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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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뒷산 등산로에서 토끼를 만난 건 6년 전. 어느 따뜻한 봄날 새끼 토끼 두 마리가 나타나 뭍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1∼2년이 지나도 식구가 불어나지 않아 의아해했다. 혹시 같은 종(種)끼리만 살고 있나 했는데, 어느 날 새끼 6마리를 데리고 나타나 식구가 8마리로 늘어났다. 동네와 가까워 하루 종일 운동 겸 산책을 나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먹이를 가져다 주고 정성껏 보살펴 새끼들도 무럭무럭 자라 거의 어미만큼 자랐다. 흰 토끼, 갈색 토끼, 검정색과 흰색이 섞인 토끼 등 갖가지 색의 토끼들이 온 산을 뛰어다녀 토끼 동산을 연상케 했다.
그렇게 평화롭던 토끼 동산에 이변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약 일주일 사이 토끼 8마리가 모두 사라졌다. 토끼가 사라지자 여러 사람들이 자기 가족이 무슨 변을 당한 것처럼 서운해하고 허탈감에 빠졌다. 필자도 그때 감정을 글로 표현해 아시아 신춘문예에 응모, 수필가로 등단해 토끼와는 인연이 남다르다. 등단 후 토끼에 대한 글을 몇 편 쓰기도 했고….
토끼가 사라지고 난 후 누군가가 새끼 토끼 한두 마리를 갖다 놓았지만 얼마 못 가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은 몸집이 보통 토끼의 2배가 넘는 큰 토끼가 나타났지만 이틀 만에 보이지 않기도 했다. 성남 모란시장이나 청량리시장 같은 가축을 파는 시장에 가서 토끼 한 쌍을 사다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지인의 친구가 화성시 봉담읍에 거주하는데 토끼가 새끼를 8마리 낳았는데 4마리를 가져가란다고 해 지인 부부와 주말에 봉담으로 갔다. 토끼 주인은 출타 중이고 옆사람에게 2마리만 가져가라고 했단다. 감사한 마음으로 태어난 지 3개월 가까이 됐다는 한 쌍을 감별해 서울로 데려와 뒷산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이사를 시켰다. 매일 새벽 5시에 운동을 나가 밤새 토끼가 안녕한지 인사를 하고, 낮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먹이를 갖다 주고 퇴근 후에도 이상이 없는지 살피고 돌보길 8일. 처음 하루이틀은 적응이 안 돼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더니 4∼5일이 지나자 등산로에 나타나기도 하고 운동하는 사람들 옆에서 깡충깡충 뛰놀고 뭍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재롱을 부린다.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귀여운 토끼가 뛰노니 삭막한 산 풍경이 훨씬 정감이 가고 생동감이 생겼다고 좋아들 한다. 특히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이 너무 좋아한다.
토끼는 귀엽기도 하고 총명하고 영악해 다산의 상징으로, 번식력이 강해 일 년에 한 쌍이 480마리까지 번식을 한다는 기록이 있다. 생후 6개월이 지나면 번식을 할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새끼를 낳으며 많게는 10마리 이상도 낳는다.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다산의 상징인 본성을 찾고, 야성으로 돌아가 교활하고 영민하게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 교토삼굴(狡兎三窟; 교활한 토끼는 자기 방어를 위해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을 터득해 적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 온 산에 토끼가 뛰노는 토끼 동산을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토끼가 이사 온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아침, 매일 두 마리가 같이 먹이를 먹고 풀을 뜯으며 뛰놀고 인사하는데 한 마리만 보이고 한 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토끼 한 마리 못 봤느냐고 물어도 모두 못 봤다고 하는데, 지인 한 분이 100여 미터 떨어진 대방동 쪽 계단 밑에서 봤다고 해 그곳으로 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한 마리만 외롭고 쓸쓸하게 풀을 뜯고 있는 게 무척 쓸쓸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8일째 되는 날 아침. 오늘은 두 마리가 반겨 주겠지 하고 기대를 하고 갔는데, 어제 보이던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어제 오후 늦은 시간 7시경 토끼집을 만들어 놓고 매일 뛰노는 곳에서 두 마리가 같이 있는 걸 봤다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밤사이 두 마리가 다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고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하산했다. 점심 식사 후 산책 겸 토끼를 찾아보러 갔지만 역시 찾을 수 없고 보이지 않는다. 어제 오후 7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점심때 가봐도 없고 저녁때 가봐도 보이지 않는다.
9일째, 행여 오늘은 나타나려나 가느다란 기대를 하고 갔지만 오늘도 토끼는 나타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은 들고양이가 많아 들고양이에게 물려 죽은 게 아닐까 하기도 하고, 족제비도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만약 들고양이나 족제비에게 물려 죽었다면 털이나 가죽이 흩어져 있어야 하고 반항한 흔적이라도 있을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털이나 가죽 흔적이 없다. 집으로 만들어 준 종이박스도 같이 없어졌다. 또 두 마리가 한꺼번에 동시에 들고양이에게 물려 죽을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을 텐데라는 의구심이 꼬리를 문다.
6년 전에도 일주일 사이에 8마리가 사라진 점, 덩치가 큰 어미 토끼가 이틀 만에 사라진 것을 상기해 보면, 누군가가 고의로 잡아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집토끼라 사람과 친하고 먹이를 주어 기르니 사람을 따르고, 누구든 잡아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아갈 수 있다.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 배낭이나 가방에 넣어 가면 아무도 모른다. 남을 의심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만, 들고양이나 다른 동물에게 당했다면 흔적이 남았을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흔적이 없으니 혹시나 하는 의심 아닌 의심을 하게 된다.
토끼 동산을 염원하며 토끼와 어우러져 자연을 즐기고 사색하며 토끼와 동고동락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토끼를 이주시켜 돌봐 왔는데…. 요즘같이 각박하고 인정이 메마른 사회에서 누구나 자연에서 마음껏 뛰노는 토끼를 친구 삼아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여유를 갖도록 하고픈 마음으로 토끼를 이주시켜 토끼 동산의 꿈을 실현시키려 했는데…. 토끼 동산의 꿈은 8일 만에 끝난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고 말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토끼를 데려갔다면 잘 키워 번식을 잘 시켜 주길 당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