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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이희규(광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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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_ 남자(관광버스 소유자. 50대 중후반. 반백의 긴 머리를 뒤로 묶었다. 자유분방하다)|여자(화가. 50대 중반. 정숙하고 규범을 잘 지키는 성품을 지녔다) * 두 인물은 각자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때문에 방백이 빈번하고, 인물의 대화가 바뀌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_ 현대

_ 산 중턱 언덕 위의 목련동산 정원

무대_ 여자 혼자 사는 집의 뜨락. 호수가 보이는 도시의 변두리에 있어 조용하고 잘 다듬어진 양옥이다. 언뜻 보기에는 성당 같은 느낌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뜰 아래 언덕에는 여러 목련이 동산을 이루고 있다. 뜨락의 오른편에 목련이 피고 있다. 그 옆에 캔버스가 놓인 이젤과 의자 하나. 왼편에는 야외용 원형 철제 테이블과 의자 세 개가 보인다. 테이블에는 남자가 사용하는 노트북이 놓여 있다. 오른편 후면에는 야외용 흔들그네. 그 옆에 집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허리 돌리는 야외 운동 기구에는 훌라후프와 줄넘기가 걸려 있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속 마음을 드러내는 방백은 조명으로 구분해도 좋겠다.

1. 목련꽃 피다

막이 열리면 안개가 자욱한 무대. 안개 사이로 여린 실루엣. 기도하는 여자. 남자는 흔들그네에 앉아 대금을 손에 들고 참선하듯 앉아 있다. 여자가 성호를 긋고 나서 이젤에 놓인 캔버스 앞에서 목련꽃을 그린다. 남자는 대금을 여리게 불고 있다. 까치 울음소리. 까치가 멀어지면서 무대가 밝아진다.

목련꽃이 피어나고 있다. 남자의 대금소리가 여리다가 강해지다가 다시 여려 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자 (그림을 그리다 멈추고 객석을 향해) 오늘도 호수에는 안개가 몰려오는군요. 안개는 저의 집을 스쳐 산으로 오릅니다. 저는 이 시간에 기도를 드리지요. 평소에는 방 안에서 하지만, 이렇게 목련이 필 때면 이 뜰에 나와서 두 손을 모읍니다. 그리곤 습관처럼 그림을 그리지요. 제가 그리는 그림은 딱 하나, 목련꽃입니다. (잠시 말을 멈추다가) 저에게 목련은 부활의 꽃입니다. 해마다 부활절 무렵에, 이렇게 순백으로 필 때, 저는 하느님의 섭리를 가슴 속에서 뜨겁게 만나고 있거든요 . 하지만 목련은 금방 지고 맙니다. 그래서 목련이 필 때면, 저는 온 정신이 목련에 팔려 있어요. (잠시 목련을 보다가) 목련은 꽃으로 시를 쓰고 있답니다. 저는 해마다 목련이 읊는 시를 그려내야 하거든요 . 길어야 사나흘 피는 목련은, 결국 처절히 무너지고 말지요. 떠나버리지요. 저는 꽃이 떠나기 직전의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겁니다. 일 년에 꼭 한번. 그래서 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추상화라고들 한다는데, 글쎄요. 저는 그 말에 대해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침묵 속에서 기도할 뿐, 다시 목련이 필 때를 기다리는 여자입니다.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아, 지금, 지금이 목련의 시를 화폭에 그려야 하는 시간이지요. (그림을 그린다.)

여자가 그림을 그리다가 남자를 힐끗 돌아본다.

여자 커피 한잔?

남자 (대금부는것을멈춘다.) ….

여자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어?

남자 (여자를 보더니) 그럴까, 입 안이 안개처럼 텁텁해.

여자가 안으로 들어간다.

남자 (대금을 들고 걸어 나오며 관객에게) 저는 안개를 좋아합니다. 보이는 세계를 가려주는 존재. 그러나 곧 사라지는 존재. 안개의 모호한 정체가 저는 좋습니다. 저는 작가는 아니지만,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안개에 가려 형태가 애매한 목련꽃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어쩌면 안개에 가려 있는 저 목련꽃은 안개가 사라지는 그 사이에 지고 말지도 모르지요 . 아니 그러겠지요.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말이죠. (테이블 의자에 앉으며) 저는 여기 잠시 머물다 가는 객승입니다, 스님이냐구요? 아니 아니, 그저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내 오랜 습성이 꼭 스님의 만행 같아서 하는 말이지요. (노트북을 당겨 덮개를 연다.)

