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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에 나타난 ‘가을’ 이미지

한국문인협회 로고 한상훈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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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성찰, 존재론적 자각

 

늦가을 햇볕 따가운 날
노랗게 변색된 나뭇잎 한 장이
내 앞에 걸어간다
저 나뭇잎이 얼마나 오랫동안
나무의 한 가족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저 나뭇잎도 지금 자신을 뒤따라가고 있는
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는
오직 당신만이 아실 터
그러니 아무리 삶이 메말라 가는 세상이래도
늦가을 따가운 햇볕도 마지막일지 모르는 오늘 
늘그막에 누군가의 그늘막이 될 수 있길 기도한다
—허형만, 「햇볕 따가운 날」 전문

 

삶에 대한 겸허한 자세가 시의 바탕에 관류하고 있다. 사계절 중 가을은 풍요와 결실의 계절이다. 하지만 ‘늦가을’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름답게 단풍 든 자연의 형체는 어느덧 사라지고, 메마른 낙엽들이 여기저기 뒹구는 조락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1년 중 11월에 해당될 것이다. 11월은 가장 우울한 달이라고 했던가. 이러한 자연 현상 속에 우리들은 생의 덧없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시 역시 그러한 허무적 감성이 비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명상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존재론적 탐색으로 집요하게 시상이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햇볕 따가운 늦가을에 조용히 산책하고 있는데, 바람에 나부끼며 떨어져 가는 나뭇잎 한 장을 시인은 예사롭지 않게 응시한다.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 듯한, 흔들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시인은 잠시 철학적 사색에 잠긴다.
저 나무에서 연녹색 작은 잎으로 꿈틀거리며 태어나, 손바닥만 한 커다랗고 푸른 잎이 되어 어떻게 삶을 영위해 갔는지, 내가 그 세월을 아는 게 없듯이, 저 나뭇잎 역시 나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게 된 건 단지 우연일까. 새삼 자연의 오묘한 이치에 대해 깊이 빠져든다. 마침내 시인은 우주의 만물을 창조하신 ‘당신’만이 모든 생명체의 본질을 알고 계실 것이란 믿음에 도달한다.
시인은 소소한 자연의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외면하기 쉬운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심도 있게 천착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유를 통해 거칠고 피폐한 세상이지만 ‘늘그막’에 “누군가의 그늘막”이 될 수 있는 생을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한다. 언어유희적 표현을 가미한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이 시의 핵심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가을의 기도」 전문

 

시 전체를 지배하는 기도조의 어조에서 김현승 시인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새삼 환기된다.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가을’이란 단어를 주목하게 되는데, 봄이나 여름이 아니라 왜 시인은 ‘가을’의 기도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그 어느 계절보다도 ‘가을’은 사색을 통해 내면적 자아와 대면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1연의 가을은 ‘기도’, 2연에선 ‘사랑’, 3연에선 ‘호올로’와 시어가 짝을 이루면서 시상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들 세 연 중에서 3연에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가장 깊이 있게 와닿는다. 상징과 비유를 통해 시인의 내적 세계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시는 세속적이고 위선적인 삶에 나도 모르게 물들고 있는 자아를 발견하고, 방황하는 자신의 영혼 앞에서, 절대자와의 영적 교감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기독교인의 반성적 성찰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자신의 고독하고도 순결한 자화상을 ‘까마귀’로 비유하고 있는 이 시는, 고단하게 살아온 생에 대한 지난 시절의 회상 속에서 바른 삶을 살기 위한 내면적 몸부림을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라는 구절 속에 잘 녹여 놓은 듯하다. ‘가을’이란 단어뿐만 아니라, 어조와 리듬의 반복을 통해 시인 자신의 절실한 소망을 독자들에게 간절하고도 호소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아파트에 걸린 하얀 초승달 사이로
가을이 간다

 

잎새 위에 떨어지는 노을이
짙은 그림자를 떨구고
도시의 소음이 잦아드는 시간

 

삶의 그림자도 마지막 시선을 떨구고
가을, 빛나는 태양이 십자가 위에 걸리었다

 

작은 소음들이 춤을 추고
하얀 빌딩 벽에 부서지는 햇살 
어둠이 스며든다

 

