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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도 두고 갈 텐데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영주(화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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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오음리 근방 병풍산 자락으로 전원주택을 짓고 춘천서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2년이 된다. 도시는 모든 소리가 공해의 소리로 잠을 깬다. 그러나 이곳은 자연의 소리와 신록으로 물든 초록빛에서 잠들었던 주변의 꽃들의 화사한 미소를 보며 새벽을 맞는다. 사방에서 들리는 이름도 모르는 산새 소리도 좋지만 멀리서 크게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와 함께 창조의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5시가 조금 넘으면 서서히 집을 나와 삼백 미터 정도 올라가면 밭 위 마련한 가족묘가 있는 병풍산 자락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는 길 주변에는 남색의 수레국화, 노란 금계국, 빨간 화초양귀비가 길가에 피어 있고 키가 큰 접시꽃이 색색이 길옆에 피어 있어 나는 꽃들의 사열을 받는 기분이다. 우리 집이 제일 높은 곳에 있으니 누가 보는 사람은 없다. 올봄처럼 4월에 눈이 산에 쌓이면 이곳은 초록이 봄을 맞이하고 있지만, 앞에 보이는 한국의 100대 명산인 오봉산, 용화산은 눈이 쌓여 알프스산맥을 보는 것 같은 이국적인 풍경이다.
요사이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주변에서 먼저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이 잘 살았다고 할 것인가 가끔 생각이 난다. 잘 산다는 것이 뭘까? 그리 쉽게 내릴 답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살아가는 데 특별한 것 없이 그냥 살아서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저렇게 살다 보니 벌써 서산에 해가 지고 있지 않은가?
나의 인생관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정·비·공·장·고’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항상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내 정신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제일 잘 사는 길이라고 말하곤 한다.
요사이는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아침 눈만 뜨면 얼마나 좋은 글들을 많이 대하는가? 그것도 너무 많이 매일 대하니 그리 공감이 가지 않고 이제는 점점 공해의 수준까지 다다랐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답이 어디 있는가? 내가 오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내가 없는데 기적이 일어나면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대로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정답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것과 서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밀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말을 하지 말아야지 내가 입으로 말을 하면 그날부터 비밀이라는 단어는 본연의 뜻을 잃어버리고 만다. 내가 말을 하고 말한 상대가 비밀을 지킬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특히 위로 비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위로 비교하다 보면 마음에 점점 상처가 쌓인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이가 더할수록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받는 것보다 남에게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실천하다 보면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다. 예전부터 조금이나마 나누어 쓰려고 조금씩 후원한 것이 습관화되어 정년했지만, 지금도 몇 군데 도움을 주고 있다. 돈은 살아있는 신이라고 한다. 돈은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만, 돈에 모든 삶의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삶의 철학이 빈곤해진다. ‘나’보다 ‘우리’라는 단어에 가치를 귀중히 할 때 사회가 밝아지는 것 아닐까?

 

세 번째로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임금이 신하들에게 백성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글을 써 오라고 했다. 신하들은 12권의 책을 만들어 임금에게 가지고 왔다. 왕은 백성들이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데 백성도 들어도 알 수 있게 한 줄로 써 오라고 했다. 12권의 책을 한 줄로 줄이기는 12권의 책을 쓸 때보다 더 힘이 들고 시간이 더 걸렸다. 줄이고 줄여서 한 줄로 쓴 글을 임금에게 보였다. 임금은 글을 펴 들더니 흡족해하며 정말 딱 맞는 좋은 글이라며 만족해했다. 신하들이 써 온 글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글귀였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온 뒤로는 밭은 인삼 하는 분에게 임대로 주었지만 삼백 평 정도는 우리 부부가 노력과 땀으로 일할 만큼 농사를 지으며 즐기지만, 어찌 일하다 보면 남에게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상대가 돈을 받지 않을 때는 그가 좋아하는 소주 상자로 답례하거나, 커피 한 상자라도 답례하는 것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 절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는 사람 볼 때는 장점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내 가족들에게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습관보다 망원경으로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멀리 망원경으로 내다보며 서로 격려하고 나이 먹은 사람의 경력을 살려 서로 소통해야 한다. 우리 집에는 내가 탐석한 수석에다 크게 새겨 놓은 가훈처럼 생각하는 ‘네 덕, 내 탓’이라는 글자가 있다. 모두 잘된 것은 아내와 자식들이라고 생각하고, 안 된 것은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는데 젊은 시절은 혈기 덕인지 그리 실천하기 힘들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실천하고 노력한 탓인지 아내와 며느리, 사위, 자식들과 친구들이 항상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가끔 동기들을 비롯한 지인들이 잔디 이불을 덮으러 떠났다고 문자가 오기 시작한다. 또 부부 중 누가 먼저 돌아갈 선택을 받을 줄 모른다. 남편은 아내의 옆에서 떠나는 것이 제일 행복하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리 내 뜻대로 되는 것일까? 그러다 보면 고독이라는 친구가 찾아올는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일 힘든 것이 고독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 점점 고독이라는 친구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돈이 많은 사람도 마지막 떠날 때가 오면 삶에 대한 기도가 아닐까?
새벽부터 꽃길을 걷고 있지만 앞으로 이 길은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시간이 가면 이 아름다운 꽃도 지고 자기가 갈 길로 돌아갈 것이다.
인간도 태어나면 누구나 가진 것 없이, 혼자 온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젠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숨소리도 두고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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