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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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기가 아니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사이,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는 사이. 어느 요양원이나 매년 고인(故人)이 생기는 미묘한 시절, 그런 시간이 아닌 아주 평범한 어느 봄날이었다.
“아악. 조, 조장님!”
새벽 다섯 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상 후 분주하게 기저귀 케어를 돌던 복도의 소란을 외마디 비명이 찢었다. 3호실에서 이금순 노인의 엉덩이를 밀어 올리며 일자 패드(일자 속기저귀)를 빼내던 김 조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비명을 지른 박희숙 요양보호사의 유난스러움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침부터 또 시작이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70킬로그램이 넘는 이금순 어르신의 마무리를 하지 않고는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아유, 흠뻑 젖었네. 어르신 뒤 좀 닦을게요.”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엉덩이를 돌리며 나름 협조하고 있었다. 등짝까지 번진 소변을 닦고 희석한 베타딘으로 소독한 후 따뜻한 물수건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다시 눕혀 기저귀를 여미고 있는데 손용구 요양보호사가 뛰어 들어왔다.
“조장님, 문제가 생겼네요. 11호실로 빨리….”
평소 묵묵하게 짜증 한 번 부리지 않고 3층의 모든 남자 어르신을 책임지다시피 하는 그가 다급한 어조로 김 조장을 재촉했다. 손용구의 붉어진 얼굴과 가쁜 숨을 느낀 순간 무언가 싸함이 김 조장을 덮었다.
“뭔데? 무슨 일인데요?”
김영숙 조장은 그를 돌아보며 잰걸음으로 11호실로 향했다. 각자의 방에서 기저귀를 갈던 다른 요양사들도 모두 무슨 상황인지 얼굴을 내밀었다.
11호실로 들어서자 얼굴이 하얘진 박희숙 요양보호사가 출입문 가에 얼어붙어 서 있었고 좌측 안쪽 침대에는 핏기라곤 한 점 없이 늘어진 홍순자 노인의 시신이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의 김숙희 노인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패닉에 빠진 요양사들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홍순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눈은 감겨 있었고 구토라도 한 듯 입 주변은 체액으로 지저분했다. 그리고 코에 연결되어 있어야 할 L튜브(비위관)는 보이지 않았다. 김 조장은 가슴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홍 노인의 곁으로 가 경동맥을 짚었다. 목에는 엷은 붉은색의 교살 흔이 있었고 예상대로 맥은 뛰지 않았다. 시간을 체크하고 바로 스마트폰을 두들겼다.
“여보세요.”
여섯 번의 벨이 울린 후 잠에서 덜 깬 전미희 간호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기저귀 케어를 하는데 11호실 홍순자 어르신이 운명하셨네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맥은 뛰지 않고요. 예, 예. 알겠어요.”
김 조장은 전화를 끊고 다시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폰 밖으로 ‘어떻게 된 거예요?’라며 박 원장의 거칠고 격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원장에게 상황 보고를 한 김 조장은 맞은편 침대의 김숙희 어르신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본다.
“어르신, 어떻게 된 거예요? 뭐 본 거나 들은 거 있어요?”
“내가 뭘 봐. 난 몰라.”
“아니, 이 방에 어르신밖에 없었잖아요. 어차피 CCTV 돌려보면 다 나오는데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봐요.”
김 조장의 책망에 한동안 눈을 피하던 노인이 대답했다.
“저년이 지난밤에 나한테 온갖 쌍욕을 다하더라고…. 나도 처음에는 좋게좋게 넘어가려 했는데 나보고 몸 팔던 걸레년이라지 뭐야. 아, 어떻게 참아. 저 쌍년이, 그래서 어차피 금방 뒈질 거 내가 일찍 보냈지 뭐.”
김 조장은 귀를 의심했다. 방 안에 있던 요양보호사들 성대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이정례 요양보호사는 비명을 질렀다. 말문이 막혔다. 김숙희는 분명 치매 어르신이다. 평소 피해의식과 망상에 의한 환청을 토로하며 싸움을 걸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폭력 행위를 본 적은 없었다. 1년에 서너 번 날뛴다는 다른 조의 전언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경험한 적은 없었다. 김 조장은 다시 한 번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이 죽였다고요?”
노인이 입귀를 찌그리며 웃었다.
“그래, 내가 죽였어.”