휘청거리는 발걸음 속에
애닯은 마음 지우려
푸른하늘 흰구름 올려다본다
-최정옥, 「가을빛」 전문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신선하고 아름답다. 자연 풍경의 한순간을 포착하여 시적 서정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연의 도심의 아파트와 달, 2연의 떨어지는 낙엽에서 노을빛, 3연의 십자가에 걸린 태양과 같은 묘사가 그것인데, 한 폭의 수채화 혹은 정밀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와 같은 풍경을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 풍경의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면서, 시적 화자의 감정은 별로 노출되어 있지 않은데, “가을이 간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이 간다는 것은, 시인의 어조로 볼 때, 가을이 이젠 가버린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삶의 그림자도 마지막 시선을 떨구고”라는 시인의 진술을 통해 볼 때, 그 가을은, ‘시간’이 지나감에 대한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서서, 생에 대한 공허감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애달픈 마음으로 “푸른 하늘 흰 구름” 올려다보는 행동 묘사는 그러한 시인의 내적 심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연 풍경에 ‘시간’의 추상적 관념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제목 그대로 ‘가을빛’의 독특한 분위기가 잘 살아나고 있다.

 

일곱 난쟁이 마을에 
난쟁이가 살지 않는다

 

텅 빈 들녘
귀 시린 바람에 떨고 서 있는
허수아비들 맞바람 틈으로
서로의 안부를 희미하게 묻거나
키 커진 여름 나무의 키를 눈으로 재며
서울로 간 이 씨 죽음 이야기를 듣는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돌면
난쟁이가 떠나던 날처럼
새벽 강 안개는 흰 벽을 쌓고
점령군처럼 밀려와
한 채씩 집을 삼킨다
-장윤호, 「만추」 부분

 

늦가을에 어울리는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다. ‘백설공주’ 이야기에는 “일곱 난쟁이”는 고난에 처한 백설공주를 도와주고 지켜주는 착한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의 주인공처럼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경제 발전의 근대화에 희생된 조세희의 ‘난장이’처럼, 이 시의 “일곱 난쟁이”들도 현란한 도시 문명에서 밀려난 군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알레고리적 성격을 지닌다.
“일곱 난쟁이”들은 강가를 품고 있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풋풋하게 자라왔으나, 철들 무렵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성공하기 위해선 서울로 가야 한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힌다. 즉, ‘난쟁이’로 비유되고 있는 착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무작정 서울의 불빛을 향해 불나비처럼 겁 없이 날아든 것이다. 성공 신화를 이루며 화려하게 고향 마을로 돌아오면 좋으련만, 만만치 않았던 현실이기에, 노인들만 남은 시골 마을에 불길한 소식만 간간이 전해오는 것이다. 서울로 간 이 씨 또는 김 씨. 사고 났다는 소식, 또는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만 들려올 뿐. 이젠 텅 비어 있는 공허한 들녘에, 바람에 떨고 있는 허수아비들만 처량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난쟁이 마을엔 사람들은 사라지고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폐가만 눈에 띈다는 것.
이 시는 ‘만추’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시간적 배경과 더불어, “까마귀 울음소리”와 “새벽 강 안개” “감나무 위에/ 노을”과 같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들이 캐릭터들의 기구한 삶과 절묘하게 조응을 이룬다. 그 지점은 변두리적 인간들의 소외된 삶이라는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게 된다. 특히 “작은 지붕 옆 굴뚝에 흰 연기가/ 난쟁이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주제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있는 구절로서, 폐허가 되어 가는 시골 마을의 비극적 현실을 절제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무더웠던 여름이 어디까지 갔을까, 
구름은
지나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세월을 이고 지고
구천을 돌고 있다

 

넘어가는 빨간 석양을 바라보는 아이는 어느새
할미가 되었다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단풍잎들
노랗게 익어 가는 알곡들이 가을바람에 몸을 맡긴다

 

사과나무에 달린 빨간 사과
오래 전 입맞춤에 볼이 저렇게 빨간 것일까
-이연주, 「구천을 걷다」 부분

 

