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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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들어 한층 연둣빛 초록으로 짙어 가며 싱그럽더니 부슬부슬 촉촉한 그리움을 부추기는 5월 15일 스승의 날입니다. 김용재 시인께서 지난 4월 29일 타계, 30일 국제PEN 한국본부 문인장 영결식, 5월 1일 발인을 마치고 애도하며 2주가 흘러갔습니다.
아직 가상인지 실제인지 실감이 오락가락해 인터뷰 전 먼저 약력과 짧은 시 2편을 묵음으로 마음을 추스르렵니다.
김용재(金容材) 시인. 문학박사 아호 창운(蒼云). 1944년 3월 5일 대전 출생. 대전대 영문과 교수(재임 중 교무처장, 미국 USC 객원교수, 교수협의회장, 문과대학장, 대학원장) 역임. 월간『시문학』으로 문단 데뷔(1974∼75). 저서 : 창작시집『겨울 散策』(1976), 『아침바람 行次』(1980), 『휴일의 새』(1985), 『저무는 날의 명령법』(1988), 『兵士와 달맞이꽃』(1992), 『바퀴에 깔려도 햇살은 죽지 않는다』(1993), 『청동빛』(1998), 『머물러 있던 시간의 飛翔』(2002), 『저기 어둠의 실루엣 허물어진다』(2008),『큰 꿈은 일어나 날개를 달고』(2010), 『더하기와 지우기』(2018), 기념시집 5권, 영역(영문)시집 4권, 기타 저서 20여 권 포함 40여 권. 수상 : 대전시문화상 문학(1994), 한국현대시인상(2003), 국제계관시인상(2004), 미국폴리엔뷰, 김우종문학상 대상(2015), 탄리문학상 대상(2023) 등. 국제PEN 한국 본부 제36대 이사장, 국제계관시인연합한국본부(UPLI) 회장, 『Poetry Korea』 발행인,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제26대 이사장 역임 등.
절반 더하기/ 절반은/ 온전한 조국의 모습// 지우기 선 하나면/ 훨훨 날개의 무게.(「더하기와 지우기」 전문)
혼자 있는 고독의 그림자/ 감추어진/ 하오의 병실이었지/ 사람은 사람에 의해 사랑을 받고/ 사람은 사랑에 의해 위안을 받고/ 그런 생각 또 생각/ 거듭하고 있었지/ 문득 창 끝에 매달린 낮달/ 창백한 가슴이/ 가깝게 보이는 것이었지/ 마지막 생존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리운 가슴이었지.(「낮달의 가슴」 전문)
김철기_ 이사장님 반갑습니다. ktx 자리는 편하셨어요? 아∼ 환하십니다. 오늘도 멋진 코디 멋진 사모님께서 살펴주신 거겠죠?
김용재_ 허허 그래요. 김 시인 오래 기다렸어요?
김철기_ 서울역에 도착은 좀 일찍 했지만 귀한 만남 기다림이 좋았습니다. 오늘은 특히 뵙고자 하는 제자와 후학들이 여럿일 텐데 저의 삶이나 시업에도 이사장님은 존경스러운 스승님이세요. 시간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재_ 어이구 그렇게 생각해주니 내가 고맙지요.
김철기_ 다음 일정까지 여유가 되니 어디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은데요?
김용재_ 좋은 곳은 뭐… 서울역은 하도 자주 오니 서울 사람보다 내가 더 밝을걸. 에스컬레이터로 3층 올라가 둘러보기로 해요.
김철기_ 서울역은 가까운 분들과 편리한 미팅장이고 징검다리로 충분한 곳이긴 해요. 낯선 듯 낯익은 듯 분주하면서 무덤덤하기도 한 사람들 사이 익숙한 향기가 이끄는 라운지 한 녘에 다행 괜찮은 빈자리가 우릴 기다립니다.
김용재_ 그렇구먼.
