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12
0
환자 셋은 하늘로 치솟고 싶어 하는 한 묶음의 풍선 같았다. 그들은 조금 전부터 취중에 오가는 말이 들뜨기 시작하더니, 오늘 퇴원한 서씨 아저씨가 두 손을 펴 머리를 빠르게 쓰다듬으면서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70대 중반의 애칭이 ‘큰형님’은 바로 손뼉 속도에 맞는 흘러간 노래를 뽑았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신입 환자 강씨는 멀뚱하게 앉아 있다가 얼떨결에 추임새를 넣었다.
동재는 벌써 시작하나 싶었다. 족발 둘에 막걸리 다섯 주전자를 마신 뒤였다. 셋이 그 정도 마셨으면 기분이 들뜰 때가 됐다는 생각이었다. 팔과 다리에 깁스한 환자 셋이 대낮에 술상에 둘러앉아 부르는 노래는 이내 들떴다. 큰형님은 두 곡을 맛보기 식으로 부르더니, “간지럽다 출발하자”라고 외쳤다. 그러자 합창으로 변했다.
“고흥행 열차 출발합니다∼. 정시에 출발합니다∼. 차비는 무료입니다∼.”
큰형님과 오늘 퇴원한 서씨는 입이 척척 들어맞았다. 신입 환자는 다소 머쓱해도 취기에 어깨 장단을 맞추는 정도였다.
다행히 점심시간도 한참 지난 시간이어서 식당 안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 식탁에는 족발만 남아 있어서 서씨가 “이모, 한 주전자 더요” 했을 뿐으로, 빈 막걸릿잔과 주전자를 소란스럽게 두드려댔다. 한쪽 다리에 깁스한 큰형님은 멀쩡한 다른 한 발로 겅중거렸고, 목 보호대를 하고 왼팔을 깁스한 신입 환자는 깁스한 손에 양재기를 들고 오른손에 젓가락을 들고 두들겨댔다.
동재는 그들과 같이 앉았어도 술은 입만 대었다가 떼어서 그들의 부추김에도 달뜨지 않았다. 그걸 본 큰형님의 시선이 앵돌아졌다.
“기관사, 이 정도에서 타야 하는 것 아녀?”
오늘 술자리는 입원 환자 한 사람이 퇴원하고 그 침상에 다른 환자가 합류하는 기념이었다. 동재는 그것이 기념할 일인가 싶지만, 원장은 퇴원을 앞둔 환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다 알고 있는 듯이 4층 구석진 4인실을 퇴원을 앞둔 환자만으로 묶어 놓았고, 부서진 곳 말고는 멀쩡한 그들은 적당한 술은 환자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족발은 뼈와 관절에 좋다는 식으로 온갖 이유를 만들어 술자리를 만들었다.
동재는 주도자에 속했지만, 오늘만큼은 애니 할머니의 전화를 받은 뒤부터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병원에 소피아가 온다는 말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럴 일이 있습니다.”
동재는 얼버무렸다. 큰형님은 그 말에 바로 노래를 바꾸었다. “빵빵∼”하고 외쳤다. 곧 서씨가 합세해서 “덜컹덜컹 달려간다 시골버스야∼”하는 노래가 이어졌다. 신입 환자는 둘과 달리 겉돌았다.
“아따,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언제 기관사까지 하셨소?”
신체가 건장하고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한 60대 신입 환자는 젓가락 장단을 맞추다 말고 물었다. 큰형님과 서씨 아저씨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서씨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다 말고 설명을 붙였다.
“우리가 고흥행 열차 기관사로 임명했어.”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도 60대였다.
“임명이 뭐여? 고흥행 열차를 우리한테 알려준 창시자이니 당연히 기관사가 된 것이제!”
큰형님이 소리쳤다. 하지만, 때마침 술이 오르면서 노래 분위기는 시르죽어 모두 자리에 앉았다. 취기에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신입 환자만 얼굴에 궁금증을 달고 있었다.
“고흥행 열차가 있단 소린 금시초문이요. 전라선은 익산에서 여수로 빠지고, 경전선은 진주, 순천, 벌교를 지나 보성으로 빠지요. 고흥은 철로가 없지라.”
그러자 퇴원을 앞둔 서씨 아저씨가 잔을 냉큼 비우고 끼어들었다.
“고흥이 정말 있었소?”