2층과 4층의 요양보호사들과 사무실의 직원들이 출근하며 왁자해지는 1층 로비에 경찰도 들어섰다. 차 두 대에 정복 3명, 사복 2명의 경찰이 도착했다. 새벽에 전화를 받고 바로 출근한 간호부장과 사무국장, 원장이 긴장한 상태로 그들을 맞았다. 그들은 원장에게 상황을 전달받으며 3층으로 향했고 두 명은 사무실의 CCTV를 확인했다. 경찰은 11호실 현장을 확인하고 김 조장과 3층의 요양보호사들을 차례로 호출해 발견 당시의 상황을 심문했다.
요양원은 어수선함과 불안함으로 가득 차고 사무국장은 각 층의 조장들에게 동요 말고 근무할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어떠한 내용도 아는 척을 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일이 확대될 것은 확실한 사실이고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겠지만 그렇다고 방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수사대가 도착하고 그들은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각종 증거 자료들을 수집했다. 이런저런 수사와 심문이 끝나고 홍 노인의 시신은 1층의 특별실로 옮겨졌고 김숙희는 일단 11호실에 홀로 격리되었다. 정복 경찰 한 명이 그녀를 감시했다.
사건이 벌어진 1호실은 3인실이지만 며칠 전 요도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한말자 노인으로 인해 김숙희 노인과 홍순자 노인 두 명만 생활했다. 비록 기저귀 케어를 받고 이동 시 부축을 받아야 하는 한말자 노인이었지만 그래도 세 명 중에 정신이 가장 온전한 편이어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니면 더 큰 참극이 일어났거나.
오전 11시경, 홍 노인의 유족들이 요양원에 들이닥쳤다. 장녀 부부와 차남 부부, 막내딸은 모두 믿을 수 없는 사실에 혼란스럽고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상기된 얼굴들과는 달리 소란을 피우거나 통곡하지는 않았다. 상담실에서 원장, 간호부장과의 면담을 한 후 특별실의 홍 노인을 찾았다. 막내딸만이 사망한 홍 노인을 부둥켜안으며 조용히 오열했다.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 해도 일어난 일이 없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각 층의 요양보호사들은 평소의 근무 일정을 따르기는 했지만, 짬만 나면 새벽의 끔찍함을 곱씹고 전파하며 눈덩이를 불렸고, 심지어 3층의 귀 밝은 어느 노인은 자신의 층에서 엄청난 살인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른 노인에게 전하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은 노인들은 다음 날이면 오늘의 사건을 모두 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기에 담당 요양보호사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무실은 쉬쉬하며 서로 상황을 전파했지만, 말이 문밖으로 새어 나가지는 않았다. 지하의 식당과 조리실의 직원들은 경찰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고 다만 노인 한 명이 돌아가셨나 보다 정도로 알고 있었다.
형사 두 명과 과학수사대의 여 수사관 한 명에게 심문을 받고 방 안에 격리된 김숙희는 오후 네 시경 경찰과 함께 요양원을 나섰다. 그녀의 유일한 보호자로 기록되어 있는 딸은 경찰과 전화 통화만으로 자신의 소임을 마무리했다. 사건 당일의 근무자 다섯 명은 모두 경찰과의 심문을 받고 사실 확인서를 쓰고 자필로 서명을 한 후 퇴근했다.
경찰차와 과학수사대 승합차 사이로 요양사 두 명이 인도하는 한 무리의 노인들이 정원으로 향했다. 굳이 이런 날 정원 산책을 해야 하는 건가 싶지만 요양원의 목적과 그 일상을 저버릴 순 없는 일이었다. 요양보호사들이 밀고 있는 두 대의 휠체어, 그리고 뒷짐을 지고 그들을 따라 걷는 남자 두 명, 연신 정원의 텃밭에서 뭔가 뜯을 것을 찾는 여자 두 명이 완연한 봄날의 햇살과 흙내를 만끽하고 있었다.
전쟁 같은 저녁 식사를 끝내고 기저귀 케어까지 마쳤다. 20시. 열두 개 생활실에는 노인들이 식곤증과 일상처럼 굳어진 루틴으로 각자의 휴식을 취했고, 요양보호사들은 야간 근무 전 마지막 짬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3층 중앙에 위치한 간호 데스크에 김영숙 조장과 박희숙, 손용구 요양보호사가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케어포를 작성했고, 강순임 요양보호사는 샤워를 하러 갔다. 이정례 요양보호사는 자신이 담당하는 생활실에서 어르신과 함께 일일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아니, 야간 점검은 왜 아무도 하지 않았어? 근무 시간별로 각자 입력해야지.”