김철기_ 근간엔 이사장님 서울 오실 때 ktx와 제가 오는 지하철1호선 맞닿은 서울역에서 이렇게나마 뵈어서 좋아요. 예전엔 같은 문학 행사에서도 먼발치로 드문드문 뵙다가 10여 년 전인가요. 윤동주 시인 관련 행사로 김우종 교수님과 그땐 이사장님도 교수님으로 불렀지요. 함께 행사하고 말씀 들으며 한결 점잖으신 기품 인격 풍기는 학식과 선배 시인의 품위가 인상 깊었답니다. 그러다 2018년 어느 날 처음으로 전화를 받게 되었지요.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으로 추대되셨고 뜻밖에 상임이사를 맡아 달라는 말씀을요. 사실 그 훨씬 이전 고 최은하 이사장께서 부이사장을 하라실 때도 열심히 협조는 해드리되 직책은 맡기지 말아 주십사 했는데 웬일인지 이사장님 청에 사양을 못 하겠더라고요. 잘 보필할 수 있을지 반문과 잠시 망설임 끝에 따르겠다고 답한 뒤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과 한편 조금이라도 협조할 자세를 다짐한 생생한 기억입니다.
김용재_ 그랬지요. 당시에도 나름 퍽 여러 단체장을 하지만 중앙문단 수장을 지방에 사는 사람이라고 또 병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간혹 우려의 말도 들리고 처음엔 좀 막막하기도 할 때 전적으로 호응해줘서 고마운 시기였음을 잘 알지요.
김철기_ 이사장님 앞이라서가 아니라 2019년 시협 이사장 취임 후 정말 새롭고 유익한 심포지엄이며 다각적인 문학 행사를 주관 주최하시는 추진력에 저는 감히 조용한 카리스마 미학적 리더라는 생각을 했고요. 저뿐 아니라 임원 회원 호응 속 행사들을 돌아볼까요. 국제 문화 교류 사업으로 한국현대시인협회, 베트남작가협회 MOU에 이어 한·베 문학 교류 기념비 제막, 계룡 세계군(軍)문화 축제와 연계 <분단국가와 통일 문학> 문학 심포지엄이며, 옥천 지용제 연계 <4·19혁명과 열린 세계의 시> 행사로 국회도서관에서 있었던 이사장님 기조연설 「시는 혁명의 자양분이다」는 시가 지닌 힘을 온전히 절감했습니다. 기념시 낭송한 저도 자부심이 오래도록 남는 한 시점이기도요. 계기로부터 서울, 대전 이사장님이 불러주시고 자주 행사를 치르며 많은 배움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2020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이 된 강정화 시인이 영역 사화집을 발간하며 이사장님께 번역을 부탁해 왔는데 분량이 많아 번역 인원이 부족하다고 제게 추천자를 청하시기에 평소에도 제가 영어를 잘했으면 훨씬 업무에 도움 될걸 하던 차 마침 막역한 사이인 우형숙 시조시인을 천거했고, 지금껏 이사장님 곁 번역가 일원으로 활약하니 서로 힘을 보탠다 싶습니다.
김용재_ 적기에 고마웠지. 주변에 협력하는 사람들이 분야별로 다 실력 있고 성실하고 내가 인덕이 많아 일하기가 원만한 거지요.
김철기_ 이사장님의 포용과 덕망에 사람이 따르는 것이 맞지만 한편 확실히 인덕이나 행운이 있는 분임에 저도 동감, 무엇보다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선거에 단독 출마하셔서 낙선팀 없이 취임하심이 그 하나라는 생각이랍니다. 덕분에 기존의 정기적 행사나 이사장님 뜻하시고 기획하시는 그 많은 사업을 추진하는 데 원활하고 평화로워 보여요.
김용재_ 아무리 이사장이어도 일은 혼자 못 하는 거 알잖아요. 사무처 직원들 업무가 수월찮아 너무 고생들 많아요. 그래도 김경식 사무총장을 비롯해 김율희 편집장, 이애정 사무국장, 이주향 과장까지 얼마나 열심히 체계가 잡혀 잘들 해요. 김 시인에게도 몇 번 말했다시피 올해 펜 70주년 기념행사로 크게 5개 장르 선집 발간과 차원이 다른 시낭송회 개최 등 특별하게 회원들 긍지도 높이는 목표로 추진하고, 세계한글작가대회 10회도 한글문학의 세계화를 보다 확산하기 위해 외국 참여국이며 국내 작가 선정에 품격과 균형을 고려 미리부터 구상 중인데 예산부터 신중히 해나갈 밖에요.
김철기_ 펜 본부 사업 외에도 대전에서 이끄시는 굵직한 국가사업의 직책 업무며 무엇보다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본부(UPLI-KC) 『Poetry Korea』 발간하시는 등 건강에 무리가 될까 걱정입니다.