동재는 말도 안 되는 그 질문에 눈을 크게 떴다. 큰형님은 더 딴전이다.
“그게 언제적 기억이요? 고흥에 가 보기는 하셨소?”
시비조다. 하긴 그런 시비도 고흥행 열차 놀이의 일종이다. 입원 중에는 말장난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내 고향이 득량만 건너 장흥인디, 당연히 가봤지라. 장흥 쪽에서는 보성에서 들어가는 길도 있지만 큰길은 벌교서 재 하나를 넘으면 고흥이요.”
신입 환자의 말에 서씨 아저씨가 힘 빠진 표정이다.
“고흥이 진짜 있었소?”
그는 고흥이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얼굴이다.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해도, 없는 걸로 합시다.”
큰형님도 서씨 아저씨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그런 시선은 상관하지 않았다.
“난 흥이 많은 놀이라 고흥이라 이름 붙인 줄 알았슴다. 입원 중에 내 무료를 달래준 것이 고흥행 열차 놀이였으니께.”
“그라제, 그라제, 나 말이!”
큰형님이 맞장구쳤다.
“고흥이 있으면 어쩌고, 고흥 아니면 워쪄. 우리 기관사님이 고흥행 열차 놀이를 시작해서 우리가 즐겼을 뿐이제.”
“그래도 고흥이 어딘지는 알고 놀았어야지, 무식하게!”
신입 환자의 말 때문에 그들은 졸지에 고흥이 있네, 없네로 시끄러웠다. 없어도 그만 아니냐는 서씨의 말에, 신입 환자는 엄연히 있는 곳을 왜 없다고 해야 하느냐고 따졌고, 서씨는 퇴원한 뒤에도 고흥행 열차 놀이를 할 것인데, 있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한정된다고 했다. 정말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고, 마음의 놀이터가 되려면 고흥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형님도 고흥행 열차는 우울할 때 타는 정도면 족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동재는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고흥의 실체도 모르고 즐겼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들 중 정상으로 보였던 신입 환자도 결국 고흥행 열차는 우울할 때 타는 정도에 동의하는 것을 보면서, 동재는 병실을 떠올렸다.
소피아가 텅 빈 병실을 보고 실망해서 떠나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지금이라도 병실로 갈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가로막았다.
족발을 쌈에 싸서 입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 보지 못해도 소피아는 꿈속에서 얼마든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조용한 병실보다는 시끌벅적한 이곳이 더 나았다. 병실은 깁스된 고독이 환자와 더불어 잠깨는 곳에 불과했다.
셋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신입 환자는 장동재가 소주 세 병을 넘게 마시면 기똥찬 고흥행 열차 놀이를 보여준다는 큰형님의 말을 여전히 믿지 않았다.
“노선도 없는 열차 얘기가 뭐 재밌을 거라고, 내 참! 전에 국어선생님 하셨다는 얘기는 맞으요?”
동재는 아버지뻘이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목이 말랐다. 교직 이야기는 피하고 싶었다.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있을 때, 소피아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총가악,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지?”
동재도 놀랐지만, 말장난에 빠져 있던 그들 셋은 노랑머리에 예쁘장한 20대의 외국인 소녀가 고 김수미 씨의 말투를 쓰는 것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피아 역시 동재가 피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니, 함박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아니, 고흥을 없는 곳으로 하자는 말에 미루어 어쩌면 그곳에 있는 모두가 상대를 잘 알지 못했다.
“외국 아가 김수미 씨 목소리를 내내.”
큰형님의 반응이었다.
“총각이 뭐시요? 오빠라 불러야 맞겄구만!”
신입 환자도 거들었다. 서씨 아저씨는 갑자기 “아, 퇴원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면서 소피아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는 외국을 안방처럼 혼자 들락거렸다고 자랑한 만큼, 드디어 그의 영어 실력을 자랑할 기회가 온 것처럼 나섰다.
하지만 소피아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마다 목덜미를 잡았고, 소피아는 김수미 씨 목소리로 “시방 이렇게 야그한 것이여?” 하고 되물었다. 문제는 서씨 아저씨가 한국어로 설명하는 것을 소피아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서로 상대를 놀리고 있는 것처럼 비쳤다. 둘의 처지를 아는 동재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소피아는 애니 할머니의 손녀로 K팝을 배우러 미국에서 와서 곁다리로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었다. 서씨 아저씨는 끝까지 콩글리시로 자신의 영어 실력을 증명하려 들면서 웃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동재가 둘 사이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애니 할머니 말씀이 내가 널 도와야 한다던데… 뭘 도와야 한다는 거야?”
