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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슈크림빵 친구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한상희(본명·한은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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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 보니 식탁에 빵이 몇 개 놓여 있다. 한 입 베어 물으니 슈크림빵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먹어 본다. 엄마는 오후에 일 나가시면서 간식을 놓고 가신다. 새로 연 빵집에 큰 슈크림빵이 있었나 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슈크림이 입 속에서 기분 좋게 퍼진다. 불쑥 오래전 위층 살던 해솔이 생각이 난다. 우린 둘 다 슈크림빵을 좋아했다. 언제나 나는 빵 가장자리부터 돌려가며 먹는다. 그다음 가운데 크림 많은 부분을 천천히 씹어본다. 해솔이는 아니다. 슈크림빵을 덥석 물어 크림이 많은 데부터 먹었다.

“민우야, 넌 왜 그렇게 깔짝깔짝 먹니?”

“난 나중에 크림을 많이 먹는 게 좋아서.”

“난 크림을 얼른 먹고 싶은데, 넌 참 이상하다. 하하.”

우리는 서로 보며 웃었다.

이사 왔더니 해솔이네가 위층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유치원을 다녔다. 엄마들 나이도 비슷해서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물론 동생들까지 노상 오르내리며 놀았다.

해솔이는 유치원에서 제일 키가 컸다. 해솔이 아빠는 젊어서 킥복싱을 하셨다는데 정말 키가 크셨다. 아빠를 많이 닮았나보다고 다들 그랬다. 해솔이랑 밖에서 놀 때 어른들이 키 작은 나를 두고 동생이냐고 해서 기분 나빴던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아녜요, 친구예요.”

라며 얼굴을 붉혔다. 해솔이는 키가 너무 큰 게 오히려 안 좋다고 했다.

해솔이 동생 다섯 살 진솔이는 애기 때부터 약해서 그런지 바짝 마르고 작았다. 한 살 적은 내 동생 종우 보다 행동이나 말도 어눌했다. 짜증도 많아서 늘 해솔이가 쫓아다니며 보살폈다. 해솔이 엄마는 진솔이가 뭔가 일을 저지르면 해솔이를 찾기 일쑤였다. 어쩌다 내 동생 종우가 진솔이랑 맞먹으려 하면 해솔이가 어른스럽게 타일렀다.

“키 작아도 진솔이가 형은 형이다, 종우야.”

해솔이 말은 아주 잘 듣는 종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우가 뭘 원하면 누나처럼 해솔이가 척척 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1층이다 보니 거의 동네 아이들 놀이터가 되었다. 옆집은 또 어린이집이라 양쪽이 다 와글와글 시끌시끌했다. 한번은 어린이집에서 종이로 만든 큰 집을 버리려고 내놓았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엄마가 거실로 들여왔다. 그때부터 다른 아이들도 우리 집을 들락였다. 아무튼 이 방 저 방으로, 종이집으로 숨으면서 쿵쿵 뛰어다니며 놀았다. 소심한 내가 이사와 친구들 사귀기 어려울까 봐 엄마는 우리 집을 놀이터가 되도록 내버려 두셨다. 물론 그땐 어려서 엄마 마음을 알지 못했다.

해솔이 엄마는 미안해서인지 가끔 음료수나 빵을 잔뜩 사오셨다. 그럴 땐 옹기종기 모여 파티를 시작한다. 슈크림빵을 받아들면 난 크림이 많은 가운데를 남겨두고 할금할금 혀로 핥았다. 해솔이는 어느새 빵을 다 먹어치우고 다시 놀이에 뛰어들었다. 여럿이 모이다 보니 소리 지르고, 싸우고, 매일 매일 여러 일들이 우리 집에서 벌어졌다.

어린이날이었다. 우리는 맛있는 도시락이랑 치킨, 콜라를 챙겨 정글짐 실내놀이터에 갔다. 신나게 놀았다. 치킨이랑 콜라를 많이 먹어도 다른 날이랑 다르게 봐주니까 더 즐거웠다. 정말 정신없이 놀 때였다. 종우가 악 소리를 내며 미끄럼틀에서 굴러떨어졌다. 진솔이가 잘못 밀쳤나 보았다. 놀란 종우가 큰소리로 막 울었다. 겁에 질린 진솔이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미끄럼틀 위에 서 있었다. 종우 이마에 혹이 약간 나왔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해솔 엄마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해솔이한테 동생 좀 잘 보지 그랬냐고 꾸중을 했다. 해솔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해솔이한테 왜 그래. 뭘 잘못했다고. 해솔 엄만 해솔이를 너무 큰 애 취급하드라.”