여자가 두 잔의 커피를 들고 돌아와 테이블에 놓는다. 두 사람, 말이 없이 커피를 마신다. 멀리서 꿩 우는 소리.

남자 으음, 향기가 좋네.

여자 구하기 힘든 커피야.

남자 (향을 맡아보며) 언제나 자기 커피에는 수녀원 냄새가 나.

여자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남자 나는 녹차를 주로 마시지만, 자기와 함께할 때는 커피도 좋아.

여자 (웃으며) 고마워. 이따가그녹차좀줄수있어?

남자 물론이지. 물 건너온 고수차로 대접해 드릴게.

여자 (웃으며) 기대해도 되겠지? (잠시 남자를 보다가) 언제쯤 떠날 거야?

남자 왜, 빨리 가기를 바라? (가만히 웃는 여자를 보며) 알잖아? 목련이 지면?

여자 자기는 꼭 이맘때쯤에 오더라. 내가 가장 바쁠 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목련은 안개가 끼는 사이에 피고 져버릴 수도 있지. 내일이면 아마 지고 말걸? 사람들이 다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남자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다 완성되면 떠날까 해.

여자 또 소설?

남자 응.

여자 시나 쓰셔요. 자기는 시가 더 어울려. 그래, 무슨 이야기인데?

남자 자기가 그리는 꽃에 대한 것.

여자 후훗, 목련? 하필 목련이야?

남자 자기가 목련을 그리고 있잖아. (쓸쓸하게) 자기는 왜 목련꽃을 그리지?

여자 지금 목련꽃이 피고 있으니까. 곧 지겠지만….

남자 순간에 지지. 자기 말대로 안개가 걷히면 저 고고한 꽃….

여자 그래서 그리는 거야. 그 순간을.

남자 나도 그래서 쓴다고 할까.

침묵, 까치 울음소리.

여자 나는 지는 꽃은 그리지 않아

남자 그렇겠지 . 나는 피고 지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여자 재밌겠네.

남자 재밌을까?

여자 시작 부분이 어떻게 돼?

남자 글쎄,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까.

여자 뭐라구? 그걸 말이라구 .

남자 아냐, 그냥 하는 말이야.

여자 (생각난 듯이) 응, 쳇에게 물어봐.

남자 뭐? 체에엣? 작년엔 전화해보고 쓰라더니? (가늘게 웃으며) 늘 하는 게 아니니까. 아리숭한 세상살이에 답이 있겠어? (휴대폰을 들고 묻는다.) 진희, 목련꽃에 대한 소설을 쓰려는데 시작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소리, 대답은 여자의 목소리와 같은 기계음이다. 쳇의 대답이 들린다.)

‘당신의 마음이 중요해요. 이미 당신 머릿속에 그려져 있지 않나요.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이미 알고 있잖아요.

여자 (깔깔 웃으며) 모범답이다.

남자 (껄껄 웃으며) 그럴 수도 있겠지.

여자는 커피잔을 들고 일어나 이젤 쪽으로 걸어간다. 가다가 뒤돌아본다.

남자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여자 (멈춰서며 관객에게) 이래서 늘 우리는 헤어져 살았지요. 삼십년이 흘러 버렸어요. 답이 없는 남자. 저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지요.

(의자에 앉아 한모금 마시고 캔버스를 보며) 청춘은 꽃처럼 쉽게 지고 말지요. 막연한 기다림 . 뭔가 해결할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도저히 올 것 같지 않은 불안감이 엄습하던 시절. 생각해 보니 전 그때, 청혼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아니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지요.

남자 그래, 그 이야기를 써야겠어. 그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여자 어떤 이야기?

남자 한 여자가 있었어. 목련꽃 같은 여자. 남자는 그 여자를 사랑했었지.

여자 그래서?

남자 그 남자는 자유인, 얽매인 삶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지. (관객에게) 자유는 인간의 기본 조건이지. 이것을 막는 자는 나는 용서할 수 없어.

여자 그 이야기, 재미있는 보편적 이야기네.

남자 보편적이지만 특수한 이야기지.

여자 (혼잣말로) 나는 안주하고 싶었어.

남자 뭐라구?

여자 아니, 그래서 그 다음을….

