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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그림자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장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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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슬픔도,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도 세월이 흐르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60여 년 전, 좀처럼 내 곁을 떠날 것 같지 않았던 어머님이 세상을 뜨셨다. 황망 중에 집에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운구 행렬이 집을 나서던 날과 묘지에서 하관식이 있었던 때는 그렇게는 보내드릴 수 없다고 몸부림치던 내 모습이 선하다. 그랬던 나도 세월이 흐르면서 어머님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인간의 삶이 그런 것인가 보다.

 

꿈에 오랜만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인자하신 예전의 얼굴 모습 그대로다. 장남인 나는 격변기를 겪으며 어머니와 생계를 책임지느라 고생을 참 많이도 했다. 그리고 나를 끔찍이도 챙겨 주셨다. 그래서 누구보다 어머니와는 각별하다.
어머니는 용모가 단정하고 조용한 분이시다. 12살 어린 신부로 세다리 혼인을 했다. 각각 남매가 있는 세 집에서 한날한시에 치러지는 혼사가 세다리 혼인이란다. 어찌 그런 일이 있다는 말인가? 누가 지어낸 말 같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지난날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천안 병천면 사자골이라는 벽촌에서 나서 자랐다. 12살 어린 신부는 돌모개고개라는 10리 고개를 함진아비를 따라 걸어서 진천 칙목이라는 벽촌으로 시집을 왔다. 혼수래야 고작 물들인 한지(韓紙)뿐. 아버지의 여동생은 음성에 사시는 고모부 집으로, 고모부 여동생은 사자골 외삼촌 댁에 한날한시에 치른 혼사다. 처음으로 만난 13살 신랑은 튼실한 청년으로 조실부모한 가장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늘만 뻥 뚫린 벽촌이라 싸리비를 매어 장에 나가 파는 것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5일마다 열리는 장에 가려면 십리 고개 셋을 넘어야 천안 입장 장터가 나온다. 싸리재고개, 중간고개, 양듸고개가 각각 10리 고개다. 전날 매어 놓은 싸리비를 지게에 지고 새벽달 보고 나서서 십리 고개를 넘으면 날이 샌다. 아버지는 워낙 건강체여서 피곤을 몰랐다. 그만큼 아버지는 강골이셨다. 싸리비와 바꾼 보리쌀 몇 되가 식사 재료였지만 신혼 생활은 행복했단다. 그곳에서 아들 둘을 낳아 키웠다. 그러나 귀여운 두 아들을 1년 만에 홍역으로 잃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자식을 키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누님을 낳은 지 일주일 만에 핏덩이를 가슴에 품고 무작정 서울로 이사했다. 지금의 신설동이라는 낯선 곳이다. 울창한 나무 속에 움막을 짓고 그 속에서 지내며 아버지는 막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힘들다는 인천의 부두일 등을 찾아 거처를 인천으로 옮겨 봤다. 그곳에서 1년을 사는 동안 동네 곳곳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친척뻘 되는 분의 소개로 평택에 둥지를 튼다.
아버지는 꼿꼿한 성격이다. 정직하고 타협을 모른다. 사회성이 전혀 없으시다. 그래서 누구도 비위 맞추기가 어렵다. 어머니도 무척 힘들어하셨다. 그래서 집안 분위기가 딱딱해질 때가 많다. 고집이 세고 평생 병원에도 안 가본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자기 건강만을 믿고 병원에 늦게 간 것이 화근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벌어 들인 흙토담집 한 채와 채마밭 170평이 유산이다. 장남인 내가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해도 극구 반대하셨다. 내가 사는 서울보다는 정이 든 평택 집이 더 좋다고 하시면서. 직업이 없이 어렵게 사는 넷째 동생과 같이 살겠단다. 후에 안 일이지만, 못사는 아들을 살리려는 어머니의 깊은 뜻인 것을.

 

딸만 넷을 낳아 풀죽어 있는 맏며느리를 사랑으로 감싸 주셨다. 늦게 아들을 낳았을 때는 누구보다 제일 기뻐하셨다. 몸소 화목을 실천하며 살다 가신 어머니. 그래서 남편인 나보다 시어머니를 더 따랐던 아내. 나도 나이가 들어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창가에 비치는 어머니의 그림자를 그려 본다. 평생을 자식이 잘되는 것만을 바라며 살다 가신 어머니. 오늘따라 어머님이 몹시 보고 싶어진다. 아늑한 품속에 기대어 잠들고 싶은 우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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