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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세우자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민서(부산)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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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요양원을 찾았다. 요양원 입구에 우뚝 선 홍련, 백련이 인사한다. 먼저 사무실에 들러 입실 전에 열 체크를 하고 아코디언 연주가 이 선생님과 높이 쌓인 음향기기를 싣고 요양원 2층으로 갔다.
올해 초, 요양원 원장님이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매월 어르신들 생신 잔칫날에 공연해 주었으면 하는 부탁을 받았다. 건강이 안 좋아 휴식 중인데 괜찮아지면 그리하겠다고 약속했던 날이 오늘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휠체어에 나란히 자리한 어르신들이 손뼉 치며 우릴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어디 갔다 이제 왔어요’, ‘선생님 많이 기다렸어요’라며 하얀 마스크를 쓴 어르신들이 반가움에 손발을 버둥거렸다.
이 선생님이 음향기기를 설치하는 동안 나는 어르신들 속으로 들어갔다. 오래 전에 만나 뵈었던 어르신들께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진즉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자, 다시 만나서 반갑고 고맙다며 나의 손을 끌어 흔든다. 처음 뵙는 어르신께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자, 나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수줍음에 고개 떨구며 옷자락을 만지작거린다.
첫 순서로 요양원 원장님의 인사말이 있었다. 원장님은 코로나가 유행할 때 갑자기 10여 명의 어르신들이 운명하셔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사기도 떨어져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원장님은 우리를 소개하며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우리 어르신들을 위해 두 분이 공연 왔으니 노래할 때마다 손뼉을 많이 쳐야 다음 달에 또 만날 수 있다고 하자 50여 명의 어르신이 있는 힘을 다해 손뼉을 쳤다.
아코디언 연주가 이 선생님과의 인연은 20년 차다. 장애인들의 손발이 되어 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선한 분이다. 처음에는 색소폰 연주가 선생님과 3명이 주 3회 공연을 했었다. 부산에서 가까운 경남과 먼 포항까지 요양원, 요양병원, 양로원을 찾아 많은 공연을 함께했었는데, 색소폰 선생님이 바쁜 일로 그만두고 난 후, 아코디언 연주가 이 선생님과 듀엣으로 남아 활동하게 되었다.
4개의 스피커가 들썩거리고 아코디언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살짝 떨려 왔다. 옛 가요 3곡을 노래하자 어르신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맨 앞에 앉은 어르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급히 달려와 “넓적다리 관절이 부러져 수술하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렸으나, 어르신의 흥을 가라앉히기에는 부족했다. 이 선생님 노래 1곡, 나의 노래 1곡으로 분위기는 상승했다.
어르신들의 순서가 되었다. 어르신들은 자신만의 노래 한 곡 정도는 가사를 잊지 않고 노래했다. 노래 신청 순서대로 어르신 곁으로 다가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잡아당겼다. 잠시 가사를 잊어버릴 때는 어르신 귓전에 가사를 알려주면 신이 나서 더 크게 노래했다. 나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 한 사발 쏟아내었던 울보 어르신은 아직도 여전하시다. 애창곡 <대머리 총각>을 노래하다 나의 손을 꽉 잡으며 또 눈물 흘렸다.
공연 중에 휠체어 하나가 들어왔다. 요양원 어르신이 아닌 나의 아들 또래 청년이다. 교통사고로 마비가 된 안타까운 청년이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반가움에 손짓한다.
“이 선생님, 성환이가 잘 부르는 <개똥벌레> 노래 반주 부탁합니다.” 나의 말에 어르신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우렁찼다. 성환이는 모깃소리같이 작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2절을 부를 때는 요양원 떠나가게 크게 부르자고 하니 알았다며 두 눈을 깜박였다.
복지관 담당 선생님이 노래 봉사를 재개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자신은 복지관에서 그만두고 어르신들 주간 보호시설을 개업할 거라며 자신이 없더라도 봉사활동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혼잣말만 늘어놓았다. 지금은 몸이 아파서 휴식 중이라 외부 활동을 멈춘 상태라고 했더니 개업할 자신의 주간 보호시설에 나를 먼저 등록시킬 거라며 집으로 데리러 온다는 농담을 툭 던졌다. 함께 웃었지만, 살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척추 대수술 후, 예전의 내가 아닌 듯 후유증이 심했다. 베란다로 나가는 닫힌 통유리 문을 툭하면 들이받고, 세면기 물을 틀어 놓고 다른 일을 하고, 금방 생각한 일 문틀 넘어서면 잊어버리고, 그이가 시킨 사무일 오류 내어 실수하고, 마주 오는 사람이 인사해도 고개 숙이며 대답하고 돌아서서 ‘누구지?’라고도 하고, 정말 견디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런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그이가 앞장섰다. 종종 부딪히는 통유리 문에는 큰 글씨로 ‘문 조심’이라고 적어 붙이고, 수도꼭지 앞에는 ‘물 잠그기’, 가스레인지 앞에는 ‘불 조심’이라는 큰 글씨가 붙어 있다. 또, 실내에서도 운동해야 한다며 고무줄에 매달린 배드민턴공을 천장에 매달아 주었다. 처음에는 싱거워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내가 요즘은 눈뜨면 배드민턴채를 들고 30분 정도 홀로 운동한다.
민요 3곡을 노래하며 1시간 30분 공연이 끝났다. 요양원 원장님은 분위기가 정말 좋다며 인사했다. 다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선생님의 배려가 아니면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보다 나의 의견을 먼저 챙기면서,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친정오빠 같은 이 선생님께 나는 많은 걸 배운다.
지나간 시간보다 지금이 제일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끼며 나를 다시 세우기에 집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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