남자 그래서…. (여자의 눈과 마주치자) 아냐. 그래, 평범하고 진부한 보편적 이야기네, 뭐.

여자 평범하고 진부한 보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특수한 이야기라며?

남자 그래. 그렇다니까. 그래서 재미가 없겠지?

여자 특수한 이야기라면 재미있겠지. 스릴 있는 스토리야?

남자 아냐 아냐. 그렇고 그런 보편적인 이야기.

여자 그렇고 그런, 진부한 이야기?

남자 여자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야.

여자 그럼, 성당 앞 찻집에서 만났겠네.

남자 그렇게 시작하면 좋을 것 같지? (관객에게) 나는 그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

여자 (관객에게) 나는 그날 너의 청혼을 기다리고 있었어.

남자 남자는 여자에게 속마음을 터놓으려고 했는데 .

여자 여자는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겠지?

남자 어떻게 알아?

여자 쳇에게 물어 봐. 어떻게 알았느냐고.

무대가 어두워진다.

2. 목련꽃 그리다

무대가 밝아지면 멀리서 꿩 울음 소리. 이어서 까치 울음 소리 들린다. 목련꽃봉우리가 벙글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남자가 포트의 찻물을 달이고 있다.

여자 젊었을 때는 커피가 좋았는데, 이제는 녹차도 좋을 때가 있어.

남자 밖을 향하다가 이제 안을 들여다보는 나이라서 그럴까?

여자 그래도 아직은 커피야. 달달한 카푸치노.

남자 되도록 아메리카노를 마셔. 당뇨를 조심해야 할 나이지 이젠.

여자 탄수화물은 잘 안 먹어.

남자가 찻물을 숙우에 우려서 찻잔에 따른다.

여자 와, 이 빛깔!

남자 향도 맡아 봐. 푸욱 익은 우리 나이의 향기, 나는 이 맛을 못 버려.

여자 기호품이 다 그렇지. 중독이야.

남자 중독이라…, 그래, 누구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병이지.

여자 (한 모금 마시며) 나도 녹차로 바꿀까?

남자 커피에 중독된 화백께서 전향하시겠다?

여자 기호의 확장…, 소설은 돼 가? 속이야기를 하려 했다?

남자 그랬지. 기다렸다고. 여자는.

여자 (쳇의 기계음처럼) 그런 건 당신의 마음속에 있지 않아?

남자 그럴지도 모르지

여자 (쳇의 기계음으로) 사랑의 갈등과 사랑의 진실, 사랑의 실험이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맛깔나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남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다 알지만, 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

여자 그래서 자기는 어떻게 쓸 거야?

남자 사랑의 갈등과 진실에 대해 써야지.

여자 구체적으로.

남자 진부해도?

여자 보편적이지만 특수한 이야기라메?

남자 그렇지만, 본인들에게는 심각한 이야기겠지?

여자 가까이에서 보면 다 비극이니까. (관객에게) 난 네가 왜 해마다 여기를 찾아오는지를 알고 있어.

남자 그래서 .

여자 음, 그래서?

남자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지.

여자 (일어서며 관객에게) 나는 일어서 버렸어.

남자 일어서 버리더라구.

여자 (이젤 쪽으로 걸으며 관객에게) 나는 그 남자에게 기다렸다고 말하려 했었지.

남자 그런데 여자는 굳은 표정으로 나가버린 게야.

여자 뻔하지. 남자가 맘에 들지 않았거나, 방법이 서툰 거, 그중 하나겠지.

남자 그럴까?

여자 (돌아서며) 우리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 음, 이야기 이어가기.

자기는 남자 이야기를 하고, 나는 여자 이야기를 해보는 거야.

남자 그래 볼까? 그래, 자기부터 이야기해 봐.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갈수록 말이 빨라지고 호흡이 고조되면서 목소리가 커진다.

여자 여자는 음…, 거절하는 게 아니라 청혼을 기대했는데 전혀 다른 말을 하니까.

남자 청혼은 그 다음에 하려고 했지.

여자 좀격식있는청혼.

남자 격식?

여자 그래, 다방이 뭐냐? 그나마 꽃 한 송이도 없이.

남자 그게 중요해?

여자 중요하지. 요즘 드라마처럼 거창한 프로포즈는 아니래도 분위기는 살렸어야 했지. 좀 근사한 데를 골라보지 그랬어?