이 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오늘도 구천에 구천을 건너다니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구천(九泉)’은 땅속 깊은 밑바닥이란 뜻으로, 죽은 뒤에 사람의 넋이 돌아가는 곳이다. 시적 화자는 아득한 시절, 해가 넘어가는 아름다운 노을을 호기심을 갖고 바라본 기억이 있다. 꿈 많고 순수했던 시절의 그 ‘아이’가 어느새 세월이 흘러 노년의 ‘할미’가 된 것이다. 이제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비전이나 설계보다 과거의 아련한 추억 속에 ‘죽음’이 내 곁에 훨씬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첫 연에서 “구름은/ 지나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란 표현은 인생이란 결국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그 ‘구름’이 “세월을 이고 지고/ 구천을 돌고 있”다라고 시인은 진술하고 있다. 그러한 언술 속에는 삶의 무상감이 짙게 깔려 있다. 말하자면, 시인의 내적 정서가 가을 하늘의 ‘구름’ 속에 감정이입되어 있는데,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단풍잎들/ 노랗게 익어 가는 알곡들”이나 “감나무의 감들이 저녁노을에 붉게 반짝인다”의 구절처럼, 자연은 가을 하늘처럼 여전히 아름답기에, 유한적 삶의 공허감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는 시적 인식에 도달한다. ‘가을’을 시간적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의 외관 속에 가려진 시인의 삶에 대한 근원적 사유가 엿보인다.

 

2. 그리움의 정조, 감각

 

시월 하늘의 창 파랗게 열리면
내 마음은 어느새
가을 솔밥 익어 가는 고향 들판으로 내달린다

 

나를 먹여 키워준 혼머리 들녘
구부렁이 배롱나무 한 그루 들머리 지켜 섰고
땀내 베잠방이 아버지 노을 그림자가
볏모개로 순금 물살을 헤살 짓는다

 

한 해 논갈이 지친 일소가
멍에 부려 버리고 논가 산자락에서
코뚜레 벌씬벌씬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메뚜기 잡으러 하늘 휘젓고 다니던
추억의 논두렁에 조막 소년 하나
흑백필름으로 높다라니 나부낀다
-전석홍, 「가을이 오면」 전문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는 듯한 농촌의 가을 정경이다. 시인의 기억 속에서 환기되는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면을 포착하여 쓴 시다.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는 따뜻했던 고향을 떠올릴 시간적 여유가 없지만, 노년이 되면 달라진다. 노년의 시기가 되면 미래의 설계보단 추억의 공간이 머릿속에 더 많아지고, 시간의 여유를 갖고,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전석홍 시인도 “시월 하늘의 창 파랗게 열리면/ 내 마음은 어느새”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 시골의 고향을 떠올리면 그곳엔 “나를 먹여 키워준 혼머리 들녘/ 구부렁이 배롱나무 한 그루 들머리 지켜 섰고/ 땀내 베잠방이 아버지 노을 그림자가/ 볏모개로 순금 물살을 헤살 짓는다”처럼 땀으로 젖은 그리운 아버지가 서 계시고,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벼이삭들이 춤추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토속성 물씬 풍기는 적절한 고유어의 도입과 함께 농촌의 정서가 독특한 표현미학으로 발현되었다.
그뿐인가. 시상 전개의 후반부에는 어린 시절의 시인인 ‘소년’이 등장하여 애틋한 그리움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농사일에 지친 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농촌의 풍경이 점차 밀려나고, 메뚜기 잡느라 즐거웠던 ‘조막 소년’이 등장하여 독자들의 마음도 뭉클해지는 것이다.

 

외로워 울어 본 사람은 안다
가슴속 그리움도
사랑으로 익는다는 걸

 

노을 지는 언덕에 앉아
가을을 본다.
그대의 마주하던 언덕엔
햇살 비껴 흐르는 낙엽
깊어 가는 슬픔처럼 곱기만 한데

 

이제는 떠나 잊힌 옛 사람
자꾸 그리워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이길원, 「그리움」 전문

 