“미안해 그러지.”

엄마들이 웃으며 짐을 정리했다. 뒤로도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되풀이 됐다. 진솔이는 점점 떼가 늘어갔다. 놀이터에서도 다른 친구 물건을 막 뺏어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함께 있던 종우 얼굴에 흉터가 자꾸 생겼다. 엄마가 속상해했다.

“종우야, 진솔이가 화내면 가까이 있지 말고 딴 데 가서 놀아.”

“그래도 자꾸 내 옆에 와.”

엄마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하루는 해솔이 이마에 큰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왜 다쳤냐고 했더니 진솔이가 장난감을 잘못 휘둘러 그렇게 됐다고 했다.

“진솔이 땜에 니가 맨날 혼나고 당하니까 기분 나쁘지?”

“그래도 내 동생인데 어떡해, 흐흐.”

놀이터에서도 해솔이만 있으면 아무도 진솔이한테 함부로 못한다.

우리가 초등학생이 됐을 때였다. 해솔이 엄마가 직장에 다니려고 진솔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진솔이는 다시 집에만 있었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주의력 결핍으로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단다. 진솔이는 약도 먹고 언어치료실도 다녔다. 해솔이 엄마랑 아빠는 더 걱정이 많아진 것 같았다. 그전에는 우리 두 가족이 함께 외식도 나가고 했었는데 그 뒤론 그런 일이 없었다.

대신 해솔이한테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문이 많은 모양이었다. “민우 책 읽는 거 봐라, 많이 봐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계속 그랬나 보다. 해솔이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다. 항상 하늘 끝까지 날 것처럼 밝기만 하던 친구였다. 학습지도 많이 늘렸다고 했다. 놀이 대신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책도 많이 빌려 갔다.

“근데 난 사실 책 읽는 거보단 운동이랑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은데 엄마 아빤 생각이 달라.”

여러 학원을 각자 다니며 얼굴도 어쩌다 보게 되었다. 종우가 유치원에 다니자 우리 엄마도 일하고, 모두가 바빠졌다. 해솔이 엄마는 진솔이 때문에 점점 말라 갔다.

어느 날 기막힌 소식이 날아들었다. 해솔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해솔이 얼굴은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해솔 엄마는 우리 엄마를 붙들고 한참 울었다. 그동안 서로 뜸해졌어도 제일 가까운 이웃이었다.

얼마 지나자 해솔이네는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를 할 때였다. 해솔 엄마가 일을 해야 하는데 진솔이 치료도 필요해서 외할머니께 맡긴다는 것이었다.

“외할머니가 보기 힘드실 텐데…”

“어쩔 수 없지, 먹고는 살아야 하고, 애 치료도 해야 되니.”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해솔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해솔이는 더 큰 애가 된 듯 예전보다 더 의젓하게 굴었다. 밥 먹을 때도 진솔이를 하나하나 챙겼다. 나랑 별로 말도 안 하고 장난도 안 쳤다. 식당에서 나올 때 해솔이는 군인 피규어를 주머니에서 꺼내 진솔이 모르게 슬쩍 내게 내밀었다.

“어, 이건 귀한 거잖아.”

“니가 좋아했지, 난 필요없어.”

“고, 고마워.”

나는 얼른 받아들었다. 그땐 왜 그렇게 작은 피규어들이 좋았던지 탐나는 게 있으면 아빠랑 장난감 가게를 찾아 헤매곤 했다. 그래도 그 군인 피규어는 보지 못했다. 해솔이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았다.

피규어를 받아든 나는 미안해서 들고 있던 동화책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가져."

“그래, 고마워.”

무슨 책인지는 기억도 안 난다.

“해솔아, 넌 어디 가서도 예쁨 받고 다 잘할 거야.”

우리 엄마의 말에 해솔이는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솔이와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엄마가 해솔 엄마와 몇 번 통화는 했나 본데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다. 폰들이 바뀌면서 그런가 보았다.

저녁에 슈크림빵을 먹으며 엄마랑 해솔이네 얘기를 했다. 엄마도 연락이 끊긴 걸 아쉬워했다. 방에 들어가 피규어 군인 인형을 찾아보았다. 책상 서랍 한구석에 잘 있었다. 오래간만에 그 인형을 보니 어릴 적 해솔이랑 놀다가 티격태격하던 때도 떠올랐다. 늘 거침없고 씩씩했던 해솔이, 소심한 내게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함께 주던 내 슈크림빵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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