남자 결혼은 그 다음에 해야 할 이야기라니까. 그래, 어쨌든 .

여자 이미 그 여자는 아버지가 골라놓은 남자한테 청혼을 받아 두고 있었으니까.

남자 부잣집 아들이라고.

여자 사실은 그 여자의 맘에 들지 않은 사람이었지.

남자 그런데 그 혼사는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른 거야.

여자 가족 몰래 수녀원으로 숨어들었어. 여자가 도망친 거야.

남자 남자도 도망치듯 군대를 갔고 . (관객에게) 진압군에 편성되었지.

여자 그해 봄… 결국 부모님이 수소문 끝에 수녀원으로 여자를 찾아왔지.

남자 그해 봄… 남자는 총을 쏘았어 (총소리, 귀를 막으며 테이블에 엎드린다)

여자 여자는 발악을 했지

남자 제대 후 나는 섬으로 갔어.

여자 그 남자가 오기를 기다렸지.

남자 남자는 고향으로 갈 수가 없었어.

여자 음악만 들었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남자 절에 들어가 부목이 되었지. 절의 나무꾼.

여자 결국 결혼을 해야 했지.

남자 그 여자의 결혼식을 몰래 보았어.

여자 그, 그런데… 그 남자가… 사내구실을 못하는 거야.

남자 (관객에게)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여자 아무리 권력 있고 잘생기고 부자라지만, 고자하고는 살 수 없는게 아니겠어?

남자 남자는 결국은 원양어선을 탔어.

여자 이혼을 했지.

남자 참치어선이었어.

여자 돈을 벌어야 했어.

남자 (고개를 돌리며) 태평양에서 대형 그물을 내려 잡고, (눈을 번득이며) 대서양에서는 청새치를 작살로 때려잡았지.

여자 (귀를 막으며) 입을 앙당 물고 돈을 모았어.

남자 (악을 쓰며) 그만, 그만해.

여자 (귀를 막은 채 쓰러지며) 그래, 그만해.

헐떡거리는 두 사람. 땀에 젖은 얼굴. 여자의 머리가 헝클어지고 남자의 윗저고리가 흐트러졌다. 순간 들리는 기관총 소리. 총에 맞은 듯 쓰러지는 두 사람.

무대 어두워진다.

3. 목련꽃 쓰다

무대가 밝아지면 남자 노트북에 열심이다. 여자는 흔들그네에서 흔들거리며 목련을 본다. 그리고 일어나 이젤 앞에 가 목련을 그린다, 더 화사해진 목련. 활짝 피었다.

여자 (관객을 향해) 목련은 해마다 다르게 피어요. 사람들은 목련이 그 목련이지 뭐 하시겠지만, 아니에요 다 달라요. 우선 목련의 종류가 900여 종이나 되는지 알고 계세요? 백목련, 은목련, 자목련, 황목련, 컵사목련, 산목련…. 저도 이름을 다 몰라요. 나무는 또 어찌나 잘 자라는지. 조그마한 게 이제 이렇게 2층 높이까지 크는 동안 그 모습도 얼마나 달라졌겠어요. 글쎄요. 큰 나무일수록 꽃이 진하게 피는 것 같은 느낌은 제 착각일까요? 올해는 유독 꽃잎이 담백색이네요. 신기하게도 꽃송이들은 왜 그리 똑같은지요. 일란성 쌍둥이들이 온 가지에 어우러져 피어 있는 광경, 이거야말로 섭리가 아닌가요?

남자 (관객에게) 참 얄궂은 인연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벼라별 이야기들이 꽃송이만큼이나 피어 있고, 잎새처럼 지고 있지요. 저는 유랑객입니다. 참치 원양어선 탈 때 벌었던 돈이 밑천이 되어 관광버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운수업이지요. 옛만큼은 못하지만 꽤 쏠쏠합니다. 운수가 좋아서인지 남쪽 항구에는 제 작은 배 한척도 장만해 두었답니다. 젊은 시절이 그리우면 바다로 가서 배에 시동을 걸기도 하지만, 저는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한곳에 오래 머무는 성격이 못됩니다. (다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는데 몰두한다.)

여자 (그림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올해는 잘 나왔네.

남자 뭐라구? (기지개를 켜며 여자에게) 이제 거의 마무리된 모양?

여자 (붓을 멈추고) 뭐 다 썼다고?