그리움에 대한 시는 참 많다. 그리움의 시적 대상은 고향이나 부모, 친구 등 다양하겠지만, “이제는 떠나 잊힌 옛 사람”처럼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압도적이다. 그만큼 애틋하고 절절하며,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소재가 한국시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고 있어서, 시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시창작이 쉬울 것 같아도, 자칫 진부하게 흐를 수 있기에, 생각처럼 작법이 그리 쉽지가 않다. 익숙한 소재에서 낯설은 신선함으로 형상화되지 않으면 감동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에서 볼 때, 이길원 시인의 시는 참신한 충격으로 와닿는다. 적절한 비유와 생략, 리듬, “노을 지는 언덕에 앉아/ 가을을 본다.”나 “햇살 비껴 흐르는 낙엽/ 깊어 가는 슬픔처럼”에서 환기되는 장면들을 통해 ‘그리움’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젊은 시인들이 서정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난삽하고 모호하게 그리는 시편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긍정적인 점도 없지 않겠지만 독자들을 시에서 점차 멀게 하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현대시의 풍토 속에서, 일상적이고 쉬운 언어 구사와 참신한 수사, 잔잔한 여운 등을 보여주는 이 시의 미학적 기법을 다시 한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 걸었던
나뭇잎이 쌓이는 길 위로 
출렁이며 다가오는 얼굴 
들어 눈을 뜨면
흐르는 파란 하늘 위로 
살며시 날아올라
언제나 외로울 때 
따뜻한 당신의 미소가 
못난 투정이어도
받아주고 다독이며
소중한 너를 잊지 말라
일깨워 주던
햇솜처럼 포근한
어린 기억을 매달고
그리움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은 가네
-양채운, 「가을은 가네」 전문

 

가을은 풍요의 계절인 동시에 고독의 계절이다. 가을을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시인은 이 두 가지 중에 후자 쪽에 시선이 머물러 있다. 다가오는 가을에 대한 낭만적 설렘이 아니라 지나가는 가을에 대한 쓸쓸한 상념에 젖어 있기에, 이 시는 외로움의 정서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심리 상태의 시적 화자에게 “출렁이며 다가오는” 그리운 얼굴이 있어 그나마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다. “흐르는 파란 하늘 위로/ 살며시 날아올라/ 언제나 외로울 때/ 따뜻한 당신의 미소가/ 못난 투정이어도/ 받아주고 다독이며/ 소중한 너를 잊지 말라/ 일깨워 주던” ‘당신’이 있어, 차갑고 허전해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삶의 온기로 채워주고 있는 것. 이처럼 아름다운 추억은 과거의 시간 속에 묻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불쑥 나타나 현존의 ‘나’에게, 삶의 에너지를 주고 삶의 활력을 찾게 해준다.
‘가을’이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무겁고 공허해진 마음 탓에, 시적 화자는 어쩌면 자의식 속에 깊이 빠져들어 우울해지고 허둥댈 수도 있을 터. 그러나, ‘햇솜처럼 포근한’ 당신에 대한 기억이 있어, 삶의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풋풋한 모습이, 시인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속에 잘 구현되어 있다.

 

햇살을 아끼면서 내려앉은 가을 색깔
바람도 불살러서 파란 하늘 물들이네
마음은
마냥 그리움
정으로 깊어지고

 

발걸음 서둘러서 지나가는 노을 손님
타다 남은 산그림자 한 줄기 뒷모습이
외로운
훅 낙엽 한 장
아는 듯 품에 안겨
-윤주홍, 「추정(秋情)」 전문

 

