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대요

한국문인협회 로고 구경분(강화)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조회수13

좋아요0

유진이네는 동네에서 식구가 제일 많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노총각 삼촌 둘, 아빠, 엄마, 유진이, 그리고 여동생이 셋 있습니다. 유진이를 낳고 아들을 하나 더 낳는다고 낳은 것이 딸을 쌍둥이로 낳았기 때문에 여동생 둘이 한꺼번에 생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하나 낳겠다고 했는데 또 딸을 낳아서 딸이 넷이 되었습니다. 제 먹을 복은 다 타고나는 법이라며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아기를 낳겠다는 유진이 아빠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살림도 옹색한데 대책 없이 아이만 많이 낳는다고 걱정을 합니다.

 

유진이네는 논과 밭을 10여 년 전에 외지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땅을 판 돈으로 축사를 짓고 소를 20마리 샀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소를 기르는 것이 훨씬 힘이 덜 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 삼 년 정도는 정말 땅을 팔아 소를 키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재미를 보았습니다. 한 해에 소가 10여 마리씩 불어나면서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구제역이 돌면서 70여 마리의 소를 몽땅 땅에 묻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유진네는 빚을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일 년 후 다시 소를 열 마리 샀습니다. 그런데 그해에도 또 구제역이 돌아 소를 몽땅 땅에 묻었습니다. 자꾸 불어나는 빚 때문에 이젠 소를 키울 엄두를 못 냅니다. 요즘엔 도시 사람들이 사놓은 땅을 맡아서 농사를 지어 주기로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하여 먹고 삽니다.

 

유진이 삼촌들은 올해 큰삼촌이 서른다섯 살, 작은삼촌이 서른두 살입니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청년들입니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유진이 삼촌들이 돈이 없는 농촌 총각들이라서 장가를 못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유진이네 집엔 항상 웃음꽃이 핍니다. 식구들이 모두 싱글벙글 얼굴입니다. 유진이 막냇동생 유라가 얼마나 재롱을 피우는지 유라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리고 두 삼촌들도 코미디언 저리 가라 하게 아주 웃깁니다. 지난해 추석 마을에서 노래자랑을 할 때 두 삼촌이 나가서 인기상을 탔습니다. 유진이 할아버지도 아주 좋으신 분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유진이 할아버지를 ‘명판사님’이라고 부르십니다. 마을에서 어려운 일을 의논할 때 언제나 유진이 할아버지가 좋은 의견을 내시기 때문입니다. 여지껏 유진이 할아버지의 말대로 한 것 중에서 나쁘게 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마을에 일만 생기면 무조건 유진이 할아버지를 모셔갑니다. 유진이 할머니는 동네에서 ‘홍길동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할머니도 남의 집에 어려운 일 당하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시는 성격이십니다. 그래서 마을에 일이 생겼다 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십니다. 궂은일일수록 팔을 걷어붙이고 해결사 노릇을 하십니다. 사람들은 ‘홍길동 할머니’를 모두 좋아합니다. 유진이 아빠는 못 다루는 농기계가 없고 못 고치는 농기계가 없어 유진이 아빠 별명은 ‘척척박사’입니다. 유진이 엄마는 부녀회장으로 추천을 받았는데 막내 유라가 너무 어려서 사양했습니다. 그리고 언제 또 다섯째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유진이네 식구들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가 착하고 성실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복 받을 사람들만 모여 있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실패를 보아 마을 사람들이 매우 안타까워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일구는 일도 유진이네가 시작하면 뒤틀어져서 망합니다. 올해는 배추를 3000포기 심었는데 본전도 못 건졌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 하느님이 있다면 어째서 저렇게 좋은 사람들은 쫄랑 망하게 허고 사기꾼 같은 놈들은 부자가 되게 허는 거여?”
올가을에도 유진이네는 상수도 값을 탕감해 주자는 의논을 하는 자리에서 형욱이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셨습니다. 유진이네는 삼 년 전부터 일 년에 한 가구당 3만 원씩 내는 마을 상수도 값을 면제받았습니다.

 

모인 분들이 만장일치로 유진네 상수도비를 면제해 주는 것이 결정되는 순간에 회관 사랑방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유진이 할아버지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보게들, 우릴 걱정해 줘서 참 고맙네. 근데 나 이제부터는 물값 낼라네.”
마을 이장인 혜미 아빠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닙니다, 어르신. 올해는 물값을 만 원씩이나 더 올려 받도록 하였거든요. 집안 형편 필 때까지 물값은 신경 쓰지 마십쇼.”
이장님 말씀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유진이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서며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고 나 이제부턴 아주 부자가 되었다네. 왜 우리 선친이 옛날에 서울 근처에 속아서 산 맹지로 야산 자락이 하나 있다고 했지? 그게 무슨 개발이 된다나? 해서 돈이 10억이나 들어오게 되었다네.”
유진이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모인 사람들은 모두 뒤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온 마을로 퍼져 나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진이네 식구들이 모두 착하게 살아 복을 받은 거라며 부러워하였습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