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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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우르르 뛰어나온다. 빨강, 노랑, 하양, 연분홍, 남보라 물결들로 출렁인다. 단상에는 즐거운 소란이 흘러넘친다. 꽃들에 둘러싸여 빼꼼 내민 수상자 얼굴도 함박꽃이다.
다음은 단출하다. 당사자와 어머니뿐이다. 꽃다발 하나 없는 걸 보니 먼 데서 오느라 준비할 시간이 없었나 보다. 나이 든 어머니 모시고 시간 맞춰 행사장에 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눈치 빠른 누군가 옆 테이블에서 꽃을 빌려와 안겨준다. 얼결에 차출당한 꽃이 더 붉다.
“내 살아생전 책이나 낼 수 있으려나.”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려서 다행이란다. 초로의 딸 손을 백발 노인이 꼬옥 잡는다. 그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꼬리는 내려앉는다. 딸의 눈빛도 설핏 붉었던가.
최고의 순간을 함께하는 모녀다. 문학상 수상식에 어머니를 모신 이는 흔치 않다. 대부분 남편이나 자녀를 대동하고 문우들과 화사하게 등장한다. 누구보다도 두 사람이 부럽다. 명주실 뭉치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어머니의 백발이 얼마나 소담한지 하얀 꽃다발 같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살아 있는 꽃다발이다. 소녀처럼 발그레 홍조 띤 노인을 보는데 나도 몰래 뭉클하다.
첫 번째 책을 묶을 때 엄마가 병원에 계셨다. 말이 간병이지 마음은 백미터 달리기 선수나 다름없었다. 연말이 다가오는데 책은 내야 하고, 기차 타고 병원을 오가기 바빴다. 짬만 나면 낯선 병실에서 글뭉치를 뒤적거렸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가벼운 탄식이었다. 잠든 줄 알았던 엄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너진 뼈가 붙기까지 곰살맞게 시중들어도 힘들 텐데, 무슨 바람에 글자에 코를 박고 있다니. 대체 그것이 뭐길래, 여전히 글판을 맴도는 딸이었다. 어린 시절 백일장에 나가 작은 상 하나 타왔다고 운동화 사준 걸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 조그만 운동화가 딸 인생을 끌고 다니는가 싶었으리라.
모든 어미에게 딸은 세상을 여는 문이다. 낯선 지도를 들고 제 길을 가는 딸을 지켜본다. 어쩌다 허방다리를 만날 수 있고 출렁다리를 건너기도 할 것이다. 마음이야 먼저 신들메를 고쳐 매지만, 손차양을 하고 조용히 바라본다. 먼 데서 돌아와 기꺼이 여행담을 펼칠 때까지 기다리고자 한다.
그해 겨울, 책 발송이 끝난 후에야 한 군데 빠졌다는 걸 알았다. 내 생애의 애독자인 엄마는 수취 불가 상태였다. 당신이 평생 응원한 이름이 여기 있노라고, 변방을 떠돌지만 걱정하지 마시라고,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혼곤한 시간일지라도, 따끈따끈한 책을 보듬으면 좀 더 편안했을지도 모르는데.
일종의 습관이었나. 엄마는 늘 뒷전으로 쳤다. 힘들 때만 징징거리며 뒤돌아보고 거기, 눈물 어린 기도로 서 있음을 확인했다. 기쁜 일에는 밖으로 나돌기 바빠서 함께 즐기는 일에 게을렀다. 원고료 타는 게 거북이 등짝에서 털을 긁듯 흔치 않은 일일지라도, 팔짱 끼고 나가 탕수육이라도 내밀었어야 했는데. 반짝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세월은 잘도 간다. 나 또한 딸을 가진 어미다.
어미에게 딸은 신의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 싶다. 생각만 해도 꽃다발을 안은 듯 벅차다. 혹여 수렁에 빠질세라 비탈에서 미끄러질세라, 마음이 접질릴까 발에 물집이 생길까 늘 조바심 낸다. 노심초사 정성으로 키워낸 만큼 어디서나 빛나길 바란다. 끝까지 나아가 자기만의 세상을 아낌없이 꽃피울 일이다. 그리하여 모든 어미는 이 땅이 건강하고 더 아름다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말년의 엄마가 떠오른다. 관절이 망가져서 오도카니 앉아 있는 모습이 오래된 수반 같았다. 뿌리 대신 온몸에 쇠못을 키우며 옹송그렸다. 꽃을 세워야 한다고,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침봉 사이로 물을 퍼 올리던 시간이었다. 이를 악물고 중심을 잡기 바빴다. 그러는 사이 당신의 관절은 녹아나고 일상은 기우뚱해졌다.
뒤늦게나마, 자식은 어미 마음 언저리에 다가선다. 진짜 그랬네, 어떻게 참았을까, 때늦은 후회다. 그러나 새로운 깨달음도 얻는다. 나는, 아니 우리 모두 눈물로 떠받치던 꽃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긴다.
나중에 엄마와 만나면, 지상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물어올지도 모른다. 어찌 지냈는지, 제대로 살다 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참으로 원했던 꽃의 시간을 잘 누리지 못하고, 사람을 꽃으로 세우는 일에도 서툴다. 생명은 순간순간 아름답고 경외로운데, 잘 살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그래도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겠다. 풍성한 꽃다발이 되진 못했지만, 운이 좋아서 꽃들이 내뿜는 향기에 머물다 왔노라고 말씀드리면 좀 서운하다 하실까, 심심하다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