상』(1992, 시와시학)에서, 「고백성사-못에 관한 명상 1」 「소인국의 꿈-못에 관한 명상 4」 「해미마을-못에 관한 명상 5」 「네가 무서워-못에 관한 명상 15」를 선정하였다. 『못의 사회학』(문학수첩, 2013)에서는 「무두정에 대하여」와 「나사못 경전」을 대상으로 하였다. 시집 『못 박는 사람』에 자선된 시들 중, 필자가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기에 용이한 작품을 택했다.
3.1. 『못에 관한 명상』(1992, 시와시학)
3.1.1. 「고백성사-못에 관한 명상 1」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 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 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 「고백성사-못에 관한 명상 1」 전문
「고백성사」에서 ‘못’은 죄의식, 상처, 그리고 억압된 기억을 상징하는 핵심 기호이다. 분석심리학적으로 이 시는 고통을 통한 내면의 성장 드라마를 보여준다.
“휘어진 못을 뽑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아(Ego)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억압된 죄의식(콤플렉스)을 힘들게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심리적 행위이다. 못 자국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남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흔적이며, 융이 말한 개성화(Individuation), 즉 참된 자기(Self)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고통과 성찰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화자가 고백성사 후에도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그림자(Shadow), 즉 자신이 인정하지 못한 부정적인 본능과 죄악의 측면과 완전히 화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이 ‘숨겨 둔 못’은 미완의 자기 성찰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인지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자기(Self)를 향한 성숙의 증거이다.
고백성사는 죄와 용서,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대극(對極)을 화해시키려는 상징적 의례이다. 이 의례 속에서 아내의 침묵은 심판 대신 무조건적인 용서와 포용을 제공한다. 이는 화자의 무의식이 갈망하는 치유적이고 포용적인 모성 원형(Mother Archetype)의 속성이 아내에게 투사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내의 포용은 화자의 죄책감을 단순히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자기 성찰의 부끄러움으로 이끌어 내적 정화를 완성하도록 돕는다.
「고백성사」는 ‘못’이라는 구체적인 상징을 통해, 인간이 고통과 죄의식을 직시하고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화하여 궁극적인 자기 통합(Self-Integration)으로 나아가는 내면의 드라마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3.1.2. 「오늘도 못질을 합니다-못에 관한 명상 2」
오늘도 못질을 합니다
흔들리지 않게 삐걱거리지 않게
세상의 무릎에 강한 못을 박습니다
부드럽고 어린 떡잎의 세상에도
작은 못을 다닥다닥 박습니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당신들은
서로 빗나가기만 합니다
이내 허리가 굽어지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굽어진 우리의 머리 위로
낯선 유성이 길게 흐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 「오늘도 못질을 합니다-못에 관한 명상 2」 전문
「오늘도 못질을 합니다」는 일상적인 ‘못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불안한 자아(Ego)의 몸부림과 초월적인 자기(Self)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심리극이다. 못질은 세상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려는 자아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화자가 세상의 무릎은 물론 “부드럽고 어린 떡잎의 세상”에까지 못을 박는 것은, 성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경직된 욕구를 보여준다. 융의 관점에서 이는 자아가 해체와 혼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다 오히려 생명력과 자율성을 억압하는 부정적 심리 경향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그러나 화자의 못질은 “빗나가기만” 하고 “허리가 굽어지기도” 한다. 이는 자아가 현실과 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융은 이처럼 통제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순간이 바로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에서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굽어진 ‘못’과 ‘허리’는 자아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순간이자, 무의식의 깊이로 향하는 내면적 전환의 통로가 된다.
자아가 가장 무력하고 굽어진 순간, “낯선 유성이 길게 흐르는 것”이 보인다. 못질이 세속적 노동과 현실 고정의 상징이었다면, 유성은 그 위를 스쳐 지나가는 하늘의 계시, 초월적 질서를 의미한다. 이는 실패와 좌절(대극) 속에서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상징적 이미지이며, 융이 말한 자기(Self)의 암시이다. 즉, 자아의 통제가 끝나는 지점에서 더 높은 차원의 통합 원리가 나타나 내적 구원과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못질’이라는 고통과 ‘유성’이라는 초월의 빛이 대조를 이루며, 인간이 현실의 실패와 한계를 통해 진정한 자기 통합을 발견하는 정신적 성숙의 시학이다.