동재는 소피아가 알아듣든 말든 말했다. 그러자 소피아도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한 무더기 쏟아놓았다. 동재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때야 다시 천천히 말했다.
“할머니가, 거 뭐야, 긴 거. 총각이 팔았던 거.”
여전히 고 김수미 씨의 목소리였다.
“순대?”
“어, 순대 그거 팔고 오다가 오늘 사고 났어.”
“뭐? 이동 순대 장사가 얼마나 어려운데! 운전도 해야 하고….”
“빅 노노. 잇어 힛! 대애박 났어. 다쳐서 그렇지.”
영어를 섞은 한글 억양은 제멋대로였다.
“할머니가 직접 운전해서?”
“맞아. 근데 자동차 꽝, 목 아파.”
동재는 할머니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과 할머니가 소피아를 도와주라 는 말 사이에 의미 차가 컸지만, 그것은 자리를 옮겨서 확인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잠깐의 침묵 사이로 신입 환자가 끼어들었다.
“햐, 국어선상님이 작은 트럭에 커다란 가마솥 싣고 이동하면서 파는 순대 장사도 하셨소? 젊은이 나이에 그런 장사를 했다면 어딘가 막장 같은디?”
동재는 소일거리 삼아 물은 질문이라는 생각에 일어섰다. 셋 다 지루함이 싫어서 막 고흥행 열차로 출발하려던 참이었으니 그걸 깨고 싶지 않았다.
옮겨 앉은 커피숍에서 동재가 어설픈 영어 단어를 나열하고, 소피아는 한글 단어를 나열해서 상황을 대충 공유했다. 원래는 K팝 공연 대기 장소에는 아무 차나 댈 수 없지만, 할머니가 특유의 영어로, 손자가 사고로 누워 있어서 약값이라도 보태야 한다고 사정해서 대기 줄 옆에서 간식으로 팔 수 있게 허락을 받아 대박이 났다는 얘기였다. 할머니의 영어에 가벼운 욕이 반응을 일으켰고, 안 하던 운전이라 멈칫거리다가 지나가는 차에 받힌 것이었다.
동재는 은빛 머리에 곱상하게 생긴 애니 할머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미국에서 아버지 식료품 가게의 제일 큰 거래처 식당 사장이었고, 식당을 아들에게 물려준 뒤 손녀를 데리고 한국에 왔다는 것과, 드라마 <전원일기>를 너무 봐서 애니 할머니가 총각하고 부르면 소피아가 메아리처럼 고 김수미 씨 목소리로 “총가악” 하고 다시 부르는 소리에 집 안에 활기가 도는 것에 만족했었다. 뚝딱뚝딱 해내는 할머니의 음식 맛이 수준 이상이라는 것과, 동재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 이제는 슬슬 간섭으로 느껴질 정도였는데, 순대 장사를 대신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불쑥 전화해서 거래하던 식당 사장이 손녀를 데리고 한국에 가는데, 잠시 아파트를 같이 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재빨리 같이 지내면 식사나 집 안 청소는 애니 사장님이 다 알아서 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국으로 유학 가는 손녀는 아버지가 봐도 나무랄 데가 없는데, 이루기 어려운 꿈을 품고 가는 것 같으니 이번 기회에 빚을 갚을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데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거절할 수 없었다. 또 아버지가 애니 사장님이라 했으니, 애니 할머니였다.
애니 할머니는 인솔자인 셈으로 세련되고 품위가 있었다. 그렇기에 더 두려웠다. 할머니가 두려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동재는 낮에 나눈 대화를 자면서 반복하는 잠버릇이 있어서, 병원 원장과 나눈 대화가 언제 탄로가 날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원장은 어느 날 동재가 퇴원을 주저하는 이유를 캐물었다. 동재는 어쩔 수 없어서 같이 살고 있는 외국인 소녀를 꿈에서 자주 만나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비록 꿈이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퇴원하면 할머니와 소피아와 같이 지내야 하는데, 꿈속의 일이지만 쑥스럽다고 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마음속에 있던 생각을 말로 했으니 이제 더 퇴원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원장은 그 뒤 매일 간밤의 꿈을 물었다.
