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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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뿌연 하늘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따라 사색에 잠기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마음속 깊은 곳을 탐색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나의 삶의 중심에는 인터넷이 몽땅 자리 잡아 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곳은 스마트폰이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도 화면 속 무수한 정보 속을 헤맨다. 온라인이라는 이름의 가상공간이 점점 더 현실의 무게를 넘어서고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이 무한한 인터넷 정보 속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인터넷은 분명 놀라운 도구다. 우리는 전 세계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친구와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영상통화를 나눌 수 있다. 정보는 손끝에 있으며, 지식은 검색 한 번으로 얻어진다. 하지만 이 편함의 그림자 아래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집중력, 관계, 그리고 자아이다.
SNS의 ‘좋아요’에 울고 웃으며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삶을 살아간다. 진정한 소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함께 있는 시간조차 각자 화면을 바라보며 보내는 우리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물리적으로 가까워졌지만 정서적으로는 더욱 멀어진 느낌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중독이 무뎌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인터넷을 너무 많이 한다’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오히려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불편하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단 몇 분이라도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머릿속은 ‘혹시 중요한 알림을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이쯤 되면 우리가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인터넷 중독은 더욱 치명적이다. 우리 집에는 외손자 두 명이 함께 산다. 퇴근해 집에 가면 중학생인 큰손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초등 4학년인 작은손자는 할머니의 휴대폰에 빠져 내가 퇴근해 들어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할머니의 독촉에 ‘다녀왔습니까?’라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겉치레 인사로 대신한다. 현실 세계보다 가상 세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인간다움의 본질이다.
과거 한때는 텔레비전 끄기 운동이 전개된 적 있었다. 텔레비전이 우리의 여가 시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데 대한 경계였다. 어른이든 아이든 집에 돌아오면 텔레비전부터 켜는 것이 버릇이니 시간도 시간이지만, 텔레비전 중독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화면에 나오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데 길이 들다 보면 스스로 생각은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른바 텔레비전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상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텔레비전 중독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이 수필을 쓰는 지금도 문득 핸드폰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을지도 모르고,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써 참는다. 이 짧은 시간만이라도 나와 나 자신 사이의 대화를 이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사색은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연결을 끊고 소음을 차단한 채 내면을 향해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그 고요를 불편해한다. 잠시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의 말이나 영상을 틀어놓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왜일까? 어쩌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스스로와 멀어져 있다.
사색을 통해서는 답이 없을 수도 있고, 오히려 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만 진정한 성찰과 성장이 일어난다.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타인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세상의 소음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를….
가끔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검색창을 닫고 눈을 감자. 한 잔의 차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자. 그때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그것이 어쩌면 진짜 나의 생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