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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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현대시는 디지털 시대의 가속화로 인해 새로운 모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문화의 격변은 활자 문화에 기반한 시의 위기를 불러왔으며, 일부 젊은 시인들에 의해 유행하는 장형의 해체시의 경우는 축약하기 어려운 장황한 서술이 부연 반복되기도 했다.
전통적 형식인 시조는 젊은 세대에게 낡은 형태로 보일 수도 있으나, 자수율의 음절 구성과 3행 형식적 구조가 주는 절제의 힘은 아직도 유효한 시적 효과를 나타낸다. 이러한 형식의 ‘견고한 틀’은 시의 생명력을 지탱하는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승·전·결’의 구조적 완결성을 지닌 4행시는 해체적 상황 속에서 한국 시가 새로운 생명력을 찾을 수 있는 근본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이 발표된 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논의되는 이유는 그 시가 지닌 구조적 완결성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시들이 기본 논리 구조를 상실해 가는 상황에서, 짧더라도 내적 구조가 견고한 시가 지속적 생명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이 작품이 증명한다.
디지털적 해체 상황일수록 시가 지녀야 할 구조적 견고성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 필자는 전통의 반복적 재현이 아니라,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시적 감정과 정서를 미학적 완결성 속에서 응축하는 새로운 시적 형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시조나 일본의 하이쿠가 지닌 구조적 미학을 넘어서, 시의 가장 원초적 형태인 4행시를 통해 현대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발원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디카시’의 경우도 이러한 단형시의 흐름과 맞닿아 있으나, 디지털 사진 이미지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시로서는 한계를 지닌다. 필자가 말하고 있는 ‘디지털적 4행시’는 언어적 미학의 구조를 전제로 하며,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언어 집약의 시다.
필자는 시집 『얼음 얼굴』(2011) 서문에서 “소통을 지향하는 디지털적 집약의 시가 극서정시”라고 밝히며, “그것은 하이쿠의 길도 아니고 시조의 길도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제왕나비』(2019)에서 “서정시의 명징성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극서정시’란 결국 고도의 언어적 밀도를 지닌 단형시라고 했으나, 형태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모호했다.
10여 년의 탐색 끝에 필자가 내린 결론은, 극서정시를 형태적으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디지털적 사행시’라는 것이다. 사행시는 역사적 연원과 구조적 완결성을 함께 지닌,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형식이다. 고조선 시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그 대표적 예이다.
공이여 물을 건너지 마세요.(公無渡河)
공은 드디어 물을 건너셨네.(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음에 이르렀네.(墮河而死)
장차 나는 공을 어이하리오.(將奈公何)
이 작품은 고조선 시대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가 악기 공후인을 연주하며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1세기 전후의 가락국의 「구지가(龜旨歌)」나 신라의 「풍요(風謠)」 그리고 고구려의 「황조가(黃鳥歌)」 등의 시가도 사행시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한국 현대 시인들도 김영랑(金永郞)과 김달진(金達鎭) 등이 집중적으로 사행시를 시도한 바 있다.
거슬러 올라가 초기 불교 경전 『금강경(金剛經)』과 『법구경(法句經)』의 핵심적인 발화 형식이 ‘사구게(四句偈)’라는 것도 주목의 대상이다. 부처님이 설법한 내용을 요약한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만들어진 일체의 모든 법이여!(一切有爲法)
몽환과 같고 거품 그림자 같네(如夢幻泡影)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으니(如露亦如電)
만들어진 모든 법을 이같이 보라(應作如是觀)
부처는 2500년 전 『금강경』에서 이 한 편의 사구게만이라도 제대로 지키고 간직한다면 그 공덕이 어떤 금은보화보다 크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사행시’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에서 복고적인 느낌을 줄 수 있으나, 디지털 시대의 사행시는 과거와 달리 언어적 밀도와 농축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야 한다. 시와 노래의 접점에서 사행시는 오히려 매개적 강점을 지닌다. 신라의 사구체 향가가 민요에서 출발했듯, 현대의 사행시 또한 형태적으로 다양한 변형과 확장을 수용할 수 있다.
서양에서도 단형 구조의 시는 오래된 전통을 가진다. 14세기 초 단테(Dante)는 「신곡(神曲)」을 3행시로 100곡을 완성했으며,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의 『예언집(Les Propheies)』(1555)은 4행시(quatrains) 942편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예언적 성찰을 담은 사행시는 과학과 신비 사이를 넘나드는 르네상스적 지성의 상징이었다.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 해체적 난관에 봉착한 현대시의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찾은 하나의 대안은 고대 시원의 형태인 사행 구조에서 비롯된다.
별 없는 캄캄한 밤 빛나던 유성의
꼬리도 사라져 광막한
지평선에 불꽃을 켜는 나의 시는
손 시린 작은 돌멩이(「부싯돌」)
필자가 쓴 이 시에서 부싯돌은 인간의 의식을 점화시키는 돌멩이이며, 우주의 어둠을 밝히는 불꽃이다. 스마트폰의 한 화면에 모든 것을 담는 것에 익숙한 오늘의 현대인에게 단형의 극서정시에서 한 걸음 나아간 디지털적 시형(詩形)으로서 사행시는 구조적 견고성과 미학적 밀도를 동시에 함축하는 형태이다. 물질의 근원을 추구한 양자역학이 궁극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초기 자연 철학자들과 인도의 우파니샤드 그리고 중국의 노자가 보여주었던 직관과 통찰의 사유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원고는 프랑스시인협회 정기간행물 『AGORA』 8월호에 게재된 글을 요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