동재는 원장을 피해서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도 전화로 동재에게 왜 퇴원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뒤에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이니, 할머니의 사고는 동재의 퇴원을 재촉하기 위한 일일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긴 뼈 전문 병원이니까, 일단 이 병원으로 오라고 해요.”
위장한 사고이면 소피아가 다르게 말하리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피아는 바로 애니 할머니께 전화해서 동재의 말을 전했다.
아직 서툴러도 한국어 실력은 놀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자라면서 한국말을 들어서 빠른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인사 삼아 “노래는 잘 돼?” 하고 물었다.
소피아는 어떤 환경에서도 노래는 자신 있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 듯이 바로 발라드풍의 노래를 불렀다. 몇 개의 발음은 이상했고, 고 김수미 씨 억양이 없으니 맑고 청아할 뿐 특색이 없었다. 그걸 지적하자, 이번에는 트로트를 불렀다. 그 노래는 확연히 달랐다.
동재는 김수미 씨의 탁성이 섞여서 듣기 좋은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소피아는 그러잖아도 무대 감각도 익힐 겸 트롯가요대전에 도전한 상태라는 것이었고, 불쑥 고흥행 열차를 노래로 불러보고 싶은데, 노랫말로 써도 되느냐고 물었다. 동재는 고흥행 열차를 어떻게 알았나 싶을 뿐이어서 된다고 말했다. 소피아는 힘을 얻은 듯이 손을 불끈 쥐어 보이고 떠났다.
소피아의 당찬 각오는 사그라드는 모닥불 같은 동재의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는 격이었다. 소피아는 오는 날부터 동재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미국의 유명 대학을 나와서 K팝 오디션에 도전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전공과 다른 노래에 도전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지만,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 아버지가 노래를 ‘큰 뜻’이라고 한 말은 더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날 때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남기로 했지만, 아버지가 노래를 막은 불만도 섞인 것이어서 아버지의 말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소피아는 정말로 진지했다. 늘 놀고 있는 것 같은데 불과 한 달 만에 한국어는 의사소통이 될 정도가 돼 있었고 노래 경연에도 도전하고 있었다.
동재는 소피아가 부러웠다. 소피아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김수미 씨의 목소리로 “총가악”할 줄만 알았다. 불러놓고 같은 톤으로 영어를 하면, 귀여워 죽을 지경이어도 알아들을 수 없다고 말하기 싫어서 말을 섞지 않았다. 동재는 소피아가 “총가악”할 때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할머니 대신 식탁으로 부를 때든, 치킨을 시켜 놓고 부를 때든, 소피아는 “총가악”만 앞세웠다. 하릴없는 할머니는 드라마 <전원일기>만 봤다.
동재는 그 틈에서 쉬 잠들지 못하고 낮 동안 혼자 상상한 ‘고흥행 열차’를 끄적거렸다.
동재의 ‘고흥행 열차’는 이해할 수 없는 소피아의 도전과 동재의 실패가 비교되면서 놀이로 이어졌다.
대학을 마쳤으면 그동안 벌렸던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순서인데 버킷 리스트에나 낄 법한 취미를 직업처럼 생각했고, 할머니는 아무런 핀잔도 없이 옛날 가요로 노래와 한글 강의를 계속했다. 그런 따뜻한 모습은 동재의 삶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상상의 ‘고흥행 열차’를 끄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동재의 자동차 사고는 그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일어났다. 끝 모를 빈 들녘을 방향도 모른 채 혼자 달리는 기분인데, 소피아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생각이 흔들리니 장사하기 좋은 알짜배기 장소를 놓치는 일이 잦았고, 그 때문에 고흥행 열차 놀이를 더 자주 떠올렸다.
그러니까, 입원 중에 소주 세 병을 마시면 고흥행 기차를 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은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순대 차에서 상상한 고흥행 열차 여행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 대신 열차가 동원된 것인데, 그 놀이는 소피아 때문에 더 자주 하게 된 면이 있었다.
