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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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엔 어수선한 꿈을 꾸다 깨어났다. 날마다 극심한 사회의 갈등으로 혼란하고 불안했던 마음 때문이지 싶다. 가만히 누워 마음을 안정시킨 후 주방으로 나가서 미지근한 물을 한 컵 천천히 마신다. 밤사이 경직된 근육을 몇 가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어준 후 아침 기도를 드리고 나면 또 하루가 펼쳐진다. 은은하게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거실을 둘러봐도 아직도 집 안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다. 여느 때와 같이 제일 먼저 현관문을 열고 종이신문을 가져다 탁자 위에 얹어두고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청소년기에는 항상 아침잠이 모자랐다. 학교에 지각할까 봐 겨우 눈을 비비고 허겁지겁 일어나면 아버지는 언제나 마루에서 조용히 신문을 보고 계셨다. 직장에 출근하기 전까지 신문을 보고 필요한 기사는 늘 스크랩하는 모습을 일찍부터 어깨너머로 보고 자랐다. 가끔씩 퇴근 후 스크랩한 기사를 찾아 다시 읽으시는 날은 분위기가 진지해 보였다. 아버지의 책장에는 오래전에 스크랩한 지면이 누렇게 색이 바랜 종이신문이 스크랩북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도 학교에 다닐 때나 직장에 나갈 때는 눈앞에 닥친 과제나 업무에 필요한 책을 보느라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방학이나 휴일이 되면 신문을 보면서 마음에 닿는 글도 읽고 미처 모르고 있던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방향을 어렴풋이 느끼는 정도였다.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가면서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남편이 신문을 읽고 출근하고 나면 부지런히 집안 정리를 한다. 외부에 나갈 일이 없는 날은 편안한 마음으로 신문을 차분히 훑어보며 필요한 기사는 빠짐없이 읽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도 짬짬이 그날의 신문은 잊지 않고 읽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때부터 교육, 건강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보고 꼭 기억하고 싶은 지면을 스크랩하는 자신을 보면서 문득 친정아버지의 기억이 떠올랐다. 매일 신문을 보고 정보에 따라 책을 주문하기도 하고 공연이나 전시회를 관람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전업주부가 겪는 고립감과 퇴보된다는 상실감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에 차츰 신문은 내 생활에 꼭 필요한 길잡이라고 생각했다. TV나 다른 매스컴을 통해서도 여러 정보를 접할 수도 있지만 신문은 일일이 선택하지 않아도 한꺼번에 다양한 분야를 섭렵할 수 있고 기록성을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2008년 새해에는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100주년을 맞으면서 시인 100명이 추천한 현대 시 100편이 하루 1편씩 신문에 연재되었다. 나날이 오늘은 누구의 시가 소개될지 기다리며 1편씩 감상하고 시인의 시평을 읽는 즐거움은 소녀처럼 가슴이 떨리는 느낌이었다. 평소에 익히 알고 애송했던 시가 소개되면 반가웠고 최근에 발표된 새로운 시가 소개되면 신선한 마음에 몰입되었다. 시 1편씩을 읽고 정끝별 시인과 문태준 시인의 뜻깊고 재미있는 시평을 음미하는 시간은 더없이 행복했다. 두 시인의 해설 속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시인들의 진솔한 삶을 알게 되면서 다시 한번 시를 재발견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루하루 한 편씩 빠짐없이 읽고 스크랩하는 기쁨으로 보내다가 마지막 100편을 받아 본 후에는 뿌듯하면서도 무척 아쉽고 허전했다.
어느 날 우리 집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딸이 신문과 책 때문에 무거워서 분리수거가 힘들다고 했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신문을 받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 수거장에도 종이신문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도 날마다 신문을 보는 오래된 루틴은 어떤 설득에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시대에 뒤처지는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신문을 집중해서 보는 동안은 잡념이 없어지고 내가 아직 살아 있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 수십 년 꾸준히 신문을 구독한 자양분으로 늦게나마 수필을 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신문을 읽고 필요한 기사나 좋은 글감의 소재를 발견하면 스크랩을 한다. 앞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신문 분리수거를 직접 하는 일이 있어도 종이신문은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