남자 얼추. 나는 글쟁이가 아니니까 대충 써도 되는 것 아니야?

여자 대충이 어디 있어? 최대한 완벽해야지. 나도 이제 다 그렸어. 마무리하면 다 돼.

남자 나는 시간이 더 걸리겠는데?

여자 내일이면 다 질 거야. 바람 불면 오늘밤이 마지막일 거구. (한 발 물러서 그림을 보며) 언제나 미완성이야. (캔버스를 베일로 가린다.) 간단히 먹고 하지?

남자 그럴까?

여자 토스트 다 됐을 거야. 가지고 올게. (안으로 들어간다.)

남자 (들어가는 여자를 보며) 얄궂은 인연입니다. 어쩌면 부부의 연을 맺을 수도 있었던 여인. 어인일인지 우리는 지금도 싱글입니다. 늙어가는 마당에서야 일 년에 한 번씩 만나지요. 견우 직녀냐구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목련꽃 피는 동안에만 만나는 이상한 관계지요. (일어서서 허리 운동을 하며) 일년에한번씩, 한이삼일 머물다 가는데, 같이 있을 때는 옛정에 다정다감하지만…. 허허허,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관계는 절대 아니랍니다. 안채 접근 금지는 불문율입니다. 저는 그저 잠깐 머물다 스쳐 가는 바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런 관계가 언제까지일까요. 윤회하는 무상이 상황을 새롭게 창조하지 않던가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안주하고 계신 건가요?

여자가 토스트를 담은 접시를 들고나오며 흔들그네에 놓는다.

남자 오우, 맛있는 냄새가 방방곡곡이오.

여자 배고플 거야. 먹고 써.

남자 (흔들그네에 앉으며) 쓰긴 써야 하는데. 작년에도 결국 못 쓰고 말았지?

여자 (토스트를 권하며) 왜 소설을 쓰려고 해? 집시는 음유시인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남자 집시? 집시는 이야기꾼이기도 하지. 이야기는 역사를 상상의 언어로 기록하는 자료가 되지. 시가 직관에 의한 통찰이라면, 소설은 실제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에게 절절히 다가가는 것 같아서.

여자 작년에도 못 쓴 소설을 올해라고 가능할까?

남자 못 쓰면 내년에 와서 다시 쓰지.

여자 평소에도 소설을 쓰는 거야? 자기 페북에는 시만 올려져 있던데?

남자 시는 개뿔. 나는 문인이 아니야. 그냥 문학 애호가, 시 향유자일 뿐.

여자 더더구나 소설가는 아니라는 말씀?

남자 언제나 자긴 나를 잘 알아.

여자 마찬가지지. 자기는 나를 정확히 꿰뚫고 있잖아.

남자 그래서 편해.

여자 그래서 불편해.

남자 불편해? 맞아. 자기가 그러니까 나는 나돌아.

여자 웃기지. 떨어져 있으면 그립고, 가까이 있으면 어색한 이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남자 우주의 이치가 그렇고, 사람의 심리가 그렇고, 종교의 섭리가 그런지 모르지.

여자 도대체가 알 수 없는 관계들의 존재.

남자 대부분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들의 관계.

여자 그런 관계…. 그러니까 소설 속의 이야기도 그렇다는 게지?

남자 맞아. 가까우면서도 멀리 떨어져 사는.

여자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

남자 부자가 됐어.

여자 남자는 원양어선을 17년이나 탔어.

남자 여자는 위자료를 받아 미술학원을 차렸고,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을 모아 목련동산을 만들었지

여자 (관객에게) 그해 봄, 그렇게 헤어진 날에 이 도시는 폐허가 되었지.

남자 (관객에게) 그해 봄, 나는 군가를 부르며 도시로 진입해 갔어.

여자 (관객에게) 그해 봄에 수녀원에 핀 목련꽃이 처절했어.

남자 (관객에게) 그해 봄에 거리에 쏟아지는 총탄들이 건물에 벌집을 만들었지.

여자 남자도 충혈된 눈으로 총을 쏘아댔어.

남자 (관객에게) 고향을 향해 총을 쏘았어, 나는.

여자 (관객에게) 수녀원에서 처절한 목련꽃을 그리기 시작했어, 햇살이 슬프도록 좋은 날. 묵주기도보다 그림 그리는 것이 내 생활의 전부였어.

