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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제홍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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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30분쯤, 어머니가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남겨진 세상과 정을 떼기 위해서였을까?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즐거움도 마다하고 조용히 누워 있다가 삶을 마감한 것이다. 어머니는 새로운 세상으로 소풍을 떠나며 자식들에게는 풍목지비(風木之悲)를 남겼다. 어머니는 조용히 떠나셨다지만 자식들에게 남겨진 그 슬픔이 쉬이 가라앉겠는가? 어머니와 작별의 아픔을 삭이고 있을 때 문득 요양병원 간호사가 말했다.
“마음이 아프시더라도 어서 어머니를 장례식장으로 모셔 주세요.”
황당했다.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유족들에게 애도할 시간은 주지 못할망정 이렇게 등을 떠밀어야 하나? 그리고 한밤중에 장례식장 수배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날이 밝는 대로 장례식장을 수소문해서 모시겠습니다.”
내 대답에 간호사는 단호했다.
“안 됩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고인을 잃은 가족의 심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너무 차갑다.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치게 사무적이다.
새벽 4시경, 10여 곳의 장례식장과 긴박하게 접촉하고 나서 어느 장례지도사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젊은 여자 장례지도사는 청산유수처럼 묻는 말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나이에 비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상주들의 아픔을 헤아려 줬고, 가려운 부분을 정확하게 긁어 주었으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도 제안해 주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두 명의 장례지도사가 장례식장 일의 대부분을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담이나 비용 정산은 물론 염습도 그녀들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두 명의 여성 장례지도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빠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밤에 잠은 잡니까?” 하고 물었다. 새벽에도 봤고, 낮은 물론 밤에도 봤기에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충분히 쉬어 가면서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상조회사에 가입하지 않아서 장례식장 소속 장례지도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는 상조회사에 가입한 다른 상가(喪家)보다 더 번거로운 상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퉁명스럽게 말한 적도 없었다. 질문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했고, 진행해야 할 절차는 빠뜨리지 않도록 꼼꼼하게 챙겨 줬다. 어머니를 가족 납골당에 모시고 나서 마무리를 위해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두 명의 여성 장례지도사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에게 원활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웠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들은 손을 맞잡는 대신 뒤로 감추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덕분에 내민 손만 민망해졌다.
장례식을 모두 마치고 며칠이 지났을 때, <김창옥 쇼>라는 교양 프로에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형제가 출연했다. 그들은 장례지도사가 된 배경이나 현재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다. ‘장례지도사는 장례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데 사람들은 저희와 손잡는 걸 꺼린다’라는 것이다. 그들은 표정을 묘하게 지으며 덧붙였다. ‘시체 닦이’라며 악수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순간 장례식장에서 여성 장례지도사들이 악수를 청하던 내 손을 맞잡지 않고 정중한 인사로 대신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그녀들은 악수를 거부한 게 아니고 나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장례지도사들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몸을 깨끗이 닦아 주고, 곱게 화장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시체 닦이’와 악수하는 불찰(?)이 없도록 배려까지 해 준 모양이다. 그토록 마음 씀씀이가 바다처럼 넓고 봄날 햇볕처럼 따뜻한 사람들이라니…. 그녀들의 세심한 배려가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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