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7
0
흑두루미는 러시아의 습지나 넓은 갈대밭에서 살며, 3∼4월에 두 개의 알을 낳고 10월이 되면 추위를 피해 일본, 중국, 우리나라의 순천만에서 월동을 하는 철새다. 전 세계 개체 수는 1만 마리 내외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며 멸종위기의 철새다. 순천만에서 겨울을 보내는 흑두루미는 2024년 3월 7,000마리 정도 있었다고 한다. 흑두루미의 몸길이는 95∼100cm, 날개 길이는 1.8∼2m, 몸무게는 3.5∼4kg 정도라고 한다.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그곳 지하에는 아트스퀘어라는 공간이 따로 있어 주로 예술가들이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한다. 때로는 각 예술협회에서 공연이나 전시회를 할 때도 있다. 2024년 8월, ‘춤추는 붓’이라는 예술 체험 축제가 열렸다. 한국문인협회 영등포지부의 서예협회와 무용협회, 문인협회가 벌이는 예술 행사였다.
공연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순천대 환경융합예술학과 전용국 교수의 <춤, 순천만 흑두루미>라는 작품이었다. 전 교수의 춤은 순천만 갯벌과 흑두루미를 주제로 기술과 융합한 공연 콘텐츠를 개발하고 직접 춤을 선보였다. 흑두루미 춤을 보고 있는 동안 혼자 남은 흑두루미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기다란 다리와 팔, 구부정하게 구부린 등과 흑두루미의 깃털을 잘 표현한 잿빛 의상과, 무용수의 섬세한 몸동작과 손놀림이 인상 깊었다. 흑두루미로 분장한 무용수는 긴 팔과 다리로 좁은 무대를 조심조심, 사뿐사뿐 춤을 추었다. 무용수가 흑두루미의 외로움을 잘 표현해 주어서 가슴이 조마조마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춤은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예술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낯설다는 생각을 하던 터였지만 깊은 울림이 왔다. 춤 동작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외로운 감성이 다가왔다. 그리고 슬펐다. 두루미가 하는 이야기는 하소연 같기도 하고 고맙다는 인사 같기도 한, 그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두루미의 하소연을 잘 들어줬는지, 그 여운은 온몸으로 느껴져 내 몸에 작은 전율이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 마음속에 흥분이 가라앉고 아름답고도 섬세한 춤사위가 눈에 선했다. 다음 날 전영국 선생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의 흑두루미 춤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그 느낌을 에세이로 쓰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선생은 당연히 좋다고 하며 흑두루미 무용을 하게 된 경위를 간단히 들려주었다.
시베리아에서 오다 날개를 다쳐서 쓰러진 새를 한 시민이 구해 주고 닭장에 넣어 키운다. 봄이 되었으나 고향(시베리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날개를 다쳤던 흑두루미는 회복된 뒤에도 닭장에서 12년을 살았다. 흑두루미는 인간에 대한 경계가 낮은 편이라서 육안으로 관찰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단다. 닭장에서 지낸 지 12년이 지나서야 조류 전문가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날 수 있는지 실험을 한 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야생으로 보내려고 순천만에 방사를 했으나 야생 흑두루미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 결국엔 다시 닭장에서 보호를 받다가 모든 철새가 시베리아로 떠난 뒤에야, 순천만에서 뒤늦게 홀로 떠났다는 것이다. 닭장에 갇힌 채 오랫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두루미의 아픔과 외로움이 춤 속에 녹아들어 관중의 가슴에 전달된 것이다.
내 고향 동해안에는 풍호라는 석호가 있었다. 그곳에는 갈대밭이 있고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찾아왔다. 두루미는 물론이고 여름에는 수많은 제비들이 밤마다 잠들기도 하던 갈대밭이었다. 지금은 그곳이 매립이 되어 철새 한 마리도 깃들 수 없게 되었다. 고향을 떠났지만 여러 종류의 생명체가 깃들던 아름다운 호수에 대한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흑두루미 춤을 보면서 호수에서 또 논에서 긴 다리로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던 두루미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또 위협을 느끼면 금방 감지하고 긴 다리로 재바르게 달려가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 모습이 대단하고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전영국 교수는 순천만 갯벌과 흑두루미 춤을 가지고 프랑스 외에 몇 나라에서 버스킹(busking)을 하면서 멸종위기의 철새, 흑두루미에 대해서 여러 나라에 알리려고 하는 분이었다. 우리나라 순천만이 철새 도래지로 해마다 두루미들이 찾아오고, 그 지역에서는 곡류 등 먹이를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겨울 철새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2025년 서산 천수만에서 흑두루미 서식 조사를 한 결과 1만 1천여 마리가 확인됐다고 한다. 그 외에도 주남저수지, 철원, DMZ 등 겨울 철새들이 찾아들고 있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하여,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연이 살아야 인간이 산다. 멸종위기의 철새, 외로운 흑두루미 춤을 보면서, 이제는 외롭고 아픈 두루미는 예술로만 만나는 지난 이야기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