소피아가 가고 오래간만에 순대 트럭을 떠올렸다. 앙증맞다고 할 정도로 작고 아담한 트럭에 커다란 가마솥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이 덩그러니 보였다. 그때는 누군가의 핸드폰만 울려도 귀가 쏠렸다. 연락이 끊긴 사막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행인과 핸드폰만 멀뚱히 보다가 열차 놀이를 했더랬다. 순대를 살 사람이 트럭 가까이 오면 열차는 정거장에 서는 것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우주를 유영하듯이 끝없이 달리는 것이었다. 은하철도 999처럼.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필연이었고, 마음을 읽기 원하는 것은 아픔과도 같았다. 모두 여행자에 불과했고, 자기 목적지를 향해 움직일 뿐이었다. 누군가 순대 차 앞에 선다는 것은 삶을 공유하는 순간이었다. 영락없는 긴 여정의 정거장이었다. 귀한 만남을 떠올리면 손놀림도 더 가벼워졌다.
퇴근 무렵에는 출퇴근 인력이 지나는 주요 길목에 차를 세웠다. 그때는 워낙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서 그들은 줄을 섰다. 한두 시간에 그날 준비한 물량을 다 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도 동재는 즐기지 못했다. 여전히 제대로 된 직업 같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그 시간대 손님 대부분은 같은 또래여도 아무도 왜 순대 장사를 하느냐, 그것 해서 먹고는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들은 가마솥이 우주 같아 보인다느니, 솥뚜껑을 열 때마다 김이 나오니 흥부의 박이 연상된다는 정도의 말만 했다. 하지만 그런 길목은 늘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고 경쟁이 심했다. 이동 차량이 설 만한 자리에는 이미 경쟁자가 차지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서울에서 먼 고흥에 가고 싶었다.
고흥은 남도의 끝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기차로 가도, 자동차로 가도 먼 곳이었다. 기차로 순천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고흥에 가서 다시 버스를 타야 아버지 고향인 해변 마을에 도착했다. 그래서 학교에 사직서를 냈을 때, 가장 멀게 느껴지는 고흥으로 갔다. 일주일을, 해변을 따라 반도인 고흥을 걸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고향 마을에 들렀던 기억이 가장 남았다. 아버지 친척 상을 당해서 따라갔다가 동재가 감나무에서 떨어져서 팔이 부러졌고, 그다음부터는 떨어진 나무보다 높은 곳은 오를 수 없는 공포에 떨었는데, 그 감나무는 베어지고 없었다. 나무가 없으니, 높이에 대한 공포조차 상상처럼 느껴졌다. 의외지만, 동재와 나무가 같은 피해자 같고,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버지가 보였다.
그 뒤부터 고흥에 가는 상상은 늘 기차였고, 아버지도 함께였다. 한때는 동재의 꿈을 비튼 아버지가 원수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서야 그리움이 되었다. 상상의 열차는 온 가족이 역무원으로 동참할 때도 있고, 명절이면 온갖 선물을 싣고 고흥에 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 상상이 놀이로 드러난 것은 병원에 입원하면서였다.
환자들 모두가 숨이 막힐 정도로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그래서 술을 마셨고, 고흥행 열차 놀이가 실재가 되었다. 그 놀이는 어느 오락 방송 못지않았다. 서너 명이 역무원이 되어 검표 과정의 에피소드를 만들 때도 있고, 손금을 봐주고 복채를 받아 음료를 사 먹는가 하면, 온갖 선물을 싣고 고향 가는 농악패처럼 입으로 악기 연주를 할 때도 있었다. 제일 볼만한 것이 객실 통로에 서서 장사하는 일이었다. 값은 부르는 대로였고, 파는 것은 장사꾼 마음이었다. 시작만 하면 놀이는 꼬리를 물었다.
원장은 병원으로 찾아온 애니 할머니에게 한 3일 입원해서 물리치료와 투약 처치를 받으면 목 통증과 어지럼증은 사라질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애니 할머니 입원실은 3층이었고, 동재는 4층이었다. 소피아는 잠깐 사이에 병원 안에서 인기 가수가 되었다. 할머니가 “노래나 한 곡 불러라” 하면 소피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불러댔기 때문이었다.
동재는 애니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할머니의 이름이 왜 ‘애니’인지를 알았다. 원래 한국 이름은 애나였는데, ‘더 필요한 것 없느냐’는 뜻의 “애니씽 엘스”를 끝없이 반복하다 보니 ‘애나’가 ‘애니’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사업은 ‘애니’로부터 시작한다고 했고, 순대 차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 말에 가식은 없어 보였다.
