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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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모처럼 여행을 떠났다. 두 아들은 수도권에 살고 있어서 명절이나 제사 때 외에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내가 몇 년 전부터 친구들의 여행담을 듣고는 정동진에 여행 가자고 제안하였으나 현실적으로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올해는 아내의 생일날이 금요일이라 2박 3일 일정으로 정동진으로 여행을 가자고 한 것 같다. 장남이 열차표를 예약하여 보내왔다. 대구에서 정동진 간 열차표였다. 아내에게 말하니 두 아들이 평창에 리조트를 예약하였다고 하였다.
장남에게 전화하여 여행의 전모를 듣게 되었다. 사전 협의는 없었으나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 기꺼이 동참하였다. 대구에서 평창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고 승용차로 가기에는 무리인 것 같다. 장남이 다시 전화가 왔다. 예매한 강릉행 열차는 서울역에서 바꿔 타는 시간이 10분밖에 없어서 힘들 것 같아서 수원으로 오는 열차표로 바꾸어 예매하였다고 했다.
수원역에 내려서 장남의 차로 출발하였다. 두 아들 모두 남매를 두어서 우리 가족은 모두 10명이다. 올해 장손이 군에 입대하여 9명이 승용차 두 대로 이동하였다. 격세지감이 든다. 아직 아들들을 어리게 보았으나 세월이 흐르는 물처럼 흘러서 벌써 두 아들 모두 지천명이 넘었다. 이제는 아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련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으니 내가 늙은 것 같다.
대관령 전망대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천지에 온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수려한 경관에 이번 여행의 청사진을 보는 것 같다.
평창에 도착하여 예약된 리조트에 들어가니 또 한 번 감동을 준다. 남부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자작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건물들이 살짝살짝 얼굴을 내민다. 자작나무 꽃말이 ‘당신을 기다립니다’이다. 여행객을 기다리는 연인의 뒷모습 같았다.
예약된 리조트는 2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 한 채였다. 휴게시설과 노래방, 회의용 탁자, 넓은 거실과 침실 등 휴식이 절로 되는 느낌이 든다. 아들들이 사전 치밀한 준비가 마음에 들었다.
노래방에서 밤늦게까지 3대가 어울려 즐길 수 있었다. 손주들도 어느새 군에도 입대하고 중고등과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날 강릉을 거쳐 목적지인 정동진 바닷가에 도착하였다. 무엇 때문에 정동진이 유명해진 것인지 관찰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깨끗한 백사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쌓았다. 정동진은 우리나라 최고의 해돋이 명소이다. 바다 위에 언제나 변함없이 한곳을 지키고 있는 길잡이별 북극성을 향하고 있는 바다 해시계가 길손의 마음을 흔든다. 태양의 그림자로 시각을 알 수 있는 조형물이다. 바닷물 속의 직사각형 위에 로켓포처럼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다. ‘바라보며 작은 희망 하나 마음속에 담아보라’는 안내 간판이 보였다.
정동진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배 모형의 건물은 썬크루즈 리조트다. 2002년에 개장하였고 실제 유람선처럼 생긴 독특한 구조였다. 조선소에서 실제 유람선을 건조하여 현장에서 조립했다는 점이 특별하며 길이가 165m, 높이 45m의 독특한 해상 테마 리조트였다.
정동진은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동쪽인 강릉시 강동면의 바닷가이고, 정서진은 정동진의 반대 개념으로 인천시 서구에 해당한다. 정남진은 전남 장흥군에 해당하고, 정북진은 이북의 중강진에 위치한다.
여행 마지막 날 밤에 저녁 식사 후 가족회의를 하였다. 회의 끝에 어머니 생일을 맞이하여 가족 여행을 실행한 아들과 며느리들을 격려하면서 발표를 하나 했다. 올해가 나의 팔순이 된다. 별도의 행사 없이 이번 가족 여행으로 가름한다고 했다. 그동안 온 가족이 기쁘게 회갑, 칠순, 금혼식을 모두 하였기에 별도 행사를 준비 중이라 하였으나 거절하고 설득하였다.
이번 가족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 장남은 S전자의 고위직을 맡고 있다. 2박 3일 동안 회사에서 수시로 연락이 왔다. 지휘도 하고 현황도 청취하는 등 바쁜 일상을 보면서 앞으로는 한가하게 가족 여행이나 해서는 아니 될 것 같았다. 아들들에게 가족 문제로 곤란함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해서 팔순 잔치를 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노자의 『도덕경』에 인간은 대지를 본받고, 대지는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흐름 속에 흘러가고 있었다. 평창의 여운이 오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