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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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라면 냄새에 눈을 떴다. 벽을 뚫고 내 일상에 사전 동의 없이 침투해 오는 감각의 폭력, 프리미엄 오피스텔이라더니 옆집의 온갖 음식 냄새가 코앞까지 풍겨온다. 이 작은 공간에서조차 나의 권리를 온전히 지킬 수 없나 보다.
나는 박윤정이다.
특수유치원의 교사.
눈뜨자마자 의원면직을 고민하는 사람.
사명감? 개나 주세요.
그건 인력과 자원의 부족을 가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눈속임일 뿐이다.
사랑?
그건 오늘 아침 라면 냄새만큼이나 갑작스럽고 진하다가도 문만 열고 나오면 금방 떨쳐낼 수 있는 것이다.
이해심? 저는 없습니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견뎌내는 건 다른 문제니깐요.
나도 인간입니다.
하루 종일 똥오줌을 지려서 몇 번이고 갈아입혀 주어야 하는 아이.
누군가를 만나면, 꼬집고 잡아당기고 때리는 아이.
모든 것을 해주길 바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이.
작은 일에도 속상해하며 매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상처받기 싫은 아이와 상처 주는 아이를 한 교실에 넣어두고 교사는 만능 슈퍼히어로 가제트 형사가 되라니.
마치 이 오피스텔에서 내가 다른 이웃의 생활 패턴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처럼, 특수교사는 모든 아이의 세계를 완벽히 품어야 한다는 부조리한 기대가 나를 억누른다.
“한 반에 네 명밖에 없잖아요.”
“특수교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선생님이 우리 아이에게 유일한 희망이에요.”
“당연히 해주셔야 되는 것 아니에요?”
이런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는가?
안식처로 밀려들어오는 라면 냄새처럼 나의 인격과 권리에 대한 침범은 너무나 당연히 그리고 깊숙이 이루어진다.
그대가 학부모라는 이유로, 그대 아이만 안전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래요.
그 아이를 완벽히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나쁜 사람일까요?
아니면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가벼운 걸까요?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라면 냄새는 여전히 집 안 가득하다.
나는 손으로 코를 막고, 눈을 감는다.
‘이제, 아무것도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상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가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또 아이들의 냄새 사이를 지나며,
내 안의 박윤정을 조금씩 되찾을 것입니다.
애정은 가끔 애증을 지나야 도착하니까요.’
라면 냄새로 가득 찬 오피스텔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살짝 마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