동재는 애니 할머니와 같은 병원에 있는 동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애니 할머니가 일하는 방식은 동재가 하는 방식과 전혀 달랐다. 공연장 주최 측의 마음을 움직여서 단숨에 사람이 많은 곳에 차를 세운 것부터가 달랐다.
긍정의 에너지를 부풀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당연히 퇴원하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퇴원을 생각하면 11미터 높이의 다이빙대에 선 기분이었는데, 그 공포가 폭력으로 느껴지던 감정조차 잘못된 것 같았다. 마치 어릴 때 감나무에서 떨어진 이후 2미터 이상을 올라본 적이 없는 경험처럼, 소피아를 사랑하는 감정을 차단하려고 했던 기억조차 우습게 느껴졌다.
원장은 여전히 동재를 원장실로 불러댔다. 대체로 원장이 전문 심리 상담사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동재는 그래도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꿈속에서 소피아를 만나고 있어서 비밀을 지켜야 했다. 대체로 고독에 물든 정적이 병실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잠식되지 않은 생명체로 남아 있고 싶었다. ‘고흥행 열차’ 말고는 아무런 낙이 없던 때에 찾아온 달콤함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비밀을 지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퇴원은 여전히 큰 일이었다. 동재는 혼자서 식당으로 걸었다.
놀랍게도 식당에는 이미 큰형님과 신입 환자가 앉아 있었다. 동재는 마지못해 같이 앉았으면서 이번에도 족발만 먹었다. 그걸 보고 있던 큰형님이 기어이 딴지를 걸었다.
“장 기관사께서 낮술을 거절하니 세상이 조용하네.”
큰형님의 말에 신입 환자가 바로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대단하시오. 고흥행 기차를 창안했으니…. 가족은 다 이민 가고 혼자 남았다고 들었소만….”
동재가 가만히 있어도 큰형님이 그동안 동재에게서 들은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친구 셋과 노래방에 들락거리다가 연습생으로 뽑혔는데,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아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가 되었고, 입대는 면제되었지만, 되지도 않는 학생 지도에 열성을 보이다가 잘려서 순대 장사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형님이 하는 사업을 같이 하자는 말에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아들 앞으로 아파트 하나를 남기고 이민을 떠났는데, 시간이 흘러 그게 돈이 돼 있고 이제 가족이 그리우면 고흥행 열차를 탄다는 것이었다.
웃기게도 좍 꿰고 있었다.
“되지도 않은 학생 지도가 뭐였는디?”
“진로 지도제.”
큰형님이 대답했다.
“선상의 학생 진로 지도는 당연한 것 아니요?”
신입 환자는 이제 큰형님을 보고 물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의사가 되라고 했는데, 아들은 선생님이 미술이 적성에 맞다고 했다니, 난리가 난 것이지. 학부모가 한 묶음 몰려왔다니 견딜 수 있었겠어?”
동재는 자신이 당한 일을 다른 사람이 말할 뿐인데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 학교에서 의사가 되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의사 진학반은 두 반이나 되었다. 그 두 반은 특별 편성된 만큼 혹독한 과정을 거쳤다. 그들 중 삼분의 이는 좌절하는 것이고, 재수로 떠돌았다. 동재는 그것을 막자고 정말 다양한 적성 검사, 학생의 희망 직업, 학생의 학교 성적 등을 살펴서 진학 지도를 했는데, 세상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 자식의 앞길을 망쳤다면서 학부모들은 교사 퇴진 운동을 벌였다.
그때는 사람이 싫었다. 고흥은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어서 찾게 되었다. 삼면이 바다인 고흥의 해안과 섬은 일주일을 머물러도 물리지 않았다. 서쪽 바다는 득량만, 남쪽 바다는 다도해 공원, 동쪽은 여자만으로 섬이 많아서 좋았고, 섬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바다가 좋았다. 소록도의 한적한 해수욕장과 연홍도와 녹동의 활기찬 밤은 무척 대조적이었다. 반면 발포 해수욕장과 나로도 해수욕장의 저녁 시간은 정겨웠고, 해창만을 걷는 동안 보이는 섬은 계속 어떤 속삭임을 전했다. 아침과 저녁 해가 달랐고, 섬을 통과한 한낮의 바람 속에는 위로의 속삭임이 숨어 있었다. 그 일주일의 시간이 고흥행 열차가 된 셈이었다. 그곳에 가족과 함께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걷고 싶었다.
