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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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동네 5일 장날입니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나는 동생 슬기와 함께 장터로 가보았지요. 채소와 생선들이 넘쳐나고, 고양이, 토끼, 강아지, 병아리 같은 작은 동물들이 철망 안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단연 고양이입니다.
“형, 얘 좀 봐. 털빛이 너무 곱다, 그렇지?”
“나는 그 옆에 있는 노랑이가 더 마음에 드는데.”
“그런데 엄마 아빠에게 고양이 키우자고 말 꺼낸 지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아직 소식이 없을까?”
“오늘 집에 가면 엄마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보자.”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아빠도 오늘은 일찍 들어오셨네요.
“너희들이 엄마에게 고양이 키우자는 이야기를 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구나. 오래 기다렸지? 그동안 새끼 고양이들은 어미 뱃속에서 잘 크고 있다가 3주일 전에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단다.”
“야, 신난다!”
“영식이 아저씨네 어미 고양이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를 내일 우리 집에 가져오신대. 어때, 이제 됐지?”
“아빠 최고!”
“원, 이 녀석들도, 허허.”
다음 날 저녁, 영식이 아저씨가 케이지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넣어 들고 왔어요. 아기 고양이는 눈 주위만 까맣고 온몸이 흰색인 아주 예쁜 놈이었어요.
“어때, 마음에 드니? 새끼 6마리 중에서 제일 예쁜 아이란다. 이제 이름을 지어 주어야지?”
“슬기의 동생이니 슬기가 이름을 지어 주렴.”
아빠가 말했어요.
“예, 아빠. 털빛이 눈같이 희니 ‘스노우’라고 할래요.”
“그래, 그 이름도 좋겠다. 스노우야!”
아빠가 부르자 고양이는 마치 저를 부르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는 듯 작은 목소리로 “야옹” 하고 화답을 하였답니다.
아빠는 스노우의 잠자리를 거실 안쪽에 만들어 주었답니다. 아기 고양이는 곧바로 잠에 떨어졌지요. 고양이는 원래 잠이 많은 동물이랍니다.
슬기와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 속에 스노우는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슬기는 친구네 집에 갈 때도 스노우를 케이지에 넣어 가지고 다닌답니다. 그만큼 자랑하고 싶었던 게지요.
어느 날 밤에 슬기는 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빨간 무지개 하나가 산에 걸려 있는 꿈이었어요. 슬기는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저 꿈이려니 하고 말았죠.
요즘 나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다가 스노우에게 주는데, 스노우는 넙죽넙죽 잘 받아먹습니다. 슬기가 걱정을 했지만 별일 없겠지 하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그것이 문제를 불러일으킬 줄은 상상도 못했죠. 마치 꿈과 같이요.
학교가 파하고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도, 슬기도, 그리고 스노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식탁에 메모지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우람아! 스노우가 많이 아파서 슬기랑 동물병원에 간다. 검사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대. 엄마가 식탁에 간식 만들어 놓았으니 먹어. 엄마가.’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엄마, 스노우 많이 아파요?”
“지금 검사 중이니 결과를 봐야지. 그런데 너 혹시 스노우에게 이상한 것 먹이지 않았니?”
“글쎄…, 아참, 학교 앞에서 파는 간식거리를 사서 먹인 게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거야?”
“아무래도 그게 말썽을 일으킨 것 같아. 기다려 보자.”
키트 검사와 초음파 검사가 끝난 후 진료실에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슬기와 엄마는 그 방으로 들어갔지요. 수의사 선생님이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습니다.
“걱정 많이 하셨죠?”
“예, 무슨 병입니까?”
“췌장염입니다. 대부분 식욕 부진과 구토가 따라옵니다. 그리고 토사물에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이물질이 섞여 있더군요. 이 물질이 염증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큰애가 스노우의 간식거리로 사다 먹인 것이 말썽을 일으킨 것 같군요.”
“어린아이이니 절대적으로 음식에 조심해야 합니다. 수액을 맞거나 위까지 들어가는 관을 통해 음식을 넣어 주어야 하고, 지방 함량이 적은 음식을 먹이고요.”
“또 조심해야 할 것은요?”
“구토가 심해서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구토를 억제하는 약물을 함께 사용합니다. 끝으로 당뇨병 등의 다른 합병증이 동반되면 위험하니 철저히 조심해야 합니다.”
슬기와 엄마는 스노우를 케이지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던 나는 어쩔 줄 몰라 했죠. 엄마는 내게 스노우의 병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 다시 그런 이상한 것 사 먹일 거야?”
“모두가 다 내 잘못이에요. 슬기가 말릴 때 진작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나도 스노우에게 무언가 좋은 일을 해 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었어요. 이제는 스노우가 하루 빨리 낫도록 열심히 기도할게요.”
엄마와 슬기는 관을 이용해 음식을 스노우에게 먹이고, 스노우가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면 진통제를 먹였어요. 하지만 스노우는 회복이 더디었습니다. 다만 먹는 음식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무서운 합병증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 데 최선을 다했죠.
한 달 뒤, 슬기와 엄마와 나는 함께 스노우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어요. 다시 또 검사가 시작되었고,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죠.
한 시간 뒤, 수의사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다행히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영양 섭취도 그런대로 잘 되고 있고요. 이제 염증이 완전히 사라지면 치료는 끝나죠. 고생 많이 하셨고, 계속해서 잘 돌봐 주세요.”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다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르니까요. 슬기는 스노우가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침대에서 잔 적이 없습니다. 스노우의 잠자리 옆에 이불을 깔고 함께 잠을 자고 있답니다.
슬기는 가끔씩 힘없는 스노우의 눈동자를 쳐다봅니다. 그 눈빛에는 감사와 고통과 희망이 한데 섞여 있었지요.
슬기는 스노우와 고통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한층 의젓한 소년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슬기는 학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스노우와 함께 했습니다. 잠시도 스노우가 고통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돌봐 주고 함께 말동무가 되어 주었죠. 어느새 스노우의 눈빛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답니다.
그날 밤이었어요. 꿈속에서 슬기는 스노우를 조심스레 안고 가랑비 속에 먼 길을 걷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비가 개이고 나서 눈앞 동산에 희망의 쌍무지개가 뜨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때 무언가가 잠에서 깨어난 슬기의 팔을 혀로 핥는 것이었어요. 그것은 바로 스노우였어요! 드디어 스노우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지요.
아침식사 자리에서 슬기는 가족들에게 밤새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죠. 모두들 기쁨과 희망을 가슴 가득 품게 되었네요. 참으로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