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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당

한국문인협회 로고 임도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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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아침 마당>에서 마당을 주제로 엮어 가는 시간이었다. 참석자들이 오래 전에 고향에서 겪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조명되며, 그 시절이 자연스럽게 비춰진다. 태어난 마을에서 함께 지내며 어우러졌던 사연이 기억 속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이유는 향수와 끈끈한 정 때문이 아닐는지.
늦가을, 바깥마당 한쪽에 볏가리를 보면 나의 마음은 풍요로웠다. 그 시절 아버지가 열다섯 마지기 논에 벼를 가꾸어 낟가리로 만들기까지 일하던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벼가 알맞게 익어 고개를 숙이면 낫으로 베었고, 완전하게 마르면 탈곡을 위해 마당으로 옮겨 쌓았다. 탈곡하는 날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노동으로 몸은 고달프지만, 수확의 기쁨이 피로를 뛰어넘었다. 먹고 살기가 어렵던 시기지만, 타작하는 날엔 이웃에 계신 어르신들을 모셔다가 함께 식사하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마당이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경조사도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부락에서 태어난 인연을 매우 중시하였고, 혼례나 장례는 누구나 나의 일처럼 참여하였다. 대사를 치르는 집은 마당에 차일을 쳐 그늘지게 만들었다. 찾아온 손님에게 음식을 접대하는 예의를 갖추었고, 장소가 부족하면 이웃집의 방을 빌려서 사용하였다. 그 시절 할머니, 백부의 장례를 치르던 광경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청년들은 손님 접대에 익숙하였고, 과방을 담당한 분은 음식이 모자라지 않도록 반출하는 양을 조절하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장례를 흠 없이 치르도록 도와준 그들의 활동은 이웃사촌의 참 의미를 깊이 새기도록 하였다. 그 후 반세기란 세월이 흐른 지금은 혼례나 장례 예식장이 생겨나고부터 확연하게 달라졌다. 20세기 후반까지 대를 이어오던 전통문화의 마당에 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의식주 해결이 쉽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 일상생활은 자연과 함께였다. 고샅길은 물론 산과 들, 그리고 하천은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던 놀이마당이다. 놀이시설이 별도로 만들어진 장소는 없었다. 꾸며지지 않은 그대로를 이용하며 함께 즐겼던 숨바꼭질, 딱지치기, 구슬치기, 눈싸움, 쥐불놀이, 물놀이 등이 다양한 양상으로 스쳐간다. 생활은 어렵고 힘들어도 서로 아껴주고 가족처럼 어우러져 지냈던 날을 회상하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에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나의 생활마당은 세월의 흐름 따라 변화하였다. 중등 교육과정을 마칠 때까지는 음성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태어난 곳이 그 중심에 있었다. 가장 멀리 여행한 곳으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경주와 부산이다. 성인이 되면서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고, 공직생활이 시작되고부터 활동하는 지역이 확실하게 달라졌다. 20세기 끝자락부터 자가용 시대가 열리고 도로망이 좋아졌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새천년을 전후하여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부터 바다 건너까지 영역이 펼쳐졌다. 처음 외국으로 여행 갔던 장소는 중국의 수도다. 북경에 도착하여 천안문을 관람하고 만리장성을 걸으며 중국 풍경을 체험했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로 동남아는 물론 일본, 유럽, 미국에서까지 놀고 보고 먹고 즐기는 마당은 상상을 초월하게 넓혀졌다.
생활마당이 넓어지면서 나의 활동도 비례하였다. 사회생활의 범위가 늘어나고, 인간관계 형성의 크기가 달라졌다. 모임의 종류와 규모도 다양했다. 나이가 같다는 조건은 당연하고,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도 한몫하였다. 같은 고향이어서,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을 기념해서, 같은 기간에 교육을 받아서, 직장 동료 등등 사유를 만들어 모임의 숫자가 늘어났다. 적게는 네다섯 가족이 친목을 다졌고, 많게는 사오십 명이 뜻을 모았다. 모임 숫자는 어림잡아도 삼십 개는 넘었다.
회갑이 지나고 모임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종류가 하나둘씩 없어지고, 모임별로 인원도 서서히 적어진다. 공직생활에서 만들어졌던 모임은 조금씩 자취가 감추어져, 현재는 한창 많을 때의 삼분의 일 수준이다. 활동하는 힘과 비례해서 숫자나 크기가 표시되며 생활마당은 변화하였다. 다행히 수필과 인연을 맺으면서 새로운 활동 범위가 생겨났다. 그 사유로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진 도 단위는 물론, 각 시군 단위까지 맥이 연결되면서 마음가짐을 다르게 한다.
나의 마당은 어차피 점점 좁아진다. 지천명을 전후하여 정점을 찍고, 그 뒤로부터 완만한 하향곡선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보여주는 활동 범위에 비례한다. 변화하는 마당의 크기와 통하는 앞으로의 삶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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