김 조장이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공중에 질문을 던졌다. 박희숙과 손용구가 그녀가 남긴 물음에 억지 대답을 했다.
“그게 뭔데? 신체, 인지 말고 또 체크할 게 있다고? 어디서 찾으면 되는데?”
박희숙은 야간 안전 점검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되물었다.
“그것도 각자가 하는 거예요? 서로 중복되면 어쩔려고?”
손용구가 김 조장에게 물었다.
“아이구, 그건 근무자들끼리 맞추면 되지. 그것도 못 맞추나?”
“A조 C조는 조장이 다 알아서 한다고 하던데, 조장님이 알아봐요.”
그게 뭔데 하던 박희숙이 김 조장의 말을 받았다.
“아유, 무슨 조장이 다 알아서 해. A조는 그 젊은 남자 요양사 있잖아. 민 선생인가 하는 그이가 컴퓨터로 다 한다고 하구, C조는 임 조장이 개별로 다 해 준다고 하고.”
“그럼 우리 조도 조장이 알아서 하면 되겠네.”
“아니, 야간 일지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그러더니 뭘 나보고 다 하라 그래. 내가 가르쳐 줄 테니 직접 해.”
김 조장도 짐짓 정색을 하며 박희숙과의 티키타카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이야긴데 목욕탕까지 다 들리는구만, 소리 좀 낮추지?”
샤워를 마친 강순임이 머리를 털며 다가와 세 사람의 논의를 중지시켰다.
“아, 이 개놈의 새끼가. 고마 확!”
순간 요양보호사들의 소강 상태를 부숴 버리는 고함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4호실이다. 언제였을까. 분명히 침대에 눕혀 놓고 나왔는데, 간호 데스크 앞을 지나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는데, 9호실의 김동수 노인은 4호실에 있었고, 그 방의 주인이자 왕인 문재창 노인은 그를 향해 욕설과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손용구는 화면을 보자마자 4호실로 종종걸음쳤다.
“아, 이노무 개새끼, 밤에까지 들어와서 지랄이야. 좀 잡아두던가 묶어 두던가. 맘 편히 지낼 수가 없잖아!”
“아휴, 알았어요. 노여움 푸세요. 그리고 뭐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특별히 해 되는 것도 없잖아요.”
“아, 뭐가 해 되는 게 없어? 아까 낮에도 그 창가에서 오줌 싸고 내 물건들을 마구 뒤적였는데. 저 도둑놈의 새끼!”
“어이구, 알았어요. 어르신, 제가 모시고 갈게요.”
60 초반의 손용구는 70 초반의 문 노인에게 깍듯이 존대를 붙이며 김동수의 팔을 끼고 복도로 나왔다. 김동수는 77세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는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빼고 온종일 3층 양 끝에 위치한 12호실과 4호실의 복도를 왕복하며 지낸다. 말도 없었다. 단지 걸을 뿐이다. 하루에 두 번 정도는 복도 창문가에서 거침없이 소변을 보고 며칠에 한 번씩은 왕복하며 대변도 본다. 그는 말이 없는 만큼 고성도 없었고, 당연히 짜증과 욕설도 없었다. 자신의 생활실인 방을 잊고 가끔은 옆방인 8호실이나 맞은편의 방 침대에 몸을 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폭력성이 없고 잘 웃는 온순한 바보였다. 물론 아주 가끔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를 구사하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런 모습은 두어 달에 한 번 있을까 하는 일이었다. 김동수 노인은 4호실을 좋아했다. 3층의 모든 요양보호사들은 김동수가 보이지 않으면 먼저 4호실을 확인했다. 4호실에 있는 그는 문재창의 침대 옆에서 그냥 창문 밖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편한 부동자세를 하고, 말도 없이. 흡사 눈 뜨고 자는 사람 같았다. 문재창은 어떤 날은 그가 명상에 잠기는 것을 허락했지만, 심사가 꼬인 날에는 무슨 동네에 하찮은 똥개 대하듯 김 노인을 윽박지르고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그날은 문 노인의 둘째, 셋째 딸이 면회를 하고 간 날인데, 아마 뭔가 꼬인 듯했다. 딸들은 이삼 주에 한 번 정도 면회를 왔고, 3층의 요양보호사들과도 아비의 흉을 보며 격의 없는 듯 대화를 나눌 정도로 소탈해 보였지만, 절대 진심은 아니었다. 그들 부녀는 적당한 면회와 적당한 거리를 항상 유지했다. 물론 면회 때마다 언제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그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김동수 노인을 손용구가 방으로 모시며 상황을 정리하는 와중 김 조장과 강순임은 식당 겸 프로그램실에 간이침대를 펼쳤다. 야간 근무조와 휴식조가 각자의 할 일을 할 시간이다. 손 요양보호사를 포함한 근무조는 간호데스크의 의자에 앉아 한 명이 열여섯 조각으로 나눠진 42인치 모니터의 화면을 주시했고 두 명은 하루 동안의 요양업무를 케어포에 업로드했다.