절제와 균형을 지닌 시조의 형식미가 돋보인다. 2수로 이루어진 이 시조는 초장과 중장에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 종장엔 시인의 내밀한 가을의 서정을 담고 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리움’이다. 이 시 역시 그리움의 정서를 그려 나가고 있지만 시인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빛을 발하고 있어, 조금도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햇살을 아끼면서” “바람도 불살러서” “타다 남은 산그림자” 같은 구절에 나타나듯이 개성적이고 참신하게 우리들에게 와닿는 것이다.
“외로운/ 훅 낙엽 한 장/ 아는 듯 품에 안겨”는 은근한 여성의 내적 심리를 그린 듯한데, ‘훅’이라는 한 글자의 의성어가 주는 음성적 매력과 더불어 비유적 수사가 절묘하다. 종장의 그 부분은 초, 중장의 ‘노을 손님’, ‘한 줄기 뒷모습’과 적절하게 조응을 이루면서, 시적 감흥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시작법의 형태에 있어서 초, 중장의 서경 묘사는 1행으로 처리하고, ‘3·5·4·3’의 음수율에 해당되는 종장을 각각 3행의 긴 호흡으로 천천히 나열함으로써 작가의 내면적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공감하게 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화창한 가을날
푸른 하늘 올려다본다
울컥한다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버린
젊음, 되돌릴 수 없는
낙엽 바라본다
아직은 봄
단발머리 소녀이고픈
머리칼이 허공에 부딪치는
늦가을 조용히 걸어간다
종종거리며 뛰어다닌 삶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저멀리 노을빛 단풍이 웃는다
—김복희, 「가을 그리고 나」 부분

 

세월이 가면, 풋풋했던 청춘 시절이 누구나 문득문득 떠오른다. 어느 가을 맑은 날에 시인도 푸른 하늘을 무심코 올려다보는데 ‘울컥’ 그 시절이 낡은 필름처럼 잠깐 스쳐간 것. 그 시절은 늘 “종종거리며 뛰어다닌 삶”이었으나 지금은 “느슨하게” 일상을 풀어놓고,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생긴 것. 청춘 시절엔 그 바쁜 뜀박질에, 붉은빛 단풍에 노을마저 아름답게 채색된 그 장면을 볼 수 있었겠는가. 지금은 그 단풍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여유가 생긴 것.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노을빛 단풍이 웃는다”라는 구절이 암시하듯이, 시인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내적 심리를 ‘단풍’에 대한 묘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젠 자연이 연출해 놓은 미세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있기에,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한 이치. 이처럼 소소한 동식물이나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감성적 교감은 ‘귀뚜라미’가 귀를 열고 무언가 듣는 모습도 감지될 정도. 그것은 바로 시인의 진술처럼 ‘시 쓰기’를 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리저리 낙엽 뒹구는 쓸쓸한 가을을 맞이하여, 시인은 내면의 섬세한 감정을 감상의 과잉이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표출하고 있다.

 

3. 자연의 아름다움

 

보이시나요
단풍나무 숲길에
흐르는 소리

 

긴 세월 흐르고 흘러
이곳 한적한 길 따라
바람결 일으키는 눈동자에 
조용히 머금고 있는 미소

 

저기 서 있는 한 자락 몸짓 
누굴 찾으려는 마음일까

 

찾아 나선 길손들아
손바닥 한 잎 가득 담아
두 손 모아 높이 들어
먼 하늘 향해 펴보렴

 

사방으로 흩어져 팔랑이며
살며시 다가오는
오색 물결
단풍나무 숲길이여.
—조병무, 「단풍나무 숲길 따라」 전문

 

동양적 사유의 철학이 엿보이는 이 시의 첫 구절에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잘 담겨 있다.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 시 전체를 다시 읽어 보니, “단풍나무 숲길 따라” 산책하면서, ‘자연’의 미세한 파동이 주는 미적 감각을 충분히 음미하라는 뜻이다.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인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사랑’을 진정한 마음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교감해야 한다고 진술한다. “단풍나무 숲길에/ 흐르는 소리”, “바람결 일으키는 눈동자에/ 조용히 머금고 있는 미소”와 같은 구절이 암시하듯 자연의 서정에 공감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때, 우리는 밀림과 같은 사회 속에서 메말라 버린 인간 본연의 따뜻한 정서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은 늘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에 잠재해 있다. 피곤에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때로는 일상의 탈출을 감행한다. 멀리 여행을 가거나 흥겨운 놀이 문화나 축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혹은 많은 사람들이 가깝거나 먼 산을 찾는다.
시인은 무엇보다 거칠고 피폐해진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외면하지 말 것을 간곡히 바라고 있다. 그 선물은 “사방으로 흩어져 팔랑이며/ 살며시 다가오는/ 오색 물결”을 ‘발견’해 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수천수만이 어우러진
고운 미소의 일렁임이
쏟아져 내리는 햇살 품어 눈부시다

 