남자 (관객에게) 반미치광이가 되어 육군 병원에 입원하게 됐지. 그 여자는 끝내 아버지에게 끌려갔고.

여자 그 남자는 고향에 돌아올 수가 없었지.

남자 그 여자는 그래도 그 남자를 기다렸어.

여자 기다렸지만, 그 남자는 오지 않았어. 그래 (남자를 보며 대들 듯이) 왜 오지 않았어?

남자 무너지는 내 자신을 부축할 수가 없었어. 갈 수 없었어.

여자 자기가 말렸다면 굳이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았을 거야. 왜 내게 다가오지 않았지?

남자 모든 게 불확실했으니까.

여자 자기는 비겁했어. 청혼까지 생각했으면서도 끝내 말하지 않았고, 내가 아버지를 피해 숨었다는 것도 다 알았으면서도, 오지 않았으니까.

남자 청혼을 꼭 말로 해야 해? 내 눈빛, 말투, 내 태도를 보면 충분히 알았을 텐데?

여자 생각은 생각일 뿐, 분명히 말을 해야 형체를 그리게 되지. 말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거짓이고 위선이야.

남자 말하지 않는 데에 진리가 있지. 사람들의 말이란 얼마나 요사한지, 잘 알잖아.

여자 사람과 말씀의 무게에 따라 다르지. 언어는 로고스야. 로고스에 의해 세상은 유지되고 질서가 생기는 것이지.

남자 파토스에 의해 지배당하는 현실도 분명히 있지.

침묵.

여자 (감정을 다스리며) 자기가 진심이었다면 수녀원으로 찾아왔어야지. 자기는 내가 거기 있을 줄 알았을 것 아니야.

남자 수녀원에 갔다는데 무슨 용기로 찾아가….

여자 바보….

남자 바보? 그래, 바보.

여자 제대 후에도 기다렸는데.

남자 얘기했잖아. 나는 총을 쏘았다고. (눈물을 훔치며) 나는 고향을 향해 총을 쏘았다고. 어떻게, 어떻게 얼굴을 들고 고향을 찾아가고 너를 찾느냐고.

여자 (울먹이며) 자기가 나를 찾았다면 우린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남자 (대금을 내려보다가) 대금을 불고 있지 않겠지.

여자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거고…. 수녀원에 서 있는 목련이 생각이 나서 목련 호수가 보이는 이 집을 샀지. 아니지, 아버지가 내가 애처로워 물려 주신 셈이지. 그리고 이 아래에 목련을 심었지.

남자 목련 동산.

여자 그래, 목련 숲.

무대가 어두워진다.

4. 목련꽃 지다

무대가 밝아지면 목련이 한 잎 한 잎 지고 있다. 여자가 꽃잎을 주워 든다.

남자는 노트북을 챙기고 있다.

여자 소설이 다 됐겠네.

남자 아니, 마지막을 못 쓰겠어.

여자 (쳇의 기계음으로) 모든 게 당신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잖아요. 솔직히 그 마음 그대로, 그 생각 그대로를 그냥 쓰세요.

남자 올해도 또 소설은 못 쓰게 되나 봐.

여자 벌써 목련은 지고.

남자 내 마음은 나도 모르고.

여자 목련이 다 지면 다시 떠난다.

남자 목련꽃은 바람에 벌써 추락하고.

여자 장엄하게 승화하고.

남자 모든 건 피고 지고.

여자 꽃은 지고 피고 . (남자를 보며)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남자 흔적 없이 살고 싶어. 파동처럼.

여자 나는 재속 수녀처럼 살아갈 거야.

남자 (머뭇거리다가) 아직도 내게 기회가 있을까. 나도 안주하고 싶어.

여자 안될걸?

남자 그날 그 찻집에서 자기가 일어서지만 않았어도.

여자 자기가 진심으로 청혼만 했어도.

남자 자기가 수녀원으로 가지만 않았어도.

여자 제대 후라도 찾아왔더라면.

남자 얘기했잖아. (소리를 지르며)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고!

여자 (차분하게) 햇살은 어둠을 이기는 법. 진리는 언제나 그곳에 서 있는법.

남자 지금도 자기를 향한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

여자 오래 전에 상황이 달라졌지.

남자 달라졌다는 것은 다시 원점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아냐?

여자 착각이겠지.

남자 모든 게 착각, 착시, 착오지.

여자 다른 것은 다르고 같은 것은 같은 것.