밤 아홉 시 반. 복도는 적막했다. 몇몇 생활실의 문밖으로 티비 화면의 빛이 새고 있었지만, 썩 괜찮은 밤의 조짐이다. 일단 노인들이 일찍 잠들면 요양보호사들의 여러 가지 수고가 덜어진다. 기저귀 착용을 잊은 노인이 비틀대며 화장실을 간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쉼 없이 간식을 찾아 입에 넣고 사레 들리는 이가 없었으며, 복도에는 나오지 못하고 방 안을 빙빙 도는 노인이 누워 있는 룸메이트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손용구는 모니터를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1호실 네 명의 할머니들은 모두 얌전히 누워 있었다. 네 명 중 두 명이 강직 증상을 보여 운신을 못 하고 남은 두 명 역시 침상에서 끼니를 도움받아야 하는 처지니 어둠 속에서 평온할 수밖에 없다. 2호실에는 온정신과 피해망상을 오가며 깔끔을 떠는 홍인경 어르신이 침대에 앉아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약에 취했는지 코를 골고 있었다. 3호실은 연신 비대한 몸을 뒤척이며 한숨을 쉬는 이금순 노인만 도드라졌다. 4호실에는 샤워를 마친 문 노인이 팬티 차림으로 몸을 닦고 있었다. 같은 생활실을 쓰는 주영호 노인은 전일 아들네로 3일간의 외박을 떠난 상태다. 5호실의 식탐꾼 이명규 노인은 숙면을 취하고, 아주 대조적인 두 명의 최씨 노인들은 온몸에 이불을 휘감고 있었다.
6호실과 8호실의 남자들은 모두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고 7호실의 김동수는 입을 벌린 채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지만, 9호실의 할머니들 세 명은 모두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다. 10호실의 한분옥 노인은 자신의 소지품과 옷가지로 바리바리 보따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 비닐, 보자기에 자신의 짐을 단단히 꾸렸다가 풀고, 한참을 생각하다 다시 싸고 풀고를 반복했다. 나머지 두 명은 모두 비위관(鼻胃管)을 삽입한 상태라 특별히 눈길을 줄 필요는 없었다.
3인실의 11호는 한 명의 입원으로 두 명만 생활하는 상태였고, 비위관을 삽입한 홍순자 노인은 누워 있고 맞은편의 김숙희 노인은 침대에 앉아 홍 노인을 바라보고 연신 중얼거리는 듯 보였다. 독방이자 특실인 12호실의 이재식 노인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었다.
열여섯 개로 나뉘어진 화면은 전체적으로 시끄럽지 않고, 분주하지 않은 조용한 밤을 밝혔다.
아홉 시 사십오 분. 손용구는 혼자 남자 방을 돌며 기저귀 케어를 하고 박희숙과 이정례는 함께 여자 생활실을 둘렀다.
열두 시 반. 김 조장과 강순임이 프로그램실의 잠자리를 정리하고 교대하러 나왔다.