3.1.3. 「소인국의 꿈-못에 관한 명상 4」
못을 모아둡니다
큰 못 작은 못 굽어진 못 잘린 못
녹슨 못 몽툭한 못 방금 태어난
은빛 못까지 한자리에 모아 둡니다
재개발 지역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토론을 합니다
걱정뿐입니다. 걱정과 회합 뒤에는
으레 술도 마시고 화투도 칩니다
아낙네는 해묵은 이야기로 입씨름하고
골목길은 아이들의 울음으로 더욱 좁아집니다
떠나기 전에 들어와야 쓰것는디
늙은 어머니는 집 나간 아들놈 때문에
매일 조금씩 우십니다
못은 못일 뿐입니다
한번 박힌 못은
박힌 대로 살아야 합니다
뽑혀져 나온 못은 못이 아닙니다
굽은 것을 다시 펴고 녹슨 것을 다시 손질해 두어도
한번 뚫린 못자리는
언제나 내 자리입니다
한번 비끄러매 두었던 길과 사람과 인정이
더 이상 크지 않고 늙지 않는 소인국으로
우리 꿈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소인국의 꿈-못에 관한 명상 4」 전문
다양한 못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들은 한 개인을 넘어 공동체가 겪은 모든 종류의 상처와 흔적을 모아 둔 상징이다. 못은 무엇인가를 고정하고 결속하려는 욕망을 나타내지만, 박히는 순간 반드시 상처(흔적)를 남긴다. 삶에는 긍정적인 결속과 피할 수 없는 아픔이 공존한다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재개발 지역은 단순히 건물이 허물어지는 현실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불안과 고통이 폭발하는 심리적 장소이다. 사람들이 싸우고, 울고, 술과 화투로 불안을 잊으려는 모습은 공동체가 외면하고 숨기려 했던 부정적 감정들, 즉 그림자(Shadow)가 현실의 위기 앞에서 튀어나오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재개발은 이 집단적인 그림자를 드러내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못이 한번 박히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듯, 인간 역시 자신이 겪은 경험과 상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한번 뚫린 못자리는/언제나 내 자리”라고 말하는 부분은 이 시의 핵심이다. 이 못자리는 단순한 흉터가 아니다. 이는 의식적으로 잊으려 해도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 속 감정적 응어리, 즉 콤플렉스를 상징한다. 과거의 아픈 경험이 마음속에 깊이 박혀 지워지지 않는 자국으로 남은 것이다.
시의 결말에 등장하는 소인국은 현실의 시간이 멈춘 무의식의 세계이다. 현실에선 재개발로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 이 꿈속 소인국에서는 잃어버린 관계, 상처, 사랑의 기억들이 늙거나 변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된다. 이 소인국은 분석심리학에서 자기(Self), 즉 우리의 정신 전체를 아우르는 핵이, 상처 입은 내면을 받아들이고 통합하려는 상징적 공간으로 해석된다. 현실의 고통과 해체가 무의식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질서로 재구성되는 곳이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상처 입은 자아가 무의식의 세계(소인국)를 통해 진정한 자기(Self)의 본질과 연결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개성화(Individuation), 즉 자신의 상처와 그림자까지 모두 받아들여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3.1.4. 「해미마을-못에 관한 명상 5」
해미마을에 갔습니다
낮에는 허리 굽혀 땅만 일구고
밤에는 하늘 보며 누운 죄뿐이 사람들이
꼿꼿이 선 채 파묻힌 땅을 보았습니다
요한아, 요한아, 일어나거라
조선시대의 천주학쟁이들은
아직까지 요를 깔고 눕지 못했습니다
꼿꼿한 못이 되어 있었습니다
못은 망치가 정수리를 정확히 내려칠 때
더욱 못다워집니다
순교는 가혹할수록
더욱 큰 사랑을 알게 합니다
겨자씨만 한 해미마을에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손과 발등을 찍은
굵고 튼튼한 대못을
겨자씨보다 작은 이 마을이
두 손으로 들고 있었습니다
— 「해미마을-못에 관한 명상 5」 전문
이 시에서 못은 앞선 시편들(개인의 상처와 고정)에서 나아가, 순교와 초월이라는 종교적 차원으로 의미가 격상된다. 해미마을 순교자들의 ‘꼿꼿한 못’은 단순한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딛고 영적 가치를 굳게 지킨 신념과 자기(Self) 실현의 상징이다. 못이 망치에 내리쳐져야 제 역할을 하듯, 순교는 자아(Ego)를 파괴하는 극한의 고통을 통해 진정한 자기(Self)와 합일하는 영적 변형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땅’(노동, 고통, 현실)과 ‘하늘’(신앙, 구원, 초월)은 이분법적 대립이 아닌, 통합을 위한 필수적인 대극이다. 순교자들은 땅의 고난 속에서 하늘의 믿음을 추구하며, 이 극단적인 긴장 속에서 순교라는 초월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인간 정신이 온전한 자기(Self)에 이르기 위해 현실의 고통(땅)을 신앙의 빛(하늘)으로 의미화하는 개성화의 영적 국면을 보여 준다. 죽음마저도 자기와 합일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겨자씨만 한 해미마을”은 작고 미약하지만, 그 안에 성서적 믿음과 구원의 원형(Archetype)이 응축된 공간이다. 겉으로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집단무의식 속에 거대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영적인 힘의 근원지이다.
