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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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초반, 신아조선에 근무할 때다. 버스를 타고 다니기 불편해 조선소 근처에 집을 지어 이사했다. 마을 어귀에는 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기 위한 아담한 동산이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눈길을 붙들었다. 어머니는 6·25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됐다. 당신의 파란만장한 생애의 한 많은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시청 담당자를 만났다. 길을 내거나 확장하면서 옮겨 놓은 비석들이라 했다. 남은 터는 개발하며 옮길 장소이기에 개인은 불가하다고 했다. 근처에 터를 사려고 여론을 살폈다. 대다수 주민은 찬성하였으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리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어서, 마음속에 어머니의 비(碑)를 세우고 때를 기다렸다.
집 지은 지 36년, 낡아 누수가 차고 외풍도 심해졌다. 생활하기에 편리하다는 아파트로 옮기기로 했다. 근무처와 가까운 죽림 신도시에 이사했다. 이곳으로 와서 뒷동산을 자주 찾았다.
어느 날 하산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히 무사했다. 자갈길이라 방치하면 누군가 다칠 것만 같아 자갈을 길섶으로 모았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모으다 보니 돌무더기가 쌓였다. 이왕 돌을 모았으니 탑을 쌓고 싶었다. 폐광산의 쓸모없는 돌일지라도 예쁘게 탑을 쌓으면 볼거리가 될 터이니 말이다.
탑이 완성되었다. 장마철로 접어들었다. 며칠 만에 갔더니 탑이 무너져 있었다. 비탈진 데다 부엽토 위에 바로 쌓기 때문이었다.
터를 고르고 지반을 다져 쌓았다. 탑의 이름을 모정이라 짓고 탑의 상단부에 간병 일기 『눈물의 노래』 책을 넣었다. 어머니의 비를 마음속에 간직한 지 40여 년 만에 돌탑으로 쌓았다. 바윗덩이를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탑 쌓기에 재미를 붙여 암반 위로 장소를 옮겨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쌓았다. 등산객의 안전을 강조하는 의미로 칠성신을 본떠서 일곱 개를 쌓기로 했다. 여섯 번째 탑을 반쯤 쌓았을 때, 산 주인이 철거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 돌탑을 철거할 것을 생각하니 암담했다. 일단 만나 보고 꼭 철거하라면 딱한 사정을 하소연할 참이었는데, 근처에 모친의 수목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 또한, 어머니 돌탑을 쌓은 사연을 힘주어 말씀드렸다. 내 손을 잡고 미안하게 되었다며 쌓던 것은 미관상으로 좋게 완성하라고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칠성탑을 쌓으려던 계획은 접었다. 쌓던 탑도 한 손 뗐다.
어느 날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가 숨 넘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 탑이 큰 바위가 굴러 내려와 무너졌다는 것이다. 탑이 아니었으면 한길을 덮쳤을 텐데, 참 신기하다고 했다. 달려가 위쪽 언덕배기를 살펴보니 얼기설기 쌓아 둔 바위가 빠져 굴렀던 흔적이 있었다.
올봄에 어머니 돌탑을 다시 쌓기 시작했다. 만사 불여튼튼이라 했던가. 언덕배기에 엉성하게 쌓아 놓은 바위를 안전하게 손보았다. 바위가 굴러올 만한 길목에는 꽃벚나무를 심었다. 탑 위를 드리우고 있는 나무들은 다른 나무에 벌이줄로 매었다. 그리고 지반의 침하를 막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를 하고,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은빛 도금한 강철 망을 입혔다.
탑 옆 두렁에, 당신의 한 많은 삶을 「님의 염원(念願)」이라 시를 지었다.
나라에 바치신 몸 못 오시는 그날도/ 이마에 손을 얹고 잿길만 쳐다봤소/ 당신이 낳은 자식 하나 기르는 것이 도리며/ 핏줄 잇기는 환생으로 믿었고/ 여럿 기르는 정성을 쏟으면 열 자식/ 남부럽잖게 키울 수 있다 다짐했소/ 칠십 년 고개고개 참사랑을 섬길 제/ 임 향한 일편단심 한시인들 잊으리오.
탑 아래 두렁에, 송강 정철의 「훈민가(訓民歌)」를 새겼다.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길 일 다 하여라/ 지나간 후/ 애닯다 한들 어찌하오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탑명; 모정의 탑. 높이 2.5m, 둘레 6m. 모양 원뿔형 이중탑. 기간 11년.
창문을 열면 쌍무지개 자리*에 모정의 탑이 첫눈에 들어온다.
*쌍무지개 자리; 처음 이사 왔을 때, 쌍무지개가 떠서 큰소리로 마누라를 불렀다. 하필, 그 자리에 모정의 탑이 있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는 현상을 자주 보았다. 이상스러워 신애원 원장에게 여쭸다. 옆 운동장이 폐광산의 물웅덩이로 동네 아이들의 수영장이었단다. 듣고 보니 운동장 밑의 지하수에서 수증기를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