손용구는 남자 어르신들의 상태를 뭉뚱그려 전달했다. 사실 전달할 내용도 특별히 없었다. 이정례와 박희숙은 조장에게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혼자 화장실을 가겠다고 우기는 3호실 이금순 어르신의 고집과 저승사자 서넛이 와서 방 안을 들여다보고 갔다는 홍인경 어르신의 망상을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11호실 홍순자 어르신의 신음이 유난하다 했고 김숙희 어르신은 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김 조장은 인수인계를 한 후 어서 들어가 자라고 손짓하며 강순임과 함께 기저귀 카트를 밀며 1호실부터 생활실을 돌기 시작했다. 하루 여덟 번 세 시간에 한 번 기저귀를 교체하는 게 규칙이지만, 보통 열두 시 반에서 한 시 사이에 기저귀를 보고 새벽 다섯 시 기상 시간에 뒷물을 하며 케어하는 것이 관례였다. 손이 빠르고 힘이 좋은 김 조장과 강순임은 호흡이 잘 맞았다. 둘 다 5년이 넘는 선임 요양사들이었지만, 경력을 떠나 일머리가 빠꼼해 그들은 기계처럼 오염된 기저귀를 갈았다. 12호실을 쓰는 이재식 노인부터 시작해 11호실의 홍순자 노인, 그리고 10호실, 9호실로 움직였다. 고요한 밤에 기저귀 카트를 끌며 이동하다 보면 언제나 특실의 노인은 호출벨을 눌러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케어를 요구했다. 노인의 이런 고집은 세 개 조의 야간 기저귀 케어 순서를 의례 12호실부터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김 조장과 강순임이 열아홉 명의 기저귀 교체를 하는 데에는 25분 정도가 걸렸다. 세 명이 나눠서 하는 것보다 15분 이상 더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기저귀 케어를 마친 후 김 조장은 모니터를 응시했고, 강순임은 케어포를 입력하느라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새벽 두 시 반.
강순임과 김 조장은 간호사실에서 교대로 한 시간씩 허리를 눕혔다. 열두 개 생활실과 엘리베이터와 복도를 비추는 열여섯 개의 조각 화면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네 시 반. 김 조장이 간호사실에서 나오자 강순임은 이미 스물아홉 개의 양치통과 칫솔을 준비해 놨고, 세면 수건과 뒷물 수건까지 따끈하게 덥혀 기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삼십 분 후면 하루의 시작, 노인들 기대 수명의 24시간 차감이 또 시작된다.
그 밤, 김 노인은 침대에 눕지 않았다.
바깥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벽면의 시계가 열두 시 반을 넘어 보였다. 건넌방에서 요양보호사에게 투정부리며 징징거리는 비루 먹은 할배 소리가 났다.
“저 인간도 곧 갈 거 같은데… 생긴 거마냥 징허게도 사네.”
김숙희는 비웃듯 내뱉었다. 그녀의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랜만에 성질을 내는 것이라 조금 긴장이 되었다.
잠깐 바퀴 구르는 소리가 나고 생활실 입구에 작은 등이 켜졌다. 조장과 강 선생이다. 그들은 나를 보고 왜 아직도 취침하지 않느냐 어서 주무시라며 채근을 했다.
“잠이 와야 자지, 억지로 자나?”
“그래도 얼른 주무셔야죠.”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을 하며 홍순자의 기저귀를 보기 시작했다. 방 안에 똥 냄새가 퍼졌다.
“변 보셨네.”
강순임이 노인을 모로 뉘어 허리를 잡았다. 그새 김 조장은 휴지와 물티슈로 노인의 항문과 엉덩이를 소독하고 오염된 기저귀를 둘둘 말아 새 기저귀로 교체했다. 모든 움직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버려지는 시간이 없었다. 그들이 입구의 전등을 끄고 나간 시간은 3분도 채 안 걸렸다. 기저귀 카 소리와 사그락거리는 쓰레기봉투 소리가 옆방에서 들리는 것을 확인한 김 노인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출입문에 몸을 붙이고 10호실에 불이 켜진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홍순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야 이년아, 아까 뭐라고 했냐. 내가, 그 흉악한 놈들한테, 내가 꼬리를 쳤다고?”
김숙희는 속삭이듯 홍순자에게 얼굴을 붙이고 이죽거렸다.
“그놈들이 나를 얼마나 볶았는데 니 년이 그걸 어쩌케 아냐. 내가 그 힘든 시기 먹고 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나보고 걸레라고?”
감고 있던 홍 노인의 눈이 살포시 열렸다. 그녀의 마른 입술 사이로 가냘픈 숨소리가 흘렀다. 김숙희의 눈이 순간적으로 희번덕거린다. 이 년이 콧구멍에 줄을 끼고 밥을 처먹는 주제에 나를 비웃고 있어. 가늘게 째진 눈으로 한껏 웃으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이 썅년이!”