두 사람이 반대쪽을 향해 걸어가며 방백을 한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소리가 커지고,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남자 나는 소리.

여자 나는 그림.

남자 나는 바람.

여자 나는 햇살.

남자 나는 물결.

여자 나는 입자.

남자 나는 바다.

여자 땅.

남자 흘러가는 물방울.

여자 피어나는 불꽃.

남자 꽃잎.

여자 꽃순.

남자 방랑자.

여자 붙박이.

남자 시간.

여자 공간.

남자 내속에는나아닌나의자아.

여자 내 안에는 나의 거룩한 자아.

남자는 흔들그네에 털썩 주저 앉고, 여자는 목련꽃 앞에 선다.

여자 풍문 속에 들려온 그 남자의 소식을 들었지. 원양어선을 타고 돌아왔다는 소문. 내가 미술학원에 한창일 때였어.

남자 바다는 자유였지만 배에 갇힌 감옥생활이었어. 끝이 없는 수평선과 낙조에 취한 나날이 차라리 위안이었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업장, 까르마가 나를 바다로 끌어냈는지 몰라.

여자 학원은 생활의 텃밭이긴 했지만, 나만의 공간이기도 했지. 수녀복도 입어보지 못한 나에게, 아버지에 끌려나가는 나에게, 원장수녀는 말했지. 어디서고 목련꽃처럼 살아요. 목련은 부활절에 피는 꽃이지요. 부활의 신앙이 당신을 지켜줄 겁니다. 전능하신 분은 언제 어디서고 자매님 곁에 계실 겁니다.

남자 네가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나도 절에 들어가지 않았을 거야. 네가 수녀가 되기로 했다는 소식에 바닷가를 방황했었지. 마음 둘 데가 없었어. 바다가 보이는 절에 들어가 분노의 장작을 팼지. 바람과 파도, 대금이 나를 살렸지. 화장세상(華藏世上)이 그려지는 나날은 없었어. 나는 멀리 가기로 했어. 너의 결혼식을 몰래 보고 온 뒤에 .

여자 그런데 왜 (잠시 침묵) 쉰이 넘어서야 날 찾아왔지?

남자 육지가 어지러워서.

여자 땅멀미?

남자 그것보단 네가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어.

여자 두려웠다고?

남자 적응기간이었어. 관계에 대한.

여자 관계?

남자 응, 우리들 사이의 관계.

여자 우리들의 관계는 변한 게 없어. 다만 생각만 바뀌었을 뿐이지.

남자 생각했어. 이 지상에 있을 때 꽃 한번 피워야 할 게 아니냐고.

여자 우리는 만나지 않았을 때도 늘 만나고 있었고, 만나고 있는 동안에도 항상 헤어져 있었지.

남자 운명이지. 그러나 운명은 근엄한 숙명의 모자를 쓰고서 나타나기도 하지.

여자 어디서든, 언제이건. 내가 깨달은 건 그냥 존재한다는 거야. 보는 눈만 다를 뿐이지 본질은 변하는 게 없어.

남자 아니야, 우리는 언제든 변할 수 있어.

여자 변해도 변하지 않아.

남자 그건 궤변이지. 바다에서 변하는 나를 보았어.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던 내가 참치를 향해 쏘는 작살에 눈이 뒤집혀 버리다니. 그 쾌감 (여자에게 다가가며) 이제 줄다리기는 그만두자.

여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남자 그때 못했던 젊은 날의 고백을 이제 하려고.

여자 (뒤로 물러서며) 가까이 오지 마. 다 늙어서, 뭐, 이제라도 고백?

남자 그래 진희야, 나는 너를 두고는 이대로는 살 수 없어.

여자 쓸데없는 말 하지 마. 더 다가오면 용서 못해. (유화 나이프를 들며 위협한다.)

남자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가며) 젊은 청춘은 순수의 시대였지. 그래서 차마, 차마 고백하지 못했어. 이제 우리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야. 창가에 앉아 지는 해를 같이 바라보자.

여자 오지 마!

달려가듯 가다 여자의 치마를 잡는 사이 이젤이 넘어진다. 베일에 가린 캔버스의 그림이 드러난다. 하얀 백색의 그림.

여자 (그림을 주워 뒤로 감추며) 보여 줄 수 없어, 내 그림.

남자 뭐, 뭐야. 여태 그린 것이 백지? 그림은?