현실은 혼자였다. 혼자서 세 병의 술을 비우면 조용하던 장면은 정반대가 되었다. 열차 출발 전 각종 재미를 가미해서 사람을 태우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가는 도중에 이상한 이벤트가 끼어들기도 했다.
“궁금해 죽겠는데, 기관사가 모는 고흥행 열차 한 번 봅시다.”
술이 얼큰하게 오른 신입 환자의 재촉이었다.
“에이! 봐. 물만 마시면서 족발만 축내고 있잖아.”
“그래도 대단하네. 그깟 고소공포증, 수면제 먹고 자고 일어나면 미국일 것인디, 버티고 혼자 사는 것을 보면. 근디, 고흥행 열차가 결국 고흥에 가는 것은 맞소?”
동재는 처음으로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늘 출발만 했지 고흥에 도착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길을 잘못 들어선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과정은 어쩔 수 없고, 목적지에 도착할 이유는 불분명한 것이었다. 교사도 순대 장사도 과정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노래를 허락했으면 떠돌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에도 확신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한창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할 때, 아버지가 한 말이 못처럼 가슴에 와 박혔다.
“내가 알기로 노래는 너에게는 걸맞지 않다. 그 길은 당찬 오기가 있어야 가는 길이다만, 너는 당찬 오기는 없어. 공부는 끈기만 있으면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된 직장을 갖도록 해라. 이건 아버지로서 하는 말이다.”
‘아버지로서 하는 말’이란 말이 무겁게 짓눌렀다. 술을 한잔하고 들어온 아버지는 세상이 헐렁해 보여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거기에 얼마나 많은 서열 다툼이 있는지, 너는 아직 모른다고 했다. 동재는 그 말에 동의했다. 무엇을 해보겠다는 목표가 아직 없었고, 오기 없이 끈기만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오기의 실체는 인제 와서야 ‘깡’으로 이해되었다. 술을 과하게 마시면 ‘깡’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때는 기관사이기도 하고, 검표원이기도 하고, 진행자가 돼 있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소피아가 큰 뜻을 품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으니, 그 말은 듣고도 믿어지지 않아 맴돌았다. 아버지는 그동안 생각이 바뀐 듯한 말을 하기는 했었다.
“한국이 그렇게 싫었는데, 이제 한국은 어엿한 선진국이다. 네가 그곳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왜 하고 싶은지만 알고 시작해라.”
동재는 그런 말이 이제야 가슴에 와닿았다.
동재가 본 소피아는 성과 면에서 동재와 달랐다. 어른들이 즐겨 부르는 트롯가요제에 참가해서 예선을 통과했다는 소식이었다. 나중에는 시청자 응원이 많아야 순위 안에 들 수 있는데, 소피아가 기댈 사람은 동재밖에 없으니, 과거 제자들이라도 연결해서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총각이 쓰라고 허락해 준 ‘고흥행 열차’를 트롯과 재즈 멜로디로 신곡을 녹음할 예정인데 한 번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고흥행 열차를 타세요. 기회는 지금뿐. 누구든 상관없어요. 아무런 조건도 없어요. 사랑하는 그이를 만나러 가는 사람도, 잃어버린 꿈을 찾아가는 사람도, 모두 모두 타세요. 누군가와 헤어져 후회와 눈물만 있나요. 가슴엔 잊고 싶은 사연뿐이라고요. 걱정을 마세요.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 고흥행 열차를 타세요. 우리들의 낭만여행, 고흥행 열차를 타세요. 인생의 동반자.
그건 동재가 언젠가 끄적거리고, 술을 마시면 마음 내키는 대로 불렀던 노래이기도 했다. 재즈와 탱고를 섞어 놓은 것 같은 독특한 멜로디였다. 소피아의 목소리 같지 않게 재즈틱한 한국어 발음에 또 한 번 놀랐다. 조금 뒤에 카톡이 울려서 보니 앨범 사진이었다. 거기에는 ‘가사 장동재’라고 쓰여 있었다.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자신의 이름을 보는 순간 왜 그리도 가슴이 떨리는지 알 수 없었다. 뭔가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동재는 3층으로 내려갔다. 그 가사를 소피아가 찾아냈을 리 없었다. 한글을 아는 할머니가 책상을 치우다가 보고 소피아에게 넘겼을 것 같았다.