김용재_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일도 많긴 하지만 이영조 이정희 김영훈 김명아 등 여러 문인과 동문이 도와주는데 노령들이어서 걱정이지요. 그리고 『Poetry Korea』 발간은 문덕수 선생님이 시작해 초창기를 하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지목해 적임자라고 꼭 좀 맡아 이어달라 간곡히 말씀하셔서 맡게 되었지. 1년에 2회 영역시집 발간이니 바쁘긴 하지만 대전에서도 김인영 정미선 전민 시인 등 여러 사람이 역할을 잘하고 아들이 거역 못 하고 출판을 담당하니 총체적으로만 살피면 별 차질 없고 의견 일치하는 것도 인덕이라면 인덕인 셈이겠지요.
김철기_ 저는 지금도 가장 어려움이 사람 관계인데 이사장님은 평생 구심점이셨으니 그러리라 싶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단체 업무를 하시면서 대체 창작은 어느 시간에 하시는지요? 사실 전에 이사장님의 불의에 저항하는 시편이나 광복 통일 역사관 환경 중심 작품들을 대할 땐 올곧고 강직하시기만 한 줄 알아 대화나 메시지 행사의 축사에서도 느끼는 온화함과 뭔가 시적 결이 다르다고 갸웃했습니다. 어느 해 비대면 ‘만해’ 관련 축사를 맡으신 행사에 앞서“문인 중에 김 시인 말고 시낭송을 누가 잘한다고 생각해요? ”느닷없이 물으셔서“ "잘하는 낭송가들이 많겠지만 저는 장충렬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일찍부터 성향도 맞고 낭송에 관한 의견이 통합니다.” 말씀드렸지요. 그때 축문도 제가 느끼는 이사장님 결이 담긴 장시 낭송 같았거든요.
김용재_ 아 그래요? 심포지엄이나 행사 성격이나 주제 관련에 따라 강한 사실적 시도 많이 쓰긴 했지요.
김철기_ 네네, 최근에 이사장님 시에 단숨에 스몄잖아요. 지난 2022년 한영판 『바퀴에 깔려도 햇빛은 죽지 않는다』 시집을 눈물로 읽었습니다. 이미 1993년에 발간하셨는데 그 무렵이면 저도 한 달에 시집 수 십 권을 읽고 독서량이 많은 시기였는데 왜 못 읽고 이제야 읽으면서 어쩜 생명의 난간에서마저 분노보다 끈기로 희망의 생명성 마디마다 행간마다 그리움으로 전환하는 시혼(詩魂)의 표상(表象)을 절감하여 뭉클뭉클 울컥울컥했습니다.
김용재_ 좋은 시를 쓰려고 사색하고 시어를 고르고 할 수가 없었지. 그저 고통도 그리움으로 순간을 견딘 메모가 시가 된 것을 각별한 시감으로 읽어주어 고맙구먼. 안 그래도 이즘 시단과 시인들이 관심해주고 베트남어로 번역시집도 내주고 애독자가 늘어 새삼스럽고 좀 상기되기도 해요.
