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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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텃밭에 나가 주저앉아 엉덩이로 밭을 뭉개고 다닌다. 밭을 엉덩이로 매는 건지 호미로 매는 것인지…. 자고 나면 잡풀이 쑥쑥 자라기 때문에 그 풀을 뽑아 주려고 꼬질꼬질한 목장갑을 끼고 챙 달린 모자를 쓰고 그렇게 하루 일을 시작한다.
텃밭은 있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고 무릎마저 수술하여 지팡이 짚고 겨우 걷는다. 자녀들은 모두 성장해 가정 꾸려 나가고 부부가 살다 남편은 중풍으로 몇 년 고생하다 하늘나라 가셨다. 이제 덩그러니 혼자 남은 집, 외롭고 슬프고 쓸쓸하고 밤이면 무섭기까지 하단다. 안방에 남편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방문을 꼭꼭 닫고 거실에 작은 온돌침대를 놓고 생활하신다. 현관 밖에도 남편이 서 있는 것 같아 너무 무섭다고 하신다. 그리고 밤은 길고 잠은 오지 않고 애매한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다 새벽이 오면 지팡이를 짚고 밭에 나가 다리 쭉 뻗고 털퍼덕 앉아 호미로 흙을 긁으며 풀을 뽑는다. 어제도 뽑았는데 오늘 또 쑥 자라 지독히도 사람을 괴롭힌다. 도대체 풀씨는 어디서 날아오는지 뽑아도 뽑아도 연신 올라온다.
어쨌거나 봄이 되어 감자를 심고 강낭콩과 고추 모종과 방울토마토, 상추, 대파 이런 채소들을 골고루 심어 놓고 팔순 노인이 힘들어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텃밭에서 몸을 밀고 다니며 풀을 뽑는다. 물론 자식들은 제발 밭일하시지 마세요 하면서 전화에다 대고 떠들어 대면서 “엄마 오늘 뭐 해요?” 하면 “응 뭐하긴, 오늘도 풀과의 전쟁이지”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 밭에서 풀 올라오는 것이 보이니 풀이 자라고 있는 게 보기 싫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 오면 거두어 줄 것이 생기니 무엇이든 챙겨 주고 싶은 마음에 그리하시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보는 이웃 사람들은 안타까워서 도와드리기도 하지만 그것으로는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앞마당에 이것저것 심어 놓고 매일 들여다보며 체험하고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풀을 뽑고 나서 뒤돌아보면 풀이 또 보인다. 예전에 고사리 꺾을 때 꺾고 나서 뒤돌아보면 또 고사리가 올라와 있곤 했듯이 풀도 집 옆에 뽑고 나면 집 뒤에, 그리고 돌아서면 어느새 또 앞에, 그래서 돌아가며 풀을 뽑으며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여기저기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주렁주렁 커 가는 모습에 눈이 즐겁고 자식들에게 줄 생각에 마음이 흐뭇하기에 힘이 들어도 참으며 일을 하는 것이다.
한여름 풀과 씨름할 때는 지원군도 보내지 않고 관심도 없던 자식들이 수확할 때가 되면 와서 가져가기 바쁜 것을 보면 괘씸하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흐뭇함이 솟구쳐 오르고 그런 자식이 이쁘기만 한 걸 어쩌겠는가. 이것이 아마도 부모의 자식 사랑인 것 같다.
절기 중 하지가 지나고 날이 뜨거워지면서 감자 캐는 시기라 자식을 오라 하면 바쁘다고 오지 않는다. 팔십 노인은 주말에 혼자서 감자를 캐며 킁킁 앓는 소리를 하신다. 캐고 나서 지치니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어서 몸져누우신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것은 아마도 옆에 가족이 없으니 심심하고 외로워서, 또한 평생 하던 일이고 자식들에게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는 자식이 나이가 많아도 그냥 어린 자식일 뿐이다. 그냥 걷어 먹이고 싶고 늘 걱정되고 내 몸은 아파도 자식에겐 아프다 소리 못 하고, 아니 안 하고 안 아픈 척 괜찮은 척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다 한 번씩 와서 보는 자식들은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잘 모른다. 이것은 이 어르신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 모두가 또한 자녀 된 대다수가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의 사정, 자식의 사정을 서로가 속속들이 잘 모르고 사는 것이 실생활이다. 그래도 자식 된 도리로 해야 하는 것은 힘없는 노인이 된 부모를 세심하게 관심을 갖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나름 외쳐 본다.
세월은 야속하고 얄미운 심술쟁이인 것 같다. 누구나 세월이 가면 백발이 되고 어딘가 고장이 나서 삐걱거리고 먹는 약의 숫자는 늘어가고 병원 가는 숫자도 늘어만 간다. 요즘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 좋다고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에 속고 사람에 속고 속으며 한평생을 잡초 같은 인생을 살면서 열심히 모으고 챙기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을 내며 아웅다웅 그렇게 살았지만 결국에는 외롭게 살다가 요양원에서 빈손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나는 여러 어르신이 생활하시는 것을 직접 보면서, 또한 풀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자연의 이치와 섭리라는 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을 그 속에서 얼마나 지혜롭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만 같다. 사람들은 이 지구별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위대한 것 같지만, 가장 어리석은 동물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씁쓸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암튼 사람은 미련하다. 언제 죽을지 한 치 앞도 못 보면서 잘난 척, 있는 척, 고상한 척, 위대한 척, 그리고 강한 척, 약한 척, 사람은 언제나 척척박사다. 그러나 자연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숙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세월이 흘러, 때가 되면 숙연해진다. 그런 부모에게 잘하자. 우리도 언젠가는 늙어 힘없는 시기를 맞는다. 대부분 자녀는 부모 떠난 뒤에 후회한다. 살아계실 때 잘할걸 하면서 후회하지만 그땐 이미 늦어 소용이 없다.
노랫말에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라는 노래를 떠올리며 여기서 풀과의 전쟁은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