애니 할머니는 메모가 아니고 동영상으로 봤다고 했다.
“내가 좋아한 탱고와 소피아가 좋아한 재즈와 도전하는 트로트의 바이브레이션을 섞어서 노래하라고 했다. 거기에 지가 생각하는 혼을 넣었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노래 접으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신음 비슷한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갔다. ‘아, 나는 그런 기준도 없었는데’ 하는 신음이었다. 애니 할머니도 ‘혼’과 ‘오기’를 말하고 있었다.
막연한 동경, 막연한 미래, 모든 것이 막연했는데, 어른들은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 뭔가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가슴에 박힌 못 같은 아버지의 말이 툭하고 빠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 소피아가 부르려는 노랫말은 제 일기에 있는 것인데, 소피아가 영상을 봤다는 것은 뭐예요?”
“소피아는 인터넷에서 네 ‘고흥행 열차’ 놀이를 보고, 그 가사를 정식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해서 네게 우선 허락부터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만나지 않았어?”
동재는 그때야 어물쩍하게 넘어갔던 일을 떠올렸다. 우선 재빨리 핸드폰에서 ‘고흥행 열차’를 검색해서 찾았다.
찍은 사람은 알 수 없어도, 서씨 아저씨가 올린 영상이었다. 그런 난장판도 없었다.
열차 안에서 큰형님의 약 파는 장면은 전문 약장사 자체였다.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고, 먹으면 요강이 깨지고, 그 약을 먹은 남자는 총칼과 같은 병기처럼 되어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애들은 가라고, 너희들은 뱀의 후예라는 말에 어른들의 웃음이 끼어들었다. 중간에는 양쪽 눈에 소주 뚜껑을 덮고, 허리띠를 풀어서 뱀 춤을 추기도 했다. 동재는 퇴원한 서씨 아저씨가 정거장 안내를 한 뒤, 기관사님의 안내에 따라 승차하라는 말에 등장해서 노래를 불렀다. 소피아가 부르려는 내용이었다. 어떤 때는 노래 중간에 ‘헤이 셀라’, ‘헤이 헤이’를 반복하기도 했다.
어설픈 그 노래는 영상에 따라 오페라가 되었다가 막무가내식 노래가 되는 등 뒤죽박죽이었다. 그때마다 큰형님은 식당 아주머니와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막춤에 아무 때나 주전자나 잔을 두드려대면서 끝없이 놀이를 이어갔다. 그런 놀이에 조회수는 폭발적이었다.
“이걸 언제 봤다는 거예요?”
“그게 뭐가 중해. 소피아가 트롯 본선에 가야 하니께, 내일 그걸 응원하려면 오늘 퇴원하든지, 오늘 열차 놀이를 해. 거기 구독자가 5만이 넘던데, 그 유튜브에 협조를 좀 구해라. 그리고 그걸로 오페라나 연극을 만들면 어쩌겠냐. 네가 써 놓은 ‘고흥행 열차’ 대본은 마치 알지 못하는 목표를 향해 끝없이 갈망하는 연극을 보는 것 같더라. 나는 네가 끄적거려놓은 대본을 보고 놀랐는데, 소피아는 영상을 보고 반한 것 같더라. 네가 한다면 네 연극에 내가 전액 투자하마.”
“소피아가 저에게 정말 반했다고 생각하세요?”
“그거 잘만 만지면 꽤 괜찮겠더라. 그런 작가를 소피아가 왜 싫어해….”
동재는 애니 할머니의 말에 이미 정신이 혼미했다. 오늘 퇴원하자면 바로 한턱을 내야 하고, 새로운 버전의 ‘고흥행 열차’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내일 응원을 부탁해야 하는 바쁜 상황이었다.
동재는 꿈속에서만 만났던 소피아를 응원하는 일에 바로 원장실로 뛰어가 퇴원 결심부터 밝혔다. 원장은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떠 보였다. 그리고 곧장 4층 병실로 뛰었다. 시선은 핸드폰에 묶여 있고, 떡이 진 고독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병실 형님들은 동재가 “저 오늘 퇴원합니다” 하고 말한 순간, 갑자기 병실이 떠나갈 듯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놀이는 이별보다 즐거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