여자 네가 모르는 원색이지. 순수의 원형.

남자 아니 분명히 물감으로 그렸잖아.

여자 그리고는 나는 마지막엔 반드시 지워. 흔적이 없게 흰색으로 덧칠해 버리지.

남자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차라리 그리지 말 일이지.

여자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가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야.

남자 (남자 달려가 캔버스를 빼앗아) 이건 사기야.

여자 (그림을 빼았으러 달려가다가 나이프를 뺏긴다.) 이리 줘. 내 그림이야.

남자 (여자를 뿌리치며 캔버스를 보다가) 허억, 백지의 목련꽃.

여자 (쓰러져 있다가 고개를 들며) 나는 그림을 마음으로 그려. 당신 눈에는 백지로만 보이겠지만 내게는 생생한 사실화야.

남자 추상화를 그린다고 했잖아. 너만의 추상화.

여자 그랬지. 추상이 아닌 게 어디 있어? 본질은 언제나 추상이지. 그리고 원색이지.

남자 미쳤어. 미쳤어. 이건 그림이 아니야. 하얀 백지지. (나이프로 캔버스를 푸욱 찔러 찢어버린다.)

여자 안돼! (찢어진 캔버스를 들고 울며) 미친 건 너야. 보이지 않는 진실을 못 보는 너야말로 미쳐 날뛰는 돼지지.

남자 내가 미쳤다고? 왜 그럼 너는 나를 맞아 주었어. 청혼을 기다렸다는 네 말을 어떻게 설명할 거야.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아니다?

여자 그때 그 마음이나 지금 나의 마음은 같아. 그러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알아? 빛과 어둠의 세계에서는 이것을 모르지. 그래서 너는 영원히 내 주위만을 하염없이 빙빙 돌고 있겠지.

남자 이제 더 이상 돌지 않겠어. 너에게 직진할 거야. (남자 성큼 다가선다.)

여자 오지 마. (물러서며) 내 마음은 사람에게 있지 않아.

남자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하지, 누가 사람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다는거야?

남자가 충혈된 눈을 번득이며 여자에게 달려들어 쓰러뜨린다. 여자가 반항한다. 번개가 친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린다. 비를 맞으며 목련꽃이 흔들린다. 떨어지는 꽃잎.

여자 (방백, 에코로) 나는 자기가 이 도시를 떠난 뒤부터는 죽은 목숨이었어. 차라리 나를 죽여 줘. 그러나 내 몸에는 손대지 마. 나는 은총으로 살아. 나는 처녀야.

남자 (방백, 에코로) 어차피 인생은 못다 쓴 소설이야. 그리지 못한 그림이고.

마침내 능욕 직전에 온힘으로 비명을 질러대며 밀쳐내는 여자. 폭풍처럼 쏟아지는 피아노의 굉음. 사타구니를 쥐고 나뒹그라지는 남자. 커지는 빗소리. 남자 헐떡이다가 서서히 일어선다. 허헉대다가 비틀거리며 뛰쳐 나간다.

밖에서 소리를 지른다. 서서히 일어나 옷을 추스려 입는 여자.

여자 (찢어진 캔버스를 보다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나는 움직이지 않아. 언제나 여기 있을 거야. 목련이 있는 이 언덕에서 목련이 필 때까지 늘 기다리다가, 너를 기다리다가, 아니 그 무엇을 기다리다가….

정적 속에 서서히 안개가 끼는 무대. 조명이 흐려진다.

여자 (소리) 너는 바람이야/ 나는 햇살/ 양지 바른 곳에/ 피는 목련꽃//너는 나/ 나는 너/ 너와 나는 하나다// 꽃 한송이 둘이 아니니/ 하나이나/ 하나 아닌 우리는// 없다가도 있다/ 있다가도 없다.

남자 (소리) 나는 파동이야. 네가 언제 어디에 있어도 나는 네 옆에 있을 거야. 너와 나는 떼어낼 수 없는 그 무엇이야. 내가 안드로메다 성하에, 아니면 저 우주 그 어느 끝에 있더라도 흔적 없이 다가올 거야. 그리고 다시 흔적 없이 사라질 거야.

밖에서 대금 소리 여리게 들리는데, 한 송이 남아 있는 목련꽃을 비추는 빛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귀신처럼 웃으며 조롱하는 듯한 쳇의 에코 웃음 소리커지며 캄캄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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