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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천지(蘭香天地)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용희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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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천지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다. 어느 지인께서 보내오신 영상이다. 마침 ‘이슬이의 기고만장’에 올리려고 어느 문우님의 작품으로 영상을 만들고 있던 참이었다.
시간은 벌써 열한 시다. 좀 전에 편집을 끝낸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시도해 보려는데 시간이 좀 늦었다 싶어 서둘러 제작을 끝내고 톡을 연다. 아직 잠들지 않으시고 전하시는 영상이 궁금하다.
난초의 향기가 천지에 퍼진다는 뜻의 설명이 자막으로 뜬다. 덧붙여 은은하지만 강한 난초 향기가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모습을 비유한 말이라고 설명한다.
활짝 피어난 난초는 호수에서도, 물이 흐르는 벼랑에서도 곱게 피어 있다. 은방울 모양의 난은 새들의 무리처럼 노래를 하고, 구름의 바다에 닿아 있는 절벽에서도 세상 근심 없다는 듯 웃고 있다.
배경음악도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곱기만 하다. 배경으로 흐르는 김재호 시, 이수인 곡인 <고향의 노래>다. 이 가곡은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있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해 준 터라 익히 귀에 익어 있다. 가창 시험 시간이었다고 한다. 어느 친구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 중에 나오는 ‘꽃 등불’을 잘못 표현하여 ‘꽃등심이 타겠네’라고 불렀다고 했다.
교실이 떠나갈 듯했을 것 같은 그 시간을 이 노래만 나오면 연상하는 아들이다. 이렇게 어느 사건이나 물품이나 지역, 계절들은 어느 특정한 사람을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은 우리에게 기쁨이 되기도, 아픔이 되기도 한다.
갑자기 이 영상을 이 시간에 보내오신 분이 가슴속에서 꼼지락거린다. 잠이 안 오시는 걸까? 아니면 이 밤이 너무 길어서일까?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 끝에 주위의 사람들이 생각나신 것일까? 그중의 하나인 내가 그분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요즈음 내 주변 문인들의 글을 영상과 함께 편집하여 동영상 제작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시작하여 오늘 밤 열 번째의 작업을 끝낸다. 이슬이의 기고만장이란 제목처럼 문인들이나 친지의 글 일만 편을 제작하겠다고 시작한 작업인데 이제 열 편을 채운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창조주께서 허락하시는 한은 이 작업을 이어 나가겠다고 결심을 한다. 만장의 만을 ‘일만 만(萬)’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멀고도 먼 시간을 내가 채울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던 날도 있다. 그렇지만 그 ‘일만 만’을 ‘찰 만(滿)’으로 바꾸고 보니 그런 걱정은 사라진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기고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시간이다.
누구인가는 귀찮게 이런 것을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낼 것을 나는 안다.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카톡의 기계음에 열어야 하는 그 불쾌한 감정은 누구나 당연하다. 그렇지만 또 누구인가는 이런 글을 전해 들으며 짧은 시간이나마 채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안다. 정말이거나 인사치레이거나 가끔 올리는 나의 영상에 대한 인사를 듣는 적도 있고, 그 영상의 조회 수에 놀라거나 만족할 때도 있지 않은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이나 일상이 꼭 같지는 않다. 독자 중에 어느 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 않듯이 나의 일상을 어느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맞추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용감해진다.
일만 장의 기고를 받아 유포하고 공유하고 싶은 나의 욕망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다. 어느 분의 한 줄의 글이나 사진 한 장으로 누구인가와는 공유가 되고, 의지가 되고, 잠시라도 빛이나 샘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허세라고도 할 수 있는 욕심을 부려 본다.
이 늦은 밤 나에게 보내주신 난향천지라는 영상으로 나는 그분이 나를 기억하고 가깝게 느낀다는 것을 확인한다. 시조 시인의 대선배이신 분이다.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가 그리울 때 대신할 수도 있겠다 싶은, 아니 저절로 아버지의 자리에 머무르게 되는 분이다. 어려운 사람이었거나 까칠하게 느껴지는 상대였다면 이런 영상을 주고받지는 않겠지. 그분께서도 나를 딸쯤으로 여겨 주시는 것이 아닐까 반갑기도 하다.
영상의 공해라고 하는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그들만의 영양소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 꽃등심이라고 노래한 어느 친구의 사건으로 평생 동안 그 노래만 나오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아들이다. 나의 보잘것없는 영상들이 누구인가에게는 살랑살랑 촛불을 흔드는 바람처럼, 아니면 창가에 와서 앉았다 가는 햇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만 편의 기고를 받으려고 이곳저곳을 기웃대는 오늘이 나의 빈속을 채우고 또 나처럼 빈 공간이 있는 어느 누구인가의 속도 채워 주었으면 하는 희망이 이 밤 난향천지가 된다. 막 끝낸 유튜브 영상을 닫고 난향에 취해 잠들어도 좋은 시간이다. 지인의 평안한 밤을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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