김숙희의 손이 거칠게 홍순자의 콧줄을 뽑아냈다. 누워 있던 노인이 눈을 홉떴다. 밭은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조용해 이년아. 이 씨발년아, 가만히 있어!”
어금니를 앙다물며 김숙희는 비위관을 잡아채서 노인의 목에 두 번 감았다. 뼈에 살가죽을 입힌 홍순자의 목은 수액걸이대에서 비위관 전부를 떼어낼 길이도 필요 없었다. 김숙희의 양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홍 노인의 안색이 변했다. 코에서 입에서 속엣것들이 흘러나왔다. 홍순자의 손이 무기력하게 허공을 허우적댔고 끅끅거리는 신음은 어둠 속에 묻혔다. 얼마나, 몇 분이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홍순자의 몸은 이내 침묵에 빠졌다. 살이 부딪히는 듯 큰 숨이 넘어가는 두어 번의 뭉툭한 물결이 김숙희의 팔과 귀에 울렸다. 끝났다. 김숙희는 만족스런 웃음을 흘렸다.
“이년아, 결국 니가 이렇게 만든 거야. 어디 감히 나를 희롱해. 이 썅년아.”
기저귀 카의 소음이 시나브로 멀어졌다. 비위관을 거둬 자신의 봇짐에 쑤셔 넣는 김숙희의 어깨에 11호실의 봄밤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어수선했던 며칠이 지났다.
홍순자의 유족들이 몇 번 더 요양원을 방문했고, 원장의 얼굴은 매일매일 무너지고 있었다. 3층의 요양보호사들은 사건과 무관하게 모두 정상적으로 근무에 임했다. 더불어 김 조장의 B조 이외의 A와 C조 역시 두 시간에 한 번씩 하던 야간 라운딩을 한 시간마다 돌고 야간근무 중 교대로 머리를 눕히던 휴식마저 스스로 자제하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요양원의 모든 요양보호사들은 조금 긴장된 자세로 근무했고, 가벼운 농담을 삼갔다. 소위 에프엠대로,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들었던 노인 인권과 요양사들의 근무 윤리를 따르는 모습도 보였다.
김숙희는 당일 어스름이 깔릴 즈음 경찰들과 함께 요양원을 나섰지만, 그 이후 소식은 들리는 게 없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2주가 지난 후 옆 도시의 어느 요양원에서 거주 노인들 간의 폭력으로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티비에서 방송했다. 프로그램실에서 노인들과 색칠하기를 하던 손용구가 간호데스크로 향했다.
“김 조장님, 지난번 사건은 조용히 잘 묻혔나 보네요. 뭐 들은 거 없어요?”
잠깐 이마를 찌푸리던 김 조장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며 손용구와 눈을 맞췄다.
“가족들하고 합의했다잖아요. 보험금은 보험금 따로고 5천만 원인지 4천만 원인지로 합의했대요. 가족들이 특별한 클레임 거는 것도 없었고, 모두 흉하게 가시기는 했지만, 그냥 가실 때가 다 되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는데요.”
김 조장이 나직이 대답했다.
“아니 그게 무슨, 어차피 가실 분인데, 외려 합의금이라도 챙겼다는 건가?”
손용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김 조장은 다시 황급하게 조용하라는, 그만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쪽도 일이 커지고 시끄러운 것은 싫었던 모양이고, 이미 원장하고도 아는 사이니까 조용히 넘어간 모양이야.”
“그 김숙희 어르신은 어떻게 됐대요?”
“일단 정신병원에 갇혔다고 하던데, 잘 몰라요.”
“지금 뉴스에서 ○○시 ○○요양원에서 어르신들 간 싸움으로 사망 사건 났다고 뉴스에 크게 뜨는데, 그럼 저 요양원은 합의가 안 됐나…. 저긴 이제 금방 폐업하겠구만. 여기 일은 지자체하고 언론은 아무도 모른대요?”
김 조장은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야 모르지. 뭐 애썼다는 얘긴 들었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이 원장 말고 누가 있겠나?”
그리고 더 이상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닫았다. 손용구는 혀를 차며 프로그램실로 걸음을 옮겼다.
“야 이 개새끼야!”
문재창 노인의 고함 소리가 봄 햇살을 가르고 복도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