마을이 ‘십자가의 대못’을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는 이미지는 순교자들이 고통(대못)을 단순한 희생이 아닌 의식적 사랑과 구원의 매개로 기꺼이 수용했음을 뜻한다. 이 대못은 사랑, 희생, 구원, 통합의 네 가지 의미가 교차하는 신성한 원형이며, 해미마을은 현실과 초월을 연결하는 개성화의 장소로 승화된다.
결론적으로, 「해미마을」은 못의 상징을 통해 인간 정신이 고통(땅)을 발판 삼아 자아를 넘어선 초월적 자기(Self)로 도약하는 분석심리학적 구원의 서사를 완성한다. 순교자의 “꼿꼿한 못”은 개인의 상처가 영적인 성취로 변모하는 궁극적인 상징인 것이다.
3.1.5. 「네가 무서워-못에 관한 명상 15」
네가 무서워
무작정 도망만 다녔다
늘 한 발짝 앞서 일어나고
꿈속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기 위해
빨리빨리 걸었다
이제 나이 들고 사는 데 지쳐
네가 잡아먹든 말든
천천히 걷고 천천히 숨고 천천히 숨쉬었다
“네가 잡아먹든 말든”
너도 늙었는지 천천히 따라왔고
천천히 생각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 이제는 네가 누군지 보고 싶었다
너·를·보·기·위·해
오늘 처음으로 뒤돌아보았다
한평생 그토록 무서워 달아났던 내가!
오, 내 뒤로 숨는
비겁하게 등을 돌리는 너는?
— 「네가 무서워-못에 관한 명상 15」 전문
「네가 무서워」는 일생을 괴롭히는 어떤 존재-실존적 두려움, 혹은 자기 그림자—와의 관계를 정면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시인은 평생 “너”를 두려워하며 도망쳐 왔지만, 결국 늙고 지쳐 마주하게 된다. 이 “너”는 외부의 존재라기보다는 내면의 두려움, 억압된 그림자이다.
“무작정 도망만 다녔다”는 것은 그림자를 직면하지 못한 자아의 회피 전략을 보여준다. 이는 의식의 방어기제이다. 인간은 무의식의 불편한 요소를 인정하기보다는 피하려고 하고, 그 결과 오히려 그림자에 더 시달리게 된다. 꿈속에서도 그림자를 피하는 장면은, 무의식까지 방어적 태도에 사로잡혀 있음을 의미한다.
‘늙음과 지침’은 단순한 생애 단계가 아니라 의식의 태도 전환을 상징한다. 끊임없는 도망으로는 그림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자각, 그리고 운명에 대한 체념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는 개성화 과정의 중요한 순간이다. 자아가 무의식의 그림자를 더 이상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며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단계이다.
‘돌아본다’는 행위는 억압된 두려움과 직시하려는 내적 결단을 의미한다. 시인이 평생 두려워하던 그림자는 막상 직면해 보니 자신보다 더 비겁하고 약한 존재였다. 자아가 자기 내부의 두려움을 외부에 투사해 괴물처럼 키워왔지만, 그것은 결국 내 안의 작은 그림자였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네가 무서워」는 한 인간이 평생 도망쳐 온 두려움, 즉 그림자와 마침내 직면하여 그것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분석심리학에서 이는 곧 개성화 과정의 핵심 단계이다. 자아가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통합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Self)의 온전함에 다가간다.
