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19
0
어릴 적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이 장독대 높은 집이라 불렀다. 정말 계단을 열 개 넘게 올라야 하는 장독대가 높은 곳에 있었다. 아이들은 술래잡기 놀이, 총싸움 놀이를 하며 그 장독대 항아리 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죽여 숨거나 소리 내어 깔깔 웃으며 놀이를 하였다.
그 무렵 동네 사람들에게는 각 집의 특징을 들어 불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포도나무집, 대문 큰 집, 나팔꽃집, 골목 끝 집이라 부르며, 그처럼 유난히 장독대가 높았던 우리 집을 장독대가 높은 집이라 부르곤 하였다.
동네 골목은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아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딱 좋은, 그런 적당한 크기였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던 것은 황금박쥐 딱지놀이, 구슬놀이, 그리고 총싸움, 칼싸움(주로 모형 장난감) 놀이를 하며, 아이들은 거무스레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동네가 시끄럽게, 특별한 놀이 기구 없이도 잘도 뛰어놀았다. 땅거미가 지고 나면, 놀이를 뒤로하고 “숙제했느냐”며 아이들을 꾸짖는 엄마와 누군가의 누나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우리 집 광에는 딱지와 구슬 치기에 한참 정신 팔린 두 동생들 덕분에 한 광주리가 딱지와 구슬로 가득 넘쳐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들은 각자의 소유분이 있었고, 아이들끼리 호감 가는 딱지와 구슬을 서로 바꾸기도 하였는데, 다들 물물 교환으로 갯수를 세가며 맞바꾸기도 하였다. 가끔 동생들의 괜히 바꿨다며 후회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곤 하였다.
아침이 되면 우리 장독대 계단에는 학교 가자며 나를 기다리는 친구가 왔고, 고학년인 나는 저학년인 동생들보다 학교에 일찍 등교했어야 했으므로, 아침이면 내 친구는 장독대 계단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동생들은 조금 뒤, 골목 끝에 있는 큰길로 나가는 대로변 길에서 친구들을 만나 시끄럽게 떠들며 학교에 갔다.
우리 골목길은 보통 평일 아이들 등교하는 아침 시간에는, 골목 집에 사는 아이들, 다른 곳에서 지름길로 질러 골목을 지나가는 아이들 소리에 시끌벅적하였다. 그 시간이 지나면 골목은 조용해지고, 동네 할머니들이 돗자리를 들고 나와 펴고 한쪽 모서리 길에 편 돗자리에 걸터앉아 강냉이나 삶은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먹으며 얘기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골목집 중에 우리 집을 장독대 높은 집이라 부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집은 장(고추장, 된장)이 맛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장이 맛있다고 칭찬하곤 하였는데, 바쁜 엄마 대신 우리를 돌보아 주던 뚱뚱이 할머니는 동네 보안관이 되어 동네 사람들에게 장을 적당히 나눠 주었으니, 우리 집은 그냥 골목 장독대 높은 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엄마는 우리 집 장이 동네에 나누어지는지 몰랐다.
오후가 되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로 골목이 다시 시끌벅적해지고, 하나둘씩 모였던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은 저녁 준비로 다시 분주히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오후 저녁 시간에 골목길은 또다시 아이들과, 이번에는 다른 동네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다시 북적거렸다.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동네 골목 어귀에서도 보이는 우리 집 높은 장독대에는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장독대에서 장을 푸는 뚱뚱이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가 생생하게 생각나고 그립다. 정말 그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