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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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에서 스트레스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은 한스 셀리가 고별 강연을 끝냈을 때였다. 한 학생이 스트레스 해소 비결 한 가지만 말해 달라고 하였다. 그는 “감사, 감사하면서 살라.”고 했다.
‘그래서 감사, 그러니까 감사, 그런데도 감사, 그것까지 감사, 범사에 감사’ 감사할 일은 차고 넘친다. 모두 수긍이 간다. 소중한 기쁨이다.
20여 년 전,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이 낯설었던 순간이 있었다. 남동생이 40대 초반이었을 때, 잘해야 2∼3개월 살 수 있다는 간암 진단을 받았다. 나는 매일 동생 집을 찾았다. 조금이나마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였다.
그날도 짬을 내어 동생에게 갔다. 동생 교우 서너 명이 와 있었다. 그들은 힘없이 앉아 있는 동생에게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였다.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두어 번을 더 반복했다. 동생은 서서히 조여 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두려웠을 것이다. 거기에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두 명, 삼 남매에 대한 절절한 애통함도 있을 터인데 기뻐하고 감사하라니.
동생은 음식을 먹지 못했다. 몸에 좋다는 생식이나 녹즙, 한약도 주변 사람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먹었지만, 번번이 토하고 말았다. 평소에 잘 먹던 음식도 거부했다. 그러니 특이한 보양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환자에게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망자를 애도하는 가족들에게 천국에 갔으니 슬퍼하지 말란 말 또한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동생은 고통스러운 모습이 역력한데도 사람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쓴다. 녹즙과 상황버섯 달인 물을 마시는 모습이 안쓰럽다. 동생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나, 이걸 마시면서부터 더 좋아지는 것 같다고 한다. 나도 이대로 가면 괜찮아지겠다고 말했지만 날로 쇠약해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동생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진중했던 것 같았다. 먹고 싶은 것 사 먹으라고 지인이 준 백만 원을 가지고 아내와 함께 그 길로 기도원으로 가서 헌금함에 넣었다. 그 헌금은 목숨 한 조각이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한 기도였을 것이다. 기도원을 떠나지 못한 동생은 증세가 점점 더 나빠졌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그렇게나 살고 싶어 했던 삶을 허무하게 내려놓고 말았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은 그렇게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나님을 접한 적이 없던 나는 동생의 지나친 믿음이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금방 쓰러질 것 같은 환자를 의학적인 치료보다는 신앙적 처방을 우선하는 기도원 처사가 원망스러웠다.
이제 장성한 조카 두 명은 결혼했고 막내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에 다닌다. 적어도 아빠는 천국에 계신다고 믿고 힘들 때조차 감사하며 온갖 어려움을 견디어 왔을 조카들이 대견스럽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남편을 살려보고자 내달렸던 올케의 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을 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목요일과 금요일 중 목요일로 모임 날짜를 정했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금요일로 읽고 찬성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 외출 중이었는데 왜 모임에 오지 않느냐는 전화가 왔다. 문자를 확인하니 내가 잘못 읽었다. 문자를 생각으로 읽어서 실수한 것이었다. 내 잘못을 그럴 수도 있다면서 늦었어도 오라는 동료가 고마웠다. 미안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실수를 통해 이해하고 헤아리는 관대한 마음이 때론 훨씬 행복한 평화를 가져다줄 때가 있다. 실수를 가볍게 웃어넘기는 일이나 느닷없는 불행에 감사히 순응하는 일은 자신의 감정을 초월한 일이 아닐까.
감사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마음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동생은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도 하고 결혼하여 아이들도 셋이나 있다. 그들이 살아갈 집도 있고 아이들이 학교에 편히 다닐 수 있는 여건도 되었다. 부족함 없는 삶을 좀 더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런 여건조차 갖지 못한 사람에 비하면 살아온 나날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떠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나이 들어 알아가고 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생각하면 기쁨이 찾아든다는 것도 알았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옛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