3.2. 『못의 사회학』(2013, 문학수첩)
3.2.1. 「무두정(無頭釘)에 대하여」
무두정은 대가리가 없다
박힌 몸이 돌출되지 않고 묻히므로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그날 그렇게 목 잘려 순교했다
이제 아무 대답 없는 통곡의 벽
저마다 자신의 작은 절벽 틈에
쪽지를 끼우며
눈물 없이 울며 울며 울며
끄덕이는데
그렇구나
너, 회임하지 못하는 유대인아
네가 박고 또 박았던 배반의 대못
그 못대가리 하나만이라도
진작 낳아 줬더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대갈통 없는 무두정 꼴 되지 않았을걸!
— 「무두정(無頭釘)에 대하여」 전문
무두정, 즉 ‘머리 없는 못’은 이 시의 핵심 상징이다. 머리가 없어 박힌 몸이 드러나지 않기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 이 못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억압된 희생과 고통의 표상이다. “목 잘려 순교했다”는 표현처럼, 무두정은 익명으로 사라진 희생자를 뜻하며, 심리학적으로는 집단의식이 외면하고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은 부정적 기억, 즉 집단적 그림자(Shadow)의 구체화된 형상이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은폐된 고통이 내재된 상태인 것이다.
이 시는 유대인의 통곡의 벽을 배경으로 삼아 개인의 슬픔을 인류 보편의 죄의식과 상처로 확장한다. 사람들이 쪽지를 끼우며 “눈물 없이 울며” 끄덕이는 행위는 억압된 감정을 반복적으로 표출하는 무의식의 집단적 정화 의식으로 읽힌다. 통곡의 벽은 단순한 장소를 넘어, 개인의 무의식적 상처가 공동체의 집단 무의식과 만나는 통로이자 집단적 상처의 심연으로 기능한다.
시인은 “네가 박고 또 박았던 배반의 대못”을 언급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배반과 희생이라는 인류의 원형적 드라마를 소환한다. 이 대못은 인간 무의식 깊숙이 새겨진 배반의 원형(Archetype of Betrayal)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대못이 머리 없이 무두정이 되었다는 것은, 희생과 죄의식이 의식화되지 못하고 무의식에 묻힌 채 잔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회임하지 못하는 유대인”은 단순히 특정 민족이 아니라, 이 죄의식을 인식하고 새로운 생명력(창조적 회복력)을 만들어낼 정신적 불임 상태에 놓인 인간 전체를 은유한다.
시인은 만약 못의 대가리(의식화의 상징)가 있었더라면, 인간이 창조와 화해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 한탄한다. 이는 융의 분석심리학적 통찰과 연결된다. 억압된 그림자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통합하는 것, 즉 상처를 직시하는 행위만이 창조적 회복과 자기(Self) 실현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이다.
결국, 「무두정(無頭釘)에 대하여」는 가장 어두운 상징인 무두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구조적 결함을 직시하고, 그 인식 자체를 영적 회복으로 향하는 첫걸음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3.2.2. 「나사못 경전」
나사못은 나선형입니다
몸속을 파고들 때나 빠져나올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흔들어도 소리 나지 않는’ 용각산처럼
십자드라이버로 꼭 잠근
나사 머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인간이 고안한 최고의 발명품으로
평가받은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십자 볼트와 십자드라이버가
무슬림에 퍼진 것도 우연이 아닌 것처럼
그가 목수였던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나선형으로 하늘 오른 바빌론이
노여움 받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당신의 정수리에 열십자가 새겨진 것도!
그 나사못이 경전의 한 줄이 된 것도!
— 「나사못 경전」 전문
“나사못은 나선형이다”는 표현은 이 시의 심리적 구조를 보여준다. 융(C.G. Jung)이 말한 것처럼 인간의 정신적 성장은 직선이 아닌 ‘나선형 개성화’를 따른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깊이를 더해, 궁극적으로 자기(Self) 통합을 향하는 순환적 과정이다.
