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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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재에서 20년이 된 낡은 종이에 그려진 젊은 날의 초상화를 보게 되었다. 몇 번의 이사로 방치해 두다시피한 40대 초반 나를 그린 그림이다. 그 그림을 보노라니 그리움이 아련히 떠오른다.
20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한창 삶이라는 빠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한 30대의 젊은 청년이 한 장의 종이에 남겼고, 그 붓끝마다 그의 마음을 실어 내 삶의 한 조각을 종이에 옮겼고, 종이는 세월이라는 파도에도 찢어지거나 바래지지 않고 내 곁에서 존재해왔다.
낡은 초상화를 다시 서재에서 찾아내곤 오늘,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만다. 그려지던 순간의 설렘, 희망, 빛… 그리고 그것을 한 획 한 획 옮겼던 그의 마음과 실력들이 담겨 있다. 그림은 사람의 온기, 그로 인해 그동안 희생과 인내로 걸어온 세월마저 따스하게 느껴진다.
당시 40대 초반인 나는 근무하는 곳이 몇백 명 이상 청년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림을 그려준 청년도 그곳에서 나를 만났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교육도 받고 직분을 가지고 있던 청년인데, 디자인 계통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30대 초반인 이 청년은 무슨 일이든 내게 도와달라 하면 바로 달려와 주었다.
한 번은 많은 책을 옮기는 일을 해야 하는데, 책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하여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청년이 너무 놀라면서 “당장 병원 가자!” 하여 바로 본인 차로 가까운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바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하여 뭐든지 늘 가까이서 나를 도와주었다. 불현 듯 그 청년도 가리킨 많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초상화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색연필로 스케치한 40대 초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름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약간 긴 단발머리에 파랑 핀이 꽂혀 있다. 가장 바쁘게 살아갔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 그려져 있어, 그 시절이 있긴 했나 하는 내가 아닌 듯 내 모습이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낡은 내 초상화를 보면서, 그동안 세월이라는 강은 아주 많이 흘러갔다. 나는 퇴직을 하고, 그려진 내 모습보다 한층 더 성숙해지고 주름도 많아지고 말았지만, 그 안의 심장 박동 소리만은 그때의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려주고 또 기억해 준 사람의 마음과, 그 마음을 간직해 온 나의 심장. 만나지 않았고 만나지 않더라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사함과 감동이었다. 그때는 너도 나도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계절이었다.
그 낡은 초상화는 그냥 한 장의 종이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삶과 한 사람의 기억, 그리고 우정이라는 이름의 영원함이 깃들어 있었다. 붓끝에서 흘러나온 삶의 온기는 그 어느 세월에도 식지 않고 내 삶의 한가운데서 더욱 빛나고 있다.
그의 스케치한 내 초상화는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한 방울의 눈물, 그 한 방울마다 우정과 삶과 세월의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그의 붓끝에서 내 삶의 한 순간이 종이에 영원하게 깃들어 있다. 그때는 너도 나도 가장 찬란하게 피어나는 내 젊은 날의 초상이다. 삶의 조각마다 빛나던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