잎눈 틔워 설렘 주던 봄날 시작으로
녹음으로 싱그러움 누린 여름엔
삶의 환희 자랑터니
이 가을 붉은 정열로 참 잘도 익은 삶

 

숲길 따라 듬성듬성 늘어선 벤치 위에
다소곳이 날아내려
앉을 자리 덮어 담긴
수북한 가을 이야기 곱다.
-정광지, 「단풍」 전문

 

가을에 붉은 단풍을 바라보면 일단 자연의 아름다움에 환호하겠지만, 저마다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들 수 있을 터. 어쩌면 노년의 시기엔 ‘단풍’의 미적 풍경보단 말라 비틀어진 빛바랜 모습에서 인생의 황혼을 씁쓰레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인에게 그러한 그늘이 없다. ‘고운 미소’나 ‘삶의 환희’, ‘곱다’와 같은 표현에 힘입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자연의 한 지점을 통해 그 미적 형상을 예찬하고 있으나, 단순히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가을 붉은 정열로 참 잘도 익은 삶”이란 구절을 주목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 시인의 시작 의도가 담겨 있는 듯. ‘단풍’을 통한 ‘가을 이야기’의 낭만적 어조 속에 그런대로 괜찮게 살아온 삶에 대한 자족감이 느껴진다.

 

가을이면 한 번쯤 강화섬엘 간다
길가 코스모스 들국화의 인사를 받으며
낚싯대 메고 외포리 쪽으로 가면
수면이 잘 보이지 않는 수로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수많은 붕어를 숨겨두고 꾼들을 따돌릴 양으로
양쪽 기슭에 갈대로 온통 무장하고 있다
이제 제법 바람도 차다
농부의 메나리 한 자락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막 멀리 교동으로 떠나는 배가
요란한 갈매기들을 데리고 간다
한 여인이 나의 손목을 잡고
저 갈매기 따라 바다에 빠지기를 청한다
정말 시인은 그대구려.
-황명, 「외포리 갈매기」 전문

 

시인은 하늘이 맑고 높은 어느 가을날, 모처럼 낚싯대를 메고 강화도 외포리에 낚시하러 간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 들국화와 자연스럽게 눈인사도 하게 되는 상쾌한 날이다. 그날, 낚시보다 중요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이 시의 중심 서사인 것. 다름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거기서 만나게 된다. 바닷가의 갈매기는 때로는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하는 것일까. 그녀가 훨훨 날고 있는 푸른 하늘의 갈매기들을 따라 바다로 가자고 시인의 ‘손목’을 잡는다.
일상적 통념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그녀의 낭만적인 말과 행동을 보고, 황명 시인은 그대가 ‘시인’이라고 말한다. 추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극적 서사가 강화도 외포리에서 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마음 설레는 가을이기에 가능할 터.

 

옹달샘 곁
곤줄박이 이사를 떠났다

 

높아진 하늘
새털구름

 

멀리 달아날 듯
하늘을 헤엄치고

 

동자승 고무신에
사뿐 앉은 고추잠자리

 

물매화 하얀 꽃잎에
산사(山寺)가 환해졌다
-고용석, 「가을 산사(山寺)」 전문

 

‘곤줄박이’는 참새 크기의 작은 새로 검은색 머리에 노란색과 흰 점이 뺨에 있어 무척 예쁘다. 그 새가 맑은 옹달샘 곁에 머물러 있다가 날아가 버리고, 드높은 가을 하늘엔 구름이 한가히 흘러가고 있는 풍경을 “옹달샘 곁/ 곤줄박이 이사를 떠났다// 높아진 하늘/ 새털구름// 멀리 달아날 듯/ 하늘을 헤엄치고”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골 산사의 자연 속에서 ‘동자승 고무신’에 ‘고추잠자리’가 앉아 있으니, 해학적인 웃음마저 주고 있는데, 거기에다 “물매화 하얀 꽃잎”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는 풍경이다. 산사의 정경이 주는 그윽한 포근함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번잡한 속세를 벗어난 탈속의 고요한 정경을 감상하는 독자들의 마음속이 밝고 환해지고 있다. 척박한 도시 문명의 일상에 짓눌려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주옥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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