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꿈을 찾아 온 고국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배다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조회수28

좋아요0

교실 안은 낯선 말로 가득 찼다. 반 아이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모르겠다. 온종일 시끄러운 소리로 머리가 아팠다. 솔직히 나도 큰 소리로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

“박다미르, 잘 가!”

짝꿍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어색하게 손만 흔들었다. 짝꿍이 말을 시킬까 봐 겁이 났다. 얼른 돌아서서 교실을 빠져나왔다. 마치 도망치는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까 봐 겁이 났다. 힘껏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공원에 도착했다. 나는 재빠르게 홍범도 장군님 동상 앞으로 갔다.

“장군님, 장군님도 매우 힘들었죠?”

나는 익숙한 러시아어로 장군님 동상에 말했다. 장군님은 러시아어를 아시니까 내 말을 다 알아들으실 거다.

“장군님, 저도 한국말 열심히 배울게요.”

러시아어로 말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홍범도 장군님 동상에 인사를 했다. 코끝이 찡했다.

홍범도 장군님은 내 마음을 다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장군님도 러시아어를 모른 채 낯선 땅에서 생활해 봤으니까.

내가 홍범도 장군님을 좋아하게 된 것은 기적 같다. 우리 할아버지가 내 나이였을 때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고 했다. 그때 홍범도 장군님도 같은 기차에 탔다고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홍범도 장군님을 의지하며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고 했다. 우리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홍범도 장군님을 무척 존경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홍범도 장군님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고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카자흐스탄에서 성인이 되자 결혼하여 아빠를 낳았다. 아빠는 카자흐스탄에서 결혼하여 나를 낳았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은 카자흐스탄을 조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조국은 대한민국이었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는 날까지 조국 땅을 그리워했다. 조국에 묻히고 싶다는 말은 내게도 했다.

할아버지의 소원을 아빠는 잊지 않았다. 늘 한국에 갈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한국말도 꾸준히 배웠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아빠는 한국에 가서 일하게 됐다. 아빠가 한국에서 5년을 일한 뒤 엄마를 한국으로 불렀다. 나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도 이곳 한국으로 오게 됐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우리와 모습이 다르고 사용하는 말도 다르지만 같은 동포라며 따스하게 대해 준다고 엄마 아빠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땅이다. 나는 아니다. 한국말을 못하니까. 내 앞에서 한국말을 하면 기가 죽는다. 꼭 내가 동물이 된 느낌이 든다.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가끔 바보 취급을 받는 느낌이 들어 슬프다. 애들은 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차츰 나를 불편해 했다. 나도 자유롭게 말을 하고 싶지만 한국말을 못 하니 늘 가슴이 갑갑하다. 그래서 가슴 속에 뜨거운 게 생긴 것 같다. 한국에 오고 난 뒤부터는 차가운 물을 자주 마신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행복하다. 갑갑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어서다.

학교가 끝나면 행복하다. 빠르게 홍범도 장군님 동상 앞에 가서 인사를 하고 지역아동센터에 간다. 지역아동센터에 가면 러시아어를 쓰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러시아어는 아주 잘한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큰소리로 길게 말을 한다. 친구들이 하는 말도 금방 알아듣는다.

“여러분, 한국말을 빨리 배워야 해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은 한국말을 하라고 한다.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말은 어렵다. 우리는 선생님들 눈을 피해가며 러시아어로 말한다. 편하니까. 술술 말할 수 있으니까.

홍범도 장군님 동상에 또 인사를 하고 지역아동센터로 갔다.

“다미르야, 오늘은 어땠어? ”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한국말로 물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러시아어로 말했다. 이제는 아니다. 한국에 온 뒤로는 한국말을 해야 하는데 나는 한국말을 잘 못하니 길게는 대답을 못한다.

“좋았어요.”

내 발음이 어색한데도 선생님이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이 내게 한국말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자 기운이 났다. 학교에서 반 애들도 그러면 좋을 텐데. 우리 반 애들은 다르다. 내가 말하면 소리내 웃는 애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창피하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또 웃을 것 같아서 두렵다. 학교에서 우리 담임 선생님은 내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담임 선생님이 좋다.

“박다미르!”

쉬는 시간이면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른다. 내가 선생님을 바라보면 선생님은 손짓하며 말한다.

“다미르야, 이곳으로 오렴!”

첫날은 반 애들의 눈길이 내게 일제히 쏠렸다. 그런데 요즘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첫날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줄 알고 울 뻔했다. 말도 못 알아듣는데 두렵고 겁부터 났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담임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내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가끔은 간식을 챙겨줬다. 학용품도 따로 주고, 공책을 확인하고서 틀린 부분을 고쳐주었다.

“우리 다미르, 열심히 배우면 한국말 잘 하게 될 거야. 그러니 힘내.”

담임선생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늘은 수업 시간에 홍범도 장군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귀가 솔깃했다. 담임선생님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뿌듯함을 느꼈다. 반 애들이 홍범도 장군님을 존경한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달려가서 장군님 동상에 고맙다고 해야겠다. 홍범도 장군님은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열심히 한국말을 배워서 홍범도 장군님을 자랑해야겠다. 홍범도 장군님은 우리 지역 사람들에게 영웅이셨으니까. 그래서인지 우리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장군님의 동상이 있다.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다. 홍범도 장군님의 고국 사랑 정신이 우리 가족에게 한국으로 오는 꿈을 갖게 했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직장에서 돌아올 시간이 됐다. 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저녁밥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기 전에 다시 공원으로 갔다.

“장군님, 저도 장군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저 열심히 한국말 배울게요. 약속해요. 약속!”

약속이라는 말만 한국어로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홍범도 장군님 동상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장군님, 우리 가족에게 꿈을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해요란 말도 한국말로 했다. 공원을 밝혀주는 가로등 불빛이 환했다. 포근하게 가지를 펼치고 있는 나무들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나는 홍범도 장군님의 품에 안기는 상상을 하면서 집으로 달렸다.

우리 집 창문이 환했다.

“엄마!”

한국말로 불렀다.

“우리 다미르, 사랑해! ”

엄마가 나를 꼭 껴안아 줬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엄마, 사랑해요.”

나도 엄마를 따라 한국말로 했다.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계속 한국말을 할 거다.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도 자주 사용해야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요? ”

내가 한국말을 계속하자 엄마도 기쁜가 보다.

“아빠, 곧 오실 거야. 오실 때 아이스크림 사 오라고 해야겠다.”

“야호, 아이스크림 좋아!”

“그래, 그래. 그렇게 하면 돼. 금방 갑갑했던 마음이 사라질 거야. 사랑해.”

엄마 목소리가 울먹였다. 나는 엄마가 울면 안 되니까. 얼른 달려가 엄마를 안으며 한국말을 했다.

“엄마, 사랑해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나는 울기 싫어서 엄마를 더 꼭 껴안았다.

“호호호호, 다미르 그만 간지러워 호호호호.”

엄마의 웃음소리가 밝고 맑았다. 나도 엄마 품을 벗어나 활짝 웃어 보였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