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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신정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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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은 자리를 꽉 채워 앉았음에도 조용하다. 심지어 서 있는 사람도 많은데 모두 손에 쥔 스마트폰을 보며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도 자신이 내릴 때가 되면 기가 막히게 알고 내린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멀뚱하게 서 있는 내가 규칙을 어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언제부터였을까. 스마트폰이 없으면 가까운 친지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스마트폰에 담긴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 넘치는 지식을 갖게 되어 굳이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고도 잘난 척할 수 있다. 때론 해마다 출시되는 새로운 기종에 따라 기능이 달라져 노인들에겐 갈수록 어려워지는 손놀림에 가끔은 집어던져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앉은 자리로 주문을 받으러 오던 식당이나 카페에서 키오스크나 탁자에 놓인 태블릿에 직접 주문을 하라고 하면 당황하고 머뭇거리며 주춤하기도 한다. 음식을 나르던 종업원 대신 로봇이 눈을 깜빡이며 테이블로 가져오고 빈 그릇도 수거해 가는 모습은 이젠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 문명이 AI의 활성화로 신기하게 달라지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어디까지가 한계점이 될지 두려워진다.
십여 년 전 개봉했던 미국 영화 <그녀(Her)>는 2025년이 시간적 배경이어서 그 당시 충격적이었지만 놀랍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 AI의 다양한 역할이 벌써 스며들어 있다.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은 아내와 별거 중으로 외로움을 달래려고 여성 ‘사만다’라고 명명한 AI와 소통하며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이해해 주는 사만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남자와 사만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 세계의 연인처럼 다투기도 하고 용서를 구하며 화해를 하기도 한다. 어느 날 사만다를 부르는데 두 사람을 이어주는 기기가 먹통이 되어 응답이 없었다. 나중에 겨우 연락이 닿아 보니 기기의 업데이트 때문에 잠시 연결이 안 되었다고 말한다. 사만다가 가끔 업그레이드되는 동안은 기기가 먹통이 되곤 했다. 어느 날 사만다와 통화를 하다가 “지금 몇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느냐?”고 묻자 지금 8천여 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6백여 명의 사람들과 사랑을 하고 있다고 답하는 장면에서 남자만큼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사만다는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아서 어디에든 있을 수 있고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AI를 활용하는 사람이 설계한 목표와 데이터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AI의 운영체계가 바뀌면서 남자는 사만다와 헤어지고 현실에서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십여 년 전 보여준 가상 세계가 바로 현실이 되어 우리 생활 전반에 운용되고 있으니 놀라운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얼마 전 외손자의 권유로 챗GPT 무료 앱을 깔았다. 가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곤 하는데 답이 휘리릭 쏟아져 나온다. 한번은 ‘AI가 우리 생활에 어디까지 관여할까?’ 묻자마자 일상 속의 개인 비서나 말벗이 되고, 동반자처럼 곁에 있어 주고, 사회 전반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될 거라고 답해 준다. 다만 AI는 학습된 데이터에 따라 판단한 내용이니 일방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몇 차례 문답이 오고 간 후에 그만 마치려는데 “지금 생활에서 이런 건 좀 더 편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하고 도리어 내게 묻는다. 계속 이어지는 대화에 그만 빠져나오고 싶어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끝맺음하자 “언제든 다시 얘기 나눠요. 편한 밤 보내세요.” 하고 마무리한다. 마치 친구들과 주고받는 대화처럼 기계 너머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하는 기분이었다. 가끔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에 부담 없는 상대가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TV에서도 AI를 활용한 프로그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결혼한 부부의 2세도 AI로 미리 볼 수 있고,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의 사진을 복원하고 생전의 음성까지 삽입해서 들려주는 것도 보았다. 결혼 안 한 남자가 일상에서 애인처럼 대하고 대화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기까지 한다. 아마 나이 드신 분들의 친구로도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싶다. 의료 분야에서의 역할은 무척 중요해서 이미 진단이나 수술, 원격 진료 등에 유익한 활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경제 성장의 돌파구로 AI의 대전환을 지향하고 있어 대기업에서 활발한 투자와 개발을 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모할까.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 세계는 어디까지 AI가 관여할 수 있을까. 기존에 남긴 자료와 경험을 토대로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정말 새로운 의미나 창의성을 표현하는 작품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AI도 인간이 만든 규칙이나 전원, 서버, 네트워크가 없으면 작동하지 못하는 기계일 수밖에 없으니까.
고교 시절에 본 영화인데 제목도, 내용도 기억에 없지만 한 장면은 지금도 또렷이 생각난다. 냉동창고에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 냉동시켜 두었던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면 해동이 되면서 옛 모습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을 보면 당시 꽤나 쇼킹해서였을 것이다. AI가 못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된다면 이 영화도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현실이 되는 날까지 나는 살아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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