나사못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무의식의 은밀한 작동 방식을 시각화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무의식은 소리 없이 개인의 삶과 정신 깊숙이 파고들거나 빠져나오며, 삶 전체에 강력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나사못 머리에 새겨진 “십자가”는 단순한 기능적 표식이 아닌, 고통, 희생, 초월을 담은 강력한 원형(Archetype)으로 변모한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속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는 것은, 인간의 기술과 창조 행위 속에 집단 무의식의 영적 상징이 투사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십자 못은 물질적 세계와 신앙의 세계, 인간의 손과 신의 의지를 매개하는 통합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시에서 반복되는 “우연이 아닌 것처럼”이라는 구절은 사건들 사이의 의미적 연관성, 즉 융의 동시성(Synchronicity) 개념을 강조한다. 나사못의 발명, 십자가의 확산, 목수였던 예수, 바벨탑의 나선형 구조 등은 단순한 인과 관계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의미의 연쇄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세계는 물리적 법칙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상징적인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당신의 정수리에 열십자가 새겨진 것도!”는 신성(神性)이 개인의 내면, 즉 자기(Self)의 영역에 각인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는 자아(Ego)가 고통을 통해 초월적 자기(Self)와 만나 개성화 과정의 완성에 이르는 것을 상징하는 내적 성화(聖化)이다.
마지막으로, 나사못이 “경전의 한 줄이 된 것”은 고통의 흔적(못)이 곧 계시와 구원의 언어(경전)로 변환됨을 뜻한다. 이는 분석심리학에서 자아가 무의식 속 상처와 그림자를 통합하여, 그 불완전성 속에서 자기(Self)의 의미와 성숙을 발견하는 영적 여정의 완결을 보여준다.
4. 요약 및 결론
김종철 시인의 ‘못’ 연작의 분석심리학적 결론은 상처를 통한 ‘자기(Self)’ 통합의 여정이다. ‘못’ 연작은 고정, 상처, 배반, 희생, 초월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지니며, 이는 카를 융의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을 시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못의 상징은 다음 세 단계를 거치며 심화된다.
첫째, 개인적 차원에서, 자아의 불안과 그림자 직면이다. 「오늘도 못질을 합니다」에서 ‘못질’은 세상에 자아(Ego)를 고정하려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빗나간 못처럼 불완전성(그림자)을 드러낸다. 이 혼돈 속에서 나타나는 “낯선 유성”은 초월적 자기(Self)의 징후로, 자아가 그림자와의 긴장을 통해 통합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암시한다.
「네가 무서워」에서는 자아가 평생 회피해온 그림자와의 대면이 중심 사건으로 제시된다. 그림자는 예상과 달리 뒤돌아본 순간 “비겁하게 등을 돌리는 존재”로 드러나며, 이는 투사의 해체와 내면 통합의 순간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개성화는 그림자와의 화해를 전제로 하며, 이 시는 바로 그 전환을 상징한다.
둘째, 공동체적 차원에서 집단적 상처와 미완의 자아를 은유한다. 「소인국의 꿈」에서 재개발 불안과 갈등은 공동체의 그림자를 표출한다. “한번 뚫린 못자리는 언제나 내 자리”라는 구절은 상처가 무의식 속 콤플렉스로 영원히 남는 것을 상징하며, “소인국”은 상실된 기억들이 살아 있는 무의식의 보존소이다.
「무두정에 대하여」의 ‘대가리 없는 무두정’은 익명으로 묻힌 희생이 곧 집단적 죄의식의 표상이다. 이 ‘대가리 없는 못’은 그림자와의 화해에 실패하여 온전한 자아를 이루지 못한 불완전한 인간의 초상을 보여주며, 그 울음은 집단 무의식의 통곡이다.
셋째, 영적 차원에서 희생을 통한 자기(Self) 실현이다. 「해미마을」에서 순교자들은 “꼿꼿한 못”으로 형상화되어, 고통을 통해 자기(Self)와 합일하는 신화적 단계에 이른다. 또한 「고백성사」는 죄의 고백을 통해 무의식의 짐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그림자 통합의 의례적 행위를 보여준다. 「나사못 경전」의 나선형 구조는 융의 개성화 나선을 상징하며, 못 머리의 십자가와 “정수리에 새겨진 십자가”는 자기(Self)와의 합일을 의미하는 내적 성화(聖化)의 표식이다. 못은 더 이상 단순한 사물이 아닌, 고통을 통해 완성된 인간 정신의 ‘경전적 상징’으로 승화된다.
종합하면, 김종철 시인의 ‘못’ 연작은 분석심리학적 ‘개성화 과정’의 시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못은 개인의 불안에서 집단적 상흔을 거쳐, 종교적 초월에 이르는 통합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시학은 일상적인 사물(못)을 매개로 인간 내면의 심층 구조인 원형을 탐구하며, 고통을 자기(Self) 실현의 통로로 승화시키는 한국 현대시의 독창적인 지평을 열었다는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