김철기_ 널리 사랑받아 마땅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어쩌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길지 않은 시행으로 감히 제 소감으로 시적 완성도 높게 고통마저 그리움으로 전환 표출하는 그 시혼으로 절망에 가까운 생존율마저 극복 초월하시지 않았을까요? 시집을 열어 시인의 말부터 읽었습니다. “시인의 말 1991년 여름, 나는 두 뼘 정도의 가슴 부분 살을 가르고 왼쪽 폐를 완전히 절단해 내는 수술을 받았다. 폐종양이었고, 생존 확률 4%∼40%라고 의사는 높여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죽음으로의 여행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삶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강했고 그 그리움을 더 오래 지속하며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메모한 것이 시가 되었고 그래서 병실의 시는 나의 정신 영역 전부였다. 결국 나의 시는 극심한 고통과 애정 속에서 살아난 삶의 그리움 또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하며, 그 시편들을 다시 돌아본다.” 다 옮겨 적을 수 없지만 시 「바람의 한때」 「그리움의 시학」 「612호실의 韻文」 「중환자실에서」 연작시 편 편, 그리고 “먼 꿈길/ 서러움 때문일까/ 허전하게/ 아내가 울었다/ 찰랑하게 여름이 울었다/ 우연으로 비는 내리고/ 그날/ 그리움이, 다 젖었다.” (「憂愁의 詩』 전문)이며, “사랑의 눈 뜨는 것 보지 못했느냐/ 어둠의 눈 밝는 것 보지 못했느냐/ 달빛 속에 안기는 사랑 보지 못했느냐/ 평온 속에 잠기는 어둠 보지 못했느냐/ 그리움 그리며 흘러가는/ 구름의 낮 한때,/ 조금쯤 떨다가 그냥 떠날 일이다/ 조금쯤 소리치다가 그냥 떠날 일이다/ 가슴팍의 상처 비비며 떠날 일이다/ 싸늘한 옷자락 만지며 떠날 일이다.” (「바람에게 주문함」 전문)까지 누구보다 이사장님 강건함을 바라서인지 지금도 가슴이 꾹꾹 찔리는 아픔으로 시 속에 눈시울 젖습니다. 단체장의 성취도 높은 업적이나 거목처럼 우뚝한 지도자 교수님 안쪽 바탕에 극한 절박함도 그리움으로 환치하는 시정의 천생 시로 사신 시인을 만납니다. 참, 문득 이사장님 시적 언어와 감성을 닮은 손자 에피소드를 들려주시던 생각 스칩니다. 참말로 타고난 DNA나 요즘 종종 듣는 MBTI 등이 시인을 구성하는 천성과 후천적 성향 형성에도 관여하나 봅니다.
김용재_ 허허, 아무래도 개개인의 특성 중 시인이 지닌 성향이나 자질 재능은 타고난 부분에다 누군가 찾아내기며 가르침과 배움의 노력이 더해지면서일 테지요. 그래 김 시인 첫손녀는 잘 크고? 김 시인을 닮은 데가 있는가, 하하.
김철기_ 네, 지난해 첫돌에 언제 쓸지는 모르나 아호를 지어 낙관을 새겨 선물했다고 하니 이사장님께서 “시인 화가 할머니가 할머니 했네” 하실 때 얼마나 유쾌하고 따뜻했는지요? 말씀이 나온 참에 제가 이사장님과 인연에 평생 감사함 가운데 큰 한 가지가 2019년 저의 열두번째 시집 『그리다』 발간 때 폐가 될까 봐 조심스럽게 서평 부탁을 드려 쾌히 받아 주심이고요. 또 하나 아들 혼례에 학자로 시인으로 소속 단체장으로 거기다 모범적인 가정을 두루 갖추시어 귀감이시기에 정중히 주례사로 모신 일입니다. “이렇듯 김철기 시인은 언어의 집짓기에 장인의 기질을 타고난 듯하다. 아니 그만큼 고민하고 노력하고 사유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낮 밤을 구분 없이 피땀을 흘렸을 것이다. 시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색과 소리의 조합-색에 소리 심고 소리에 색 입히고 마침내 색과 소리와 함께 말하고 걷고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더욱 정진 하길 기대하며 설렘과 영광 가득 빈다.” 『그리다』 시집 서평 끝부분입니다. 시집의 교보문고 순위를 보고해드리면 특유의 안온하고 선한 미소로 기뻐하시고 격려해주셔서 비할 데 없이 행복하고 오래 가까이서 가르침과 소통을 소망했습니다.
김용재_ 나에게도 보람이고 좋은 시간이었지요. 김 시인은 시와 그림 글씨 시낭송 모두 하는 사람이니 계속해서 예술 작업을 펼쳐 나가도록 해요. 특히 좋은 시 창작하려면 스스로 건강을 가장 먼저 돌봄을 중시해요.
김철기_ 마음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두고두고 귀한 말씀 주시는 음성 기억날 거예요. 할 수만 있다면 이사장님과 대화 자리 아주 오래도록 함께이고 싶습니다. 오늘 반가움에 추억어린 행사장도 짚어보며 이사장님 시편으로 감동을 되새겨도 보았습니다. 부족한 제 시업에 색과 소리와 향기를 입히는 시심을 헤아려 아껴주심도 잊지 못할 겁니다.
너무나 아쉽고 아쉽지만 일어나 이동하실 차편 승차하시는 데까지 동행하겠습니다. 아 그리운, 시인 김용재 선생님 교수님 이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